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제40화. 승부욕(3)
숙소가 아닌 외부 일정이 있을 경우에는 당연하게도 ‘스타데이’ 촬영팀이 하니엘 멤버들과 각각 동행하게 된다.
오늘은 팀 단위 스케줄 하나뿐이기에 촬영팀이 여기저기 흩어질 필요도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마지막 음악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무대의상을 살피는 멤버들.
데뷔 이후 마지막 활동 주간에 이르기까지. 나름 많은 음방에 출연했지만, 재미나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아이비제이와 활동 기간이 겹친 탓에 계속해서 순위가 2~3위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물론 데뷔하자마자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낸 걸 그룹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으나, 번번이 아이비제이라는 벽에 가로막힌 탓에 매번 아슬아슬하게 2위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래도 첫 번째 앨범 마지막 음악방송이니까.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장식하기 위해 이들이 손을 모았다.
“하나, 둘, 셋!”
“하니엘, 파이팅!”
카메라 앞이라서 그런지 다들 평소보다 더 목소리가 높았다.
오늘 그녀들이 출연할 방송은 첫 음악 프로그램이기도 했던 뮤직 투게더였다.
이미 몇 차례 올라섰던 무대였기 때문에 현장 분위기라든지 모든 것들이 처음과 달리 낯설지 않았다.
리허설을 마치고 본 녹화를 위해 무대 위에 오른 그녀들.
멤버들을 보자마자 팬들의 함성이 현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돌기 전에 멤버들은 각각 손을 흔들거나 하트를 만들어 보이면서 팬들에게 마지막 음악방송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센터에 선 이연을 중심으로 멤버들이 각각 위치에 섰다.
음악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아웃 포커스로 멤버들의 모습을 흐릿하게 비췄던 카메라 초점이 점점 선명해졌다.
이연의 얼굴을 또렷하게 비추면서 순차적으로 안무 순서에 따라 다른 멤버들의 모습을 비췄다.
카메라맨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따라 멤버들도 열과 성을 다해서 무대를 꾸몄다.
마지막 음방인 만큼, 멤버들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자신의 기량을 모두 무대 위에서 쏟았다.
하니엘 멤버들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응원하기 위해 객석을 가득 채운 하니유들도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노래가 끝나고, 카메라가 멤버들을 한 명 한 명씩 비추기 시작했다.
오늘의 엔딩 요정은 여솜이 맡기로 했다.
그녀가 주먹 쥔 양손을 활짝 펼치자, 왼쪽 손바닥과 오른쪽 손바닥에 각각 ‘막’, ‘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솜과 하니엘 멤버들의 작별 인사에 팬들 역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 음방을 끝내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멤버들은 대기실에 앉자마자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진짜로 끝났구나…….”
비아가 섭섭해 하는 표정으로 말하자, 우미가 작게 웃으면서 막내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가수 인생 마지막 방송도 아니고. 다음 앨범을 위해서 잠깐 쉬는 거니까 너무 그렇게까지 아쉬워하진 마. 그만큼 다음 무대는 더 열심히 준비하면 되지.”
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미의 말이 맞음을 인정했다.
다른 멤버들도 우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깐의 이별일 뿐.
그녀들은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설 것이다.
본 무대도 끝났으니.
이제 순위 발표만 기다리면 된다.
그때까지 스타데이 촬영팀은 멤버들에게 편히 쉴 수 있도록 잠시 카메라를 꺼두기로 했다.
방송이 중요하긴 하지만, 휴식도 그만큼 중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 * *
순위 발표를 위해 가수팀들이 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하니엘과 함께 오늘, 마지막 음방 무대를 꾸몄던 아이비제이도 함께였다.
하니엘은 이곳, 뮤직 투게더에서 단 한 번도 아이비제이를 이겼던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1위 후보를 두고 맞대결을 펼치긴 했지만, 전부 다 아쉬운 결과만을 맞이했었다.
하니엘이 아무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신흥국이라 할지라도 기존 강대국의 벽은 역시 높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멤버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1위 후보부터 만나보시겠습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아이비제이와 하니엘이 다시 한번 맞붙게 되었다.
“자, 그럼 결과 확인하실까요!”
“1위, 공개해 주세요!”
각 항목별로 적힌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여러 항목들의 점수를 합산한 결과.
화면은 아이비제이가 아닌 하니엘 멤버들을 비쳤다.
“하니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1위를 차지하셨네요!”
멤버들은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1위를 축하하는 꽃다발을 받고 나서야 조금씩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모양인지 하나둘씩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 앞에서 쉽게 말문을 떼는 멤버는 없었다.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이연이 대표로 마이크를 건네받고 소감을 말했다.
“저희, 오늘이 마지막 음방 녹화였거든요. 그래서 이번 1위가 더욱 값지게 느껴지네요. 늘 저희 일정 때문에 고생 많이 해주신 매니저님, 코디 언니, 실장님, 오채일 대표님, 우리 멤버들, 가족들. 모두모두 감사하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들, 사랑해요.”
평소에 이연한테서 사랑한다는 말은 의외로 듣기 힘들다.
그만큼 그녀도 기분이 좋다는 것을 나타냈다.
아이비제이 멤버들도 하니엘 멤버들을 한 번씩 안아주면서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아이비제이 리더, 혜원이 같은 리더인 이연을 살짝 안아줬다.
