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14화 (114/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14화

제31화. 완성형 아이돌(4)

갑자기 발생한 장비 문제로 인해 반주를 틀을 수가 없게 되었다.

스태프들뿐만 아니라 하니엘 멤버들, 민주린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때, 이연이 직접 자신이 연주를 하겠다고 자처했다.

“예전에 게스트 나오셔서 라이브 부르실 때 반주 말고 선배님이 직접 악기 연주해 주신 적이 있으시지 않았나요?”

‘박민아의 뮤직 스토어’ 애청자인 우미가 이연에게 들려준 일화였다.

그게 문득 떠올랐다.

“네, 그랬었죠.”

박민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연이 한 말을 인정했다.

“이번에는 제가 반주 깔아드릴까 싶은데. 혹시 가능할까요?”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민아 역시 PD와 같은 생각이었다.

“네. 그렇게 하죠. 안 그래도 아까 이연 씨 연주 한번 듣고 싶다고 말 나왔었는데. 마침 이렇게 기회가 생겼네요.”

스태프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연은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자신의 재주를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전략이었다.

마침 PD도 허락했으니까 이연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키보드 앞에 앉은 이연의 모습을 좀 더 집중적으로 비추기 위해 스태프가 들어와 카메라 각도를 조절했다.

박민아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청취자 의견 중 몇 개를 골라 소개했다.

“‘이연 언니, 키보드 앞에 앉아 있는 모습도 너무 귀엽고 예뻐요!’라고 8932님께서 의견 보내주셨네요. 8932님을 위해서라도 이연 씨, 카메라를 향해서 손 한 번만 흔들어주세요.”

“이렇게요?”

이연이 카메라와 시선을 마주하고서 오른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좋네요. 우리 청취자분들, 오늘 눈 호강 제대로 하겠는데요? 여러분. 좀처럼 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라디오 말고 어서 저희 채널에 들어오셔서 지금 이 영상 꼭 보세요.”

청취자들을 실시간 라이브 채널로 끌어들이기 위한 박민아의 멘트가 이어졌다.

그녀의 영업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갑자기 채널 참여자 수가 폭등했다.

그 와중에 민주린은 다시 헤드셋을 고쳐 쓰면서 라이브를 소화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이연이 직접 신호를 주기로 했다.

셋, 둘, 하나.

이연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마치 춤을 움직였다.

즉석에서 어레인지를 한 이연의 실력에 민주린조차 속으로 감탄했다.

-비밀스러운 우리 사이.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그대 눈치만 보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와 이연의 키보드 반주가 합쳐져 듣기 좋은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한 번도 합을 맞춰본 적이 없다는 말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두 사람의 호흡은 완벽했다.

첫 곡이 무사히 끝나고.

스튜디오에서 뜨거운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가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피아노를 전공했던 박민아조차도 이연의 연주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SSS PD님이 잘못하셨네. 이렇게 이연 씨가 재능이 많은데, 이걸 화면으로 안 보여주시다니. 서윤철 PD 맞죠? 나중에 제가 만나면 한 소리 따끔하게 해줄게요.”

그 말에 이연은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민주린도 자신의 노래보다 이연의 키보드 연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내 곡은 언제 연습한 거야?”

“연습 안 했어요. 연주해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

민주린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무한 증식했다.

민주린은 분명 이연이 피아노로 자기 노래를 몇 번 연습 삼아 연주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아니면, 방금 들려준 그 능숙한 연주 솜씨가 이론적으로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박민아가 작게 웃었다.

“가끔 이런 천재과가 있긴 하죠.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재능 있는 가수 말이에요.”

남들이 봤을 때에는 충분히 분에 넘치는 칭찬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연은 아니었다.

자신의 전생 시절에 비하면, 이런 칭찬은 다소 약했다.

그래도 반대로 말하면, 아직 이연이 사람들에게 더 보여줄 능력이 많이 남았다는 소리니까.

지금부터 천천히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 가면 된다.

* * *

민주린에 이어서 하니엘의 라이브 코너가 펼쳐졌다.

마이크에 따라서 쭉 일렬로 선 하니엘 멤버들. 원래는 센터 자리에 이연이 서 있어야 했지만, 그녀는 지금 연주자 역할로 빠져 있는 상태였기에 부리더인 여솜이 자리를 대신 채웠다.

박민아가 혹시 몰라서 이들에게 물었다.

“파트는 동일하게 가실 거죠?”

“네. 연이 파트는 저희가 소화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갑자기 파트를 바꾸면 순서가 꼬여서 중간에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갑자기 바꾸면 그렇게 되겠죠.”

워낙 고음 파트가 많아서 웬만한 보컬 실력 가지고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물론 부르라면 부를 수는 있다.

그녀들도 가수니까.

그러나 이연만큼 메인보컬 파트를 잘 살리는 멤버가 없었기에 그대로 가기로 합의를 봤다.

이연의 근처에 스탠딩 마이크를 가져다주는 스태프.

그러나 위치상 거리가 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연 씨, 괜찮으시겠어요? 평소보다 목소리 좀 더 크게 내질러야 될 거 같은데.”

박민아가 이연에게 확인차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네. 이 정도 거리면 문제없어요.”

마법으로 약간의 보정 작업만 해두면 된다.

소음 차단 마법을 역으로 활용해서 자신의 성량을 좀 더 키울 수 있도록 조절했다.

대신에 다른 마이크에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들어가지 않도록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이건 좀 어렵네.’

해본 적이 없는 형태의 마법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세팅 시간이 필요했다.

이 문제는 다행히도 박민아가 민주린과 토크를 나누면서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럼 바로 들어볼까요?”

“네!”

