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17화
제33화. Vlog(1)
박도수 매니저의 뜬금없는 말에 멤버들은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제 숙소로 들어가서 편히 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브이로그 할 줄 아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당연히 궁금증부터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이로그를 찍어본 적은 없는데…….”
“나도.”
“해보려고 생각한 적은 있었는데, 너무 바빠서 그냥 생각만 하고 관뒀어요.”
해본 적 없다는 멤버들 사이에서 단 두 명만이 경력자임을 어필했다.
리샤하고 비아, 2인실 팀이 사이좋게 손을 들었다.
“저, 브이로그 찍어봤어요.”
“저도요. 학생 때 애들끼리 브이로그 찍어서 공유하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채널에 직접 올려본 적은 없는데, 영상 촬영하고 편집까지 해봤었어요.”
편집 경력까지 어필하는 비아.
막내를 보는 멤버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잘은 못 하지만요’라는 뒷말이 살짝 붙긴 했지만, 그래도 무경험자들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편집까지는 필요 없고. 촬영만 할 줄 알면 돼. 근데 비아는 유행이었다니까 그렇다 치고. 리샤는? 미국에서 그런 게 유행했었어?”
“유행은 아니고요. 그때 아니면 먹기 힘든 희귀한 음식들 먹을 때 있잖아요. 그걸 사진으로만 남겨두기에는 너무 부족할 거 같아서 영상으로도 가끔씩 찍었거든요. 그러다가 브이로그까지 건드리게 되었어요.”
음식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낸 경험이었다.
계기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일단 하니엘 내에서 경험자가 둘이나 있다는 말에 박도수 매니저는 크게 기뻐했다.
안 그래도 이연은 그런 박도수 매니저에게 묻고 싶었다.
“브이로그는 왜요?”
“이번에 하니엘 공식 채널 오픈했잖아. 거기에 올릴 영상 같은 거 찍어서 올려야 하는데, 너희 데뷔 과정을 브이로그 식으로 조금씩 촬영해서 올리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거든.”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가.
요즘은 이런 거 하나하나가 다 마케팅이 되는 시대다.
물론 SSS를 통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하니엘이라는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에 성공했지만, 연예계에는 예쁘고 노래 잘 부르는 걸 그룹이 너무나도 많다.
게다가 하니엘이 바로 데뷔 앨범을 들고 다시 팬들 앞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준비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전까지 어떻게든 SSS로 끌어모은 팬들의 관심을 지속해서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너무 아무런 소식도 없고, 데뷔 준비 기간만 길어지면 SSS에서 고생했던 게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할 수 있지?”
박도수 매니저가 확인 차원에서 물었다.
사실 의미가 없는 질문이긴 했다.
못 하겠다고 하니엘 멤버들이 거절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건 있었다.
“장비는요? 브이로그 찍으려면 그래도 촬영 장비 정도는 주셔야죠.”
브이로그 유경험자답게 비아는 장비에 대한 질문부터 먼저 꺼냈다.
“장비야 당연히 지급해야지. 거창한 건 아니고. 너희도 들고 다니면서 쉽게 조작할 수 있는 걸로 준비해 주겠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박도수 매니저가 차를 몰아가면서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일 너희 쉬는 날이지? 내가 아침에 잠깐 촬영팀 스태프하고 같이 숙소 들를 테니까 장비 조작에 대한 설명 듣고, 그리고 바로 촬영 시작하면 돼. 그렇다고 관찰 예능처럼 24시간 내내 찍을 필요는 없고. 모여서 밥 먹을 때라든지. 아니면 어디 근처에 산책이나 운동 갈 때 정도만 찍어.”
“활동성 있는 걸 할 때 찍으란 말씀이시네요?”
“이연이, 정답. 정식 촬영도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편하게 찍어. 어차피 편집은 회사가 알아서 잘해줄 테니까.”
이런 걸 위해서 소속사라는 게 존재한다.
하니엘 멤버들은 이해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브이로그.
