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10화 (110/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10화

제30화. 앞면과 뒷면(6)

지하아이돌로 활동할 때 당시에 겪었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걸까.

술 취한 채 멤버들에게 달라붙으려고 하는 남자들의 추행은 유키의 트라우마를 건드려 버렸다.

멤버들이 보고 있는 앞인데도 불구하고 유키는 과감하게 자신의 얼굴에 씌워져 있던 가면을 집어 던지고 본성을 드러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그녀의 험한 말에 여솜과 비아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유키, 너. 방금…….”

“요, 욕한 거야? 진짜로?”

“…….”

유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이 남자들부터 어떻게든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유키의 차가운 태도에 짜증이 난 모양인지 한 남자가 그녀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다.

그러나 유키는 남자의 손을 찰싹! 때리면서 말했다.

“건들지 말라고, XXX아.”

“뭐? 지금 뭐라고 했냐?”

“이년이 진짜 미쳤나. 얼굴 좀 예쁘게 생겼다고 다인 줄 아냐? 엉?”

남자들은 술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다.

유키가 여솜과 비아를 보호하려는 듯 자신의 뒤로 숨기면서 말했다.

“제가 시간 벌고 있을 테니까 언니하고 너는 먼저 도망쳐.”

“너, 너는 어떻게 하려고…….”

“전 일본에 있을 때 이런 일 많이 당해봤으니까 괜찮아요.”

모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터지면, 분명 구설수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멤버들에게도 민폐일 테고.

유키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키면서 생각했다.

자신은 괜찮다고.

어차피 그녀는 SSS 파이널 무대에서 떨어질 운명이었다.

미련은 없다.

아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중에 가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그래도 자신을 탈락의 위기에서 데뷔라는 무대로 끌어올려 준 멤버들이 험한 꼴을 당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무섭고 떨리지만.

그래도 멤버들을 지켜주고 싶다.

이연과 하니엘 팀 멤버들이 덕분에 아주 잠깐 데뷔라는 달콤한 꿈을 꿀 수 있어서 기뻤기 때문이다.

이제는 유키가 그 보답을 할 차례다.

화가 잔뜩 난 남자가 주먹 쥔 손을 크게 들어 올렸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유키.

그럼에도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야 눈을 뜬 유키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크게 놀랐다.

권이연이 남자의 팔을 붙잡고 뒤로 꺾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야야야야!”

남자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음에도 이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자한테 손찌검해도 좋다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거냐.”

오른발로 남자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안 그래도 술 때문에 무게 중심을 잡기 버거웠는데. 이연의 행동으로 인해 남자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과 진한 키스를 나누게 되었다.

“연이 언니!”

이연이 아직도 겁에 질려 있는 비아와 여솜, 그리고 유키에게 잠시 떨어져 있으라고 경고했다.

일행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쓸데없는 의리가 발동하기라도 한 모양인지 남자들의 시선이 이연에게 쏠렸다.

차라리 이연은 어그로가 자신에게만 튄 게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같은 멤버들에게 피해가 갈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 XX년이!”

남자가 주먹을 휘둘렀다.

평소에 운동 좀 하는 모양인지, 일격이 꽤 매서웠다.

그러나 왕국 친위기사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던 이연에게는 남자의 동작이 어린애 장난 수준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살짝 몸을 옆으로 빼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남자가 가한 혼신의 일격을 흘려 버릴 수 있었다.

그대로 오른발만 조금 내밀자, 남자가 이연의 발에 걸려 꼴사나운 자세로 넘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남자들을 둘이나 제압한 이연.

남은 남자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연은 당황하는 둘을 보면서 물었다.

“왜. 안 덤비려고? 여자 하나한테 쩔쩔 매냐? 쪽팔리면 XX나 떼라.”

일부러 남자들을 도발했다.

결국 남자들은 이연의 의도대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마력을 이용해서 일시적으로 신체를 강화시킨 이연의 오른 주먹이 각각 남자의 복부에 꽂혔다.

퍽, 퍽!

외마디 소리와 함께 남자들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서 고꾸라졌다.

이 모든 일들이 채 1분도 안 돼서 벌어졌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여솜과 비아가 이연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물었다.

“연아! 괜찮아?”

“언니, 다친 곳은?”

“없어. 멀쩡해.”

몸풀기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멤버들은 이연에게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는지 신기해할 따름이었다.

그 와중에 유키가 스마트폰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다.

“잠깐만.”

이연이 유키의 그런 행동을 만류했다.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신고 안 해도 돼.”

“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걸로 기사 안 나오게 내가 잘 처리할 테니까.”

이연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하니 안 믿어줄 수가 없었다.

* * *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네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먼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어우, 추워라…….”

이제 초겨울이 다 되어가는 날씨 속에서 남자는 추위에 견디다 못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추워했는지.

이내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도로변에, 그것도 팬티바람으로 친구들과 같이 맨 바닥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꺄아악!”

“저, 저 사람들 뭐야?”

“미친놈들 아니야?”

그제야 남자는 술이 확 깼다.

“야, 야! 빠, 빨리 정신 좀 차려봐!”

먼저 깨어난 남자는 다급하게 친구들을 깨웠다.

그들 역시 팬티바람으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관들이 남자들을 향해 윽박지르듯 말했다.

“여기서 그런 옷차림으로 뭐 하고 있는 겁니까!”

“겨, 경찰 아저씨. 그게 아니라…….”

자신들도 왜 이런 옷차림으로 여기서 나뒹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리려 해봐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애들하고 술 마신고 걸어가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건 남자만 겪는 현상이 아니었다.

