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제40화. 승부욕(2)
현재 예능 프로 중에서 탑 3 안에 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인 프로그램이 바로 ‘스타데이’다.
오늘, 하니엘 멤버들은 소속사 관계자들과 함께 스타데이 제작진과 사전 미팅을 가지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하니엘 멤버들이 제작진을 보자마자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신인 걸 그룹이라 그런지 하니엘을 바라보는 제작진의 얼굴에 엄마, 아빠 미소가 깃들었다.
서로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스타데이에서 연출을 맡고 있는 김정수 PD가 멤버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질문 하나를 건넸다.
“저희 프로그램은 혹시 보셨을까요?”
“네!”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예능이에요!”
“리샤 언니는 다른 프로그램 나가서 혹시 출연하고 싶은 프로그램 있냐고 물어보니까 ‘스타데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인기몰이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었기에 연예인이라면 한 번쯤은 꼭 나가고 싶어 할 수밖에 없었다.
하니엘 멤버들의 뜨거운 반응 덕분인지 김정수 PD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다행이네요. 저희 스태프들도 이번에 하니엘 멤버분들 나오신다고 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출연자들도 하니엘 한번 출연시키면 안 되겠냐고 저한테 따로 부탁할 정도였다니까요.”
“어머, 정말로요?”
하니엘 멤버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서로의 염원 덕분에 이런 좋은 기회가 만들어졌으니.
이제 방송이 재미있게 나오기만 하면 된다.
촬영이 어떻게 진행될지, 김 PD가 직접 개요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촬영은 이번 주 목요일부터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이렇게 2박 3일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 기간 동안 멤버분들 숙소에 저희가 카메라를 각각 설치할 거고요. 침실이나 화장실에도 설치할 거긴 한데, 저희 스태프들이 카메라 잠깐 끄는 방법을 알려 드릴 테니까 필요할 때마다 그냥 끄셔도 됩니다. 대신에 끄고 난 다음에 다시 켜두는 거 잊으시면 안 되고요.”
“네, 알겠습니다.”
“카메라 작동법에 대해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저희 촬영팀에게 연락 주세요. 항시 대기할 테니까요. 그리고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김 PD가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매니저님한테 스케줄표를 받아보니까 목요일하고 토요일 오전까지는 방송 일정이 잡혀 있던데, 금요일은 비번이더라고요.”
“네, 맞아요.”
오랜만에 딱 하루 쉬는 날이 잡혀 있었다.
물론 스타데이 촬영 일정과 겹쳐 있기 때문에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이날에는 특별히 일정 같은 게 있을까요?”
“일정이라면…….”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고정적으로 하고 있는 개인 일정은 있었다.
“리샤 언니는 그날 운동 갈 거지?”
“응. 비아하고 유키하고 같이 가기로 했어.”
김 PD가 금요일에 대해 확인차 물어본 이유가 있었다.
“시청자들이 연예인은 쉬는 날에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한 것도 많이들 궁금해하더라고요. 방금처럼 헬스장에 가셔서 운동을 해도 되고, 아니면 집에서 뭐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든지, 멤버분들끼리 미니 게임 같은 걸 한다든지. 그렇게만 해주셔도 됩니다. 밖에서 지인을 만나도 상관없고요. 대신에 저희한테 미리 말씀만 해주시면 됩니다.”
이연의 머릿속에 유독 김 PD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지인을 만난다.
순간 이연은 아직 달성하지 못한 옛 약속 하나가 떠올랐다.
“저, 은솔 선배님하고 만나기로 했었는데. 괜찮을까요.”
이은솔의 이름을 듣자마자 김 PD와 스태프들이 기겁했다.
“벡스의 이은솔 씨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다, 당연하죠! 벡스 멤버가 나온다면 무조건 대박인데!”
안 그래도 둘이서 따로 만났다가 스캔들 기사라도 뜰까 봐 못 만나고 있었는데. 방송이라면 그런 의심도 없어질 테니까 오히려 좋다.
대신에 이은솔에게도 따로 연락해서 괜찮은지 확인해 봐야 한다.
“그럼 선배님한테 오늘 연락해 봐서 괜찮은지 여쭤보고, 그다음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해도 되죠?”
“네. 언제든 기다릴 테니까 제발, 부디, 꼭 나와주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이연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앉아 있던 비아가 이연에게 조용히 물었다.
“언니. 선배님하고 전화번호 언제 교환했어?”
“SSS 녹화 때.”
“……그래?”
비아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아니야, 아무것도.”
비아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표정을 보자마자 이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경고했다.
“이상한 상상하지 마. 나하고 선배님, 그런 관계 아니니까.”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네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이미 비아의 머릿속에서의 이연은 달달한 로맨스의 여주인공으로 낙점된 듯했다.
* * *
목요일 아침에 멤버들이 기상하는 장면부터 촬영이 시작될 예정이었기에 수요일 저녁에 모든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이연은 자신의 방에 붙어 있는 카메라를 올려다보면서 뒤숭숭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 전에 카메라 켜놓고 자면 된다고 했었지.’
자신의 자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는 건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멤버들도 그건 같은 생각이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바로 보일 생얼에 대한 걱정이었다.
거실로 나오자, 마침 멤버들이 내일 아침에 공개될 생얼에 대한 나름의 대책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얼굴에 팩이라도 씌우고 잘까?”
“아니면 미리 화장하고 자는 건 어때?”
“그랬다가 이불하고 베개에 화장 다 묻을걸?”
