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32화
제37화. 첫 예능(3)
완벽하다고 보이는 이연에게도 약점은 존재한다.
그녀는 벌레를 싫어한다.
물론 벌레를 좋아하는 젊은 여자들은 거의 없을 테지만, 이연은 특히나 더 벌레를 혐오하는 편이었다.
다리가 4개 이상 달린 생명체는 전부 싫어하는 편이었다.
이건 여자로 성별이 바뀌면서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이 세계로 넘어오기 이전부터 간직해 왔던 약점이었다.
한편, 멤버들은 김운혁의 극단적인 예시를 듣고서 몸서리를 치는 모습을 보였다.
“거, 거짓말이죠?”
“거짓말일지 아닐지는 여러분들이 직접 ‘만져보고’ 판단하시면 됩니다.”
유독 만져보라는 글자를 강조해서 말하는 김운혁.
이 순간만큼은 그가 악마처럼 보였다.
이연은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아이쇼에서 진행했던 내용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맞히는 코너는 오늘부터 처음 도입되었다.
데이터베이스가 없다. 이게 또 한 번 이연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설마 진짜로 벌레 같은 걸 집어넣었겠어?’
그래도 한국 예능은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나름 순한 맛에 속한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여자 아이돌들을 대상으로 두꺼비나 살아 있는 생물 같은 걸 실제로 넣어서 기겁하게 만드는 걸 방송으로 심심치 않게 내보내곤 했다.
하지만 한국 예능도 가끔씩 그런 경우가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방심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첫 번째는 이연 양부터 하실 건가요?”
유미의 물음에 이연은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맨 마지막에 하겠습니다…….”
멤버들은 이연이 뒤로 빼는 모습을 난생처음 봤다.
“연이 언니, 진짜로?”
“난 연이가 맨 처음에 할 줄 알았는데.”
“마, 마지막이 가장 어렵게 출제될 수도 있으니까. 아까 비아가 수도 문제 맞힐 때에도 그랬고.”
말을 살짝 더듬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합리적인 근거를 대면서 멤버들을 잘 설득해 냈다.
멤버들은 이연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유에서 스피드 퀴즈 때와 달리, 이번에는 역순으로 순서가 꾸려지게 되었다.
“맨 먼저 비아 양부터 도전하시는 거 맞죠?”
“네!”
“1분 안에 맞히시면 됩니다. 손을 집어넣기 전에 ‘도전!’이라고 외치면, 그때부터 스타트니까 명심하시고요.”
알겠다고 답하면서 힘 있게 외쳤다.
“도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상자 안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비아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머리 쓰는 건 무서워하지만, 이런 건 딱히 무서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종현이 이런 비아를 보면서 말했다.
“아까와는 다른 모습, 멋진데요?”
사실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비아도 미지의 상자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스피드 퀴즈보다는 나은 데다가 자기 때문에 점수 획득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이 때문에 이번만큼은 용기를 내기로 한 거였다.
바닥으로 손을 더듬던 비아가 잠시 뒤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복슬복슬.
손에 만져지는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이거, 인형이에요?”
앞으로 돌아가서 내용물을 확인한 김운혁이 ‘오!’ 하는 반응을 보였다.
“거의 맞혔네요.”
“정답! 강아지 인형?”
멤버들의 긴장감을 이끌어내기 위함인지, 김운혁이 잠시 뜸을 들였다.
“정답은…… 강아지 인형! 맞습니다!”
“인형 맞죠?”
“네. 직접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카메라와 마주하는 면은 투명하게 뚫려 있었다.
앞으로 돌아간 비아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안에 들어 있던 강아지 인형을 들고서 언니들에게 자신의 활약상을 어필하는 비아.
한편, 이연은 박수를 쳐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방송국 놈들이라고 불려도 아이돌을 상대로 벌레 같은 걸 넣어두진 않겠지.’
물론 확신은 아니다.
거의 이연의 단독 희망에 가까운 말이라고 보는 편이 좋았다.
다음, 리샤의 차례.
이번에는 퀴즈에 약한 멤버들이 오히려 이번 코너에서 강세를 보이듯 리샤도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스타트 신호와 함께 손을 불쑥 집어넣은 리샤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정답, 오이!”
“네, 정답입니다!”
1분이 채 걸리지 않은 시간에 순식간에 2점을 따낸 하니엘 팀.
스피드 퀴즈 때와 달리 시작이 매우 순조롭다.
* * *
유키, 시우의 뒤를 이어서 여솜, 우미까지 모두 순서를 마무리 지었다.
중간에 몇몇 멤버들이 아쉽게 정답을 맞히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전 스피드 퀴즈 때와는 다르게 꽤나 쏠쏠하게 점수 벌이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제 이연이 마지막 타자에 나섰다.
“언니, 파이팅!”
“연이라면 무조건 맞히겠지.”
“맞아. 우리 리더인데.”
여전히 멤버들은 이연을 향해 강한 믿음과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여태껏 이연은 실패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녀들의 이런 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거였다.
이연도 나름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저 상자에 벌레는 없어.’
그녀의 차례가 되기 전까지, 이전 멤버들이 알아맞힌 상자 안의 물건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형, 오이, 슬라임, 제기 등등.
무생물만 나왔었다.
그래서 이연은 더욱 자신 있었다.
괜히 쫄았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연 양, 준비되셨나요?”
“네! 바로 도전하겠습니다!”
기운차게 답하면서 손을 안쪽으로 쑥 집어넣었다.
