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71화 (171/299)

171화

제48화. 동맹 제안(3)

며칠 뒤.

박도수 매니저가 아이디어 회의를 위해 미팅룸에 모인 하니엘 멤버들을 찾았다.

“연아. 저번에 스튜디오 가서 팀 리더들끼리 찍은 사진들 오늘 받았는데. 볼래?”

“네, 보여주세요.”

각 팀의 리더들과 함께 걸파이트 시즌 2 진행자인 민주린까지 모여서 총 여덟 명의 여성들이 여러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멤버들도 박도수 매니저가 톡방에 올려준 사진들을 각자의 폰으로 훑으면서 감상 모드에 들어갔다.

“어머머, 미랑 선배님 왜 이렇게 멋있게 나오셨대.”

“민주린 선배님 봐봐. 이 머리 스타일 엄청 잘 어울리시지 않아?”

“저는 혜원 선배님이 가장 눈에 띄네요. 역시 비주얼이…… 물론 제일 예쁜 건 연이 언니예요.”

시우가 마지막에 이연 쪽으로 말머리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이연이 피식 웃었다.

“괜찮아. 나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타입이니까.”

이연은 프로필 사진 촬영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관심 있어 하는 건 바로 두 번째 그룹 미션 내용이다.

하니엘이 컴백하기 전까지 1라운드 세 개의 미션이 모두 진행될 것이다.

시기상으로 계산해 보면 2라운드가 막 시작될 무렵, 그때쯤에 하니엘이 정식 컴백 무대를 가지게 될 텐데.

기왕이면 기분 좋게 무대에 올라야 하지 않겠나.

1라운드 최종 미션에서 꼴찌를 당하고 컴백 무대를 준비하려고 하면, 있는 의욕마저 다 떨어질 것 같다.

머릿속으로 그룹 미션에 대해 여러 차례 생각해 봤지만, 마땅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SSS 때에는 그나마 대충 감이라도 잡을 수 있었는데.’

참가자 전원이 동일한 연습생 신분이었던 것과 달리, 걸파이트는 데뷔 연도가 제각각인 현역들 간의 대결이라서 그런지 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걸파이트 시즌 1을 참고삼으려고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황이전 PD도 시즌 1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거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은 아직까진 유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이연의 맞은편에 앉은 비아가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이연의 얼굴 앞에 손바닥을 펼친 채 좌우로 슥슥 흔들었다.

이연이 한 손으로 턱을 괸 자세를 유지하면서 비아에게 물었다.

“뭐 해.”

“아니, 언니답지 않게 멍 때리고 있길래.”

비아 말이 사실이긴 하다.

이연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루웰로 살아갈 때에는 피곤해도 정신만은 똑바로였는데.

성별뿐만 아니라 그녀가 알던 모든 것들이 달라져서 그런지 생각할 게 많아지면 유독 피곤함을 느끼곤 했다.

박도수 매니저가 헛기침으로 멤버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조금 있다가 홍 실장님 오신다고 하니까, 그때 너희의 컴백 활동 방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자. 알았지?”

“네!”

멤버들이 기운찬 목소리로 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팅룸 문이 열렸다.

처음에는 홍류현 실장인 줄 알았는데.

엉뚱한 인물이 모습을 나타냈다.

“안녕, 얘들아.”

오채일 대표가 멤버들에게 먼저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 대표의 등장에 박도수 매니저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처음에는 지나가다가 잠시 인사차 들른 줄 알았다.

그러나 오채일 대표가 뒤따라온 홍류현 실장과 나란히 자리를 잡고 나서야 멤버들은 깨달았다.

여솜이 멤버들 모두를 대신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대표님도 회의에 참가하시는 건가요?”

“어. 너희가 앞으로 우리 회사를 대표할 아이돌 팀이 될 텐데. 나도 적극적으로 나서야지. 안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대표가 껴 있으면 뭐라고 해야 할까.

툭 까놓고 말해서 불편하다.

하지만 상급자는 본인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부여한다는 걸 대부분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오채일 대표도 비슷했다.

“내가 말이야. 마침 기가 막힌 프로그램 자리 하나 구해놨거든? 구서윤 PD라고 알지? 그 사람이 이번에 기획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이게 뭐냐면…….”

그전에 이연이 선수를 쳤다.

“여행을 콘셉트로 짠 프로그램이죠? 우리나라 지역 명소 찾아다니는 거요.”

“어?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걸파이트 회식 자리에서 황이전 PD님하고 다른 분들이 이야기 나누는 거 곁에서 들었어요. 그 지역에 관련된 퀴즈들 맞히면서 장소 구경하고, 설화나 민속 이야기 소개하고. 그런 프로그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아. 이연이가 정확하게 아네. 어때?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

눈빛을 반짝이는 오채일 대표였지만, 이연의 반응은 싸늘 그 자체였다.

“아니요. 노잼입니다.”

이연의 직설적인 화법에 박도수 매니저와 홍류현 실장이 동시에 사레가 들렸다.

하니엘 멤버들의 동공도 크게 흔들렸다.

한편, 너무 날카롭게 훅 들어온 이연의 일침에 오채일 대표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노잼이야……?”

“네. 예능보다는 교양 프로그램에 더 어울려요. 하니유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건 그 지역의 설화, 민속 이야기가 아니라 저희에 대한 것일 테니까요. 대표님께서 추천해 주시는 프로그램은 방향성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가장 중요한 재미 요소도 보이지 않아요.”

