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35화
제38화. 만능 알바생(2)
오늘 일할 장소가 공개되자, 멤버들은 짧은 경험이었지만,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갈고닦았던 놀라는 리액션을 선보였다.
“바로 저기였어요?”
“세상에. 전혀 몰랐어요!”
안 그래도 큰 눈들이 더욱 커졌다.
이 중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유키였다.
“びっくりした……! 오, 오늘 애견 카페였구나. 저, 전혀 몰랐어요!”
너무 놀라서 일본어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이연은 유키의 이 반응이 약속된 게스트의 리액션과는 뭔가가 조금 다름을 느꼈다.
이연이 느낀 바에 의하면.
‘곤란해하는 거 같은데?’
혹시나 해서 무엇 때문에 그런 건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마이크가 착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바로 물어보기에는 좀 그랬다.
나중에 촬영 중간에 잠시 쉬는 타임이 있을 때.
그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애견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강아지들이 동시에 왈왈! 짖기 시작했다.
이턴과 게스트로 참가한 하니엘 멤버들은 갑작스럽게 몰려든 강아지들로 인해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반면, 당황을 넘어서 기겁을 하는 멤버도 있었다.
바로 유키였다.
“꺄악!”
비명을 지르면서 이연의 등 뒤로 숨어버리는 유키.
처음에 이연은 ‘이것도 내숭?’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으로 봐선, 내숭처럼 보이진 않았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유키의 이런 반응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발밑까지 다가온 강아지들의 귀여움에 집중했다.
“어머어머, 얘 귀여운 거 봐!”
“언니, 머리 한번 쓰다듬어 보세요. 더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 살짝 숙이는 거 너무 귀엽지 않아요?”
“그러게. 얘네 엄청 똑똑하다. 안녕, 얘들아?”
우미와 비아가 자세를 낮추고서 강아지들에게 친근감을 담아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녀들을 보면서 이턴이 물었다.
“평소에도 강아지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저희 집에는 지금도 반려견 키우고 있어요.”
“오, 그래요? 여기 경력자가 계셨네. 이연 씨하고 유키 씨는요?”
이연이 먼저 대답하기 전에 유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껏 미소를 지었다.
“저, 저도 굉장히 좋아해요!”
그러나 목소리의 떨림마저 감추진 못했다.
이 순간, 이연은 확신했다.
‘강아지 무서워하는 거 맞네.’
본격적인 녹화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난항이 예고되었다.
* * *
애견 카페 사장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촬영하기 전까지 잠깐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짧은 휴식 타임이 주어졌다.
오프닝 촬영부터 애견 카페에 들어서기까지.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녹화를 진행했던 멤버들은 잠깐 숨을 돌리는 동안 이턴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1화부터 선배님 혼자서 진행하셨죠?”
“어. 원래는 MC를 한 명 더 둬서 투톱 체제로 진행하려고 했었는데, 그쪽이 스케줄이 꼬여서 출연 못 하게 되었거든. 그래서 다른 출연자 구할 때까지 당분간은 나 혼자 진행하겠다고 했었는데, 그게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대단하세요, 선배님. 저희는 예능 같은 데 나가면 아직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한 다음에 겨우 몇 마디 꺼내고 그러는데…….”
“너희는 이제 막 활동하기 시작했으니까 당연한 거지.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런 건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테니까.”
오랫동안 연예계에서 활동했던 선배가 해주는 말이라 그런지 후배들 입장에선 신뢰가 갈 수밖에 없었다.
우미와 비아가 이턴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연은 유키 쪽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설마 너, 개 싫어하니?”
마이크가 꺼진 틈을 노려서 조용히 물었다.
말을 아끼던 유키는 이내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이연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개 좋아한다며.”
데뷔 무대를 가지기 전에 그녀들은 각각 멤버 프로필을 작성했었다.
여러 가지 항목 중에서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적는 칸이 있었다.
유키는 분명 ‘좋아하는 것’란에 이렇게 적었다.
[고양이, 개 등등등 귀여운 거라면 다 좋아요♡♡♡]
이에 대해 유키도 나름 할 말이 있었다.
“그렇다고 개 싫어한다고 하면…… 좀 그렇잖아요. 요즘 반려견 키우는 분들도 많이 계신대. 그래서 그냥 좋아한다고 썼었죠.”
조금이라도 팬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그거 때문에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박도수 매니저가 당연히 유키의 이러한 속사정을 알 리 없었다.
그래서 어디서 진행될지 제작진한테 연락을 받았을 때, ‘문제없습니다’라고 대답했었다.
만약에 유키가 개를 싫어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유키가 아니라 다른 멤버를 출연시켰을 것이다.
그렇다고 유키가 먼저 매니저한테 저는 촬영 힘들 거 같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JOB것들은 그날 어떤 일을 할지 이턴뿐만 아니라 게스트들한테도 철저히 비밀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촬영 당일이 되어서야 알 수 있다.
유키가 미리 사정을 말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일이 꼬여 버린 탓에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연이 보기에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
방금처럼 개를 무서워하는 유키가 웃으면서 촬영을 이어간다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유키는 해보겠다고 나섰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견뎌볼게요. 저, 내숭 하나만큼은 자신 있으니까요.”
