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28화 (128/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28화

제36화. 음방 대결(3)

‘하니엘’이라고 적혀 있는 대기실을 찾은 멤버들은 도착하자마자 곧장 리허설 준비부터 서두르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가수팀들이 무대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리허설 과정도 상당히 복잡하다.

이번에 하니엘이 받은 순서는 끝에서 두 번째. 마지막 하이라이트 무대는 아이비제이가 맡게 되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약간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이비제이하고 앨범 활동 시기가 비슷해서, 아마 웬만해서는 하이라이트 무대는 아이비제이 쪽에 할당해 주려고 할 거야. 그래도 음방 PD들이 너희한테도 좋은 순서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니까 너무 실망하진 말고. 알았지?”

“네!”

“저희는 괜찮아요, 매니저님.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요.”

순서가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팬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무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외적인 요소에 의지해서는 롱런할 수 있는 가수가 되기 힘들다는 걸 그녀들도 잘 알고 있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경험 덕분일까. 한층 좋아진 멘탈을 자랑하는 그녀들의 모습에 박도수 매니저 역시 흐뭇해했다.

최공예가 이런 박도수 매니저의 등을 가볍게 찰싹 때리면서 말했다.

“애들 의상 갈아입어야 하니까 매니저님은 잠깐 비켜주세요.”

“벌써? 알았어. 그럼 조금 있다가 보자.”

대기실에서 유일한 남자인 박도수가 자리를 비켜주고 나서야 무대 의상 갈아입기가 시작되었다.

5일 전에 있었던 데뷔 쇼케이스 때와는 다른 의상으로 갈아입은 그녀들.

같은 무대라 할지라도 의상만큼은 다르게 꾸며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의상비만 하더라도 몇천 단위가 기본으로 나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은 앨범 활동 기간을 오래 잡지 못한다.

좀 여력이 되는 그룹은 8주까지도 가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다지 효율성이 없기에 보통은 4주 내지 6주 정도 활동을 이어간다.

하니엘의 경우에는 4주, 딱 한 달로 잡고 있었다.

SSS가 끝나자마자 급하게 준비한 것도 있고. 그래서 굳이 길게 앨범 활동을 잡진 않았다.

가장 먼저 의상을 갈아입고 나온 이연은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리면서 자신의 무대 의상을 살폈다.

짧은 팬츠와 가죽 자켓, 그리고 힐까지.

이것이 오늘, 이연의 무대 의상 테마였다.

여기에 하나 더.

“이연 씨. 잠시만 실례할게요.”

스타일리스트가 이연의 긴 머리카락을 한군데로 묶었다.

이연은 무대를 소화할 때 머리를 거의 묶은 적이 없었다.

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루웰은 필요에 따라 일부러 머리를 길렀던 적도 꽤 된다.

실제로 루웰이 단명했을 때에도 당시에는 장발 상태였다.

긴 머리에 대한 불편함은 다른 남자들에 비해 많이 없는 편이었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로 안무를 소화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의상이 의상인 만큼 머리를 묶는 게 더 어울리지 않냐는 의견이 많아서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이연의 가느다란 목덜미가 스타일리스트의 손길에 의해 그대로 드러났다.

“어때요, 이연 씨? 좀 더 위로 올려서 묶을까요?”

스타일리스트의 물음에 이연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지금 이 정도가 딱 좋아요.”

움직이기도 편하고.

나름 괜찮다.

다른 멤버들도 이연과 마찬가지로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있었다.

기존의 머리 색과는 다른, 눈에 확 띄는 색깔의 브릿지를 넣어서 포인트를 준다든지. 이런 식으로 멤버들끼리 이미지가 겹치지 않도록 스타일링에 집중했다.

리허설이 시작되기 전에 그녀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똑똑똑.

밖에서 박도수 매니저가 대기실 안쪽 상황에 대해 물었다.

“옷 다 갈아입었어?”

“네. 들어오셔도 돼요.”

최 코디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박도수 매니저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박도수 혼자만 온 게 아니었다.

홍류현 실장도 함께 왔다.

“어머, 안녕하세요! 실장님!”

“실장님도 오셨어요?”

“어. 내가 애들 데리고 다른 가수팀들한테 인사시켜 주려고.”

홍류현 실장도 지금의 박도수처럼 한때 매니저로 일하면서 현장에서 꽤 굴렀던 경험이 있다.

그렇다 보니 웬만한 가수팀은 다 알고 지낼 정도였다.

“도수보다는 내가 있어야 이야기가 더 잘 진행될 거 같고. 그리고 짬이 좀 되는 사람이 붙어 있으면 다른 선배들이 우리 애들한테 대놓고 꼽 주는 것도 못 할 테니까. 안 그래?”

홍류현 실장의 말에 멤버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연예계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반대로 말하면, 마냥 착한 사람들만 있다는 건 아니란 뜻이다.

“원래는 오 대표님이 직접 오시겠다는 걸 내가 말리고 말린 거야.”

“그건 잘하신 거 같아요.”

멤버들이 홍류현 실장에게 나이스 플레이였음을 강조했다.

하니엘을 향한 오 대표의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녀들도 잘 안다.

그러나 대표가 멤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를 시키는 인사를 받는 쪽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LC 엔터테인먼트가 작은 중소 기획사도 아니고.

연예 기획사 중 탑 5위 안에 드는 대형 업체인데, 그곳의 대표가 왔다고 하면 아무래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준비 다 끝났으면 한 바퀴 돌러 가자. 맞다, 출발하기 전에 너희 거 앨범도 가져가고. 원래 선배들하고 인사 나누면서 서로 앨범 교환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거든.”

“잠시만요. 앨범 제가 챙길게요.”

시우가 막내답게 먼저 행동에 나섰다.

“그런데 몇 장 챙겨야 되나요?”

