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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36화 (136/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36화

제38화. 만능 알바생(3)

강아지들과 친숙하지 않은 유키가 반대로 가장 난이도 있어 보이는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유키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여기서 거절하는 건 모양새가 너무 안 좋다.

시청자들에게 유키가 길거리에 방치되었던 유기견을 싫어해서 그런 걸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이미지로 먹고사는 존재다.

이제 막 데뷔했을 뿐인 와중에 사소한 걸로 괜히 논란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

유키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곽지연 사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아이들 맡고 싶으신가요?”

“아아아아아니요! 제, 제가 할게요. 저한테 맡겨주세요!”

결국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고 말았다.

만약 유키에게 혼자 이 임무를 맡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든지.

내숭이라는 가면 뒤에 감춰진 본래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 앞에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어쩔 수 없네.’

이연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 유키랑 같이할게요.”

곽지연 사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이턴과 비아는 소형견들을, 그리고 곽지연 사장과 우미는 대형견을 맡기로 했다.

유기견들이 있는 쪽으로 이동한 유키가 이연에게 작은 목소리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언니. 덕분에 살았어요.”

“같은 그룹 멤버니까. 서로 도와야지.”

유키의 이미지 타격은 그룹과도 직결된다.

그래서 이연이 나서기로 한 거였다.

어차피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식사를 챙겨줘야 했기에 차라리 유키의 비밀을 아는 이연이 같은 팀을 맺는 게 서로에게도 편했다.

“그런데 언니는 개 좋아하세요?”

“나?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까진 아니야.”

“키워본 적은…… 아까 없다고 하셨죠?”

“응.”

워낙 유명했던 음유시인이었기에 이곳저곳에서 이연을 찾는 요청이 쇄도했다.

안 가본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반려동물을 키울 만한 입장이 되지 못했다.

물론 이연의 집에 근무하는 하인들에게 반려동물 기르는 일을 대신 맡겨도 괜찮지만, 그러면 큰 의미가 없다.

그건 이연의 반려동물이 아니라 하인들의 반려동물인 셈이니까.

이연은 서로 애정을 나누는 교류 과정을 통해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는 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장 큰 목적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런 걸 할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평생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못했다.

유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사장님 불러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내가 할 수 있어.”

비록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은 없지만, 동물을 길들여 본 적은 있다.

무대에 반드시 사람만 서야 한다는 법칙 같은 건 없다.

필요에 따라선 동물들도 같이 무대에 세울 때가 있었다.

연극을 할 당시에 이연은 개, 고양이, 말, 새, 어쩔 때에는 몬스터까지. 연기하는 캐릭터 설정에 따라서 다양한 동물들과 합을 맞췄었다.

그때의 경험을 다시 한번 되살려 보기로 했다.

곽지연 사장이 마련해 준 사료 그릇을 들고 천천히 유기견들 쪽으로 접근하는 이연.

걱정이 되어서인지, 뒤에서 숨을 죽인 채 지켜보던 곽지연 사장이 이연에게 말했다.

“잘 안 되면 저한테 언제든 말해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사람에게 한 번 크게 상처를 받은 존재에게 다시 마음의 문을 열게끔 설득하는 과정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연은 유기견들이 겁먹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유기견들에게 일부러 말을 걸면서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밥 주려고 온 것뿐이니까. 자, 여기.”

쭈그려 앉아 사료가 담긴 그릇을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배고프지? 방해 안 할 테니까 와서 마음껏 먹으렴.”

이연의 상냥함이 통한 걸까.

눈치만 보던 유기견들이 느리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씩 이연이 내려놓은 사료 그릇 쪽으로 다가왔다.

한 마리가 먼저 밥을 먹기 시작하자, 다른 한 마리가 달라붙었다.

다들 어느 순간부터 이연에 대한 경계심을 내려놓고 식사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아이는 이연의 다리에 자신의 머리를 부비부비하기도 했다.

이연은 손을 뻗어 자신에게 애교를 부리는 유기견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유키의 입에서 ‘우와’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근데 언니. 일부러 그렇게 말을 거는 거예요?”

“어. 맞아. 사람이 말하는 거 동물들은 이해 못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 동물들은 내 어조라든지 표정, 목소리 톤이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다 보고 있어. 이걸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걸 알려주고 싶은 건지 알게 되는 거야.”

지켜보고 있던 곽지연 사장이 작게 박수를 쳤다.

“이연 씨가 정확하게 알고 계시네요. 맞아요. 그래서 방금 이연 씨가 한 것처럼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 최대한 부드럽게, 상냥하게 말을 붙이는 게 좋아요.”

“아하…….”

반려견에 대한 유키의 지식이 사승했다.

어느새 이연을 중심으로 모여든 유기견들.

곽지연 사장은 강아지들 사이에 둘러싸인 이연을 보면서 웃었다.

“인기 많으시네요, 이연 씨.”

이연의 얼굴에 멋쩍은 미소가 번졌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멤버가 한 명 더 있었다.

“꺅! 어, 어떻게 해!”

“얘 좀 봐! 사장님! 우미 언니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싶더니.

대형견 한 마리가 우미의 치마 안쪽으로 자꾸만 얼굴을 들이밀려 하고 있었다.

