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76화 (176/299)

176화

제49화. 선배와 후배(1)

하니엘과 MAYO가 동일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고, 파트너 미션을 소화하기 위해 서로 팀을 맺기로 했지만, 그래도 두 그룹은 본인들만의 길을 걷고 있는 별개의 팀이다.

둘 다 컴백을 위한 앨범 작업을 위주로 진행하다가 따로 시간을 내서 파트너 미션 연습을 하기로 일정을 조율했다.

일단 오늘, 하니엘은 렛플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자신들의 소속사인 LC 안무 연습실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래도 컴백 준비 하나에만 집중하다가 걸파이트 시즌 2를 통해 다양한 무대를 같이 병행하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오히려 연습도 더 잘되는 거 같고. 생각지도 못한 이점을 얻게 되었다.

오늘도 오전 내내 Tug of war 노래를 들으면서 안무 연습에 매진한 하니엘 멤버들.

“좋아. 15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자.”

“네!”

은서해의 통제에 따라 멤버들은 잠시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이연은 잠깐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뭔가를 집중해서 듣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에 여솜이 관심을 보였다.

“뭐 하고 있어?”

이연은 직접 액정 화면을 보여주면서 대답했다.

“ENB 선배님들 노래 들어보려고. 이번 주 내로 어떤 노래로 연습할지 MAYO 선배님들하고 상의해서 정하기로 했으니까.”

이미 ENB의 노래는 다 알고 있었지만, 그냥 생각 없이 듣는 것과 어떤 곡으로 무대를 꾸밀지 고민하면서 듣는 것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연은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ENB의 전곡을 정주행하기로 했다.

이 중에서 하니엘과 MAYO가 같은 팀을 이뤘을 때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곡을 선택해야 한다.

ENB가 발표한 앨범은 총 다섯 개.

여기에 그녀들이 불렀던 OST와 싱글 곡까지 포함하면 30곡이 넘는다.

하나당 넉넉잡아 4분으로 계산해도 120분이 소요된다.

이연은 이걸 한 번씩만 듣고 넘길 생각이 없었다.

괜찮을 거 같은 노래가 있으면 최소 5번씩은 들어볼 생각이었다.

그녀의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여솜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오전에 쉬지도 못하고 계속 안무 연습을 해서 상당히 피곤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바로 근처에서 듣고 있던 비아가 뒤에서 여솜을 툭툭 건드렸다.

“언니, 그거 알아?”

“뭐를?”

“연이 언니, 나중에 자고 있을 때 내가 몰래 바늘로 한번 찔러보려고.”

“엥? 갑자기 왜?”

여솜이 모르는 사이에 비아가 이연한테 무슨 악감정이라도 들었나 싶었다.

비아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찔러봐서 피가 나오는지, 아니면 기름이 나오는지 알아볼 거야. 내가 봤을 때 연이 언니는 사람 아니라 로봇이라고, 로봇. 아이돌의 정점에 올라서기 위해 머리 좋은 사람들이 온갖 데이터를 입력해서 만든 로봇 말이야. 그렇지 않고선 사람이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저럴 수 있겠어? 응?”

이연의 로봇 썰은 하니엘이 결성되고 나서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던 가설이다.

물론 말도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도 멤버들이 더 잘 알지만, 그래도 워낙 철인 같은 면모를 많이 보여주는 이연이다 보니 비아는 이번에야말로 칼을…… 아니, 바늘을 뽑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이어폰을 끼고 있으니까 자신의 말이 이연에게 안 들리겠지 하고 착각한 거였다.

“다 들린다, 이비아.”

찌릿.

이연의 노려보기 한 방에 비아는 겁먹은 강아지처럼 깨갱 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 * *

ENB의 노래를 수차례 들어본 이연은 최종적으로 3곡을 추슬렀다.

‘이별이라 말하지 마’, ‘너 그리고 나’, ‘마지막으로 ‘Sleep’까지.

하니엘 멤버들도 이연의 픽을 마음에 들어 했다.

아이디어 회의 이후에 두 팀의 두 번째로 합동 연습날이 찾아왔을 때, 이연과 하니엘 멤버들은 나름 열심히 엄선해서 고른 이 세 곡들을 MAYO에게도 알렸다.

하니엘의 의견을 조용히 경청하던 MAYO 멤버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순간 하니엘 멤버들의 마음속에는 기쁨보다는 불안감이 먼저 싹텄다.

혹시 우리의 선곡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MAYO 멤버들이 놀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우리가 고른 것하고 두 곡이나 겹치네.”

“정말로요?”

“어떤 곡인데요, 선배님?”

“‘이별이라 말하지 마’하고 ‘Sleep’. 우리도 너희한테 이 두 곡 한번 제안해 볼까 이야기 나눴었거든.”

아무리 다른 팀이라 할지라도 걸 그룹은 이심전심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두 곡이 정석적인 선택지이긴 하다.

‘이별이라 말하지 마’의 경우에는 역주행 신화를 통해 ENB라는 그룹을 무명 걸 그룹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 기념비적인 노래다.

‘Sleep’는 ENB가 유명 걸 그룹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발표했던 곡들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성적을 보인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도 좋고, 의미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중들이 전주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는 인지도까지.

장점을 고루 갖춘 노래였기에 둘 중 어느 곡을 선택해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MAYO의 예지가 미랑에게 물었다.

“이것도 투표로 정할 거야?”

“그냥 손들고 정하자. ‘이별이라 말하지 마’부터. 이 곡으로 하고 싶은 사람, 손.”