“오늘 참가하는 팀 인원수에 맞게? 멤버들한테 한 명씩 다 줄 거면 100장 넘게 가지고 다녀야 되고.”

그래도 모자를 수도 있다.

한 그룹당 10명이 넘는 곳도 있으니까 말이다.

루웰이 있던 세계에서는 딱히 이런 선후배 문화는 없었다.

그래서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무대 올라가기 전부터 바쁘네.’

새벽부터 지금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 * *

오늘 음방에 참가하는 모든 팀들에게 한 번씩 다 인사를 돌리기 위해서 하니엘 멤버들은 홍 실장과 함께 대기실 여기저기를 찾아다녔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보이그룹, 원스탭의 대기실이었다.

“안녕하세요.”

“엇? 아, 안녕하세요!”

생각 없이 누워 있거나, 자거나,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던 원스탭 멤버들이 하니엘을 보자마자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 실장이 원스탭 멤버들을 쭉 훑어보면서 물었다.

“종현이하고 지성이는?”

“화장실 갔어요. 그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매니저님.”

“나 매니저 아니야. 하니엘 담당 매니저는 이 친구고.”

박도수가 한 차례 고개를 숙이면서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여기 우리 애들. 인사해. 이쪽은 원스탭이라고, 너희보다 3년 선배야.”

“안녕하세요! 하니엘입니다!”

신인 특유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그녀들의 인사에 원스탭 멤버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내심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스탭입니다. 오늘 첫 음방 무대죠? 축하드려요.”

“SSS 열심히 챙겨 봤는데. 연예인 보는 기분이네요.”

“얼마 전에 데뷔 무대도 봤습니다. 노래 좋더라고요. 음원 순위도 높던데요?”

홍류현 실장이 원스탭 멤버들의 칭찬에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말도 마라. 아이비제이하고 데뷔시기 겹쳐서 초반에 우리가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데.”

“안 그래도 저희도 그 소식 들었을 때 ‘와, 이거. LC가 골치 좀 아프겠는데?’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래도 시기가 겹친 것치고는 나름 선방 중이었다.

데뷔한 지 3일 만에 일일 음원 순위 10위 내로 진입했으니까 말이다.

약간 인지도가 떨어지는 음원 서비스 플랫폼에서는 아이비제이보다 하니엘이 순위가 더 높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3대 메이저라 불리는 음원 플랫폼인 블루베리, 피링, MStage에서는 아이비제이가 하니엘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LC 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오늘부터 앨범 활동 들어갔으니까 앞으로 우리 애들하고 잘 지내줘.”

“네, 물론이죠.”

“아, 여기. 저희 앨범입니다.”

원스탭 쪽에서 앨범 이야기가 먼저 나오자, 시우가 부랴부랴 챙겨온 하니엘 미니 앨범을 꺼냈다.

“저희도 여기…….”

가수에게는 앨범이 곧 명함이다.

서로의 앨범을 교환함으로 인해 첫인사를 마무리 지은 하니엘 멤버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인사 투어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 * *

이다음으로 인사를 하러 간 곳은 하니엘과 딱 한 달 차이로 먼저 데뷔하게 된 걸 그룹, 원더존이다.

“둘, 셋! 안녕하세요, 원더존입니다!”

이에 질세라 하니엘도 단체 인사에 돌입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천사, 하니엘입니다!”

서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두 그룹이 모여 있으니 상큼함이 배가 되는 기분이었다.

홍류현 실장이 평소에 친분이 있던 원더존 매니저에게 물었다.

“원더존은 오늘이 이번 앨범 활동 마지막 방송이라고 했지?”

“네. 막방입니다.”

“딱 한 달 채웠구나.”

“그런 셈이죠.”

원더존 담당 매니저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말만 못 할 뿐이지, 그동안 몸 고생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의미가 웃음소리에 가득 담겨 있었다.

신인이고 첫 데뷔니까. 어쩔 수가 없다.

“다음에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으면 좋겠네.”

“어휴.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홍 실장님. 아이비제이처럼 하니엘도 컴백 시기 안 겹치도록 피하고 싶은 그룹이니까요.”

“에이. 왜 그래. 원더존도 이번 음원 성적 좋았잖아.”

“그래도 하니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매니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각 그룹의 멤버들은 서로 어색하게 자신들의 음반을 주고받았다.

원더존의 리더, 채경이 이연에게 먼저 수줍게 말을 붙였다.

“이연 씨 무대, 몇 번씩 돌려보고 그랬었는데. 이렇게 같은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저도 영광입니다, 선배님.”

“서, 선배님이라니…… 어차피 한 달 차이밖에 안 나는데, 너무 격식 차리지 않으셔도 돼요.”

“한 달이라 할지라도 먼저 데뷔하신 선배님인 건 확실하니까요.”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에게 잘 말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짧게 끄덕여줬다.

처음 인사하러 온 자리인데, 벌써부터 선배하고 맞먹으려 하면 큰일이다.

첫 음방 무대에서는 겸손이 생명이다.

이걸 잊어선 안 된다.

원더존의 대기실에서 나오자마자 하니엘 멤버들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너무 돌아다녀서 그런지 발 아파 죽겠어요.”

“저도요.”

“무대 서기도 전에 벌써 지치겠어요.”

선배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힐을 신고 여기저기 걸음을 옮겨야 하는 피곤함까지 누적되니 볼멘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홍류현 실장이 그녀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이제 마지막 한 팀 남았으니까 조금만 참아.”

멤버들은 홍 실장이 언급한 마지막 팀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근처 대기실로 향한 일행들.

안에 어떤 가수팀이 머무르고 있는지 알리는 팻말이 옆에 붙어 있었다.

[아이비제이]

4세대 걸 그룹들의 최종보스를 만나러 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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