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11화
제31화. 완성형 아이돌(1)
사건이 벌어지고 며칠 뒤.
이연이 멤버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간밤에 벌어진 일은 기사로 다뤄지거나 하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연과 함께 거실에 나란히 앉아 모닝커피를 마시던 여솜은 이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 사람들, 너한테 맞았던 거 잊어버린 걸까?”
“그렇겠지. 술에 잔뜩 취해 있었으니까. 필름 끊겨서 너희한테 헌팅하려고 했던 것도 기억 못 할 거야.”
“우리나라가 치안이 좋다고 해도, 이런 일 한번 겪어보면 정말로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
“밤 시간에는 언제, 어디에 있든 항상 조심하는 게 좋아.”
이연이 차원을 넘기 이전의 세계에선 아예 해가 저물면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도적, 갱단 등. 위험한 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밤이 위험한 건 이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연은 다음부턴 저녁때 멤버들에게 어디 나갔다 오라는 심부름을 절대로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나가봐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녀가 동행할 생각이었다.
이연이 붙어 있으면, 적어도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
시간을 확인한 여솜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면서 일어섰다.
“슬슬 애들 깨워야겠다. 매니저님, 1시간 뒤에 온다고 하셨나?”
“어. 유키는 일어났으니까, 2인실 팀하고 3인실 팀만 깨우면 돼.”
“그럼 내가 3인실 맡을게. 우리 룸메이트들은 내가 챙겨야지.”
“알았어.”
자연스럽게 이연은 2인실 기상 담당을 맡게 되었다.
문을 열기 전에 이연은 혹시 몰라서 노크를 몇 차례 두들겼다.
여성의 방에 함부로 발을 들이는 건 매너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케줄이 코앞인데 감감무소식일 경우에는 예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이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한밤인 것처럼 푹 잠들어 있는 비아와 리샤.
이연은 먼저 1층에서 자고 있는 리샤를 타깃으로 삼았다.
“리샤. 안 일어나?”
이불을 확 걷어낸 순간, 이연은 황급히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너, 너 뭐야. 왜 옷 안 입고 있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리샤의 상태에 이연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놀란 이연의 목소리에 덩달아 2층에서 자고 있던 비아가 눈을 떴다.
반쯤 감긴 눈으로 이연과 알몸 차림의 리샤를 번갈아 바라보던 비아가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다.
“……리샤 언니, 원래 잘 때 다 벗고 자는 스타일이래…….”
“아니, 다 큰 처녀가……!”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아서 오히려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하니엘에서 이연 못지않게 발군의 몸매를 자랑하는 리샤였기에 민망함은 더더욱 컸다.
뒤늦게 눈을 뜬 리샤는 자신이 걸치고 있던 이불을 들고서 당황해하는 이연을 향해 태연하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연이……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고 뭐고. 옷이나 좀 입어!”
아침은 웬만하면 평화롭게, 침착하게 맞이하고 싶었지만.
개성 넘치는 멤버들 덕분에 이연의 이 계획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 * *
오늘은 방송 일정 대신, LC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가서 그녀들의 데뷔 앨범에 대한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박도수 매니저가 운전대를 돌리면서 회의 때 나올 이야기에 관한 스포일러를 미리 흘렸다.
“찐 프로님이 이번에 노래 뽑아준 거 어제 미리 들어봤거든? 잘 나왔더라.”
“그래요?”
멤버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녀들은 아직 본인들의 첫 데뷔 앨범곡들을 접하지 않은 상태였다.
자체적으로 어떤 곡인지, 궁금증만 커져가는 상황에서 마침내 오늘 데뷔 앨범곡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SSS 촬영이 끝난 이후 오늘이 가장 중요한 날일 수 있다.
오늘을 기점으로 데뷔 타이틀곡이 결정되고, 이 곡으로 하니엘의 첫 공식 활동의 포문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처음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찐 프로님, 너희 곡 작업 때문에 요 며칠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계시대.”