이연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오늘 들어가서 공부 좀 해둬야겠네.’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 * *
사람들은 일을 할 때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방대한 이론 지식을 쌓아 철저하게 계산하고 이에 맞게 행동하는 타입.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의 직감을 믿고 행동하는 타입이다.
이연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은 첫 번째 같은 방식으로 무대를 준비한다.
물론 직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아주 가끔 후자 스타일을 추구하곤 한다.
상황에 맞게 자신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하는 게 연예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연에게 있어서 브이로그 촬영이란 어떤 걸까?
전자에 속했다.
연예인, 그리고 1인 크리에이터로 잘나가는 사람들의 브이로그 영상을 싹 정주행하기 시작하는 이연.
그 와중에 멤버들은 내일부터 시작될 브이로그 촬영에 대비한 일정을 짜기로 했다.
그냥 숙소에서 쉬는 모습만 보여주면 재미없을 테고.
“어디 놀러 갈까?”
“놀러 갈 만한 장소가 있나?”
“요 앞에 예쁜 카페 생겼잖아. 거기 가도 되고.”
“아니면 쇼핑 갈래? 마침 우리, 옷 사러 간다고 했잖아.”
“맞다, 그랬지!”
거실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
쇼핑 쪽으로 가닥이 잡히자, 멤버들은 이 자리에 없는 이연을 찾기 시작했다.
리샤가 빠른 걸음으로 이연의 방을 찾았다.
“연아. 내일…….”
“알았어. 갈게.”
자초지종을 설명주기도 전에 간다는 대답이 돌아와서일까. 리샤가 잠깐 벙찐 얼굴을 했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 듣고 있었어?”
“어. 대충.”
문은 닫혀 있었다. 게다가 이연의 방과 거실은 거리가 꽤 되는 편이다.
그럼에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멤버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은 것처럼 반응하니, 리샤가 당황해하는 건 당연했다.
“귀가 엄청 밝구나, 너.”
“그런 편이지, 뭐. 브이로그 촬영 겸해서 가는 거니까 매니저님 오고 난 다음에 가겠네?”
“응. 기회가 된다면 라방도 같이 하려고.”
“라방?”
“라이브 방송. 네가 사용하는 그 SNS에 있는 기능 말이야. 매니저님한테 물어보니까 가끔씩 해도 된다고 그러더라고. 대신에 민감한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래.”
그거야 당연한 이야기다.
카메라 앞에선 항상 입조심을 해야 하는 게 연예인의 숙명이다.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인 이연은 알겠다고 말하고서 내일 같이 갈 쇼핑 멤버들이 누군지에 대해 물었다.
리샤가 먼저 스스로를 가리켰다.
“일단 나 갈 거고. 우미 언니하고 유키, 이렇게 셋은 확정이야.”
“나머지는?”
“비아하고 시우는 따로 일 있다고 하고. 여솜이는 엄마 만나기로 했대. 그래서 너까지 간다고 하면, 이렇게 우리 넷이 확정되는 거지.”
안 그래도 옷을 사러 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잘 됐다.
이연이 가지고 있는 옷들은 전(前) 권이연의 취향들로만 가득했다.
루웰의 입맛에 맞는 옷은 거의 없었기에 숙소로 들어올 때에도 가지고 있던 옷 대부분을 집에 두고 온 거였다.
“알았어, 나도 갈게. 차는?”
“우미 언니 거 타고 가기로 했어.”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오케이~”
빠른 속도로 내일 일정을 확정 지은 리샤는 다시 멤버들이 있는 거실로 향했다.
이후에도 이연의 브이로그 공부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 * *
다음 날.
오전 10시 정각에 맞춰서 숙소를 찾은 박도수 매니저는 LC 엔터테인먼트 촬영팀 스태프 둘과 함께 멤버들을 소집했다.
“지금부터 여기 팀장님이 직접, 부드럽고 상냥하게 설명해 주실 테니까 잘 들어봐.”
“네.”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먼 우락부락한 모습을 지닌 팀장이 세 개의 카메라와 여러 장비들을 바닥에 쭉 나열해 뒀다.
