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66화 (166/299)

166화

제47화. 블라인드 미션(4)

자신만의 칼라를 완전히 버린 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샤이걸스 멤버들.

시작하자마자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일렉기타의 소리에 청중평가단 50인들은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아가 180도 달라진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저 언니들, 오늘 작심하고 왔나 봐.”

“언니들이라고? 언제 샤이걸스 선배님들하고 친해진 거야?”

우미가 묻자, 비아는 멋쩍어하는 얼굴로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말해줬다.

“우리보다 나이 많고 선배님이면 다 언니지.”

일방적인 친근함에 우미는 쓴 미소를 지었다.

“샤이걸스 선배님들, 낯 많이 가리니까 너무 단숨에 거리 좁히려고 하진 마.”

“알고 있어.”

샤이걸스 앞에서까지 ‘언니들!’이라고 먼저 말하진 않는다.

이 와중에 샤이걸스 멤버 한 명이 앞으로 치고나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멋대로 흘러가는 세상.

집어치우고 내 마음대로 살래!

F**king! s** of a b**ch!

영어 욕설을 남발하는 샤이걸스 멤버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리샤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작은 감탄사를 흘렸다.

“Wow…….”

제작발표회, 그리고 첫 모임 회식 자리에서는 매니저가 이 사람 저 사람 직접 소개해 줄 때까지 부끄러워서 말도 못 붙이던 그 샤이걸스가. 지금은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여솜도 두 눈을 여러 차례 깜빡이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샤이걸스 선배님들…… 맞지? 응?”

“맞아.”

이연은 목소리만 들어도 샤이걸스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소리에 민감한 이연이었기에 가능할 뿐.

청중평가단 50인들은 이연만큼 청각이 예민한 편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는 샤이걸스의 무대를 보면서 그녀들의 정체가 누구일지. 이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당장 내가 신이 나는데. 이성적으로 그런 거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시원스럽게 목소리를 올리는 샤이걸스 앤서의 고음 샤우팅에 사람들의 귀는 금세 매료되었다.

이때, 앤서가 관중들을 향해 외쳤다.

“언제까지 앉아만 있을 거나, 짜식들아! 일어서! 지금 당장-!”

사람들은 앤서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청중평가단들의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앤서와 샤이걸스도 분위기를 탄 듯이 첫 파트 때보다도 더 열띤 목소리와 안무를 펼쳤다.

그렇게 상당히 강렬했던 샤이걸스의 첫 번째 차례가 끝났다.

가면을 쓴 샤이걸스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 청중평가단들은 아직도 여운에 사로잡힌 채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시 뒤, 황이전 PD가 와서 청중평가단들에게 다음 무대가 준비되기 전까지 방금 봤던 첫 번째 참가 팀이 어떤 그룹일 거 같은지 적어달라는 말을 건넸다.

사람들이 나름의 추측을 내세우며 한창 머리싸움을 하고 있는 도중에 황 PD가 툭 던지듯 가볍게 물었다.

“혹시 ‘난 저 그룹이 누군지 알 것 같다’라고 확신하시는 분 계신가요?”

“…….”

“…….”

“…….”

사람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감이 1도 안 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룹 콘셉트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아이비제이 트윙클이나 아니면 기존에도 센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룹인 MAYO가 아닐까 하고 소심하게 의견을 드러내는 사람들만 몇몇 있을 뿐.

자신의 추측에 자신감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이때.

“저요.”

아직 10대로 보이는 소년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내뱉었을 때, 사람들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저는 샤이걸스라고 생각합니다.”

* * *

샤이걸스의 차례가 끝난 뒤에도 카메라는 계속해서 대기실과 연결되어 있는 모니터를 통해 무대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와중에 방금 무대를 펼쳤던 팀의 정체를 완벽하게 맞힌 청중평가단의 등장에 하니엘 멤버들은 크게 술렁였다.

“어떻게 샤이걸스 선배님이라는 걸 알아차렸대?”

“절대로 모를 텐데, 어째서?”

50명 중에 유일하게 단 한 명. 샤이걸스를 언급한 소년 쪽으로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잠시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던 이연도 샤이걸스를 맞춘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복귀했다.

청중평가단들이 샤이걸스임을 주장하는 소년을 향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샤이걸스는 절대로 아니지.

-맞아. 샤이걸스가 헤비메탈을 부른다고? 심지어 저렇게 잘했는데?

-MAYO겠지. 내가 보기엔 샤이걸스는 아니고.

-샤이걸스가 아니다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소년의 추측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여론이 싸늘함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샤이걸스 맞습니다. 100퍼센트예요.

이연은 유독 소년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과 목소리.

“설마. 주형운?”

“응? 주형운이라니?”

“연이 언니하고 아는 사람이야?”

멤버들의 쏟아지는 관심을 뒤로한 채 이연은 곧바로 본인의 스마트폰을 찾았다.

“여보세요. 권민준. 너, 지금 어디야.”

-나? 나 지금…… 아, 씨! 저 트롤 새끼, 갱 한 번도 안 오다가 CS만 처먹고 가네, X발!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게임 소리.

이것만으로도 이연은 권민준이 PC방에 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뒤늦게 수습을 하기 위함인지, 권민준이 목소리를 다시 가다듬고서 말했다.

-애, 애들이랑 도서관에 있지!

어떤 방식으로 저 주둥아리를 꿰매 버릴까 하는 생각이 불쑥 차올랐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형운이도 거기에 같이 있어?”

-형운이? 아니. 오늘 무슨 일 있다고 그래서 인박이하고만 같이 PC방…… 아니, 도서관 왔는데.

