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08화
제30화. 앞면과 뒷면(4)
권이연의 한마디를 듣고 유키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혼란으로 가득 차올랐다.
어떻게 하면 좋지?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머리가 새하얗게 된 탓에 이다음에 보여줘야 하는 행동조차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어…… 그러니까…… 그, 그게…….”
결국 유키가 고장이 나버렸다.
이연은 그런 유키를 귀엽다는 듯이 조용히 바라봤다.
때마침 리샤가 샤워타월 하나만 몸에 걸친 채 이들이 있는 주방으로 다가왔다.
“아, 스마트폰 여기 있었네.”
이연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무리 숙소라도 그렇지. 발가벗고 돌아다니지 좀 마, 제발.”
“그래서 이렇게 샤워타월 걸치고 온 거잖아.”
“그게 그거라고.”
조심이라고는 1도 없는 동갑내기 멤버 때문에 유키보다 이연이 더 당황하고 말았다.
리샤가 유키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유키. 미안한데 거기 있는 내 스마트폰 좀 줄래?”
“아, 네! 언니!”
“근데 왜 케이크를 들고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 서 있는 거야? 설마 배불러서 못 먹을 거 같아?”
“아,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촬영감독님이 사주신 케이크를 그냥 버리려고 하겠어요? 정성이 이렇게 가득한데. 그, 그릇으로 옮겨 담아서 먹으려고 했던 것뿐이니까 오, 오해하지 마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키는 다시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가식이라는 가면을 썼다.
리샤는 유키의 말에 그럴 줄 알았다면서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다시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갔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리샤가 다시 방 안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며 말했다.
“못 먹을 거 같으면 버리지 말고 놔둬. 내가 먹을게.”
“그, 그렇게 할게요!”
방심할 수가 없었다.
리샤가 정말로 갔는지 계속 눈치를 살피던 유키는 다시 가면을 벗고 본인의 원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저에 대해서 언제부터 알고 계셨던 거예요?”
당혹감으로 가득 물든 유키와 달리, 이연은 다리를 꼬고선 다 못 마셨던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는 여유를 보였다.
“파이널 무대 생방 때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화장실에서 너하고 우연히 만나서 내가 베네핏 쓸 거라고 미리 말했을 때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어.”
“그걸 어떻게…….”
“너는 잘 숨겼다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베네핏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네 표정하고 눈빛이 순간 달라지는 게 보였거든.”
늘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이고, 애교 넘치던 유키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그녀 속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인격이 아주 잠깐 유키의 몸을 차지했던 것 같은 이질감을 줬었다.
“그때는 확실까지는 아니었고. 의심하는 단계 정도였지. 그러다가 박도수 매니저님이나 너하고 오랫동안 연습생 생활을 같이 해왔던 사람들한테 너에 대해 알음알음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로 조금씩 조금씩 확신하기 시작한 거지.”
“그래서 저한테 방 배정 때 일부러 1인실을 쓰게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거예요?”
“맞아. 사람이 항상 가면만 쓰고 다닐 수는 없잖아? 가끔은 가면도 벗어줘야 숨통이 트이는 법이니까.”
“…….”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역시 숙소 생활이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한들, 전생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연과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끝까지 자신의 본성을 숨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네 태도가 나쁘다고 지적할 생각은 없어. 연예인들이 다 그렇잖아? 카메라 앞과 뒤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을 테니까. 나도 그렇고.”
“하지만 언니는…….”
완벽하잖아요.
이 말을 하려다가 도중에 관뒀다.
자신은 질투심이 많고, 조금만 틀어지는 일이 벌어져도 금세 짜증을 내고. 촬영감독의 말에 금방 삐칠 정도로 속도 좁다.
하지만 이연은 다르다.
아이돌로서의 능력치는 이미 MAX를 찍었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 리더십까지 겸비하고 있어 모든 연습생들이 그녀를 따랐다.
유키 역시 완벽한 그녀를 동경한다.
직접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이연은 유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나도 그렇고. 네가 더 잘 알겠지만, SSS 방송 시작 전부터 줄곧 1위를 유지했던 진절혜도 그랬잖아?”
“…….”
“단지 내가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야.”
커피 잔에 꽂혀 있던 빨대를 집어 들고서 그 끝으로 유키를 가리켰다.
“너무 극단적으로 자신을 숨기려고 하면, 언젠간 분명 지치게 될 거야. 잘 알아둬.”
“그러면 전 어떻게 해야 되나요?”
“넌 이미 답을 알고 있을 텐데?”
유키는 머리가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이연의 추측대로, 유키는 평생 자신이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멤버들과 이렇게 같이 숙소 생활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 이연에게 들킨 것처럼 다른 멤버들에게 무심코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전에 먼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연이 말하는 게 그것이고, 유키도 그걸 안다.
하지만 답을 알고 있다 해도 모두가 다 그 답대로 행동하는 건 아니었다.
“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어요.”
멤버들에게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숭에 가식덩어리인 자신을 과연 멤버들이 좋게 봐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에 대해서 이연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도 샤워나 하러 들어가 봐야겠다.”
의자에서 벗어난 이연은 기지개를 쭉 켜면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전에 유키의 말이 이연을 잠시 멈춰 세우게 만들었다.