총 11명의 인원 중에서 이연을 포함한 6명이 손을 들었다.

“그러면 나머지는 ‘Sleep’로?”

“네.”

‘Sleep’ 쪽에는 공교롭게도 아야가 들어가 있었다.

첫 번째 아이디어 회의 때부터 지금까지. 아야가 고른 것들은 죄다 채택되지 않았다.

하니엘 멤버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아야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반면, 아야와 같은 멤버인 예지가 작게 웃으면서 그녀를 놀렸다.

“마이너스의 손답네.”

“내가 그 별명 언급하지 말라고 했지?”

“왜. 맞잖아.”

이연도 방금 예지가 말한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에 대해 알고 있었다.

MAYO도 다른 걸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컴백할 때마다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곤 했었다.

선택지를 골라서 거기에 맞는 미션을 수행하는 예능 프로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아야가 고르는 것마다 죄다 꽝이 나와서 그날 이후부터 그녀에게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그때는 방송이었기에 웃으면서 넘어가곤 했었지만, 사실 그녀는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게 그다지 좋진 않았다.

그래서 카메라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정색을 해버리고 말았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함인지 미랑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전환했다.

“‘이별이라 말하지 마’로 정해졌으니까, ENB 선배님들 영상 보면서 안무는 어떻게 할지 정해보자. 파트 분배도 오늘 안으로 할 수 있으면 정하도록 하고. 시간 얼마 없으니까.”

“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

두 팀 다 평소에 워낙 바쁘게 지내다 보니 이렇게 서로 한자리에 모였을 때 최대한 일을 진행해 두는 게 좋다.

오늘의 내가 고생해야 내일의 내가 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 *

11명으로 구성된 ENB 팀의 곡을 고른 게 파트 분배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굳이 인원수에 맞게 새로 파트를 나눌 필요 없이, 바로바로 파트 분배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중에서 제일 관심의 대상이 되는 건 역시 메인보컬 파트다.

MAYO의 경우에는 아야가 메인보컬 포지션을 맡고 있다.

하니엘의 경우에는 이연이다.

“메보 파트는 누가 맡을래?”

지원자를 받겠다는 미랑의 물음에 아야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나.”

‘이별이라 말하지 마’는 메인보컬이 제일 눈에 띄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돌인 이상, 가장 빛나는 자리에 서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그만큼 고음 파트가 많기 때문에 웬만한 보컬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메보 자리에 쉽게 도전장을 내밀 엄두를 못 냈다.

그럼에도 아야는 자신감 있게 나섰다.

그녀의 보컬이라면 하니엘 멤버들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미랑은 약간 생각이 달랐다.

“이연이는? 지원 안 할 거야?”

“…….”

미랑의 말에 아야가 반사적으로 이연을 견제하는 시선을 보였다.

그러자 미랑이 손을 뻗어서 아야의 눈을 강제로 가렸다.

“아, 왜!”

“내가 분명 저번에도 말했지? 선배라고 무조건 양보받고 그런 거 없다고. 우리는 팀이야. 팀의 승리를 최선으로 생각해야지, 자기 자신만 돋보이면 된다는 이기적인 발상은 접어둬.”

“그러면 오히려 더 내가 메인보컬로 가야 하잖아.”

“이연이 실력, 너도 잘 알잖아.”

현재 활동 중인 걸 그룹 중에서 ‘이별이라 말하지 마’ 후렴구 파트를 안무와 함께 라이브로 부를 수 있는 아이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성대 파괴 노래’라는 별칭이 붙을까.

“그리고 아야, 너는 체력 부족이 항상 문제잖아. 이번 곡은 안무도 격한데, 라이브까지 할 수 있겠어?”

“그야 연습하면…….”

“연습 시간이 일주일도 안 되는데?”

“…….”

아야에게 불안 요소가 있는 이상, 미랑은 이연에게도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이연 하면 안정감. 안정감 하면 권이연이기 때문이다.

어느 포지션에 가더라도 항상 자신의 몫 이상을 해내는 만능 아이돌.

미랑이 하니엘과 팀을 이루고 싶어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권이연이라는 최고이자 필살의 승리 카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까 본인이 말했듯이 미랑은 팀의 승리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이번에 어떻게든 우리가 1등을 차지해야 해. 그래야 1라운드 미션에서 베네핏으로 유리하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첫 경연 프로그램 참가인 만큼 MAYO는 어떻게든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미랑은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아이비제이 트윙클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에 놓인 미션부터 무사히 클리어를 해야 한다.

아야 입장에선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미랑이 섭섭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예지나 오린은 미랑의 입장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는 반응을 취했다.

“미랑 언니 말대로야.”

“그럼 이연이하고 아야가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메보 파트 불러볼래? 평가는 우리가 하면 되잖아.”

권이연과의 대결이 성사되려고 하자, 아야는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미랑이 이연에게 어떻게 할지 물었다.

“해볼 거지?”

이연도 분명 메보 자리를 노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권이연, 단 한 명에게 집중되었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자, 이연은 몰래 쓴웃음을 삼켰다.

‘내가 먼저 선후배든 공평하게 대해달라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이연이 고민하는 태도를 보이자, 하니엘 멤버들마저 고개를 갸우뚱했다.

고민할 게 뭐 있나?

평소 이연의 성격이라면 바로 하겠다고 했을 텐데.

그러나 이번 파트너 미션 때의 이연은 콘셉트를 다르게 잡기로 했다.

“아니요. 저는 아야 선배님이 맡는 게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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