“그리고 화장하고 일어나면 너무 작위적으로 보이잖아.”
티비 프로그램 대부분의 연출이 대본에 의한 것이라 해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 한다.
이연은 걱정하는 멤버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다들 생얼도 예쁘니까. 그런 걱정은 접어두도록 해.”
확신에 찬 이연의 말에 멤버들은 진한 감동을 받았는지 리더를 향해 눈빛을 반짝였다.
“뭐야, 언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멋진 거야.”
“연이가 저렇게 말해주니까 없던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이네.”
이연은 빈말이 아니라 사실을 근거로 말한 것뿐이었다.
이연이 비주얼 담당으로 워낙 독보적이어서 그럴 뿐이지, 하니엘 멤버들 한 명 한 명의 미모도 빛이 난다.
화장의 도움이 없어도 그녀들은 충분히 예쁘다.
이것이 이연의 생각이었다.
여솜이 마침 이연에게 묻고 싶은 게 떠오른 모양인지 다른 말을 꺼냈다.
“은솔 선배님한테는 연락 왔었어? 둘이 어떻게 하기로 했어?”
“금요일에 같이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시내 한번 돌아보기로 했어.”
뭔가 특별한 체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백스의 인기 멤버와 4세대 대표 걸 그룹 중 하나인 하니엘의 리더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걸어가기만 해도 사람들은 열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연이 금요일 일정에 관심을 보이는 여솜에게 물었다.
“너도 같이 올래? 오랜만에 은솔 선배님한테 인사도 드리고.”
“그럴까?”
이때였다.
비아가 손으로 여솜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말했다.
“여솜 언니는 내일 우리하고 같이 헬스장 가서 운동하기로 했으니까 언니 혼자 다녀와.”
“읍읍!”
여솜이 바둥거리면서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
겨우 비아의 손에서 벗어나는 데에 성공한 여솜이 강하게 항의했다.
“왜 나까지 끌고 가려고 해!”
“언니, 저번에 트레이너 쌤이 뭐라고 했어. 언니가 PT 참여율이 가장 저조하다고 했잖아. 또 쌤한테 잔소리 듣고 싶어서 그래?”
“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살찌는 거, 한순간이야. 요즘 언니, 리샤 언니하고 같이 뭐 먹으러 다니는 취미 생겼다면서.”
비아가 여솜의 옆구리 살을 살짝 꼬집었다.
“이거,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해?”
“…….”
“어때. 운동하고 싶어졌지?”
오늘따라 비아의 말이 너무나도 논리적으로 들리는 건 왜일까.
여솜의 입에서 이내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알았어. 가면 되잖아.”
여솜이 강제로 헬스장 파티에 끌려 나가게 된 동안, 시우는 우미와 함께 숙소에 남아서 요리를 배우기로 했다.
이연은 은솔과 함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기로 했고.
금요일은 이렇게 세 팀으로 흩어져서 방송 분량을 뽑아낼 예정이다.
비아가 이연을 향해 몰래 윙크를 보냈다.
‘어때, 언니. 나, 잘했지?’라고 묻는 듯한 제스처였다.
역시. 자신과 이은솔 사이를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 * *
스타데이 첫 촬영 아침.
눈을 뜬 이연은 카메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의식하지 않으면서 평소에 하던 명상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고정된 하루 루틴이었기 때문에 안 하고 넘어가면 아침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다.
그래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명상을 빼먹을 수가 없었다.
마법을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침대 위에 정좌를 취한 채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 거니까.
‘이상한 소리는 안 듣겠지.’
이후에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이연은 거실 불을 켜면서 다른 멤버들의 기상 현황을 살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침에 가장 문제가 될 만한 게 있었다.
옷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잠드는 멤버가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거였다.
‘설마.’
이연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2인실 방문을 열었다.
리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이불을 슬쩍 들춘 이연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옷 입고 잤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당연한 일일 텐데. 리샤에 한해선 그렇지 않았다.
이연의 기척에 눈을 뜬 리샤는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나,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왜. 카메라 때문에?”
“아니. 잠옷 입고 자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불편해서 잠이 안 오더라고.”
“이틀만 더 참아. 그때는 옷 벗고 돌아다녀도 잔소리 안 할 테니까.”
멤버들이 하나하나씩 기상하는 동안, 이연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서 씻기 시작했다.
세면대 거울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카메라가 이연의 얼굴을 바로 정면에서 찍고 있었다.
카메라가 위잉 소리를 내면서 이연 쪽으로 앵글을 틀었다.
작은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니 이연은 마치 반려동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슬쩍 미소를 지어준 이연은 얼굴에 폼클랜징을 묻히고서 세면에 집중했다.
간단하게 씻고 난 뒤에 박도수 매니저와 최공예 코디가 이들을 픽업하러 오기 전까지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아무리 넓은 숙소라 할지라도 일곱 명이 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으니까 아침부터 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숙소 생활 첫날에는 아예 교통정리 자체가 안 될 정도였다.
얼추 출근 준비를 모두 마쳤을 때, 타이밍 좋게 최 코디가 숙소를 방문했다.
“안녕, 얘들아. 준비 다 끝났지?”
“네, 언니!”
“매니저님이 밖에서 차 대기시켜 두고 있으니까 천천히 나오렴.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언니가 도와줄게.”
평소에는 이렇게 친절하지 않았던 코디 언니가 오늘은 하니엘 멤버들보다도 더한 천사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방송의 위력일까.
이연은 몰래 웃음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