“어머, 정말이에요?”
“어. 그만큼 준비 많이 하신 거 같으니까, 너희도 노래 듣고서 최대한 의견 많이 들려줘. 참고삼을 게 많아야 찐 프로님도 작업하기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특히 하니엘 멤버들의 의견이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직접 노래를 부를 주체이기 때문이다.
박도수 매니저가 말하지 않아도 이연은 최대한 상세하게 노래를 들어보고 의견을 들려줄 생각이었다.
그녀도 작곡에는 일가견이 있으니까.
LC 엔터테인먼트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은 진세혁 프로듀서가 기다리고 있는 작업실로 향했다.
빵빵하고 정밀한 사운드 장치로 멤버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진세혁의 바람에 의해 회의 장소는 그의 작업실로 결정되었다.
이전에는 SSS 참가 연습생의 신분으로 자주 오던 장소였는데.
이렇게 정식으로 데뷔를 확정 짓고 오니까 연습생들의 감회가 새로웠다.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어, 얘들아. 왔어?”
진세혁 프로듀서가 멤버들을 빠르게 훑었다.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진 거 같은데? 카메라 마사지 덕분인가?”
진세혁 프로듀서의 미모 칭찬에 딱 한 사람, 이연을 제외한 멤버들은 수줍게 웃었다.
기분은 좋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 말을 들으러 온 게 목적이 아니었다.
비아가 소파에 앉자마자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
“저희 곡 나왔다면서요?”
“아…… 뭐, 그, 그렇지.”
진세혁 프로듀서의 반응이 영 이상했다.
멤버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동안, 진세혁과 같이 일하는 스태프가 말했다.
“선배님. 준비 다 됐습니다.”
“그래? 그러면 일단 노래부터 듣고 이야기를 나눠볼까? 먼저 너희한테 타이틀곡부터 들려줄 거야. 그리고 수록곡도 같이 들려줄 테니까, 일단 들어보고 한꺼번에 의견 들어보자.”
“네!”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세트 리스트는 타이틀곡, 수록곡 순서대로 진행되기로 했다.
첫 번째 곡은 댄스곡으로, SSS 파이널 무대에서 하니엘 팀이 마지막으로 선보였던 ‘페어링’과 비슷한 느낌을 자랑하고 있었다.
SSS에서 공개되었던 오리지널곡들 중에 현재 음원 순위가 가장 높은 곡이 바로 ‘페어링’이다.
이걸 의식해서인지, 진세혁 프로듀서는 이 첫 번째 곡을 타이틀곡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두 번째 곡은 일렉트로닉 팝.
비트 자체는 꽤 마음에 들었다.
두 곡을 다 들어본 뒤, 진세혁 프로듀서가 추가로 다른 멜로디도 들려줬다.
“이건 아직 가이드 작업은 안 끝난 수록곡인데. 이왕 다 같이 모인 거, 이것도 한번 들어봐.”
조용히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연이 먼저 의견을 들려줬다.
“약간 J-Pop 느낌이네요. 코드도 그렇고요.”
“코드도 알겠어?”
진세혁 프로듀서의 물음에 이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쓰리 코드로 진행되는 거죠? Am, Dm, Am, E7…….”
코드를 쭉 읊어가는 이연을 보면서 진세혁 프로듀서를 포함한 스태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반면, 비아하고 리샤는 무슨 말을 하는지 통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나마 이연과 진세혁 프로듀서가 나누는 대화를 따라가는 사람은 직접 랩 가사도 쓰고 비트도 찍어본 시우 정도였다.
멜로디가 끝나자마자 이연은 방금 자신이 알려준 코드에 대해 멤버들에게 추가로 설명해 줬다.
“전형적인 J-Pop 코드 진행이야. E7이 도미넌트 7th이고, 토닉의 경우에는…….”
“자, 잠깐만, 이연 언니!”
