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제42화. 가깝고도 먼(2)
데뷔 앨범 활동 마지막 주간에 촬영했던 관찰 예능 프로그램, ‘스타데이’ 스튜디오 녹화가 있는 날.
이연은 차에 오르기 전에 먼저 일주일 만에 만나는 박도수 매니저와 최공예 코디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간만이다, 이연아.”
“연아! 그동안 잘 지냈어? 어머, 혈색 많이 좋아졌네. 역시 집에서 편하게 쉬니까 좋지?”
이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최공예 코디의 말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못 쉬었어요.”
“못 쉬었다고?”
“네. 이사 갈 집 알아보고, 들여놓을 가전제품들 확인하고, 짐 정리하고. 지금 한창 그러고 있어요.”
박도수 매니저가 눈은 후방 카메라에, 귀는 이연과 최 코디의 말에 집중하면서 물었다.
“이사가 언젠데?”
“다음 주요.”
“얼마 안 남았네? 그때 나도 도와주러 갈까?”
“괜찮아요. 포장이사 맡길 거니까요.”
이연의 어머니는 처음엔 돈 아깝다고 포장이사까진 하지 말자고 했었다.
그걸 이연과 권민준이 겨우 설득에 성공했다.
이 말을 들은 최공예 코디가 호호 웃었다.
“어머님도 참. 딸이 돈을 이렇게 잘 버는데, 그 정도는 쓰셔도 괜찮잖아.”
“저희 어머니는 절약이 생활화되신 분이셔서 그래요. 아무튼 다음 주에 이사 마치고, 정리 끝난 다음에 시간 좀 보내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올 거 같아요.”
“숙소로 일찍 복귀해도 상관없어. 매니저님, 그렇죠?”
박도수 매니저가 최 코디의 말을 받아 이었다.
“어. 반드시 3주 채우고 복귀해야 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해, 자유롭게. 어차피 거기, 너희들 숙소잖아. 집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런 거에 일일이 부담 느끼지 마.”
“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연은 다른 멤버들보다 이삼 일 정도 먼저 숙소로 복귀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리더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돌로서의 패턴을 되찾아서 멤버들을 이끌어주고 싶었다.
스튜디오 녹화는 이연 혼자만 참가하는 게 아니었다.
이연을 픽업한 후, 박도수 매니저는 곧바로 또 다른 출연진인 여솜이 기다리는 장소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여솜이 이연의 옆에 탑승해 기쁜 감정을 드러냈다.
“이렇게 있으니까 다시 방송 활동하는 거 같아서 너무 좋아요.”
최 코디가 멤버들이 있는 쪽으로 뒤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쉬는 게 더 좋지 않았어?”
“처음에는 그랬는데, 할 일 없이 가만히만 있으니까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한창 활동할 기간에는 일정이 너무 많다며 힘들어했잖아.”
“지금처럼 이렇게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만 스케줄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러자 박도수 매니저가 크게 웃었다.
“그러면 우리 회사 망한다. 지금 너희가 차지하고 있는 지분이 얼마나 큰데.”
최근 LC 엔터테인먼트가 발표한 여러 그룹 중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팀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하니엘이라고 답할 것이다.
덕분에 LC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도 훌쩍 뛰어올랐고. 하니엘의 활동 이후 여러모로 호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들의 데뷔 앨범 활동 기간은 끝났지만, 발표한 노래는 여전히 라디오, 예능, 길거리 등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침 라디오 채널에서 송출되고 있는 하니엘의 ‘HUG’를 들으면서 당사자들은 방송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제작진, 출연진과 한 차례 인사를 나눈 후,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본을 계속해서 보고 또 봤다.
촬영이 개시되고, MC가 두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안녕하세요, 하니엘의 리더 이연입니다.”
“부리더와 서브보컬을 맡고 있는 여솜입니다. 반갑습니다!”
MC가 흐뭇한 미소로 둘을 바라봤다.
“아이돌분들이 오시니까 스튜디오 전체가 화사해지는 느낌이네요.”
“그러게요. 저희 프로도 아이돌 좀 많이 부르시면 안 돼요?”
“지난주에는 수염 난 아저씨 왔다 갔잖아요.”
“그러지 마요. 최홍 씨 이 방송 보면 울지도 모른다고요.”
고정 출연진들의 티키타카에 이연과 여솜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작게 웃었다.
오늘의 촬영은 여러모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니엘 멤버들의 일상을 찍은 영상이 출연진에게 공개되기 전에 MC가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방송에 나가기도 전에 어떤 영상 하나가 공개되었는데요. 이게 벌써부터 반응이 뜨거워요. 그렇죠?”
모두의 시선이 이연에게 향했다.
이연은 출연진이 왜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은솔과 함께 팀을 이뤄 진행했던 이벤트 게임의 내용 때문이었다.
덕분에 PD는 벌써부터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이번 주 편수의 시청률이 이미 보장된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언제 그 해당 편수가 방영되려나.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이연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이 방송의 시청률 추이가 얼마만큼 큰 폭으로 상승하는지 결정될 것이다.
영상이 재생되자, 멤버들이 각자 방에서 깨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맨 처음을 알리는 주인공의 정체는 이연이었다.
출연자들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아침에 막 일어난 거 맞죠?”
“생얼 굴욕이니 뭐니 그런 거 하나도 없네.”
“화장 아예 안 한 상태죠, 지금?”
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다고 짧게 답해줬다.
후보정을 거친 영상도 아니고. 출연자들은 영상을 보면서 믿기지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괜히 권이연이 4세대 걸 그룹을 대표하는 비주얼 라인에 이름을 올린 게 아니었다.