“오른쪽에 있는 카메라 두 개가 메인 액션캠입니다. 여러분들 들고 다니기 편하시라고 셀카봉하고 결합해서 들고 다닐 수도 있고요. 그리고 오른쪽 카메라는 바디캠인데, 운동을 할 때 내 시점을 팬들에게 공유해 주고 싶은 경우에 직접 몸에 착용해서 작동시키면 됩니다.”
브이로그용이라고 해서 그런지, 확실히 그녀들이 아는 일반 카메라보다 크기가 훨씬 작았다.
여성들이 오랫동안 들고 다녀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장비 조작에 대해서 설명드릴 텐데, 간단합니다. 여기 버튼을 누르면 불이 들어오죠? 그러면 이게 카메라가 켜진 상태라고 보시면 돼요. 반대로 다시 한번 버튼을 누르면 불이 두 번 정도 깜빡인 다음에 꺼집니다. 쉽죠?”
멤버들이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공부라면 질색팔색하는 비아와 리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었다.
팀장의 관리감독하에 멤버들이 한 번씩 직접 액션캠 조작에 나섰다.
이연도 처음 해보는 카메라 조작이었다.
‘신기하네.’
당연한 말이지만, 이전 세계에서는 이런 걸 본 적도 없었다.
SSS 녹화를 하면서 언젠가 카메라 쪽도 한번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연의 꿈이 작게나마 이루어졌다.
그렇게 짧은 강의 시간이 끝나고.
박도수 매니저가 다시 스태프들과 함께 숙소를 나서려고 했다.
그전에.
“내일 안무 시안 나온다고 하거든? 오후 2시까지 올 테니까 미리 준비하고 있어.”
“네, 매니저님.”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잘 쉬고.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쇼핑 갈 거라고 했잖아. 내가 바래다줄까?”
쇼핑 멤버들은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오늘 멤버들이 쉬는 날이라는 건, 박도수 매니저 역시 비번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쉬어야 할 시간인데. 브이로그 관련 일 때문에 번거롭게 숙소까지 오게 한 것도 미안해할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백화점까지 바래다달라고 하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떠난 뒤, 쇼핑을 떠나기로 한 멤버들끼리 모여서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우미가 차 키를 들고서 미리 차량을 주차해 둔 곳으로 먼저 멤버들을 이끌었다.
차를 보자마자 유키가 큰 눈을 여러 차례 깜빡였다.
“우미 언니. 이거 엄청 비싼 차 아니에요?”
“그 정도로 비싸지 않아. 얼른 타, 얼른.”
구체적인 차량 비용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한 모양인지, 우미가 멤버들을 재촉했다.
오늘의 일일 카메라맨은 비아와 함께 브이로그 촬영 유경험자인 리샤가 담당하기로 했다.
카메라를 켜자마자 리샤의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2단계 더 올라갔다.
“안녕, 여러분! 오늘 멤버들하고 같이 쇼핑을 갈 건데요. 운전은 우미 언니가 맡기로 했어요. 옆에는 우리의 리더! 이연 씨, 한마디 해주세요.”
뒷좌석에서 불쑥 액션캠이 튀어나왔다.
카메라에 불빛이 들어와 있음을 확인하자마자 이연의 얼굴에 깃들어 있던 무표정이 금세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이연이에요.”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아무리 이연이라 할지라도 내숭만큼은 유키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안뇽! 유키예요! 오늘 언니들하고 쇼핑 가는데, 벌써부터 설레는 거 있죠? 기회만 된다면 제 심장 소리 들려주고 싶을 정도인데…… 오늘 예쁜 옷들 많이 사갈 테니까 조금 이따가 만나요, 사랑해요!”
양팔로 머리 위에 큰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유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트에 몸을 묻은 채 아저씨 못지않은 걸쭉한 한숨을 내쉬었다.
리샤가 유키를 보면서 이런 말을 흘렸다.
“팬들이 이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유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연도 잠깐 그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