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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61화 (161/299)

161화

제46화. 같은 목표(1)

걸파이트 시즌 2 첫 회식 자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비제이 트윙클 멤버들은 1차에서 일찌감치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야 했다.

“저희 먼저 가볼게요, PD님.”

지현의 말에 황이전 PD가 ‘벌써요?’라며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비제이 트윙클 멤버들이 이곳에 온 지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황 PD뿐만 아니라 다른 인원들도 그녀들의 이른 퇴근에 놀랐다.

아이비제이 매니저가 대신 사정을 설명했다.

“이다음에 일정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나저나 역시 국내 탑 걸 그룹답네요. 아직 유닛 데뷔도 안 하셨는데 벌써부터 스케줄이 가득 차다니.”

“덕분에 저는 죽어납니다.”

매니저 입장에선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뜻이었기에 앓는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미수가 매니저에게 눈을 흘겼다.

“저희 그룹 데뷔하기 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도 좋으니까 제발 아이비제이가 성공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셨잖아요.”

자신이 담당하는 연예인이 다들 잘되기를 바라는 건 매니저로서 당연하다.

아이비제이 매니저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잘되길 바라진 않았어.”

“어휴, 정말!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 하면 못써요.”

물론 진담은 아니고. 그냥 웃자고 한 소리였다.

“알았으니까. 혜원이는 어디 있어?”

“제가 데려올게요. 언니-!”

미수가 혜원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언니. 매니저 오빠가 갈 시간이래.”

“벌써? 조금만 있다가 가면 안 돼?”

“안 돼.”

단호하게 말하는 동생 멤버의 태도에 혜원은 남은 음료와 함께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매니저가 미리 준비해 둔 차에 올라탄 세 여성.

중간에 혜원이 들고 있던 커피를 살짝 바닥에 쏟고 말았다.

“어머!”

“언니! 뭐 하는 거야, 칠칠맞게.”

“매니저 오빠, 휴지 어디 있어요?”

“옆에 봐봐.”

지현이 휴지와 물티슈를 꺼내서 혜원의 바지 끝자락을 닦아주려고 하던 찰나.

“아야!”

머리를 들려고 하다가 차 위쪽과 부딪친 혜원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짧은 시간에 벌써 두 번의 작은 사고를 일으킨 혜원을 보면서 미수가 여러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가지가지 하네. 조심 좀 해, 언니.”

“미안. 취해서 그런가 봐.”

“취하긴. 언니, 술도 안 마셨으면서.”

대충 현장을 정리한 지현이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말했다.

“취한 게 아니라. 혜원이가 원래 덜렁이잖아. 맨날 다른 곳에 정신 팔려 있고.”

“우리 그룹 사고뭉치야, 사고뭉치. 아까 보니까 하니엘의 이연 씨는 똑 부러지고 그렇던데.”

겨우 자리에 앉은 혜원이 배시시 웃었다.

“맞아. 이연 씨, 나보다 나이 어린데도 엄청 어른스럽더라고.”

“정신 차려, 언니. 그러다가 후배한테 금방 따라잡힌다고.”

미수가 경고를 줬지만, 앞자리에 앉은 아이비제이 트윙클 매니저와 코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글쎄. 하니엘이 아이비제이를 넘어서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매니저님 말에 동의.”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하니엘이 SSS를 통해서 역대급으로 화려한 데뷔를 치렀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아이비제이와 체급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 중에서도 혜원은 지현과 더불어서 멤버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로 손꼽힌다.

평소에는 이렇게 침착하지 못하고, 자주 멍 때리고, 잦은 사고를 일으키는 혜원.

그러나 무대 위에 올라섰을 때에는 마치 다른 사람이 빙의한 것처럼 바뀐다.

스타 중에서도 스타.

연예인 중에서도 연예인이라는 말은 늘 수식어처럼 혜원을 따라다녔다.

벡스와 유일하게 아이돌 브랜드 평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혜원이다.

벡스 멤버의 여동생인 지현조차도 순위권에 들지 못했는데.

걸 그룹 아이돌 중에서 오직 혜원만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정작 혜원은 ‘커피 맛있다!’라며 남은 음료를 정신없이 마무리 짓고 있었다.

순수한 그녀의 반응을 보면서 지현과 미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들은 알고 있다.

혜원이 자신들과 같은 그룹에 있는 한, 상대가 누구든 아이비제이가 질 리가 없다는 것을.

* * *

컴백 일자가 확정되고 난 이후부터 하니엘 멤버들은 연습에 좀 더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오전 내내 땀을 흘리면서 안무 연습을 마친 그녀들은 쉴 틈도 없이 바로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걸음을 옮겼다.

컴백일 바로 다음에 공개될 웹 예능 프로그램을 미리 녹화하기 위해서였다.

아침부터 몸을 너무 혹사시켜서 그런 걸까.

멤버들은 차 시트에 앉자마자 그새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스튜디오까지 원래 40분 정도 걸릴 예정이었으나.

“차가 많이 막히네.”

박도수 매니저가 꽉 막힌 도로를 보며 몇 차례 혀를 찼다.

원래 서울 도로가 많이 막히긴 하지만, 오늘은 무슨 행사라도 있는 모양인지 유독 더 막히는 느낌이었다.

도착 예정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박도수 매니저는 아직까지 눈을 뜨고 있는 이연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으니까 너도 애들처럼 잠 좀 자둬.”

“아니요. 괜찮아요. 생각할 것도 좀 있고 해서요.”

“생각?”

“네. 심각한 건 아니고요.”

걸파이트 시즌 2에 관한 거였다.

