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67화 (167/299)

167화

제47화. 블라인드 미션(5)

한발 먼저 무대에 올랐던 샤이걸스나 가을소녀 팀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정체를 속이기 위해서 일부러 인원수도 조절하고.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정직하게 ‘우리 팀원은 세 명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듯 의상도 딱 세 명만 맞춰서 입었다.

심지어 본인들 곡에 메인보컬인 미수도 그대로 자신의 파트를 똑같이 소화했다.

누가 봐도 이 팀은 아이비제이 트윙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보는 이들이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우는 여전히 눈을 의심했다.

“아이비제이 선배님들, 그냥 포기한 거 아닐까요?”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이 미션은 아이비제이에겐 너무나도 불리하니까.

어차피 이번 그룹 미션에서 꼴찌를 한다고 해도 라운드 탈락은 아니니까. 그냥 자신들의 역량을 시청자들에게 한번 보여주고 끝내기로 한 것일 수도 있다.

깔끔하게 포기할 건 포기하고. 얻을 건 얻고 가자는 전략이지 않을까.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연은 아이비제이의 행보를 다르게 봤다.

“오히려 선배님들의 저런 모습이 사람들을 더 혼란시킬 수도 있어.”

“무슨 말이야?”

우미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연에게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했다.

“생각해 봐. 블라인드 미션이니까 어떻게든 자기 정체를 숨기려고 할 텐데. 역으로 대놓고 저렇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의심할 수도 있잖아. 이거, 아이비제이 트윙클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저렇게 하는 거 아니냐고.”

가을소녀가 실제로 이런 전략을 썼었다.

자기들은 가을소녀가 아니라 MAYO 팀이라는 것을 청중평가단에게 어필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었다.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이런 효과를 노린 거였다.

너무 진짜 같아서 오히려 가짜가 아닐까 하고 스스로 의심의 벽을 세우게끔 만들려는 작전.

의외로 이 작전은 효과적이다.

성공하면 대박인 거고.

실패했다 할지라도 어설프게 무대를 보여주느니, 차라리 시청자들에게 자기들의 실력을 확실히 어필해서 점수를 따갈 수 있다.

결국 어느 쪽이든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손해 볼 게 없다.

‘머리 좋네.’

이연은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당돌한 무대를 보면서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역시. 업계 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무대였다.

이연의 예상대로, 너무 아이비제이스러운 무대로 인해서 청중평가단은 중간에 쉬는 타임 동안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돌 박사를 자처했던 주형운조차도 앞서 보여줬던 자신감과 다르게 이번에는 많이 헷갈려하는 태도를 취했다.

-아무리 봐도 아이비제이 트윙클 팀 같은데…… 이상하네요.

100퍼센트 정답률을 보여주고 있던 주형운도 이번만큼은 고개를 갸우뚱할 뿐.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연이 무대 위로 올라가서 ‘저 사람들, 아이비제이예요!’라고 소리쳐 주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다.

그래도 이건 아이비제이 트윙클 멤버들이 전략을 잘 짠 거니까. 이연 입장에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이연도 저 작전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했다.

‘너무 도박수야.’

정석대로 가는 게 성공률이 높다. 그래서 이연은 모험을 자처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무대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좀 더 높은 곳을 노리려면, 때로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샤이걸스와는 다른 의미로 인상 깊게 남았던 아이비제이의 무대가 끝났다.

4번째는 원더존의 차례.

하니엘 멤버들은 원더존이 무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로 두 손을 모았다.

“제발 잘해라, 제발……!”

“힘내요, 선배님들!”

하니엘 멤버들이 유독 원더존에게만 감정을 이입하는 이유가 있었다.

둘이 서로 한 달 차이밖에 안 나는, 비슷한 처지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니엘은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간 원더존을 자신의 일처럼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니엘의 기도가 닿은 걸까.

원더존은 기대 이상의 솜씨를 무대에서 펼쳤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면 시야라든지. 이런 것들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의외로 장점도 있다.

평소보다 좀 더 대담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누가 누구인지 사람들은 모르니까.

이 익명성이 원더존 멤버들에게 미묘하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안 그래도 걸파이트 시즌 2 참가팀들 중에서 막내 라인에 속하는 걸 그룹이라 그런지 선배들한테 많이 위축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니터를 응시하던 이연도 무의식적으로 ‘잘하네’라는 말을 흘릴 정도였다.

마지막 엔딩 포즈까지 완벽 그 자체였다.

청중평가단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원더존이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하니엘 멤버들도 연달아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잘했어요, 선배님들!”

“너무 좋았어!”

“원더존 선배님들 이렇게 잘하는데. 첫 무대 생각하니까 엄청 아쉽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걸파이트 시즌 2 첫 녹화 당시, 원더존은 자신들의 대표곡을 무대 위에서 펼칠 때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대선배들 앞에서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주는 시간이니까. 긴장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원더존 본인들도 이날의 무대에 대해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으니.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그 아쉬움을 이번 무대를 통해 완전히 털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훌륭하게 마무리를 짓는 것까진 좋지만.

그럼에도 주형운의 날카로운 눈썰미를 피하진 못했다.

