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06화
제30화. 앞면과 뒷면(2)
LC 엔터테인먼트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될 하니엘 멤버들의 프로필을 촬영하기 위해 그녀들은 어제저녁, 일찍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숙소라는 새로운 환경 때문인지, 멤버들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전 7시.
가장 먼저 눈을 뜬 이연은 가볍게 기지개를 켠 뒤, 허리를 세운 채 눈을 감고 정좌를 취했다.
집에 있을 때에도 늘 하던 버릇 같은 거였다.
그녀의 주변에 푸른 마나가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다.
명상을 하면서 이렇게 마나를 조금씩 움직이는 훈련도 같이 병행하고 있었다.
기껏 배운 마법인데. 하도 사용을 안 해서 나중에 다 까먹으면 너무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 거 같아서였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건 상당한 메리트가 된다.
실제로 이 마법 덕분에 이연은 많은 도움을 받았다.
10분간의 짧은 명상을 마친 이연은 그제야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쳐 거실로 나왔다.
숙소 안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티비 리모컨, 에어컨 리모컨 옆에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 작은 커튼 리모컨을 눌렀다.
그러자 커튼이 자동을 접히면서 환한 아침 햇살의 출입을 허락했다.
이연이 거실에서 홀로 아침을 맞이하는 사이, 두 번째로 기상한 멤버가 모습을 나타냈다.
리샤의 헝클어진 금발의 머리카락이 마치 사자 갈기를 연상케 했다.
“잘 잤어?”
먼저 여유롭게 인사를 건네는 이연과 달리, 리샤는 아직도 잠에 취해 있는 모양인지 잠긴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아니…… 못 잤어…….”
“잠이 쉽게 안 와서?”
“……몰라. 새벽 4시까지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어…… 하아암……!”
쏟아지는 졸음과 하품.
분명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어제보다 더한 피곤함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건 리샤뿐만이 아니었다.
리샤와 함께 2인실을 쓰게 된 비아도 언니와 똑같은 몰골로 나타났다.
자매 같은 두 멤버의 모습에 이연의 입에서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서 가서 씻어. 매니저님이 8시 50분까지 차 끌고 오신다고 했으니까, 그때 준비 다 끝내고 나가야지.”
“……맞다, 그랬지…….”
이연 덕분에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2인실 팀의 기상을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씩 거실로 모여들었다.
멤버들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컨디션으로 아침을 맞이한 사람은 유키 정도였다.
“잘 주무셨어요, 이연 언니?”
“안녕. 어제 보니까 금방 잠든 것 같던데.”
“네. 저는 낯선 환경에서도 잘 자는 편이거든요. 처음에 한국으로 넘어와서 연습생 생활을 할 때에도 금방 적응했어요.”
이연도 박도수 매니저를 통해서 유키에 관한 일화를 몇 개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게 있으면 뭐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연습생.
그 덕분에 한국 생활을 오래 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빠른 시기에 데뷔까지 확정 짓게 되었다.
이연 같은 천재과와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노력형이다.
‘요즘은 노력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고 불리긴 하던데.’
아직 이연은 유키에 대해서 많은 걸 알지 못한다.
물론 그건 다른 멤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었다.
먼저 씻고 나온 리샤가 유키에게도 아침 인사를 건넸다.
“잘 잤어, 유키?”
“리샤 언니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말 편하게 해도 된다니까 그러네.”
“아니에요. 저는 이게 편해요.”
리샤가 거실 소파에 앉아서 머리를 위로 말아 올린 채 칫솔을 입에 물고 있는 시우를 응시했다.
“연시우 마크 2 들어왔네.”
“네? 뭐가요?”
“아무것도 아니야.”
시우도 아직도 언니들에게 말을 안 놓기로 유명한 멤버였다.
그렇다 보니 유키의 이런 태도에 자연스럽게 시우가 연상될 수밖에 없었다.
