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09화
제30화. 앞면과 뒷면(5)
LC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합동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임시 진행자 역할을 맡게 된 홍류현 실장이 먼저 멤버들이 사전 질문지에 대해 대답한 다음, Q&A 시간을 따로 가지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기자들은 멤버들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먼저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이연이 차례차례로 질문 내용을 읊었다.
“어떻게 해서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나요? 여기에 대한 대답을 드리자면…… 가요 무대를 보면서 처음으로 나도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 어렸을 적의 결심이 지금까지 쭉 이어져서 지금의 제가 이렇게 이 자리에 있게 된 거 같아요.”
루웰이 아닌 권이연의 실제 일화를 바탕으로 들려준 대답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권이연의 과거 기억들도 같이 공존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막힘없이 대답해 줄 수 있었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여기에 작곡, 작사 능력까지 갖추고 계신 거로 아는데. 어디서 배우셨나요? 하는 질문이 있네요. 이거는 독학으로 배웠습니다.”
독학이라는 말에 기자들의 입에서 동시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연의 대답을 다른 뜻으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그냥 재능이라고.
누군가한테 속성 과외로 배운 것도 아니고, 혼자서 인터넷 돌아다니면서 작곡, 작사 실력을 키웠다는데. 놀라는 게 당연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이연처럼 뚝딱 해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작곡, 작사 같은 전문적인 영역은 쉽게 발을 들이기가 힘들다.
결국 이연의 천재성이 더욱 돋보이는 대답이 아니었나 싶었다.
다른 멤버들도 차례대로 자신들에게 들어온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먼저 들려줬다.
그렇게 사전질문지에 관한 시간이 끝나고.
이제부터는 Q&A 코너가 시작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들 다수가 동시에 손을 들어 올렸다
홍류현 실장이 맨 앞에 앉은 남성 기자를 가리켰다.
“오투데이의 김수환 기자입니다. 권이연 연습생…… 죄송합니다. 권이연 양에게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아직 데뷔는 안 했지만, 이미 확정이 났기에 더 이상 그녀들에게 연습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건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수환 기자는 곧장 사과하면서 말을 바꿨다.
“SSS에서 하니엘 팀을 우승으로 이끈 장본인이시지 않습니까. 우승 이후에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합니다.”
“주변 반응은 굉장히 시끌시끌했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는데, 제 어머니하고 남동생, 그리고 남동생 친구들이 더 좋아하더라고요. 또 길거리 돌아다니다 보면 많은 분들이 알아보셔서 개인적으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친구분들도 많이 좋아하셨겠네요.”
“연습생으로 있는 시간이 길어서, 학교 친구들을 사귈 시간이 부족한 탓에 아직까지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이는 없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아이돌 연습생의 숙명과도 같았다.
그래도 이연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친구들 대신 쉽게 얻을 수 없는 소중한 팀 멤버들을 얻게 되었으니까.
다음, 중간 열에 앉아 있는 여성 기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는 너무 딱딱한 질문들만 하신 거 같아서요. 리샤 양에게 재미있는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네, 언제든지요.”
“혹시 햄최몇인가요?”
여성 기자의 재치 있는 말에 현장에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리샤도 한참을 따라 웃다가 확인 차원에서 기자에게 다시 질문 내용을 물었다
“햄최몇이라는 게, 제가 아는 그 ‘햄버거 최대 몇 개까지 가능?’이라는 줄임말 맞죠?”
“네. 정확합니다. 이런 질문이 은근히 하니엘 팀 관련 영상 댓글에 많이 달리더라고요. 저도 여기 오기 전에 몇몇 지인들한테 혹시 가능하다면 한번 물어봐 줄 수 있냐고 요청받을 정도였습니다.”
워낙 먹는 걸 좋아하고, 심지어 대식가로 잘 알려진 리샤다 보니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리샤의 생각이 깊어졌다.
“제가 최대로 많이 먹어봤던 게…… 일곱 개 정도일걸요?”
“저, 정말로요?”
“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영상 찍어서 SNS나 저희 하니엘 팀 공식 채널에 올려볼게요.”
리샤가 공약 아닌 공약을 걸었다.
이밖에 다른 멤버들에게도 차례로 질문이 쏟아졌다.
“진종일보의 유구태 기자입니다. 시라이시 유키 양에게 질문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마이크를 넘겨받은 유키가 환한 미소로 답했다.
“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한국으로 넘어오시기 전에 지하아이돌로 잠깐 활동하셨다는 걸 들었거든요. 사실인가요?”
일본 내에서는 지하아이돌(地下アイドル)이란 단어가 존재한다.
티비나 라디오 같은 주요 매체에 직접 출연하지 않고 소공연장 같은 곳에서 라이브만 하는 아이돌들을 가리켜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다.
유키에게는 당시의 일이 썩 좋은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인지, 순간 유키는 자신도 모르게 가면을 벗어던질 뻔했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다시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네, 사실입니다. 그때의 경험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때 활동하실 때 일화 같은 게 있으시다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건…….”
만약 유키가 의식하지 않았더라면, 방금 자신도 모르게 일본어로 쌍욕을 내뱉었을지도 몰랐다.
점점 굳어가는 유키의 반응을 보면서 이연이 재빨리 나섰다.
“아까 저희 실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다시피 오늘은 저희 하니엘 팀에 관해서만 질문해 주시면 어떨까요? 안 그래도 시간이 많이 촉박한데, 기자 여러분들도 하니엘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들을 알아 가시면 좋지 않으실까요?”
