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23화
제34화. 고백(3)
양우섭이 들려준 대답은 이러했다.
“상관없습니다. 기사로 내보내셔도.”
“정말인가요?”
“네.”
시원스럽게 미소를 짓는 양우섭.
그 미소에 일체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이연의 반응을 조용히 지켜보던 양우섭은 작게 웃으면서 역으로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제가 반대할 거라고 예상하셨나 보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네, 맞아요.”
지금까지 이연이 우미를 봐온 것들을 토대로 추측한다면, 그녀와 가족들 사이가 그리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이들의 가족 관계에 대한 기사가 대대적으로 나가면 YN그룹 쪽에서 많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은 예상이 컸었다.
물론 오빠인 양우섭은 여동생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려 하는 눈치였지만, 아버지는 다를 수 있으니까.
“혹시 양진석 회장님께서도 같은 의견이실까요?”
필요하다면 양우섭에게 확인할 시간을 줄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양우섭은 이번에도 즉답을 이어나갔다.
“아버지도 저와 같은 생각이십니다. 사실 표현만 안 했을 뿐이지, 오히려 저보다 아버지가 우미를 더 많이 생각하고 계시거든요. 겉으로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요.”
“실례가 안 된다면, 우미 언니하고 회장님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계기가 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저야 말해줘도 상관은 없는데. 우미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걱정이네요.”
“우미 언니는 오빠분한테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언니가 직접 말해줄 수도 있는데, 그러면 감정이 주체가 안 될 거 같아서 못하겠대요.”
양우섭이 시선이 이연에게 집중되었다.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린 양우섭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미가 이연 양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나 보군요. 우미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던 적이 없었는데.”
연습생으로 함께 하면서 온갖 일들을 다 겪은 덕분에 서로 간의 신뢰가 두터워진 것일 수도 있다.
같이 위기를 헤쳐나가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그만큼 견고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어디부터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순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양우섭의 친한 형이 또다시 끼어들었다.
“너희 할머니 이야기부터 먼저 해주면 되잖아.”
“저 형이 진짜……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조용히 좀 해, 형.”
“내가 대학교 다닐 때부터 선배로서 늘 말해줬잖아. 너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가끔은 그냥 단순하게, 심플하게 접근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그렇죠, 이연 씨?”
이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할머니’라는 말이 가장 신경이 쓰였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양우섭은 형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저희 할머니가 예전에 가수로 활동하셨거든요.”
“그런가요? 전혀 몰랐어요.”
“꽤 옛날에 활동하셨으니까요. 당시에는 YN그룹이 이렇게까지 큰 기업은 아니었고. 할아버지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동네 작은 가게였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조금씩 확장되면서 재계 쪽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그러다가 할머니가 할아버지 회사의 광고 모델로 계약을 맺은 때가 있었는데, 그걸 계기로 결혼까지 가게 되신 거죠. 이연 양도 아마 저희 할머니 존함은 한 번쯤 들어봤을 거예요. ‘윤향복’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셨는데…….”
“윤향복 선생님, 들어본 적 있어요.”
이연은 대중가요의 역사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흑백 티비 시절 때부터 윤향복은 오랫동안 가수 활동을 이어왔었다.
그녀가 설마 우미의 할머니일 줄은 이연도 몰랐다.
“그러면 오히려 집안에서 우미 언니의 가수 활동을 더 반기지 않았나요? 할머니께서 가수셨다고 했는데.”
“오히려 그거 때문에 아버지가 반대를 하신 겁니다. 이연 양도 아시겠지만, 사실 가수라는 게 대중들한테 항상 사랑만 받는 건 아니잖아요.”
“미움과 질투도 같이 받죠.”
“그겁니다.”
양진석 회장이 딸의 가수 활동에 반대하는 이유.
어머니가 가수로 지내면서 사람들의 무분별한 비난을 받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봐 왔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고하다. 하지만 악플 하나가 잔잔한 호수 전체를 물결치게 만드는 것처럼, 극소수라 할지라도 아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 있다.
그걸 자신의 딸이 똑같이 겪을 수도 있는데. 세상 어떤 아버지가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고 할까.
오히려 딸을 너무 아끼기에 딸과 멀어지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거였다.
“저나 어머니, 할머니는 우미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게끔 응원해 주겠다는 입장인데, 아버지는 전혀 그렇지 않아서요. 그렇다 보니 저도 그렇고. 어머니하고 할머니도 아버지 눈치가 보여서 대놓고 우미를 밀어주고 있진 못합니다.”
여기에서 몇 차례 오해와 의견 충돌이 발생한 탓에 우미는 가족들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중이었다.
마침내 알게 된 우미의 가정사는 이연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꽤나 복잡한 문제를 품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있었다.
“양진석 회장님이 우미 언니를 싫어하는 건 아니네요.”
“네, 그렇죠. 그래서 기사가 나가도 아버지가 그걸로 문제를 삼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저희 집안에서도 언젠가는 우미하고 YN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한테 알려지게 될 거라고 예전부터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비밀은 언젠가 퍼지게 되어 있다.
평생 숨길 수 없는 비밀.
어차피 타의에 의해 강제적으로 드러나게 될 거라면.
차라리 이걸 하니엘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이용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연이 직접 양우섭과 만나서 담판을 짓기로 한 거였다.
양우섭도 이연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의 의중이 어떤 건지 얼추 알아차렸다.