일곱 명이나 되는 멤버들이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맞이하니 상당히 북적일 수밖에 없었다.
권이연에게 있어서 이런 아침은 단합 여행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런 아침도 나쁘진 않네.’
처음에는 여섯 명이나 되는 여성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그래도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아 보여서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 * *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그녀들의 숙소를 방문한 또 다른 이가 있었다.
“오랜만이야, 얘들아! 잘 지냈어?”
“공예 언니!”
멤버들이 단발머리를 한 여성의 품에 안겼다.
서로 얼싸안고 반가움의 기쁨을 나누는 이들.
오늘부터 박도수 매니저와 함께 하니엘 멤버들과 움직이면서 코디를 책임지게 될 의상 담당, 최공예였다.
멤버들은 SSS 녹화 당시에도 의상 관련으로 최공예와 자주 이야기를 나눴었다.
나름 친했던 언니를 이곳에서 다시 보게 되니,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에는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박도수 매니저가 손목시계를 통해 현재 시간을 재차 확인하면서 멤버들을 독촉했다.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하니까 빨리빨리 이동하자.”
“네, 잠시만요.”
“신발만 신으면 돼요, 신발만!”
일곱 명의 멤버들이 숙소 현관문을 우르르 나섰다.
멤버들 숫자가 적은 편이 아니었기에 이동하는 데에 이래저래 불편함이 따랐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가 문제였다.
최공예가 나서서 박도수 매니저를 막아섰다.
“매니저님은 구석 쪽으로 가세요.”
“알고 있어, 알고 있다니까. 어휴, 참 나.”
혼자 남자인 게 조금은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건 박도수 매니저의 착각일 뿐이다.
사실 이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에 남자는 둘이다.
박도수 매니저, 그리고 권이연.
문이 열리자마자 박도수 매니저가 먼저 내렸다.
“차 근처에다가 주차했으니까 나 따라와.”
“네!”
마치 학생들을 인솔하는 교사처럼 박도수 매니저가 앞장서 걸어갔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박도수와 최공예가.
2열에는 이연과 우미가 탑승했다.
3열은 리샤와 여솜. 그리고 마지막 후열에는 막내 3인방이 자리를 잡았다.
이 좌석 배치가 이제는 거의 고정석 느낌으로 정해진 상태였다.
공예가 뒤를 돌아보면서 막내 3인방에게 물었다.
“안 불편해?”
“네. 저희는 괜찮아요.”
“시우하고 유키하고. 둘 다 몸집이 작아서 오히려 널널해요.”
그렇게 말하는 비아도 큰 체구는 절대로 아니었다.
다들 작고 소중하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리샤가 막내 3인방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요즘은 그룹 내에서도 멤버들 케미에 따라서 유닛 같은 걸로 묶어 부르고 그러던데.”
“아, 그거? 나도 알아.”
멤버들도 다 아는 눈치였다.
이연도 얼추 알고 있었다.
걸 그룹으로 데뷔할 예정인데. 이런 요소들은 기본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민트초코 좋아하는 멤버들을 묶어서 ‘민초즈’라고 부르기도 하잖아.”
“아이비제이 선배님들 중에서도 민초즈가 있지.”
“우리도 그런 거 자체적으로 만들어볼까?”
리샤의 제안에 우미가 후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러면 일단 하나 나왔네. 막내즈. 어때?”
동갑내기 19살 멤버들 셋이 하니엘의 막내라인을 담당하고 있으니, 나름 잘 어울렸다.
비아도 우미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쏙 든 모양인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멤버들간의 대화를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박도수 매니저가 슬쩍 물었다.
“그러면 막내즈 말고. 이연이하고 여솜이, 리샤도 동갑내기들이잖아. 거기도 뭐 하나 조합 만들어야 하지 않아?”
리샤가 먼저 아이디어를 냈다.
“20살이니까. 20살즈 어때요?”
“너무 단순하지 않나.”