이연의 기상을 필두로 하나둘씩 눈을 뜨는 멤버들.
보면서 출연자들은 자신이 받은 느낌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우미 씨하고 이연 씨가 멤버들을 많이 챙겨주시네요.”
“우미 씨가 엄마라면, 이연 씨는 아빠 같아 보이는데요?”
여솜이 한 출연자의 표현에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맞아요! 안 그래도 저희 사이에서 우미 언니는 엄마 같다고 많이 말이 나오거든요. 연이는 반대로 아빠처럼 무슨 일 있으면 적극적으로 먼저 나서고 그래요.”
물론 비유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오랜만에 남자로 인정받게 되어서 그런지 이연은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하니엘 멤버들이 음악방송에 나가서 1위를 차지하는 장면도 영상을 통해 공개되었다.
펑펑 우는 멤버들을 보면서 출연자 몇몇도 몰래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다.
“아휴……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게요. 제가 다 마음이 찡하네요.”
“다들 고생 많았을 테니까. 저때까지 말도 못하게 힘들었을 거잖아. 그렇죠?”
당시의 여운이 오랜만에 떠올라서일까. 여솜도 살짝 눈시울을 붉히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담담하게 1위 수상 소감을 말하는 이연을 필두로 앙코르 무대가 펼쳐졌다.
이후에 많은 팬들이 궁금해했을 무대 뒤에서의 모습도 스타데이 카메라에 그대로 비쳤다.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서 1위 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거나, 서로 안아주면서 다시 한번 뜨거운 눈물을 흘리거나.
이런 모습들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카메라 뒤에 서 있을 때의 연예인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스타데이는 이것을 최대한 과장 없이 보여주려고 하는 프로그램이다.
스타데이의 인기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째 날로 바로 넘어가게 되었다.
“나오네요. 화제의 그 장면.”
“드디어 보게 되나요?”
이연이 이은솔과 처음 만나는 장면이 마치 몰래카메라를 촬영하는 것처럼 연출되었다.
페이크 다큐 느낌도 나고. 그래서인지 서로를 대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꽤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시내에 도착해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모두가 기대하는 이벤트 장면이 화면을 통해 재생되었다.
이연과 이은솔이 작은 종이를 깔고 서로를 포옹할 때, 현장에서 뜨거운 환호성이 형성되었다.
여솜도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벌렁거리는 심장을 억지로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뭐야, 뭐야! 선배님하고 이렇게 가깝게 밀착해 있었어?”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은 화질이 별로 안 좋았었다.
하지만 역시 방송국이라 그런지 이 영상은 화질, 카메라 앵글, 사운드 등. 모든 게 차원이 달랐다.
가까워진 두 사람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보고 있자니 여솜의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였다.
손으로 여러 차례 부채질을 해도 한번 올라온 온도는 쉽게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항상 침착해하던 이연조차도 주변 반응이 이러하니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도 살짝 볼이 빨개짐을 느꼈다.
‘미쳤냐. 얼굴이 왜 빨개져.’
속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했지만, 생각하는 것과 몸이 보여주는 반응은 여전히 달랐다.
중간에 달콤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권이연, 이은솔 커플이었지만.
마지막에 이연이 이은솔을 공주님 안기 방식으로 들자, 훈훈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차력쇼를 보는 듯한 리액션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연 씨, 힘 엄청 세시네요.”
“저 정도면 올림픽 나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런 가녀린 팔에서 어떻게 저런 근력이 나온대?”
“조금만 단련하면 대회 나가서 메달 하나는 우습게 따 올 수 있지 않을까요?”
예능답게 마지막은 크게 웃으면서 오늘의 촬영이 종료되었다.
스튜디오 반응이 워낙 좋았던 터라 이연은 나중에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이번에도 이은솔을 데리고 나가기로 몰래 결심했다.
상품도 다시 타 오고.
그녀에게는 일석이조다.
* * *
스타데이 촬영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
이연은 차를 타고 오늘 양우섭과 우미, 그리고 시우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하니엘 멤버들이 데뷔 쇼케이스를 끝내고 난 뒤에 뒤풀이 행사를 가졌던 호텔, 엘바티브의 뷔페 식당에서 오늘의 저녁 식사를 진행하기로 정해졌다.
양우섭과 우미에게는 엘바티브가 매우 친숙한 곳일 테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음식들이 이연의 입맛에도 딱 맞았다. 그래서 이견 없이 장소가 그곳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이연이 가장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보다 우미, 시우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이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연아.”
“안녕하세요, 언니.”
“안녕. 일찍 왔네? 언제 온 거야?”
시우가 얇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저희 한 5분 전에 왔어요. 얼마 안 됐어요.”
“그래? 이사님도 곧 오실 거라고 하니까…… 내가 여기에 앉는 게 낫겠지?”
우미와 시우, 두 사람이 앉아 있는 맞은편 자리를 가리키는 이연.
오늘 모이는 사람이 네 사람이다 보니, 이연마저 우미와 시우 쪽에 앉아버리면 반대쪽에는 양우섭 혼자만 앉아야 한다.
밸런스를 고려한다면, 이연이 양우섭의 옆자리에 앉는 게 좋아 보였다.
자리를 잡으려고 할 때, 마침 양우섭이 도착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저기, 우미야. 말할 게 있는데…….”
오랜만에 여동생을 봤다는 기쁨보다는 난감하다는 감정을 더 크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에 대한 이유는 양우섭과 같이 온 어느 한 여성의 존재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다.
여성을 보자마자 우미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엄마……?”
우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