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제44화. 두 번째 서바이벌(3)
걸파이트 시즌 1 팀인 아이비제이의 참가에 멤버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아이비제이가 완전체로 나오는 건 아니다.
그중 멤버 셋으로만 구성한 유닛인 IT의 출전이 결정된 거였지만, 셋 다 인기 상위권 멤버고. 그렇다 보니 진세혁 프로듀서가 가져다준 소식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로써 7팀 중 원더존, MAYO, 그리고 아이비제이 트윙클, 총 3팀의 참가가 확정되었다.
진세혁 프로듀서가 계속해서 자신의 지인을 통해 접수한 정보를 하니엘 멤버들에게도 공유해 줬다.
“아이비제이 트윙클 멤버들은 내일 중으로 걸파이트 제작진하고 미팅 가질 거라고 하더라.”
“빠르네요.”
“그쪽도 컴백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을 테니까. 일정 되는 대로 미팅 일자도 바로 잡은 거겠지. 아니다. 컴백 준비가 아니라 데뷔라고 해야 하나?”
아이비제이 유닛인 트윙클은 이번 앨범 활동이 처음이다.
그래서 진세혁 프로듀서의 정정이 맞았다.
“아무튼 이번 걸파이트도 재미있을 거 같더라. 여기에 너희까지 나가면 시청률은 무조건 보장될 거 같은데…….”
말을 하던 도중에 진세혁 프로듀서는 하니엘 멤버들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혹시 내가 말실수라도 했어?”
박도수 매니저가 진세혁 프로듀서의 말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은 긴급 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어제 걸파이트에 나갈지, 말지에 대한 1차 투표가 있었다.
결과는 4 대 3.
출연하자는 쪽이 1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우세를 점했었다.
하지만 오늘의 투표 결과는 달랐다.
2 대 5. 역전이다.
결과가 뒤바뀔 거라는 건 이연도, 그리고 멤버들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었기에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참전을 듣고도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는 두 명의 용자가 누구인지 멤버들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명은 알 것 같다.
“연이 언니지?”
비아의 추측에 이연은 숨길 게 뭐 있겠냐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사실 이연은 누가 참가 팀으로 정해지든 상관없었다.
몇 가지 큰 이유가 있었다.
“출연이 확정된 팀 중에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경험이 있는 팀은 우리하고 아이비제이 선배님, 딱 두 팀뿐이니까. 나는 이게 큰 무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
멤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쟁쟁한 선배들과의 경쟁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꼴찌만 연달아 하다가 망신만 잔뜩 당하고 오면 어쩌지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연은 하니엘이 그렇게까지 모지리라고 생각하진 않고 있었다.
방금 말했던 서바이벌 오디션 경험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나는 우리가 다른 선배님들에 비해서 경험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다.
그래서 이연은 어제부터 오늘까지. 계속해서 ‘참가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굳히고 있었다.
물론 걱정스러운 의견도 적지 않았다.
여솜이 다수 쪽에 표를 던진 멤버들을 대표해서 이연에게 물었다.
“걸파이트하고 SSS는 경연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잖아. 투표 과정도 그렇고. 괜찮을까?”
만약에 SSS와 거의 흡사한 방식으로 서바이벌이 진행된다면, 그녀들도 이연과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걸파이트와 SSS, 두 프로그램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추구한다.
애초에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다르니까.
연습생과 현역 아이돌.
하니엘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후자의 경쟁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전자의 경우에는 다 같은 연습생 신분이라는 동일선상에서 출발했지만, 후자는 아니니까.
이미 기존 팬들을 거느리고 있고, 게다가 앨범도 많이 발표한 선배 가수 팀과의 싸움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출발선 자체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연의 자신감은 여전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우리, 음방에서 1위도 해봤잖아. 안 그래?”
확신을 주는 리더의 태도 덕분일까.
걱정과 우려가 가득했던 멤버들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근데 말이야. 뜬금없는 질문 하나만 해도 돼?”
“뭔데?”
리샤의 물음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연이는 그렇다 치고. ‘출연하자’ 쪽에 투표한 나머지 한 사람은 누구야?”
어차피 누가 어떤 쪽으로 표를 행사했는지 다 밝혀진 거. 그냥 공개하는 게 나아 보이긴 했다.
이때, 한 멤버가 손을 불쑥 들어올렸다.
“저예요.”
시우가 자진해서 말하자, 멤버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제는 나가지 말자는 쪽 아니었어?”
“네, 맞아요.”
“왜 생각이 바뀌게 된 거야?”
이연의 설명을 듣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라는 말은 모순된다.
왜냐하면 순서가 맞지 않으니까.
이연의 뒤를 이어 시우의 생각도 들어볼 차례가 되었다.
“아이비제이 선배님들 나오신다는 거, 찐 프로님한테 듣자마자 생각했어요. 이건 무조건 나가야겠다고.”
오히려 멤버들과 반대되는 행동이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데뷔 앨범 때에는 저희가 아이비제이 선배님들하고 맞붙어서 졌으니까. 이번에는 이겨봐야죠. 안 그래요?”
