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27화 (127/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27화

제36화. 음방 대결(2)

데뷔 무대가 끝나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멤버들 중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뜬 사람은 리더, 이연이었다.

마음 같아선 바로 헬스장에 가서 가볍게 땀이라도 흘리고 오고 싶었지만.

오늘은 오전에 라디오 녹음, 그리고 오후에 토크 프로그램 녹화가 잡혀 있었기에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앨범 활동을 하는 동안 정신없이 바쁠 거라고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 각오를 다지긴 했었는데.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긴 해.’

이연은 넓은 화이트보드 판 전체가 꽉 찰 정도로 빼곡하게 적혀 있는 하니엘의 스케줄표를 보면서 짧게 혀를 찼다.

한 달 치 스케줄도 아니고. 일주일 스케줄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일정이 많이 잡혀 있었다.

‘왜 아이돌들이 쉬는 기간을 오래 잡는지 알 거 같아.’

회사에서는 열심히 아이돌들을 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홍보하는 만큼 돈이 되니까.

게다가 하니엘은 회사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밀어주고 있는 그룹이다 보니 일정이 하드 난이도인 건 당연했다.

이연과 비아, 리샤. 이렇게 셋은 민주린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하기로 했다.

여솜을 필두로 우미, 시우, 유키는 다른 프로그램 촬영이 예약되어 있었다.

이렇게 팀을 나눠서 스케줄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다는 게 그룹의 장점이다.

2인실에서 아직도 나란히 단잠에 취해 있는 비아와 리샤.

깨우는 건 이연의 몫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이연은 가장 먼저 조심해야 할 리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역시나. 오늘도 그녀는 알몸 상태였다.

“내가 진짜 못 살아.”

바닥에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올려 리샤의 몸에 돌돌돌 감아줬다.

그 과정에서 리샤가 겨우 눈을 떴다.

“……연이구나. 좋은 아침…….”

“네가 옷만 입고 잤었어도 더 좋은 아침이 될 수 있었을 거야.”

아직도 이연은 리샤의 알몸 취침 이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겨우 몸을 일으킨 리샤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너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이렇게 자봐. 맨살에 닿는 이불 감촉이 얼마나 좋은데.”

“그거 말고 또 장점이 뭐가 있는데.”

“음…… 몸도 마음도 개방적으로 변한다는 것? 뭔가 자연으로 돌아갈 거 같은 느낌도 들고.”

“돌아가지 마, 제발 안 그래도 스케줄 많은데 어딜 가려고.”

태클 걸어야 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주섬주섬. 이불을 모으고 모아서 리샤의 몸에 옷처럼 걸쳐줬다.

뒤이어 2층으로 올라간 이연은 반쯤 감긴 눈으로 자신과 눈이 마주친 비아에게 말했다.

“얼른 일어나서 씻어. 30분 뒤에 매니저님 오신다니까.”

“아…… 피곤해…….”

피곤함을 호소해도 어쩔 수 없다.

비아와 리샤를 먼저 깨운 이연이 그제야 한숨을 돌릴 때, 우미와 여솜도 막 일어나서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어머, 연아. 일찍 일어났네?”

“우리가 언니 쪽보다 촬영 시간이 빨라서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민주린 선배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지? 우리 대신에 어제 너무 고생하셨다고 안부 전해줘.”

“응, 그렇게 할게.”

따지고 보면 데뷔 이후 민주린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하니엘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민주린이 하니엘의 데뷔 쇼케이스 MC를 맡아줬으니까.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하니엘도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한 거였다.

가는 게 있고 오는 게 있어야 서로 간의 사이가 돈독해지는 법이니까.

라디오 팀의 준비가 거의 다 끝나갈 때쯤.

타이밍에 맞춰서 박도수 매니저가 숙소에 도착했다.

“여솜이, 너희 쪽은 다른 매니저가 와서 픽업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한…… 40분? 그 정도 걸릴 거라고 하더라.”

나눠서 움직여야 하다 보니 매니저도 추가로 회사에서 지원해 줘야 했다.

라디오 팀은 박도수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이연을 제외한 두 사람은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 눈을 붙이고 있었다.

반면, 이연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박도수 매니저가 백미러로 슬쩍 이연의 상태를 확인했다.

“고민거리라도 있어? 있다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도 돼.”

멤버들의 고민 상담 역할도 매니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하니엘의 리더로서 다른 멤버들보다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 권이연.

그렇다 보니 당연히 고민거리 한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라고 박도수 매니저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그가 예상했던 형태와 많이 달랐다.

“그냥 멍 때리고 있었어요.”

“아…… 그, 그래?”

누가 봐도 완벽한 그녀지만.

박도수 매니저는 가끔씩 이연에 대해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 * *

민주린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뮤직 스탠바이’에 출연하게 된 이연과 하니엘 소수 멤버들.

맞은편에 앉은 멤버들을 보면서 민주린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제 보고 오늘 이렇게 또 보게 되네요. 데뷔하고 나니까 소감이 어떠세요? 이연 양이 말해볼까요?”

“오랫동안 바랐던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더라고요. 그리고 선배님께서 직접 진행을 맡아주셔서 더 좋았고요.”

어제 고생한 선배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아 양은 아직 고등학생이죠?”

“네, 맞아요.”

“어때요? 학교 친구들이 막 신기해하지 않던가요?”