“이연 언니! 방금 일은…….”
“알았어. 멤버들한테는 비밀로 하고 있을게. 나 입 무거운 편이니까 걱정하지 마.”
유키가 아는 권이연이란 여자는 자신이 한번 내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비밀로 해주겠다는 저 말은 믿어도 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겠지.”
들고 있던 케이크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 * *
프로필 사진 촬영 다음 날.
박도수 매니저가 미리 말했던 대로 오늘은 언론들과의 단체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어제처럼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멤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기사가 업로드될 예정이었기에 기본적인 메이크업은 받아야 했다.
샵에 들를 것도 없이 이연이 직접 돌아가면서 멤버들의 일일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자처했다.
“자, 다음.”
막 이연의 손길을 통해 재탄생하게 된 비아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선 크게 놀랐다.
“우와! 뭐야, 이 언니! 저번보다 실력이 더 늘은 거 같은데?”
메이크업, 네일, 헤어 스타일링 등등.
이연은 미용에 관해서 다방면으로 높은 실력과 센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현직 종사자들조차도 놀랄 만큼 그녀의 솜씨는 본격적이고 전문적이었다.
“이다음은 여솜이지?”
“응!”
나여솜이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면서 이연과 마주 앉았다.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여솜은 굉장히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잠깐만 실례할게.”
이연의 얼굴이 바짝 가까워졌다.
그녀의 숨결이 바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럴수록 여솜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뒤에서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리샤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여솜이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워하고 있어, 지금.”
“그, 그런 거 아니…….”
여솜이 말을 계속 이으려고 하던 찰나.
“쉿.”
이연이 그녀를 조용히 시켰다.
“말하면 화장 망가져.”
“…….”
여솜은 말 대신 눈빛으로 이연에게 미안함을 담아 보냈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존재해도 되는 걸까.
여솜은 자신의 메이크업 상태보다 이연의 아름다운 미모에 더 반해 버렸다.
“자, 됐어.”
“버, 벌써 끝났어?”
“다른 멤버들도 해줘야 하니까.”
아쉬움이 가득 남지만, 그렇다고 계속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억지로 들어 올린 여솜.
이연이 이후의 순번을 불렀다.
“다음, 시라이시 유키.”
유키는 세상 어색한 표정으로 이연의 앞에 앉았다.
어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들켜 버린 탓에 그녀와 마주 앉는 게 어떤 의미로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연은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티를 내면 멤버들이 의심할 테니까.
완벽하게 감정을 숨긴 이연의 모습을 보면서 유키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 언니가 나보다 더 가면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연이 추가 지시를 건넸다.
“고개 잠깐만 왼쪽으로 돌려볼래?”
“이렇게요?”
“어. 그대로 가만히 있어.”
유키는 이연에게 메이크업을 받아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언니는…… 아, 지금은 말해도 돼요?”
“어. 상관없어. 아이라인 그리는 중이니까.”
허락을 받자마자 유키는 궁금했던 것을 그녀에게 물었다.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예요?”
“그냥 자연스럽게 터득한 거지. 너도 그렇고. 다른 멤버들도 기본적인 화장법 정도는 알고 있잖아?”
“근데 언니가 하는 건 그 ‘기본적인’ 범주를 한참 넘은 거 같은데요.”
무대에 서는 게 그녀에게는 일상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이연은 자신이 무대에 서지 않는 날에도 이렇게 동료 음유시인들을 위해서 미용사로 일하곤 했었다.
오죽하면 귀부인들조차 전문가들을 놔두고 이연에게 화장과 헤어 스타일링을 부탁했을까.
그 정도로 그녀의 실력은 가히 톱이라 볼 수 있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멤버들 화장을 전부 맡아준 이연은 마지막으로 직접 자신의 얼굴까지 꾸미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을 종료했다.
픽업하러 온 박도수 매니저와 합류해서 LC 엔터테인먼트로 향한 하니엘 멤버들.
합동 인터뷰를 위해 모인 기자들이 벌써부터 미팅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멤버들이 등장하자, 기자들이 뜨거운 박수로 그녀들을 맞이했다.
누가 보면 인터뷰가 아니라 팬미팅 현장인 줄 알 것이다.
워낙 많은 기자들이 몰린 탓에 박도수 매니저뿐만 아니라 홍류현 실장, 그리고 기타 LC 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여럿이 일일 스태프로 활동하기 위해 곳곳에 배치되었다.
시작 전에 홍류현 실장이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인터뷰 하시는 동안, 가급적이면 예민하거나 팬 여러분들이 불편해 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은 조금씩만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멤버들은 아직 정식 데뷔를 가지지 않았다.
이런 경험도 처음이었기에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 들어오면 멤버들은 당황할 수 있다.
그래서 홍류현 실장이 이렇게 미리 기자들에게 말을 하기로 한 거였다.
이연도 홍류현 실장처럼 미리 주의를 주고 싶은 멤버들이 몇몇 있었다.
“비아하고 리샤. 말하기 전에 한 번씩 생각해 보고 난 다음에 입으로 뱉어. 알았지?”
두 사람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
유키에게는 가면 잘 쓰고 있으라고 눈짓으로만 이야기를 해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