하니엘 멤버들이 박민아의 물음에 기운차게 답했다.

오늘 부를 곡은 파이널 무대에서 선보였던 ‘첫사랑’과 ‘페어링’, 이렇게 두 곡이다.

이연에게는 차라리 이 두 곡이 앞서 연주했던 민주린의 노래보다 훨씬 편했다.

그만큼 그녀에게 익숙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본인들 노래니까.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민주린 때와 다르게 한 가지 미션이 추가되었다.

연주도 하면서 직접 노래도 불러야 한다는 점이었다.

노래와 연주. 둘 다 동시에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연은 너무나도 여유롭게 자신의 파트를 소화했다.

-사랑하는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거리.

사랑해. 사랑해.

이 말을 속삭여 보네요.

‘첫사랑’ 곡 중 가장 높은 후렴구 파트인데도 이연의 고음에는 한계가 없었다.

쭉쭉 올라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속 시원하다는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마법으로 자신의 성량을 강화한 덕분인지 평소보다도 더 뚜렷하게, 더 크게 자신의 목소리가 청취자들에게 전달되었다.

곧이어 두 번째 곡, ‘페어링’도 바로 시작했다.

이연 입장에선 ‘첫사랑’보다 ‘페어링’이 더 부르기 쉬웠다.

‘첫사랑’의 고음 파트가 유독 괴랄할 뿐이지. ‘페어링’도 고음 파트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앞서 불렀던 곡에 비하면 많이 낮은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연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더 편안해지고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서 라이브가 다 끝나고 나서야 이제 목이 좀 풀렸다는 모습마저 보여줬다.

박민아는 그런 이연을 보면서 작게 웃었다.

“이연 씨는 노래 더 부르고 싶어 하는 눈치 같은데요?”

“무대가 허락한다면 언제든 부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지금까지 출연했던 모든 게스트들이 들려준 답변 중 박민아가 가장 마음에 든 대답이었다.

* * *

라디오 방송에, 타 프로그램 출연에. 쉴 틈 없이 하루를 보냈던 박민아가 차에 올라타 잠깐의 단잠을 취했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지만.

“회사에 놓고 온 물건 있다고 하셨죠?”

“어. 금방 가지고 올게. 미안해.”

“아니에요. 다녀오세요, 언니.”

박민아가 매니저에게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회사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내일 가지러 와도 괜찮지만, 자기 물건을 다른 곳에 놔둔 채 집으로 돌아가면 계속 신경이 쓰이는 탓에 이런 번거로움을 자처하게 되었다.

어차피 회사가 집에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회사에 잠깐 들렀다가 가기로 한 거였다.

“겨우 찾았네.”

물건도 되찾았고.

이제 다시 차로 되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마침 아는 얼굴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머, 선배님!”

렛플 엔터테인먼트의 캐스팅매니저, 장고윤. 그녀가 박민아를 향해 활짝 미소를 보냈다.

“아직 퇴근 안 했어?”

“네. 선배님은요? 바로 집으로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집으로 주문했던 택배가 회사로 잘못 배송되었거든. 내가 주소지를 이곳으로 입력했었나 봐. 그래서 이거 찾아가려고 다시 왔어.”

“그런 거라면 저한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제가 가져다 드릴 수 있는데.”

“괜찮아. 괜히 우리 동생 번거롭게 만들면 안 되잖아. 안 그래도 바쁜데.”

“간 김에 오랜만에 선배님 집에서 커피도 얻어 마시고, 그러려고 했죠.”

두 여성이 동시에 호호 웃었다.

“오늘 방송은 어떠셨어요? 잘 마치셨나요?”

“유독 재미있었어. 라디오 못 들었지?”

“네. 그때 중요한 미팅이 있었거든요.”

“게스트로 주린이하고 하니엘 출연했었거든. 너, 하니엘 좋아하지 않았니? 아쉽네.”

하니엘이라는 말에 장고윤이 아쉬움을 표현하듯 입맛을 다셨다.

“하니엘을 좋아하긴 하는데,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왜? 응원하던 연습생이라도 탈락해서?”

“아니요. 권이연 양 때문에요. 사실 권이연 양이 이렇게 확 뜨기 전에 저희가 슬쩍 계약해서 데려오려고 했었거든요.”

“그건 도의가 아니잖아.”

“네, 저도 알죠. 근데 어떻게 해요. 그만큼 이연 양이 탐이 났는걸요.”

듣다 보니 박민아는 자신도 모르게 납득하고 말았다.

만약에 자신이 장고윤과 같은 입장이었어도 권이연은 무조건 노려봤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이연 씨, 굉장히 매력적이긴 하더라.”

“그렇죠?”

“어. 나도 나름 많은 아이돌 친구들을 만나고 그랬었잖아. 그런데 그 친구들하고는 확실히 뭔가가 달랐어. 말로 딱 표현하면 참 좋을 텐데. 적당히 떠오르는 게 없네.”

그녀를 대신해서 장고윤이 말을 꺼냈다.

“완성형 아이돌 같은 느낌이죠?”

“맞아. 원래 아이돌이라는 단어에 우상이라는 뜻이 있잖아. 그걸 그대로 옮겨다가 만들어놓은 듯한 존재 같아. 오늘 키보드 연주하는데, 가까이서 보는데도 내가 다 설레더라니까.”

“나중에 저도 오늘치 라디오 방송 돌려서 봐야겠네요.”

“꼭 봐. 하니엘 좋아하면 무조건 봐야 돼.”

장고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박민아는 온통 권이연 생각뿐이었다.

과연 그녀가 여기서 더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아이돌이라는 존재를 넘어서 초월적인 무언가가 될 수 있을지.

박민아는 그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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