“이미 SSS 때부터 제가 티비에 나오는 건 많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막 신기해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축하한다는 연락이 많이 와서 기쁘더라고요.”

“리샤 양은 어제 영어로도 소감을 전하셨던데. 저는 리샤 양이 영어 쓰는 거, 곡 중에 영어 가사 들어가 있을 때 말고는 처음 본 거 같아요. 오랜만에 리샤 양이 ‘아, 미국인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너무 오랜만에 영어를 사용해 봐서 익숙하지가 않았어요. 이러다가 집에 가면 엄마, 아빠하고 대화도 못 나누는 거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다니까요.”

만약에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그것만큼 웃지 못할 일도 없을 것이다.

추가로 SSS 때와 데뷔 이후 마음가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앞으로의 일정은 어떤 식으로 잡혀 있는지 등등. 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연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저희, 첫 음악 프로그램 촬영 있으니까 여러 팬분들이 와주셔서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평소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간 목소리 톤으로 말하는 이연.

비아가 알려주는 애교 있게 말하는 법칙 중 하나를 적용한 결과였다.

라디오 촬영이 모두 끝나고, 민주린이 멤버들을 한 번씩 안아주면서 말했다.

“촬영 고생했어. 어제 막 데뷔해서 많이 피곤할 텐데. 게다가 우리 프로그램이 아침에 일정이 잡혀 있어서…… 괜히 오라고 한 거 같아서 미안해.”

“아니에요, 선배님.”

“저희하고 선배님 사이잖아요. 언제든지 불러주시면 오늘처럼 슝! 하고 달려올게요.”

후배들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민주린은 너무나도 고마웠다.

“음방 녹화할 때 선배 가수팀한테 인사 다니는 거 잊지 말고. 항상 예의 바른 모습 보여야 해. 알았지?”

“네, 선배님.”

마치 어미 새처럼 아기 새들을 챙기려는 민주린의 모습에 지켜보는 스태프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 * *

데뷔하고 5일째를 맞이하는 날.

첫 음악방송 출연을 위해 멤버들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인터넷에서는 벌써부터 하니엘과 아이비제이의 격돌을 두고 엄청난 공방이 이어지고 있었다.

4세대 걸 그룹 챔피언 자리를 줄곧 유지해 온 아이비제이냐.

아니면 역대급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하니엘의 우세냐.

서로 다른 팬덤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오늘의 음악방송은 이 논쟁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하니엘 멤버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카메라의 찰칵 소리가 무수히 이어졌다.

음악방송 출근길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이렇게 많은 팬들과 기자들이 몰린 거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멤버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세상에. 저렇게 많이 오셨다고?”

“매니저님! 아까 했던 이야기랑 다르잖아요! 얼마 안 모였다면서요!”

시우가 보기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큼 많이 당황했다는 것을 뜻했다.

박도수 매니저가 나름 억울함을 호소했다.

“나도 문자로만 전달받아서 정확한 규모는 잘 몰랐다고. 아무튼 사람들 기다리니까 얼른 가봐. 짐들은 나하고 최 코디한테 맡기고.”

“그래, 얘들아. 최대한 침착하게, 자신감 있게 갔다 와. 알았지?”

최공예 코디도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힘을 합쳐서 멤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줬다.

누가 먼저 걸음을 뗄지 망설이는 사이.

이연이 앞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역시 리더답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당찬 걸음을 내세우면서 앞으로 나아가던 이연은 중간에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녀의 행동에 따라 다른 멤버들도 손을 흔들어 보였다.

기자들이 바닥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기에 서시면 됩니다.”

“일렬로 최대한 밀착해서 붙어주세요.”

“네, 좋습니다!”

이연을 중심으로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사방에서 그녀들을 향한 관심이 쏟아졌다.

연예인이라면 당연히 겪는 일들이지만, 하니엘의 경우에는 이제 막 가수 생활에 첫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어디에 시선을 둬야 좋을지 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기자들이 알아서 어디로 시선 처리를 지시해 줬다.

“오른쪽 봐주세요!”

“손가락 하트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번에는 왼쪽 봐주시고요!”

“멤버분들, 좀 더 가까이 밀착해 주세요.”

이연을 중심으로 서 있던 여솜과 우미가 그녀의 몸에 바짝 다가갔다.

스킨십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연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포인트 안무 자세 한 번씩만 취해주실 수 있을까요?”

멤버들은 옆에 있는 멤버들을 끌어안는 모습을 취하면서 ‘HUG’의 포인트 안무를 선보였다.

이 자세를 취할 때만큼은 기자들보다 팬들이 더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짧은 출근길 촬영을 마치고 방송국으로 향하려고 할 때쯤.

하니엘 못지않은 환호성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저 멀리 차에서 내리는 아이비제이의 모습이 보였다.

하니엘보다 두 명 더 많은, 아홉 명의 멤버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침착하게 옷매무시부터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본 하니엘 멤버들은 어느새 존경의 눈빛으로 그녀들을 응시했다.

“역시 선배님들은 다르시구나.”

“엄청 침착하시네.”

“우리는 아까 당황해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고 그랬었는데.”

아이비제이는 출근길 촬영 현장에서도 엄청난 인파를 몰고 다녔다.

리더 혜원이 중간에 이연과 시선이 마주친 모양인지 먼저 그녀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냈다.

심사 위원과 연습생의 위치가 아닌 라이벌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된 그녀들.

이연은 방송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전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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