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제40화. 승부욕(4)
차를 끌고 오늘의 일정을 보내기로 한 장소로 향하던 이은솔은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하는 소리가 혹여나 마이크에 담기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 정도로 컸다.
신호 대기를 위해 잠시 차를 세운 이은솔은 잠시 운전대에서 손을 뗐다.
“긴장해서 그런가, 손에서 땀이 다 나네.”
그의 말에 이연은 고개를 운전석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혹시 카메라 앞이라서 그러세요?”
설마.
카메라 정면 유리에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긴 하지만, 이연은 이게 이은솔에게 긴장을 유발시키는 원인이라고 일절 생각하지 않았다.
방송 경력으로 따지면 이은솔이 이연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관찰 예능 촬영이 처음도 아닐 텐데.
긴장한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뭐. 그냥…….”
이은솔을 긴장시킨 원인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이연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둘이서 어디론가 데이트를 간 적이 없었다.
딱히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친한 선후배 관계에 불과하다.
저번에 했던 식사 약속을 이행하려는 것뿐인데.
이은솔은 눈만 힐끔 돌리며 이연의 옆모습을 살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잘나간다는 여자 연예인들은 거의 다 만나본 이은솔이지만, 자신의 눈엔 이연이 가장 예뻐 보였다.
게다가 성격도 왠지 모르게 남자처럼 털털하고, 시원시원하다.
그 점이 이은솔의 호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 오늘 양식 가게 예약해 뒀는데. 괜찮지?”
“네. 선배님이 추천해 주시는 가게인데. 어디든 좋아요.”
카메라 앞이니까 일부러 과장해서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은솔은 이연의 이 멘트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파란불이 되자마자 이은솔은 아까보다 더 힘 있게 운전대를 잡았다.
만약 스타데이 촬영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이연과 대놓고 데이트를 나서지도 못했을 거다.
그래서일까.
이은솔은 오늘따라 방송이 굉장히 고맙게 느껴졌다.
* * *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게로 향하는 두 사람.
주차장과 식당 사이의 거리가 좀 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나란히 시내 거리를 걷게 되었다.
두 사람을 보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이 일제히 쏟아졌다.
이은솔이 누군지, 이연이 누군지. 젊은 층 중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 섣불리 접근하진 않았다.
앞과 뒤에 위치한 스태프들 때문이었다.
이연은 자신들과 일정 거리를 벌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촬영이 도움이 되는 때도 있네.’
멤버들끼리 외식을 할 때에는 간혹 팬서비스를 바라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식사나 쇼핑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스태프들이 알아서 식당 자리까지 확보해 뒀으니, 두 사람은 그곳에 가서 얌전히 식사를 하기만 하면 된다.
가게 내에 촬영 장비들이 세팅되는 동안, 이연과 이은솔은 메뉴를 미리 골랐다.
“안심 스테이크 세트 2인으로 해서 먹으면 될 거 같아요. 선배님은 어떠세요?”
“나야 괜찮긴 한데. 더 시켜도 돼. 내가 사는 거니까.”
“아니에요. 너무 먹으면 살찌니까요.”
“내가 보기엔 더 쪄도 되는데.”
“그러다가 막 먹으면 트레이너님한테 혼나요.”
이연은 살이 잘 찌는 체질이 아니다.
그러나 리샤만큼은 아니었기에 평소에도 다른 아이돌들처럼 먹는 양을 늘 조절하는 편이 좋다.
앨범 활동 기간이 아니더라도 이연은 이 생활 루틴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었다.
습관으로 만들어둬야 미래의 자신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음식이 세팅되는 동안, 이연은 식사하는 데에 방해가 될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기 시작했다.
남자였을 때에도 장발이었던 적이 꽤 됐기에 머리카락 묶는 일 정도는 그녀에겐 누워서 떡 먹기보다도 쉬웠다.
슥슥. 머리카락을 묶는 그녀의 모습을 이은솔은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시원스레 드러내는 가느다란 목덜미에 시선을 빼앗기려 할 무렵.
“선배님. 식사 안 하세요?”
“응? 머, 먹어야지. 미안. 멍 때리고 있었네.”
“많이 피곤하셔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야, 전혀! 요즘 나, 쭉 쉬고 있는데 뭘. 피곤할 일 전혀 없어.”
SSS에서는 때론 믿음직한 진행자로, 때로는 든든한 선배 역할을 톡톡히 했었던 이은솔이었는데. 오늘 보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색달랐다.
식사를 진행하는 동안, 두 사람은 공통 화제라 할 수 있는 연예계 관련 이야기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제 MStage 차트 순위 보니까 하니엘이 1위 차지했더라. 음악방송에서도 1위였고. 축하해.”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래도 좀 더 힘낼 수 있었는데, 아쉽더라고요.”
“이 정도면 충분히 잘했는데. 데뷔 앨범부터 메이저 음원 서비스 플랫폼에서 1위 차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실망할 필요 없어. 우리 벡스는 처음 음방 1위 했을 때가 데뷔한 지 3년 때였으니까.”
하니엘과 다르게 벡스는 무명 시절이 꽤 길었다.
1집 때 지하철 입구 근처에서 버스킹을 했을 때에는 멤버들의 숫자보다도 적은 팬들을 데리고 공연을 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멤버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 결과.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이그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연은 이은솔과 벡스 멤버들의 이런 점을 굉장히 높게 사고 있었다.