유키의 내숭이 이럴 때 큰 도움이 될 줄은 이연도 몰랐다.
본인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그렇다고 이연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기에도 애매했다.
그리고 혹시 모르지 않는가.
오늘의 촬영으로 인해 유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개 공포증이 어느 정도 사라질 수도 있다.
도전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단지 걱정되는 게 있다면.
“네 본래 모습 안 튀어나오게 조심해. 욕은 절대로 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 저만 믿어요.”
믿으라고는 하는데.
어째 영 불안하다.
* * *
짧은 휴식 시간을 끝으로 JOB것들, 애견 카페 편 촬영이 다시 이어졌다.
출연진은 잠시 벗어뒀던 마이크를 다시 차고서 애견 카페 사장과 인터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이턴이 진행자답게 큰 목소리로 소개 멘트를 읊었다.
“곽지연 사장님을 모셔보겠습니다!”
작은 포메라니안 한 마리를 안고서 등장한 30대 초반의 여성이 수줍어하는 미소를 띠면서 출연진에게 연신 머리를 숙였다.
이턴이 여사장을 향해 물었다.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세요? 혹시 촬영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그것도 그건데…… 실은 제가 하니엘분들을 너무 좋아해서요. 근데 이렇게 실물로 뵙게 되니까 너무……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한 손은 포메라니안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얼굴에 바짝 올라온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열심히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4세대를 대표하는 걸크러시 라인업에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물이 바로 권이연이다.
그래서인지 하니엘은 여성 팬의 비율이 적지 않았다.
곽지연 사장 역시 최애가 이연이라고 고백했다.
“이연 씨 덕분에 하니엘에 입덕하게 되었거든요. 멤버분들 한 명 한 명이 다 너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이턴이 장난스러운 어조로 포메라니안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 애기보다도요?”
“어느 한 쪽이라기보다는 그냥 둘 다 너무 좋아요.”
자신들을 좋아해 주는 곽지연 사장을 향해 멤버들 역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서로 자리에 앉은 다음에야 겨우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게가 상당히 큰데. 여기 애견 카페는 언제 오픈하신 건가요?”
“5년 전에요. 원래는 가게를 차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계기가 있었거든요.”
“계기요?”
“네. 제가 예전부터 유기견 구조 모임에서 활동했었거든요. 원래부터 강아지를 좋아하기도 했고. 그래서 갈 곳 없는 애들을 입양하고 하다 보니까 나중에 가선 키울 공간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가게를 내게 되었어요.”
“아, 원래는 사업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애들 마음껏 뛰어놀고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원래 목적이었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애견 카페까지 차리게 된 거예요.”
이곳은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일궈낸 결과물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말하는 곽지연 사장을 보면서 이연은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갚아야 할 대출이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곽지연 사장은 가게를 차린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턴도 곽지연 사장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
“방송 나가면, 사람들이 이곳을 더 많이 찾아와준다면 좋겠네요. 우리 사장님, 돈 많이 벌 수 있도록이요.”
“저도 그러면 좋겠어요. 그래도…… 많이 안 오셔도 괜찮아요. 이렇게 우리 애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행복하거든요.”
곽지연 사장을 보니, 이연은 예전에 같이 무대에 올랐던 동료 음유시인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쭉 키워온 반려동물을 데리고 늘 현장에 왔었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연은 반려동물과 깊은 인연이 없었다. 직접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그래서 그때의 동료 음유시인이, 지금의 곽지연 사장이 말하는 행복이라는 게 어떤 건지 완벽하게 공감하진 못했다.
어쩌면 이걸 알아내는 게 오늘 촬영의 목표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유키는 친해지는 것만으로도 대성공이다.
곽지연 사장 본인과 애견 카페에 대한 짧은 소개를 마치고.
이턴이 할 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했다.
“오늘 저희가 해야 하는 게 어떤 건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마침 애들 밥 먹을 시간이거든요. 우선은 사료부터 준비해 주셔야 해요. 아, 애들마다 먹는 게 따로 정해져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먹여야 한다는 거 잊으시면 안 돼요.”
곽지연 사장이 아기처럼 안겨 있던 작은 포메라니안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친구들을 향해 쫑쫑쫑 뛰어가는 포메라니안의 모습에 우미와 비아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곽지연 사장의 설명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로 그룹을 나눠서 각자 먹일 사료들을 직접 분배해 주는 곽지연 사장.
이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그릇이 있었다.
우미가 한눈에 봐도 영양가가 넘쳐 보이는 사료 그릇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특식인가요?”
“네. 며칠 전에 폐공장에서 구조된 유기견들한테 먹이려고요. 영양분이 많이 부족한 거 같아서 더 챙겨주고 있어요.”
뽀송뽀송하고 관리가 잘되어 있다는 느낌과는 다르게, 아직은 야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우라를 풍기는 강아지들이 몇몇 있었다.
“유기견들은 좀 더 조심스럽게 대해주셔야 해요. 그러면 이건…… 유키 씨한테 부탁드려도 될까요?”
유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요?”
“네. 유키 씨가 잘하실 거 같아서요.”
이연은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곽지연 사장이 개를 보는 눈은 정확한데.
‘사람 보는 눈은 많이 부족하시네.’
많고 많은 출연자 중에서 하필 꽝을 골라 버렸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