“원래 이런 건 단순하게 지어야 제맛이에요. 그렇지? 우리 20살즈 멤버들!”
이연과 여솜은 침묵으로 대신 답했다.
홀로 남은 우미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리샤에게 물었다
“그러면 나는? 난 혼자인데.”
“언니는 그럼…… 싱글즈!”
“……우리, 그냥 조합 이야기는 없었던 거로 하자.”
그룹 활동이라는 게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 * *
숙소 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가지는 하니엘 팀의 공식 일정.
프로필 촬영을 위해 멤버들은 동일한 의상으로 갈아입기로 했다.
SSS 촬영 당시에 입었던 공식 유니폼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교복풍의 의상이었다.
화이트와 핑크 톤의 컬러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멤버들이 지닌 싱그러움과 풋풋함을 잘 살려냈다.
맨 먼저 권이연이 개별 촬영의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SSS에 출연했던 경험 덕분에 이연은 이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능숙해졌다.
“이연 씨! 여기 바라보시고요. 자, 하나, 둘, 셋!”
찰칵, 찰칵!
스튜디오 한가운데에 서서 포즈를 잡는 그녀를 다양한 각도에서 담아내기 위해 촬영감독이 온몸을 다해 움직였다.
“네, 너무 좋습니다! 표정만 좀 더 밝게, 호호 웃는 느낌으로 입꼬리만 살짝 올려보실까요?”
촬영감독의 요구에 따라 이연은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
“오! 지금 그 표정, 완벽합니다!”
입으로 이연을 칭찬하면서, 손가락은 쉴 틈 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개인 촬영을 마치고 직접 사진을 확인해 보는 시간.
촬영감독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연을 칭찬했다.
“눈빛 너무 좋죠? 확실히 모델이 예쁘니까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다 작품이 되더라고요. 이거, 이 사진 보세요. 저, 이 눈빛 보고 이연 씨한테 홀릴 뻔했다니까요?”
당사자보다 촬영감독이 더 호들갑이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
“김 감독님이 우리 회사 프로필 촬영 계속 맡아주시는 분인데, 이렇게까지 칭찬하는 건 처음이다.”
“그래요?”
“그만큼 네가 마음에 들었나 봐.”
이연도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좋다.
다만, 촬영감독의 칭찬은 이연에게 많은 부담감을 주긴 했다.
그래도 첫 타자였던 덕분에 빨리 끝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부터는 단체 촬영 때까지 대기하면서 다른 멤버들이 어떻게 프로필을 찍는지 뒤에서 편하게 구경하기만 하면 된다.
권이연의 뒤를 이어 다음 타자로 등장한 사람은 자칭 20살즈 멤버, 리샤였다.
리샤는 멤버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국적인 외모.
서양인과 동양인의 장점들만 섞은 것 같은 빼어난 미모에 촬영감독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상승했다.
“리샤 씨! 이쪽 보실까요? 하나, 둘, 셋!”
이연을 촬영할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촬영감독의 하이텐션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여기서도 찰칵, 저기서도 찰칵 소리가 났다.
“쪼그려 앉는 자세도 부탁드릴게요. 아, 치마 안쪽 안 보이도록 조심하시고요. 왼쪽 손은 턱을 괴는 형태로…… 네! 좋습니다!”
포즈를 취하기 어려워하는 멤버들에게는 방금처럼 직접 자신이 행동을 취하면서 예시를 들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프로필 촬영을 마무리 지은 촬영감독은 신이 난 목소리로 박도수 매니저를 찾았다.
“매니저님! 하니엘 팀, 너무 좋은데요? 나중에 오 대표님한테 말해서 제가 하니엘 팀 전담 사진가로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그새 하니엘의 팬이 되어버린 촬영감독의 주장에 박도수 매니저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대표님하고 한번 직접 상담해 보세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답하기 애매할 때에는 떠넘기기가 제일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