워낙 몸집이 컸기에 우미와 비아가 말려도 손을 쓰기가 힘들었다.

필사적으로 치맛자락을 손으로 꾹 누른 우미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SOS를 요청했다.

곽지연 사장이 출동하고 나서야 겨우 사태가 진정되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해프닝.

이연은 몰래 쓴웃음을 삼켰다.

‘조금만 늦었으면 방송사고 났겠네.’

유키 쪽이 제일 불안해 보여서 온 건데.

정작 사고는 다른 곳에서 벌어질 뻔했다.

* * *

애견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바로 카페 내에 있는 강아지들을 관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목욕을 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서 뒤처리, 그리고 위생 관리까지.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 있었다.

“애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그래서 저희는 손님들을 받을 때 아이들에게 너무 강압적으로 대해주지 말라고 늘 말씀드려요.”

곽지연 사장의 품에 아까 그 작은 포메라니안이 안겨 있었다.

“이 아이도 이렇게 보여도 예전 주인한테 버림받았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데려왔어요.”

이턴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키울 자신이 없으면 입양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안타깝네요.”

생명을 키운다는 건 그만큼 막중한 일이다.

그 일을 너무 가볍게 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연도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에 그런 사람들을 자주 봤었다.

이턴이 곽지연 사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래도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사장님 같은 천사분도 계시지 않습니까.”

천사라는 말에 곽지연 사장의 얼굴에 쑥스러움이 깃들었다.

이때, 유키가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저 아이도 혹시 유기견인가요?”

이연과 유키가 사료를 주는 일을 맡았을 때, 유기견들이 모여 있는 곳과 동떨어진 구석에 홀로 서 있는 작은 강아지가 보였다.

아까 전부터 유키는 저 강아지가 신경 쓰였다.

다수의 유기견들이 이연에게 친근감을 표현할 때, 유키가 가리킨 작은 말티즈 한 마리만 여전히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밝았던 곽지연 사장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저 아이가 가장 최근에 저희 가게로 오게 된 아이예요. 그래서인지 아직은 친해지기 어려울 거예요.”

그럼에도 유키는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인지, 좀처럼 말티즈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을 주시하던 이연이 유키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네가 한번 맡아볼래?”

“저요?”

“아까 내가 하는 거 봤지? 그대로 한번 해봐. 그러면 저 애도 너한테 마음을 열어줄 수 있을 거야.”

곽지연 사장도 이연의 의견에 동조했다.

“유키 씨가 먼저 손 내밀어주면 시월이도 좋아할 거예요.”

“시월이라면…… 저 아이 이름인가요?”

“네. 10월에 들어와서 제가 임시로 ‘시월이’라고 붙여줬어요. 참고로 암컷이에요.”

유키가 시월이에게 자꾸만 눈이 가는 이유가 있었다.

혼자서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이 자신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를 떠올리게 만들어서였다.

그녀도 한국에 막 왔을 당시에는 이렇게 시월이처럼 겉도는 느낌을 항시 가지고 있었다.

분명 같은 연습생들하고 서로 친하게 대화를 나누고,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연습도 하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속 어딘가에는 늘 외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국에서 왔으니까.

그 외로움의 기억이 시월이를 통해 오랜만에 떠올랐다.

고개를 끄덕인 유키가 시월이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이연이 보여줬던 모습을 다시금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여기에는 너 싫어하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소심하게 유키를 올려다보는 시월이.

맑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유키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유키의 미소를 보며 한참을 망설이던 시월이가 작은 앞발을 내밀었다.

시월이의 앞발이 유키가 내민 손 위에 올려졌다.

이연은 이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프로필 항목, 수정 안 해도 되겠네.’

* * *

녹화를 끝내고 숙소로 향하는 이들.

박도수 매니저가 멤버들에게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PD님이 방송에 내보낼 만한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고 엄청 기뻐하시더라. 너희 칭찬을 얼마나 많이 하던지, 듣는 내가 다 지칠 정도였다니까.”

이연도 PD와 같은 생각이었다.

녹화가 끝나고 멤버들은 PD한테 오늘 게스트분들은 만능 알바생들이었다면서 입에 침이 마를 때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PD님이 너희, 다음에 또 부르고 싶다고 하던데. 괜찮지?”

“물론이죠.”

이턴이 진행하는 ‘JOB것들’은 핫한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곳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하니엘의 인지도를 올리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녀들이 탄 차가 숙소 입구 앞에 정차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매니저님.”

“나보다 너희가 더 고생 많았지. 아, 그리고 연아. 혹시 괜찮으면 나하고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이연의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떠올랐다.

멤버들은 놔두고 이연만 따로 보자고 하는 박도수 매니저의 의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고. 너 섭외하고 싶다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거든.”

“저만요?”

“하니엘 멤버 한 명 더 포함해서 2명까지도 생각 중이라고 하던데. 그거 이전에 일단 너는 무조건 섭외하고 싶대.”

“무슨 프로그램인데요?”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대놓고 이연을 지목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순간 박도수 매니저가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다.

“‘근무 중 이상 무’라고, 군생활 체험하는 프로그램인데…… 어때?”

그가 왜 말하기를 껄끄러워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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