비아의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설명충이 되어가려는 이연을 겨우 말리는 데에 성공했다.
“그, 그런 것보다 소감 말해줘야지. 소감을. 우리가 이해 못 하는 말은 그만하고.”
“다들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무슨 언니처럼 천재과인 줄 알아? 저기 리샤 언니 봐봐. 지금 하나도 못 알아들으니까 몰래 딴짓하고 있잖아.”
리샤가 뜨끔하는 반응을 보였다.
박도수 매니저도 비아의 의견에 힘을 보태줬다.
“전문적인 분야는 찐 프로님이 알아서 잘해주실 테니까. 우리는 그냥 소감만 말해 드리자고.”
그러나 진세혁 프로듀서의 반응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저도 잘해주고 싶었는데, 약간 문제가 생겼습니다.”
“네? 무, 문제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세혁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처음에 들으신 타이틀곡, 사실 미완성이거든요.”
멤버들은 진세혁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노래 너무 좋았는데…….”
“그게 완성 버전 아니었어요?”
“저는 지금 곡 가지고 레코딩 들어가도 괜찮아 보이던데요?”
진세혁과 다르게 멤버들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이연도 처음에는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노래가 진행되던 중간에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Chorus2 부분 말씀하시는 거죠?”
진세혁 프로듀서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어떻게 알았어?”
“거기 코드가 미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너무 오버해서 코드를 짰나 싶기도 하고.”
“음…… 그러면 이건 어때요?”
이연이 스태프에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스태프가 그녀의 요청에 따라 슬쩍 자리를 비켜줬다.
“그냥 제 생각일 뿐이니까, 가볍게 들어주세요.”
건반 위에 손을 올린 이연이 즉각적으로 코드를 완성시켰다.
귀를 기울인 진세혁은 입이 떡 벌어졌다.
반면, 멤버들은 그냥 간단한 멜로디 같은데, 진세혁 프로듀서가 이렇게까지 놀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진세혁 프로듀서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잔뜩 들뜬 표정으로 외쳤다.
“좋은데? 내가 짠 것보다 훨씬 낫네!”
“코드는 굳이 표기 안 해드려도 되죠?”
“그럼! 고마워, 이연아. 덕분에 꽉 막힌 속이 뻥 뚫렸어!”
서로를 마주 보면서 웃는 이연과 진세혁 프로듀서.
반면, 리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멤버들에게 작게 속삭였다.
“난 오늘 회의 내용, 하나도 못 따라잡겠어.”
그건 멤버들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 * *
회의 아닌 회의가 끝난 후.
박도수 매니저가 잠시 진세혁 프로듀서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찐 프로님. 그럼 저희 먼저 가보겠습니다.”
“지금 가시려고요?”
“네. 멤버들 내일 아침에 라디오 녹음 있어서요. 그전에 일찍 자게끔 해야죠.”
진세혁 프로듀서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
“미안합니다. 오늘 가이드곡 들려주고, 파트 분배까지 회의해서 끝냈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그보다 모레까지 작업 다 끝내서 다시 들려주기로 하셨는데. 정말 괜찮으신가요?”
“네. 아까 이연이가 지적한 파트만 다시 재녹음하면 되니까요. 가이드곡 불러준 성희하고 혜민이한테도 아까 일정 다 확인했습니다.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작업 끝나시면 언제든 저한테 연락 주세요. 멤버들 데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네. 아, 그리고 박 매니저님.”
진세혁 프로듀서가 목소리를 낮추고서 물었다.
“혹시 이연이는 본인들 노래 작곡해 볼 생각 없나 궁금해서요. SSS에서 편곡은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중에라도 좋으니까 한번 물어봐 주시겠어요?”
“그건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시켜주면 무조건 하겠다고 할 거예요.”
“그래요? 개인적으로 이연이가 만든 곡도 꼭 들어보고 싶네요.”
아이돌 겸 작곡가.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왠지 이연이라면 너무나도 쉽게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