공중으로 손을 뻗어봤지만,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바닥에 붙어 있나?’
납작한 물건일 수도 있다.
손을 아래로 향한 뒤에 바닥을 쓸면서 점점 가운데로 향했다.
그 순간, 이연의 손 끝에 가느다란 무언가가 잡혔다.
두툼한 실 같기도 하고.
그것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
순간 이연은 기세 좋게 넣었던 팔을 동시에 꺼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사색으로 변했다.
뒤에서 멤버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언니, 왜 그래?”
“뭐가 들어 있길래 그러는 거야?”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멤버들은 이연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 처음 목격했다.
김운혁이 상자 안에 뭐가 담겨 있는지 확인한 순간.
“야, 이거. 맞히기 어렵겠는데요? 난이도로 따지면 최상입니다, 최상.”
유미가 그의 말에 궁금증을 드러냈다.
“뭔데요, 운혁 오빠…… 꺄악!”
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유미가 기겁을 했다.
그녀의 반응을 본 순간, 이연은 직감했다.
자신의 추측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을.
처음에 이연은 손끝에 닿은 것의 정체가 약간 두툼하고 거친 실 같은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만져보니, 끝이 꽤 뾰족했다.
게다가 딱딱한 몸통 같은 것이 존재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마자 이연은 방어 본능이 되살아나 일단 팔부터 빼고 본 거였다.
틀림없다.
“이거, 설마 버, 벌레예요?”
좀처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연.
그녀의 동공이 한창 흔들릴 때, 김운혁이 ‘쓰읍’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확하게 맞혀주셔야 합니다. 이제 30초밖에 남지 않았어요.”
화들짝 놀라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 시간이 반이 흘러 버렸다.
혹시 몰라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슬쩍.
이번에는 머리 부분이 닿았는지, 이연의 입에서 ‘아악!’ 하는 비명이 튀어나왔다.
멤버들은 상자 안에 든 무언가에 놀라기보다는 이연의 반응에 더 놀랐다.
“연이 언니가 비명을 다 지르네.”
“나, 처음 봤어.”
“연이도 무서워하는 게 있긴 하구나.”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
“아, 진짜, 어떻게 해…….”
이연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려 했다.
점수를 반드시 따고 싶다는 욕심과 동시에 벌레에 대한 두려움이 충돌해서 평소의 냉철한 이연답지 않게 감정적인 모습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그렇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어쩔 수 없지. 이것만은 꺼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이연은 치트키를 쓰기로 했다.
바로 마법이다.
마나를 끌어 모아서 자신의 시력을 강화시켰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투시 능력을 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법은 시전자의 정신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자신이 방금 만진 게 정말 벌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흐릿하게 형체만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이연은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벌레 맞잖아요!!!”
억울함을 호소하듯 외쳤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김운혁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맞히신 걸로 하겠습니다. 사실 정답은…….”
이연과 멤버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김운혁이 상자를 돌려줬다.
그 모습에 이번에는 멤버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 소란은 이내 빠른 속도로 잦아들었다.
“저거, 죽은 거야?”
“잠깐만요.”
시우가 먼저 용기를 냈다.
마치 겁 많은 새끼 고양이처럼 소심하게 손으로 벌레를 툭툭 건드렸다.
“이거, 장난감이에요.”
“장난…… 감?”
“네. 진짜 벌레 아니에요.”
시우가 직접 손으로 집어서 그것을 들어 보였다.
그것조차도 이연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김운혁이 정확한 정답을 알려줬다.
“장난감 벌레가 정답이었는데, 그래도 이연 양의 반응이 굉장히 귀여웠으니까. 정답으로 인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언니, 해냈어!”
이연의 성공에 멤버들이 크게 기뻐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인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반응에 킥킥 웃은 리샤가 이연을 뒤에서 안아주면서 위로해 줬다.
“우리 연이, 많이 무서웠쪄?”
“……저리 가. 확 때리기 전에.”
정답을 맞힌 것까지는 좋은데. 이 민망함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 * *
다른 코너들을 진행하면서 하니엘 팀이 획득한 총 점수는 10점이 되었다.
아이비제이가 세운 12점의 기록을 넘어서려면, 아직 점수가 부족한 상황.
단독 선두에 필요한 점수는 최소 3점. 13점 이상을 기록해야 아이비제이가 아닌 하니엘이 1위를 독점할 수 있다.
멤버들은 음악방송 프로그램에선 졌지만, 여기서는 반드시 이기자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었다.
눈빛을 반짝이는 그녀들에게 드디어 마지막 테스트가 주어졌다.
“여러분들의 순발력과 단합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안무 테스트!”
이건 이연과 멤버들도 잘 아는 테스트다.
이전에 출연했던 아이돌 그룹들도 이 테스트를 받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여러분들의 안무 중간중간에 본인들의 노래가 아니라 아예 다른 노래를 틀어드릴 겁니다. 여기에 맞춰서 헷갈리지 않고 무사히 완곡을 할 수 있을지, 저희가 평가를 해서 점수를 매길 겁니다. 총 30점 만점에서 25점 이상이면 합격! 그 자리에서 즉시 5점을 드립니다.”
10점에서 5점이 추가되면, 무려 15점이다.
아이비제이를 한창 따돌리고도 남을 점수라고 할 수 있다.
테스트를 시작하기 전에 이연이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무조건 성공하는 거야. 알았지?”
“응!”
“하니엘, 파이팅!”
“파이팅!”
음악방송 촬영 때보다도 더 투지가 넘쳐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