사실 이연은 무명 시절이라는 게 없었다.
음유시인으로 활동할 때에도 그렇고. 현재 걸 그룹 아이돌로 데뷔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시작 자체는 남들과 늘 달랐다.
압도적인 재능 덕분이기도 했지만, 운도 꽤 따르는 편이었다.
이연으로서 두 번째 삶을 살게 되었을 때에도 그렇다.
마침 월말평가로 SSS 방송에 출연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아이돌 지망생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은솔은 자신보다 이연을 더 대단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SSS 진행하면서, 솔직히 내가 만약 너희 입장이었더라면 진작 멘탈이 나갔을 거라고 생각한 게 몇 차례나 있었거든. 그런데 그걸 다 꿋꿋하게 버텨내고 결국 데뷔하는 모습을 보니까 후배인데도 불구하고 존경심이 들더라고.”
방송용 멘트가 아니었다.
이은솔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 나와서 심사 위원들뿐만 아니라 대중들한테 자기 자신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며 평가받는다는 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이연과 연습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처음으로 털어놓게 되었다.
이연은 이은솔의 이런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이 SSS 진행을 맡아주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
“네. 이렇게 멋진 선배님과 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니까요.”
멋진 선배님이라는 말에 이은솔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서로 이렇게나마 진솔하게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두 사람에게는 큰 소득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은솔은 이연과의 거리를 좀 더 좁히기 위해서 슬쩍 제안 하나를 건넸다.
“네가 원한다면, ‘선배님’ 말고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도 돼. 말 놓아도 괜찮고.”
“아니요. 저는 선배님이 더 편해요.”
“그, 그래?”
이연의 단호함에 이은솔의 포크와 나이프는 잠시 갈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 *
식사도 다 했고.
밖으로 나와 소화도 시킬 겸, 시내 거리 구경도 할 겸해서 이연은 이은솔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이은솔이 타코야끼 가게를 가리켰다.
“저거 하나 먹을까?”
“네, 좋아요.”
두 사람이 가게를 방문하자, 젊은 사장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외쳤다.
“어서 옵쇼!”
“타코야끼 10개 박스로 하나 주실래요?”
“맛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이은솔은 슬쩍 이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겠다는 뜻이 담긴 제스처였다.
“매운맛으로 주세요.”
“네, 바로 드리겠습니다!”
옆에서 대기 중이었던 알바생이 빠른 속도로 타코야끼를 박스에 담아 이은솔에게 건네려 했다.
“잠시만요. 지갑 좀 꺼내고요.”
이은솔을 대신해서 이연이 한 손에 들어오는 아담한 박스를 건네받았다.
결제를 하고.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벤치에 잠깐 앉아서 먹으려고 하던 찰나에, 두 사람은 뒤늦게 자신들이 놓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장님이 나무 꼬치 하나만 담아주셨네.”
“그러게요.”
이은솔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가져올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봐.”
“아니에요, 선배님.”
이연이 나무 꼬치 하나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이걸로 나눠 먹죠.”
“그, 그래도 돼?”
“네.”
이연이 타코야끼가 담긴 박스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박스를 열고, 가운데에 위치한 타코야끼 한 알을 나무 꼬치에 꽂아 이은솔에게 내밀었다.
“선배님, 여기요.”
“…….”
이은솔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설마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될 줄이야.
그렇다고 여기서 갑자기 괜찮다고 거절하면 후배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도 있다.
이은솔은 최대한 자신의 입이 나무 꼬치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후배가 건넨 타코야끼 한 알을 입안으로 넘겼다.
이연이 직접 먹여주는 타코야끼라서 그런지 맛은 배였지만.
“아, 뜨거……!”
뜨거움도 배였다.
“선배님, 괜찮아요?”
“괘, 괜찮아. 뜨거우니까 식혀서 먹어.”
“네. 그럴게요.”
입안이 살짝 덴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은솔은 행복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타코야끼를 먹었으니까 말이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구경꾼들의 눈에도 하트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이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렇게 서로 한 알 한 알씩 번갈아 먹으면서 타코야끼 박스를 비워가고 있던 찰나였다.
바로 근처에서 어떤 한 남자가 마이크를 쥐고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 특별 이벤트 있습니다! 바닥에 깔아놓은 종이 위에서 최대한 오래 버티는 커플팀에게 호화로운 상품을 지급해 드릴 예정이니, 참가하셔서 상품도 받아 가시고. 추억도 만들고 가세요!”
김정수 PD가 고개를 돌려 특별 이벤트가 열리는 현장으로 향했다.
잠시 뒤, 그가 이은솔과 시선을 마주쳤다.
참가하실래요?
이렇게 묻는 듯한 PD의 눈빛에 이은솔은 생각이 많아졌다.
이벤트는 혼자서 참가하는 게 아니다.
‘커플팀’이라고 했으니까.
이연의 의사도 굉장히 중요하다.
“저거 한번 참가해 볼래?”
그의 물음에 이연은 뒤늦게 이벤트 쪽에 관심을 보였다.
어차피 방송 분량도 뽑아야 하고.
두 사람이 종이 위에 올라서서 버티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게임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러죠.”
두 사람이 스태프들과 함께 이동했다.
이벤트 현장에 깔려 있는 종이들을 본 순간, 두 사람은 뒤늦게 후회했다.
상상 이상으로 종이의 면적이 적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