기자들도 이연의 말에 공감을 드러냈다.
이렇게 하니엘 멤버들 모두를 모아두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는 기회 자체가 흔치 않다.
홍 실장도 눈치껏 이연의 말을 강조해서 들려줬다.
“권이연 양 말이 맞습니다. 팬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실 만한 게 더 있지 않습니까? 언제 또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하니엘 활동에 관한 질문’ 마구마구 질문 주세요.”
유독 그룹 활동에 대한 부분을 강조해 말했다
권이연과 홍 실장의 활약 덕분에 유키가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질문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마이크를 내려놓은 이연은 슬쩍 유키의 표정을 살폈다.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사람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 같은 건 다들 가지고 있으니까.’
그녀의 가면이 깨지기 전에 질문을 커트해서 다행이었다.
* * *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유키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유키의 방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아직 숙소로 들어온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탓에 생활용품이랄 게 별로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딱 하나 존재하는 인형이 있었다.
이연이 여솜에게 선물로 줬던 뱃살 토끼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곰돌이 인형.
침대 위에 올려놓은 곰 인형을 향해 유키는 주먹을 내질렀다.
“XXX! 그 기자 XX! 질문을 뭐 그따위로 해? 나중에 두고 봐! 내가 반드시 복수할 테니까!”
퍽퍽퍽.
인형을 향해서 너무 정신없이 화풀이를 한 걸까.
이연이 노크하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방문을 연 이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다른 멤버들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
화들짝 놀란 유키가 애써 웃는 얼굴로 이연을 맞이해 보지만.
이미 늦어도 너무 늦었다.
“욕을 굉장히 능숙하게 하더라?”
“드, 들으셨어요?”
“가만히 있어도 들리게 되더라고.”
덕분에 재미있는 구경을 했다.
“한국 사람들보다 욕을 더 잘하네.”
“인터넷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외국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욕이라고. 일본어보다 한국어 욕이 내뱉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렇더라고요.”
찰진 무언가가 있다.
이연은 유키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녀도 한국어라는 걸 처음 접했을 때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연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건 절대로 아니다.
“아까 그 지하아이돌 관련 질문 때문에 그렇지?”
“……네. 돈 못 받고 공연한 적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팬미팅을 하면 성희롱은 기본이고. 물론 모든 지하아이돌이 그런 경험을 해본 건 아닐 거예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좀…… 그랬어요.”
말하고 싶지 않아 했던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유키가 가면을 쓰게 된 계기도 지하아이돌 활동으로 인해 생겨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었다.
프로필 촬영에 이어서 합동 인터뷰까지.
이틀 동안 유키는 몸보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동생을 위해서 이연이 작은 파티를 준비하기로 했다.
“멤버들끼리 모여서 파티 열 거니까 여솜이하고 비아하고 같이 근처 마트에 잠깐 다녀와.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오늘 늦게까지 먹고 마시고 그러자.”
“저희 내일 오전에 스케줄 있지 않아요?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고 들었는데.”
“다음 주로 미뤄졌대. 방금 매니저님한테 연락 왔어.”
“그래요?”
하루 정도는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마침 잘된 셈이었다.
“비아하고 여솜이 너 기다리고 있다니까 얼른 준비하고. 마트 위치, 어디 있는지 알지?”
“네.”
“바로 요 앞이니까 금방 갔다 올 수 있을 거야. 살 것들은 내가 여솜이한테 적어서 톡으로 보내뒀으니까, 추가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너희가 알아서 사 와도 돼. 대신에 리샤처럼 너무 많이 사 오진 말고.”
몸매 관리는 아이돌의 필수 덕목이다.
유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너무 무리해서 사 오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 * *
멤버들이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던 시간이 저녁 9시 반쯤이었다.
숙소로 복귀해서 씻고, 옷 갈아입고. 이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11시를 넘은 상태였다.
이연한테서 장보기 임무를 받고 나온 여솜이 다시 한번 흘러내린 가디건을 제대로 고쳐 입으면서 말했다.
“아으, 추워라! 우리, 후딱 먹을 거 사고 얼른 들어가자.”
“네, 언니.”
유키도, 비아도. 추운 건 딱 질색이다.
조용한 동네라서 그런지, 10시만 넘어도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길 사이로 보이는 마트의 환한 불빛.
종종걸음으로 마트를 향해 나아가던 멤버들은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한눈에 봐도 술에 잔뜩 취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네 명이 멤버들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XX…… 내가 그러니까 이태원 가자고 했자나…… 거기 가면 썅, 여자들 졸라 많다거…….”
“……응? 야, 재들. 좀 반반하게 생기지 않았냐?”
반쯤 눈이 풀린 남자들이 멤버들을 발견하자마자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헌팅에 실패한 억울함을 풀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남자들은 순식간에 멤버들을 에워쌌다.
“아가쒸덜. 우리랑 한잔하러 갈뤠?”
“술은 우리가 쏜다!”
얼마나 술에 취한 건지. 아니면 아예 티비나 인터넷을 안 접하고 사는 모양인지. 남자들은 눈앞에 있는 여성들이 하니엘 멤버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비아와 여솜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해하고 있었다.
도망치지도 못하고. 겁먹은 멤버들을 보자마자 유키의 표정이 변했다.
“XX들아. 술에 취했으면 얌전히 집에나 쳐들어가.”
그녀가 가면을 벗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