첫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이연은 회식 자리를 통해 참가하는 모든 그룹 멤버들과 한 차례씩 대화를 나눴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역시 혜원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 만난 적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연은 아직 혜원에 대한 분석을 마치지 못했다.

‘신기한 사람이야.’

그 대단한 아이비제이의 리더인데. 사석에서 봤을 때에는 약간 칠칠치 못한 언니 느낌이 더 강했다.

저번에 이연과 만났을 때에도 문턱에 걸려 한번 넘어질 뻔한 적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의 혜원은 전혀 달랐다.

이연이 추구하는 ‘완벽한 무대’에 가까이 접근 사람 중 한 명이 아닐까 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안무, 가창력, 그리고 시선 처리나 표정 연기까지.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고루고루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음유시인들 중에서도 이런 타입이 몇 명 있었지.’

이들을 일컫는 가장 확실한 표현이 있다.

천재.

혜원은 마치 하늘이 아이돌이 되라고 등을 떠밀어주듯 그쪽 방면으로 능력치를 몰아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끄는 아이비제이를 꺾으려면, 웬만한 각오로는 부족해 보였다.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겠지.’

천재를 뛰어넘으려면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시간과 노력. 이것만큼 정직하고 확실한 방법은 없다.

이연은 곤히 잠든 멤버들을 짧게 훑었다.

많이 힘들 텐데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이연을 잘 따라와 주고 있었다.

이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이연은 멤버들의 이 노력을 걸파이트 시즌 2 우승이라는 결과물로 보답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작전이 필요해.’

SSS 때에도 그렇고. 자신들의 실력을 돋보이게 만들어줄 수 있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아직 촬영에 들어가려면 시간이 남았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하던 순간.

박도수 매니저가 목소리를 높였다.

“거의 다 도착했네. 얘들아! 슬슬 일어나.”

이연이 혼자서 생각에 푹 잠겨 있는 사이에 그새 현장에 도착했다.

아쉬운 마음에 이연은 꺼냈던 스마트폰을 다시 자신의 가방 안에 넣었다.

* * *

걸파이트 시즌 2 녹화 첫날.

하니엘과 마찬가지로 각각 컴백을 앞둔 걸 그룹 멤버들이 속속들이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경연 프로그램 특유의 현장 분위기를 SSS 이후에 오랜만에 접해서일까.

하니엘 멤버들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비아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SSS 촬영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도 첫 촬영 때 고생 엄청 했었는데.”

비아가 말하는 고생이라는 게 뭔지 이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너, 화장실 몇 번이나 갔었더라.”

“언니! 그런 건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라고!”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이연의 입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때 당시의 비아는 그랬다.

물론 지금은 무대 경험이 어느 정도 쌓여서 그런지 많이 나아진 편이었지만, 긴장감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룹별로 각기 다른 대기실에서 녹화 준비를 이어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황이전 PD가 몇몇 작가들과 함께 하니엘이 있는 대기실을 찾았다.

“오늘 촬영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릴게요. 녹화 시작되면, 스튜디오에 하니엘 분들이 먼저 들어설 거예요. 그룹별로 자리가 정해져 있으니까 쉽게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황 PD의 말을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에 원더존 분들이 입장하실 거고요. 데뷔 연도 역순으로 따라서 등장하신다고 보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민주린 씨 나오면, 다른 분들하고 같이 크게 환호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민주린 씨가 알아서 진행할 테니까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시기만 하면 돼요. 그럼 오늘 녹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전에 참여했던 SSS 때에도 그랬듯이, 참가하는 사람들에겐 대본이랄 게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대충 설명을 들은 직후.

스태프가 하니엘 멤버들에게 10분 뒤에 바로 촬영이 진행될 거라고 추가로 알렸다.

첫 입장 순서가 하니엘인 만큼, 멤버들이 가장 먼저 현장으로 이동했다.

유명 걸 그룹이 7팀이나 참가해서 그런지, 스튜디오 규모만 봐도 어마어마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하니엘 멤버들은 스태프의 신호에 따라 길게 이어진 복도로 들어섰다.

전신거울이 설치되어 있는 복도 중간 부분에 멈춰 선 멤버들은 지나가면서 옷매무새를 다듬거나 윙크를 하는 등 작은 애교를 선보였다.

거울 뒤에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눈치껏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코너를 돌아본 무대로 들어선 순간.

“우와!”

“어머머, 세상에!”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걸파이트 시즌 2를 상징하는 붉은색 컬러로 치장된 스튜디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현장 앞에서 멤버들은 한동안 눈을 어디다 둬야 좋을지 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언니들, 저기 봐봐요.”

유키가 먼저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가 우리 자리인가 보네.”

하니엘을 상징하는 로고가 좌석 위에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이동 중에 이연은 다른 그룹들의 좌석을 슬쩍 훑었다.

‘옆자리가 원더존인가 보네.’

비슷한 입장에 놓인 그룹끼리 나란히 뭉쳐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

남은 6개 팀들 중에서 그나마 친분이 있는 그룹이 원더존이니까.

하니엘에 이어 원더존 9명이 차례로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그녀들 역시 처음 접하는 현장을 보고서 하니엘 멤버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니엘의 옆자리에 앉은 원더존 멤버들.

리더인 윤채미는 이연, 시우에게 먼저 반가움을 드러냈다.

반면, 다른 멤버들은 아직 서로 어색한 사이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낯섦이 뚝뚝 묻어 나오는 인사를 보면서 이연은 쓴웃음을 삼켰다.

앞으로 두 팀은 1위 자리를 두고 계속 경쟁을 벌이게 될 테니까.

어쩌면 채미, 이연, 시우가 보여준 모습보다 다른 멤버들의 어색한 인사가 이 자리에는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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