“오채일 대표님도 우미가 아버지의 딸이라는 걸 알고 계십니다. 오 대표님하고 이야기해 보시면, 이연 양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이사님이라고 불리니까 왠지 너무 딱딱하게 들리네요. 그래도 우미하고 친한 동생이니까. 편하게 불러주셔도 됩니다.”
“그러면…… 우섭 오빠?”
순간 양우섭은 방심한 나머지 마시던 음료를 뿜을 뻔했다.
이연이 뒤늦게 말을 정정했다.
“이건 너무 선 넘은 거 같네요.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우섭 오…… 빠도 괜찮고요. 우미한테만 오빠라고 불리다가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분한테 같은 말로 불리니까 당황했네요.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매력적이라는 말에 이연은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다.
카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려던 찰나에 이연의 걸음이 멈췄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탓이었다.
마나를 이용해서 머리 위에 얇은 마나벽을 세워두려고 하던 때였다.
“이연 양, 여기요.”
양우섭이 밖으로 나와 자신의 우선을 펼치면서 그녀에게 건넸다.
“괜찮아요. 어차피 요 근처 주차장에 차 세워뒀으니까요.”
“그래도요. 저는 여기 가게 우산 빌리면 되니까, 이거 가져가셔도 됩니다.”
사람의 호의를 너무 단칼에 거절하는 것도 매너가 아니라고 배웠다.
양우섭이 건넨 우산을 받기로 한 이연은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양우섭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의 형이 출입문에 몸을 기대면서 점점 멀어지는 이연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아까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이연 씨 엄청 싹싹해 보이더라.”
“그러게. 나도 이연 양하고 둘이서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라서 많이 놀랐어.”
이연이 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많은 인기를 얻게 된 건지.
양우섭은 이번 자리를 통해 확실하게 깨달았다.
“머리 좋고, 예쁘고, 성격도 괜찮아 보이고. 우섭이, 너희 어머님이 딱 좋아하실 만한 스타일이네.”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고.”
“아니, 그냥. 요즘 너희 어머님이 나한테 자꾸 우리 우섭이 소개시켜줄 여자 어디 없냐고 하시니까. 내가 보기엔 이연 씨가 재벌가 며느리로 들어가면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어때?”
양우섭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쳐 날뛰는 이 못난 형의 주둥아리를 마침내 꿰매버릴 때가 왔다고.
* * *
양우섭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내용을 모두 오채일 대표에게도 공유해 준 권이연.
“우섭이가 그렇게 말했다면야…… 알았다. 그러면 이 건은 내가 맡아서 처리할게.”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는 무슨. 내가 해야 할 일을 너희가 다 해줬는데. 그리고 우미는 어려운 결정 내리느라 고생했어. 미안하고.”
우미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대표님 신경 쓰이게 해서 제가 더 죄송해요.”
“아니야. 어디 보자. 그러면 오늘 회의 시간 잡고 그래야겠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오채일 대표가 이연과 우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멤버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기사 나가기 전까지는 너희끼리만 알고 있어. 어디까지나 ‘우연히’ 기자에 의해 밝혀진 설정으로 가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움직여보자고!”
아이비제이의 컴백에 대항하기 위한 LC 엔터테인먼트의 반격이 이제 막을 올렸다.
* * *
아이비제이 컴백일을 하루 앞둔 날.
LC 엔터테인먼트에서 몸담고 있는 팀장급 인사들은 오채일 대표로부터 갑작스러운 긴급 호출을 받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홍 실장님. 오늘 아침에 뉴스 봤어요?”
“우미 관련 기사 말씀하시는 거죠?”
“네! 세상에…… 우미가 양진석 회장님 따님이었다니. 전혀 몰랐어요.”
“대표님이 기자들도 다 아는 걸 너희는 왜 몰랐냐면서 혼내려고 저희 부르는 거 아닐까요?”
이것 때문에 아침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긴급 호출까지 떨어지니. 이 불안감은 대표 사무실로 향할수록 점점 더 커졌다.
그러나 대표 사무실 문을 연 순간.
팀장급들 직원들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오채일 대표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활짝 웃는 얼굴로 누군가와 통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보세요. 어, 김 대표. 뭐? 아이비제이 컴백 하루 전에 우리 쪽 기사 터진 거 때문에 전화했다고? 나보고 상도덕이 없어? 에이. 김 대표. 이거 왜 이러시나. 누가 들으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이 타이밍에 맞춰서 기사 낸 줄 알겠어. 난 전혀 몰랐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오 대표의 입꼬리는 아래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는 김 대표는. 우리 애들 저격하려고 일부러 아이비제이 컴백일 그렇게 잡은 거 아니야? 뭐?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나도 그래. 기사 나간 것도 우연이야, 우연. 정말이라니까?”
팀장들에게 와서 앉으라고 손짓한 오 대표가 슬슬 통화를 마무리지으려 했다.
“나 참. 같은 연예기획사 대표끼리 왜 이래. 서로 웃으면서, 친하게 지내자고. 아무튼 난 바빠서 끊는다. 아이비제이 컴백 미리 축하하고.”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마지막 말과 함께, 오채일 대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런 뒤, 팀장들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다들 좋은 아침! 자, 이제 회의 시작할까?”
“…….”
“…….”
“…….”
이럴 때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을까.
팀장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