그들과 같이 술자리를 함께했던 나머지 친구들도 필름이 끊겨 있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아야…… 누가 나 때렸냐? 배가 왜 이렇게 아프지?”

“나도. 니들이 잠결에 수작 부린 거 아니야?”

“미친 새끼야. 내가 그런 짓을 왜 하냐?”

“뭐? 미친 새끼? 이 녀석 말 뽄대 봐라?”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냐?”

결국 서로 시비가 붙고 말았다.

팬티만 걸친 채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친구들끼리 서로 싸우는 네 남자를 보면서 경찰관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숙소로 돌아온 이연은 자신의 손끝에 맴돌고 있는 푸른 마나 덩어리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정신계 마법을 익혀두길 다행이네.’

원래 사람의 정신을 조작하는 마법은 상당한 고난이도에 속한다.

사실 이연이 마법을 배우기로 결심한 계기가 바로 이 정신 조작 마법 때문이었다.

음유시인들 역시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무대 활동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시라이시 유키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연은 괴로워하는 동료 배우들을 위해서 그 기억만 골라 없애줄 수 있는 마법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설마 환생하고 나서도 이 마법을 사용하게 될 때가 올 줄은 몰랐다.

이연은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아주 짧은 단편의 기억만 제거시킬 수 있었다.

남자들과 시비가 붙었던 일은 고작 해봐야 5분 남짓이다.

‘5분의 기억을 지우는 건 쉽지.’

하니엘 멤버들과 연관되어 있는 기억들을 싸그리 다 삭제시킨 이연은 그들의 옷가지들을 다 벗겨 버린 채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큰 길가에 버려두고 왔다.

이연의 예상대로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감정이 상해서 열심히 투닥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는 멤버들끼리 홈 파티를 하면서 오늘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 지으려고 했지만.

방금 전의 일 때문에 그렇게 홈 파티를 열기 애매해졌다.

이연에 방에서 나오자, 우미가 그녀에게 조용히 물었다.

“애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마.”

괜히 다른 멤버들에게 말해봤자 걱정만 끼칠 테고. 그래서 이연은 일부러 방금 있던 일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멤버들이 좀 늦는다 싶어서 찾으러 갔던 게 신의 한 수였다.

만약에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하니엘 멤버들은 데뷔도 하기 전에 뉴스 1면에 실렸을지도 모른다.

이연은 여솜과 비아가 모여 있는 2인실 방으로 향했다.

“어때. 좀 진정이 됐어?”

“우리야 괜찮긴 한데…….”

여솜이 유키의 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키가 더 걱정돼.”

유키는 정신적으로 타격이 클 것이다.

멤버들 앞에서 자신의 감춰왔던 면을 드러내고 말았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연은 유키의 방으로 넘어가보기로 했다.

유키는 곰 인형을 끌어안은 채 이불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이연이 왔음을 알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숨기려 했다.

“……다 끝났어요.”

“뭐가?”

“여솜 언니하고 비아가 제 원래 모습을 알아버렸잖아요.”

침울해 하는 유키의 모습이 이연에게는 그저 귀엽게 보였다.

“유키. 동전에 앞면하고 뒷면이 있는 거, 알고 있지?”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네가 지금까지 사람들 앞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앞면이라고 한다면, 숨겨왔던 본래 모습은 뒷면이 되겠지. 근데 말이야. 앞면과 뒷면, 어느 면이 사람들에게 보여지느냐는 중요치 않아. 왜냐하면 어떤 면이든, 둘 다 동전인 건 똑같잖아. 안 그래?”

동전이 지폐가 되는 것도, 다른 물건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시라이시 유키라는 사람도 똑같다.

그녀가 어떤 모습을 하든, 시라이시 유키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그러니까 멤버들 앞에서만큼은 굳이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아도 돼.”

그렇게 자신을 계속 숨기려고 하면, 언젠가 지치게 마련이니까.

이연은 이런 타입의 사람들을 줄곧 봐 왔다.

그래서 유키에게 미리 조언을 해주기로 결심한 거였다.

이불을 걷어내고서 얼굴만 빼꼼 내민 유키가 이연에게 재차 물었다.

“멤버들이 저 싫어하지 않을까요?”

“왜 싫어하겠어? 그런 상황 속에서 여솜이하고 비아를 지켜주려고 했는데. 지금도 두 사람, 본인보다 네 걱정만 하고 있어.”

“…….”

“걱정하지 말고 숙소에 있을 때만큼은 편하게 지내도록 해. 나도 멤버들한테 잘 말해줄 테니까.”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를 요구하는지 이연도 잘 안다.

힘들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연의 말에 힘을 얻은 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게요, 언니.”

무섭고 두렵지만.

유키는 조심스럽게 먼저 걸음을 내딛어보기로 했다.

* * *

이연의 예상대로, 멤버들은 유키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녀를 싫어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져서 좋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이제부터 숙소에서만큼은 가식과 내숭이라는 가면을 쓰지 않기로 한 유키.

여기까지는 좋지만.

“야, 이비아. 머리 치우라니까. 티비 안 보인다고.”

유키가 발을 뻗어 비아의 등을 꾹꾹 눌렀다.

그러자 비아가 발끈하면서 외쳤다.

“네가 앉아서 보면 되잖아!”

“원래 티비는 누워서 보는 게 국룰인 거 몰라?”

“며칠 전에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비아가 불편하면 내가 할게’라고 했으면서.”

“네가 본래 모습이 더 좋다며. 네가 선택한 시라이시 유키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

“아, 진짜!!!”

티격태격하는 막내들을 보면서 이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솔직해진 거 아닌가?’

그래도 뭐, 이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