“그, 그런가?”

“네.”

“…….”

베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 만큼 날카로운 이연의 말들에 오 대표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나?”

옆에서 박도수 매니저와 홍류현 실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려고 했다.

“아니요! 충분히 훌륭합니…….”

“매니저님, 실장님.”

이연의 성격상 이걸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았다.

“솔직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저희 대표님, 속 그렇게 좁으신 분 아니니까요. 다 이해해 주실 거예요.”

“…….”

“…….”

또다시 시작된 눈치 싸움.

오채일 대표가 이연이 말한 것을 두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했다.

“이연이 말이 맞아. 자네들도 들었을 때 이건 아닌 거 같다고 생각이 들면 바로 말해줘. 아까도 말했지만, 하니엘의 활동 방향은 우리 회사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니까.”

오채일 대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연이 말이 맞습니다!”

“그 프로그램보다는 다른 예능에 나가는 게 좋아 보입니다!”

여기에 멤버들도 이연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저희도 솔직히 재미없을 거 같아요.”

“잘해낼 자신도 없고요.”

모두가 이연의 편을 들어줬다.

오채일 대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했다.

“알았어. 그럼 방금 내가 했던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자. 그리고 이연이, 방금 솔직하게 의견 말한 거 굉장히 좋았어. 잘했어.”

“감사합니다.”

“나라고 항상 대박 콘텐츠만 찾아내는 건 아니니까. 내가 놓친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봐주고. 그러면서 점점 좋은 방향으로 잡아가는 거야. 언제, 뭐가 뜰지 모르는 게 콘텐츠 시장이거든.”

이연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오채일 대표의 이런 모습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이러니까 LC 엔터테인먼트가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거였다.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우는 오채일 대표.

그사이에 이연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느라 바빴다.

박도수 매니저가 헛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우리 대표님 말을 면전에서 바로 반박한 사람은 아마 연이, 네가 처음일 거야.”

“처음은 아닐 거예요. 대표님도 예전에는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던 시절이 있었을 테니까요.”

태어났을 때부터 대표였던 사람은 없다.

오채일 대표 역시 매니저 생활부터 시작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고집이나 체면 같은 걸 내세우지 않고 이연의 주장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회사 대표 앞이라 할지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줄 아는 여자, 권이연.

하니엘 멤버들은 오늘따라 그런 그녀가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비아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리더는 정말 잘 뽑은 거 같아. 언니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두말하면 잔소리지.”

이연과 한 팀이라면, 아무리 험난한 연예계 생활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갈 자신이 생긴다.

걸파이트 시즌 2에서도 분명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 * *

LC 엔터테인먼트 안무 연습실.

이곳에서 하니엘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은서해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줄다리기 파트에서 동작 더 크게!”

댄스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하니엘 멤버들은 오늘도 쉴 새 없이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막 샤워라도 한 사람처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컴백 일자가 가까워질수록 연습의 강도는 더욱 세질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무대로 향하는 길은 오직 연습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오전까지만 연습에 매진해야 했다.

오후에 중요한 촬영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안무 연습실을 찾은 박도수 매니저가 멤버들에게 외쳤다.

“슬슬 출발해야 하니까 빨리 씻고 나와.”

“네, 알겠습니다!”

이다음에 걸파이트 시즌 2 촬영을 위해서 부지런히 준비해야 한다.

블라인드 미션이라는 첫 그룹 미션이 끝난 다음에 모이는 자리.

샵에 들렀다가 촬영 현장으로 향하는 동안, 멤버들의 마음가짐은 첫 촬영 때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던 우미가 무심코 혼잣말을 흘렸다.

“첫 그룹 미션 때 주어졌던 베네핏, 아직 공개 안 됐었지?”

옆에 앉은 이연이 그녀의 혼잣말을 그대로 주웠다.

“응. 나중에 알려준다고 했어.”

“오늘 알려주시려고 그러나?”

“아니. 내가 보기에는 2차 그룹 미션까지 끝내고 1라운드 마지막 미션 발표할 때 공개할 거 같은데.”

물론 이연의 말이 확실한 건 아니다.

그녀도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제작진이 어찌나 입이 무거운지, 이연은 앞으로의 전개에 관해서 조금의 힌트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진절혜처럼 내통하고 그러는 사람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네.’

적어도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현장에 도착해서 대기실에 잠시 머무른 뒤, 촬영 시간에 맞춰 그녀들은 다시 무대로 올라섰다.

카메라가 돌고 난 다음에 순차적으로 한 팀 한 팀씩 자리를 채워갔던 첫 촬영 때와 달리, 오늘은 오프닝 전부터 모든 팀들이 미리 와 앉아 있는 걸로 시작을 알렸다.

스탠바이.

큐 사인이 떨어짐과 함께 참가자들은 여기저기서 웅성이던 지방 방송을 일제히 OFF로 돌렸다.

“…….”

“…….”

“…….”

스튜디오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 참가팀에게는 대본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조용히 있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를 무렵이었다.

갑자기 무대 한쪽에서 퍼엉―! 하는 굉음이 들렸다.

사방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꺄악―!”

“엄마야!”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고.

이 소란에 아이돌들은 단숨에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 와중에 이연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방송 사고.

그녀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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