“축하해요, 이연 씨. 고생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처음에는 아이비제이와 활동 기간이 겹쳐서 어떻게 하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일이 있었기에 멤버들이 한층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력한 라이벌의 존재는 주인공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지막 승자가 된 하니엘 멤버들은 앙코르를 소화하기 위해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다.
서로 부여잡고 엉엉 우는 멤버들로 인해서 본의 아니게 이연이 처음부터 마이크를 차지하게 되었다.
직접 노래를 부르던 이연이 팬들을 향해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앨범으로 또 찾아뵐게요!”
오늘만큼은 이연도 텐션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 * *
앙코르 무대까지 마치고 내려오자, 기다리고 있던 스태프들이 그녀들을 향해 외쳤다.
“1위 축하해!”
“드디어 1위구나!”
“난 우리 활동 끝날 때까지 1위 한 번 못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었는데.”
최공예 코디가 언니처럼 멤버들을 다독여 줬다.
“다들 정말 고생했어.”
“매니저님은요?”
리샤가 퉁퉁 부운 눈으로 물었다.
그러자 최 코디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복도 끝을 가리켰다.
“너희가 1위라는 소식 듣자마자 바로 울더라고. 우는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서 화장실 갔다 오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안 오네. 대체 그 오빠, 얼마나 울고 있는 거야.”
멤버들 앞에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박도수 매니저도 상당히 아쉬웠을 것이다.
그래도 1위 한번 달성하고 데뷔 앨범 활동을 마무리 짓는 게 소원이었을 텐데.
그 소원이 현실로 이루어졌으니, 말보다는 눈물이 이 기쁨을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스타데이 촬영 중에 1위 달성이라는 업적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연은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활동 기간 막바지에는 운이 많이 따라주는 편이네.’
이제 스타데이 촬영만 잘 마무리 지으면 된다.
* * *
하니엘이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하루 만에 연예계를 넘어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다음 날 아침.
비아와 시우, 유키. 막내즈 멤버들이 이른 시간부터 옹기종기 모여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우미 언니, 이거 봐봐! 우리 1위 차지했다고 하니엘 굿즈 모아두고 인증 사진 찍어서 올려준 분 계셔!”
“어머, 진짜네?”
“여기는 직접 플래카드 만드신 팬도 있네.”
“정성 봐. 이건 진짜 감동이네.”
멤버들은 아직도 1위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단 한 명. 아침부터 나가봐야 하는 이연을 제외하고 말이다.
방에서 나온 이연이 거실에 있는 멤버들에게 다녀오겠다고 말을 건넸다.
“나 먼저 나가볼게.”
이연을 보자마자 비아와 유키가 크게 놀랐다.
“뭐야, 언니!”
“잠깐만요!”
걸음을 멈추게 만든 두 막내의 모습에 이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또.”
퉁명스럽게 묻는 이연을 향해 막내즈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나온 거야!”
“잠깐 거기 서 있어봐요. 사진 찍게요.”
“맞아. 이건 사진으로 남겨서 SNS에 올려야 해.”
이연은 어이가 없는 웃음을 흘렸다.
이연의 메이크업 실력은 이미 SSS에 참가했던 연습생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오늘은 너무 부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과하지도 않은. 소위 ‘꾸안꾸’가 콘셉트였다.
다들 이연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을 때, 시우는 복장에 관심을 보였다.
“언니. 오늘은 치마 입으셨네요?”
이연이 치마를 안 좋아한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시우는 의아하게 다가왔다.
“이거 안 입으면 쟤가 나, 오늘 밖에 못 나가게 만든다고 협박해서 그래.”
비아가 손을 들면서 ‘쟤’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본인임을 어필했다.
“언니, 위에 걸칠 것도 챙겼지? 그 위에 입어주면 딱 어울릴 거 같은데.”
“여기 있잖아.”
손에 들려 있는 카디건 한 장을 가리켰다.
안 그래도 이연은 슬슬 치마에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어차피 여자가 되었으니까. 게다가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직업이다 보니 평생 치마를 피할 수는 없다.
슬슬 적응기도 가질 겸, 얌전히 막내의 고집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는 멤버들의 말과 함께 이연은 스마트폰을 보면서 집 근처 도로변으로 향했다.
스타데이 촬영팀이 멀리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짧은 기다림의 시간 동안 이연은 손거울로 자신의 용모를 살폈다.
이때, 저 멀리서 파란색 스포츠카 한 대가 다가왔다.
운전석 쪽 윙 도어가 먼저 열리면서 오늘의 여주인공을 모시러 온 남자의 정체를 공개했다.
“오래 기다렸어?”
깔끔하게 차려입은 이은솔이 이연을 에스코트하기 위해 나섰다.
“아니요, 선배님. 방금 나왔어요.”
“미안해. 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저 픽업하러 오셨는데,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하죠. 옆에 타면 될까요?”
“어. 타. 잠깐만. 무릎담요 꺼내줄게.”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렇게 두 사람이 차를 타고 약속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모습을 촬영팀과 함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스타데이 김정수 PD가 입에서 감탄을 쏟아냈다.
“와…… 김 감독. 방금 봤어?”
“은솔 씨하고 이연 씨요?”
“어.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 둘이 나란히 서 있는데 순간 예능이 아니라 드라마 촬영하는 줄 알았다니까.”
PD가 보기에도 이렇게 설레는데. 보는 시청자들은 어떤 기분일까.
그의 귀에는 벌써부터 시청률이 상승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