선후배 간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다.
이대로 1패를 기록하고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시우는 걸파이트에서 아이비제이 멤버들과 정면 대결을 벌이고 싶었다.
시우의 포부를 듣고 난 멤버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나, 방금 시우 보면서 연이 언니 보는 줄 알았어.”
“시우가 연이를 본받고 싶은 언니라고 맨날 말하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네.”
“그러게요.”
시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연이 할 법한 말을 시우가 해서 그런지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연은 그런 시우를 보면서 기특하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시우의 설득이 통한 걸까.
고민하던 멤버들의 마음이 기존과는 다른 방향으로 기울었다.
“그래, 나가보자!”
“가서 우리가 우승하면 되잖아!”
이연이 SSS에서 꼴찌의 기적을 보여줬던 것처럼, 하니엘 멤버들도 상대적 열세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저력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하니엘의 걸파이트 참가가 확정되었다.
* * *
두 번째 앨범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하니엘 멤버들은 앨범 활동 기간에 출연할 티비, 웹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과 차례로 사전 미팅을 진행하기로 했다.
오늘도 오전에 웹 예능 미팅을 마친 멤버들은 회사에 잠시 들러 이연이 쓴 가사지를 전해줄 겸, 곡과 안무 작업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한 뒤에 다시 차에 올라탔다.
오후에는 중요한 미팅이 잡혀 있다.
멤버들이 오랜 고민 끝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프로그램, 걸파이트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니엘이 걸파이트에 출연하겠다고 의사를 내비치고 정확히 3일 뒤. 7팀의 명단이 모두 완성되었다.
예상대로 하나같이 다 쟁쟁한 선배 그룹들뿐이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하니엘이 여전히 막내 팀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연은 이동 중에 자신의 스마트폰 스크롤을 쭉 내리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제작진이 입단속을 잘 시켰나 보네.’
7팀의 정체가 모두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용케도 이에 관련된 기사가 일절 나오지 않았다.
걸파이트는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인기 프로다.
그건 곧, 기자들의 좋은 먹잇감임을 뜻하기도 한다.
시즌 2 제작 발표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전에 기사로 먼저 나갈 정도였다.
그래서 제작진은 예정되어 있던 날짜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부랴부랴 시즌 2 제작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기자들 사이에서 관심이 상당한 프로그램이다.
‘저번에 기자들에게 호되게 당했으니까. 이번에는 단속 철저하게 하고 있을지도.’
원래 한번 벌어지고 나서야 경각심이 생기고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시즌 2 제작 여부가 유출되었던 적이 있으니까. 7팀의 명단만큼은 철저하게 숨기겠다는 제작진의 의지가 느껴졌다.
방송국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은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미팅룸으로 이동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있었다.
양쪽 끝과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들이었다.
사전 미팅 장면부터 촬영이 시작될 거라는 말은 박도수 매니저를 통해서 미리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은 긴장을 품었다.
데뷔 앨범 활동 이후,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기 때문이었다.
가운데에 앉아 있던 40대 중반의 남성이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황이전 PD입니다.”
SSS를 연출했던 서윤철 PD보다 2년 먼저 방송계에 입사한 선배 PD로, 서 PD에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예전부터 이런 부류의 TV 프로그램을 자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서바이벌 오디션에 관해서 내공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그가 손대는 프로그램들은 늘 유행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걸파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송국 내에서도 걸파이트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이 굉장히 크다.
“하니엘분들이 내심 안 나온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멤버들은 오히려 저희가 더 감사하다는 반응으로 응답했다.
“프로그램 촬영은 다음 달 초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때 녹화를 해두면, 아마 여러분들 컴백하고 1주일 뒤? 그쯤에 1화가 방영될 거예요.”
시기는 좋다.
하지만 이 말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선배님들도 저희하고 그때쯤에 활동 시기가 겹치시겠네요.”
“네, 그렇게 되겠죠.”
이연의 날카로운 질문에 황 PD는 바로 인정했다.
그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방송에 관한 일정뿐. 가수들의 컴백 시기까지 세세하게 고려하는 건 각 소속사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입장이다 보니 황 PD는 다른 가수 팀들의 정확한 컴백 날짜까진 모르지만, 그래도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니엘 멤버들 몇몇이 한숨을 삼켰다.
“또 아이비제이 선배님들하고 겹쳤네.”
아이비제이가 문제가 아니다.
MAYO도, 다른 거물급 팀들도 큰 문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걸그룹이 한두 팀이 아니니까.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마친 황 PD가 멤버들에게 제안했다.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물어보세요. 제가 말해드릴 수 있는 선에서 다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기왕 미팅 자리를 가진 김에 멤버들은 걸파이트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걸파이트나 SSS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경연 방식이다.
“미션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우미가 멤버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걸 물었다.
그러나 황 PD의 대답은 그녀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프로그램의 재미가 떨어지니까요.”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