역시. 청중평가단 자리에 앉아 있는 저 소년이 이연이 아는 그 주형운이 맞았다.

“그래, 알았다. 그리고 PC방에 적당히 있다가 들어가라. 알겠냐.”

-아니, 나 도서관에 있다니…….

뚝.

변명 들을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렇다고 권민준에게 부탁해서 주형운한테 걸 그룹들 정체 알아맞히는 거 하지 말라고 대신 연락해 달라는 말을 하기에도 애매했다.

녹화에 들어가기 전, 스태프들이 청중평가단 50인의 스마트폰을 전부 수거해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형운에게 당장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다.

이 와중에 아이돌 박사답게 주형운은 왜 방금 팀이 샤이걸스라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나름의 지론을 펼쳤다.

-샤이걸스는 무대에 올라설 때마다 특유의 습관 같은 것이 있습니다. 특히 멤버 중에서 호연 님은 머리카락을 자주 신경 쓰는 모습을 많이 보이거든요. 그리고 최근에 멤버분들이 SNS에 단체로 올렸던 머리카락 염색 색깔하고도 동일합니다.

모니터 안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주형운을 보며 비아가 감탄을 흘렸다.

“우와. 저런 것까지 다 체크하고 있어? 저 사람, 완전 박사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낯이 익을 수밖에 없다.

하니엘의 팬미팅에 참가했던 적도 있으니까.

그것뿐만 아니라 SSS 때 이연을 응원하기 위해 늘 방송국을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제야 주형운이 누군지 떠올린 비아가 급하게 이연을 찾았다.

“연이 언니, 남동생 친구 아니야?”

그래서 더 골치가 아팠다.

자신들과 같이 무대에 오르는 경쟁팀들만 잘 신경 쓰면 될 줄 알았는데.

‘설마 복병이 있을 줄이야.’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이 된 셈이었다.

* * *

두 번째 무대에 서게 된 팀은 걸파이트 시즌 2 최다 멤버 수를 자랑하는 가을소녀다.

12명이다 보니, 이쪽은 앞서 샤이걸스와 다르게 오히려 인원수를 줄여서 자신들의 팀 정체성을 감추자는 전략으로 접근했다.

가수처럼 댄서들과 다르게 튀는 의상을 갖춘 사람은 단 4명뿐.

모니터를 응시하던 리샤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면서 자신의 생각을 슬쩍 흘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MAYO 선배님들인 줄 알겠네.”

선곡도 MAYO가 좋아하는 것처럼 걸스 힙합 장르의 곡이었다.

아마도 자신들을 MAYO로 오인하게끔 일부러 함정을 파둔 듯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형운의 눈은 속이지 못했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도 황이전 PD가 와서 청중평가단들의 생각을 물었다.

주형운은 황 PD가 이 질문을 던질 걸 기다렸다는 사람처럼 단번에 답했다.

-가을소녀입니다. 확실합니다!

2연속 정답이다.

하니엘의 대기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미쳤다, 미쳤어.”

“저 정도면 거의 점쟁이 아니야?”

“아이돌 박사라고 하더니. 진짜인가 보네.”

주형운은 아이돌들, 특히 걸 그룹에 대한 지식이 빠삭한 편이다.

덕분에 이연도 한때는 주형운한테서 도움을 몇 차례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존재로 나타나게 되었다.

50명 중 단 다섯 명한테만 정체를 들켜도 아웃.

주형운 혼자서 하니엘의 정체를 알아맞힌다 할지라도 4명의 여유가 더 남는 셈이지만, 그럼에도 안심할 순 없었다.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들먹이면서 이 팀은 어느 팀인지 설명을 하는 주형운의 말에 청중평가단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설득력이 느껴지는 말에 신뢰를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의 주형운이 딱 그렇다.

벌써 세 번째 무대인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차례가 도래했다.

샤이걸스, 가을소녀. 두 팀의 정체를 모두 추론하는 데에 성공한 주형운은 이번에도 어떻게든 맞히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그러나 상대는 현존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아이비제이 멤버들이다.

그녀들 역시 주형운에게 호락호락 당하진 않을 생각인지 각오를 다졌다.

과연 최고의 걸 그룹은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를 숨길 수 있을지 궁금했다.

사실 이번 경연은 아이비제이에게 많이 불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샤이걸스나 MAYO처럼 팀 컬러가 확실한 팀도 그렇지만, 아이비제이는 이런 것들을 다 떠나서 워낙 유명했기에 사람들이 금방 알아볼 가능성이 매우 컸다.

멤버들이 많아도 오랫동안 활동을 했고. 또 히트곡들도 많은 데다가 팬덤 규모도 어마어마하기에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가장 불리한 팀이기도 했다.

아무리 열심히 무대를 펼친다 할지라도 정체가 탄로 나면 바로 실격 처리되니까.

아마 아이비제이도 득표로 1등을 하자는 것보단 우선 자신들의 정체부터 먼저 숨기고 보자는 쪽에 더 무게를 뒀을 것이다.

이연은 이게 궁금했다.

아이비제이가 과연 무슨 방법을 사용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샤이걸스나 가을소녀처럼 인원수를 속이려고 하거나 아니면 곡 장르를 완전히 다르게 했겠지.’

이게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다.

하니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아이비제이는 이연의 이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팀이었다.

무대를 보자마자 이연뿐만 아니라 하니엘 멤버 전체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 잠깐만! 아이비제이 선배님들 무대가 좀 이상한데?”

“혹시…… 미션 내용을 잘못 이해하신 거 아니야?”

이런 말이 나올 만도 했다.

왜냐하면,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자신들의 대표곡을 선곡했기 때문이다.

아예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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