-방금 무대는 누가 봐도 원더존이었습니다. 확실합니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유키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아니, 저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족집게처럼 계속 맞힌대요?”

꿀밤이라도 먹여주고 싶은 모양인지, 작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쥐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연도 유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주형운이 잘못한 건 없다. 자기가 저렇게 정답을 맞히려는 것도 다 황 PD의 농간에 의한 거니까.

따지고 보면 황 PD가 원흉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은 하니엘이 열심히 정체를 숨기는 수밖에 없다.

스태프가 그녀들이 있는 대기실을 찾아왔다.

“하니엘 팀, 다음 차례 준비해 주세요.”

“네!”

자리에 일어나면서 유키가 이연에게 작전을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가는 거야? 혹시 작전 있어?”

이연이 이들에게 말해줄 작전은 하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해야지.”

노력하는 것만큼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작전은 없다.

* * *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과 동시에 실력까지 확실하게 보여준 아이비제이 트윙클.

그리고 퍼포먼스만 따지고 본다면 앞선 팀 중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원더존.

이 두 팀 다음에 무대에 오르게 될 그룹은 아무래도 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이연은 멤버들에게 주의를 줬다.

“다른 팀들의 무대는 머릿속에서 지워 버려. 지금 싸워야 할 상대는 선배님들이 아니라 실수 연발이었던 과거의 자신들이야. 어제의 나보다는 잘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임해. 알았지?”

멤버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일제히 가면을 썼다.

무대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그녀들의 모습은 마치 전장으로 향하는 여전사들의 뒷모습과 흡사해 보였다.

한편, 그 와중에 주형운은 혼잣말을 흘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첫 번째가 샤이걸스, 두 번째가 가을소녀였고. 네 번째는 원더존. 세 번째만 모르겠네.”

그래도 확실한 건, 아직 하니엘은 나오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 말은 곧.

“이번이 이연 누님 차례일 확률이 높겠지?”

정확했다.

하지만 주형운은 아직 확신이 아닌 추측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이전 팀들이 그랬듯이, 하니엘 역시 멤버들의 숫자를 속이기 위한 용도로 은서해와 또 다른 퍼플피플 크루 한 명에게 자신들과 똑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는 옷을 입혔다.

준비는 끝났다.

이연은 마치 칼처럼 날이 바짝 선 눈빛으로 하니엘을 바라보고 있는 주형운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전주가 흘러나왔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무대의 막이 올랐다.

* * *

정체를 숨기려는 자들과 어떻게든 정체를 알아맞히려는 자들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펼쳐졌다.

이 와중에 무대 퀄리티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하니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이연이 말했던 것처럼 어제의 나를 뛰어넘을 오늘의 내가 되기 위해 최대한 열심히 움직였다.

서브 보컬로 빠진 이연의 파트가 도래했다.

이연은 완전히 바꾼 목소리를 이용해서 크게 외쳤다.

-지금 내 앞에 너를 보여봐.

그리고 속삭여 줘.

Everyday.

단 한 순간도 질리지 않게.

이연의 원래 목소리보다 한층 더 얇은 톤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그녀는 주형운의 표정을 주시했다.

고개를 한 차례 까딱하면서 의아함을 드러내는 반응이었다.

모두가 다 외형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 목소리.

그리고 두 번째. 무대 위에서 간혹 보여주는 각 멤버 특유의 습관.

주형운이 처음에는 어느 팀의 정체가 어떻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한 가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와 근거를 너무 상세하게 제시했다는 거였다.

덕분에 이연과 멤버들은 주형운이 주의 깊게 볼 만한 요소들을 이번 무대에서 철저하게 배제할 수 있었다.

유일한 불안 요소는 리샤와 유키의 한국어 발음, 그리고 시우의 메인보컬 파트였다.

그러나 리샤와 유키, 두 사람 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지낸 덕분에 어눌한 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시우의 메인보컬 역시 이미 이연을 통해 검증을 받은 솜씨였기에 실전 무대에서도 완벽하게 노래를 소화할 수 있었다.

절정으로 향해가는 무대.

이연과 은서해가 각각 좌, 우측에서 앞서 나아갔다.

뒤이어 센터를 맡은 리샤가 가운데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세 사람을 중심으로 뭉친 멤버들과 댄서들.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하자, 청중평가단의 열띤 호응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던 주형운도 그새 무대에 반한 모양인지 정체를 알아낸다는 목적을 잊어버린 채 박수갈채를 보냈다.

무사히 블라인드 미션을 마친 멤버들은 대기실로 돌아와서 남은 두 팀의 무대를 지켜보기로 했다.

이연의 말대로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결과가 나오기를 얌전히 기다리면 된다.

* * *

모든 블라인드 미션이 종료되고.

다시 7개 참가자 팀이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민주린의 손에 결과가 적힌 큐시트가 들려 있었다.

먼저 결과를 확인한 민주린은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대이변이 벌어졌네요.”

그녀가 언급한 대이변이라는 단어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참가자 팀은 알 수 없었다.

“우선 1위부터 바로 공개하겠습니다!”

1위부터 공개하겠다는 그녀의 말에 이연과 혜원, 두 사람만 표정이 변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동시에 뭔가를 눈치채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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