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05화
제30화. 앞면과 뒷면(1)
앞으로 숙소 생활의 만족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청결도, 편리한 가전제품의 개수도 아니다.
바로 누가, 어느 방에서 어떤 멤버와 같이 생활하느냐.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박도수 매니저가 설명하기 쉽게 아예 화이트보드를 가져와서 펜을 들었다.
“자, 방은 간단하게 4개로 나눴어. 우선 독방이 2개, 2인실이 1개, 나머지 3인실이 1개.”
“3인실이 있어요?”
비아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방에서 3명이 함께 지내면 비좁지 않을까 싶은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방을 보고 온 리샤와 시우는 비아에게 크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넌지시 말했다.
“방 엄청 커.”
“그리고 파티션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같은 공간만 공유할 뿐이지, 거의 개인실이나 다름없더라.”
“안에 따로 화장실도 있어서, 볼일 볼 때에도 편하고.”
우미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 리샤에게 매니저님 앞에서 그런 부끄러운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한 차례 크게 헛기침을 한 박도수 매니저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방 배정하기 전에 각각 어떤 방이 있는지 한 번씩 둘러볼 시간 줄 테니까 안심해도 돼. 아무튼 이렇게 나눴고, 나머지는 드레스룸, 그리고 창고. 이렇게 사용하는 게 좋아 보이더라. 화장실은 넉넉하게 있으니까 아침에 씻는데 문제는 안 생길 거야.”
화장실 개수만 총 네 개였다.
멤버들 과반수가 한꺼번에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여유롭다.
“그럼 한번 쭉 돌아다니면서 각 방부터 확인해봐.”
“네!”
멤버들이 각각 짝을 지어서 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연은 여솜과 둘이서 짝궁이 되었다.
서로 팔짱을 낀 두 동갑내기는 가장 먼저 독방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방 안을 보자마자 여솜이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매니저님이 왜 여기를 독방으로 지정했는지 알 것 같네.”
“그러게.”
확실히 좁다.
딱 한 명이 사용하기는 적정한 크기지만, 두 명 이상이면 많이 비좁아 보인다.
남은 다른 독방 하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장실, 주방, 그리고 거실과의 거리도 멀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은 고립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대신에 혼자서 사용할 수 있는 큰 이점을 지녔다.
이다음은 2인실의 차례.
방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이층 침대였다.
“우와! 나, 층 침대 처음 봐!”
여솜이 손으로 침대를 가리키면서 어린아이처럼 들뜬 모습을 보였다.
이연은 의외로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환생하기 이전의 삶에서는 서민들 사이로 이층 침대가 많이 보급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귀족들은 개별 침대를 쓰긴 했었다.
2인실은 1인실보단 주방과 거실이 비교적 가까운 편이었다.
게다가 화장실도 따로 붙어 있고.
창도 커서 환기도 잘될 것 같아 보였다.
이제 마지막으로 3인실을 둘러볼 차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연과 여솜은 동시에 감탄사를 흘렸다.
생각보다 방 크기가 상당히 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봤던 방들 중에서 가장 뷰가 좋다.
마치 풍경화처럼 새파란 하늘과 그 아래에 넓게 펼쳐진 시티뷰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처음에 이연은 박도수 매니저가 방을 소개할 때, 3인실이 가장 인기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뷰만 보더라도 가산점 50점은 먹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2인실과 마찬가지로 화장실이 기본 옵션으로 붙어 있고.
무엇보다도 방문을 열면 바로 거실로 이어진다.
주방과의 거리도 여러 개의 방 중에서 가장 가깝다.
“단체 생활 좋아하는 멤버들은 무조건 3인실 고르겠네.”
이연의 혼잣말에 나여솜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현했다.
방은 대충 둘러봤고.
다시 박도수 매니저가 있는 거실로 향하려고 할 때, 나여솜이 이연에게 떠보듯 물었다.
“연이는…… 어느 방 고를 거야?”
“나?”
“응. 기왕이면 나하고 2인실 쓰면 어떨까 싶어서…….”
얼굴 표정에서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이 동시에 표현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만지작하면서 수줍게 이연에게 2인실을 제안해 보는 나여솜이었으나.
중간에 비아가 훼방꾼을 자처했다.
“이 언니 봐라? 숙소 생활 시작한 지 아직 하루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연이 언니 꼬시려고 하네. 사내 연애는 금지야, 금지!”
“어머머! 누가 꼬신다고 그러니? 난 그냥…… 친구니까. 원래 친구끼리 같은 방 사용해야 더 편하고 그러잖아. 안 그래?”
“보통은 그렇긴 한데. 여솜 언니는 사심이 너무 담겨 있다는 게 문제라고.”
“그런 거 아니라니까?”
또다시 시작된 두 사람의 가벼운 말싸움.
박도수 매니저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둘의 싸움을 만류했다.
“오늘 방 배정도 해야 하고. 조금 있다가 이번 주 스케줄도 알려줄 거야. 할 일 많다고. 그러니까 빨리빨리 진행하자.”
박도수 매니저가 적절하게 끊어준 덕분에 숙소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아까처럼 다시 거실에 모여 앉은 일곱 명의 멤버들.
방을 정하기에 앞서서.
“먼저 본인이 어떤 방을 쓰고 싶어 하는지, 나한테 개인 톡으로 따로 적어서 보내줘. 일단 거기에 맞춰서 방 배정을 해볼게.”
고개를 끄덕인 멤버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박도수 매니저에게 원하는 방을 적어 톡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연의 경우에는 당연히 1인실이었다.
‘여솜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다른 여성들과 같은 방을 쓴다는 건 그녀의 유교 정신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멤버들의 개인 톡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박도수 매니저는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바로바로 정해지진 않을 거 같네.”
일곱 명이나 되는 멤버들이 각각 4개의 방을 선택하는 일이니까.
그만큼 경우의 수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우선 1인실부터 정해보자. 방은 너희들도 알다시피 2개뿐이고. 지원자는 이연이하고 유키, 그리고 우미. 이렇게 셋이야.”
이연은 시우도 1인실을 지원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였다.
한편, 나여솜은 이연에게 왜 1인실을 지원했냐고 원망의 목소리를 냈다.
“난 그냥 1인실이 편해.”
권이연. 쉽게 넘어오지 않은 여자였다.
박도수 매니저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자자자! 일단 세 명 모두가 다 1인실을 쓸 수는 없고. 한 명만 양보하면 될 거 같은데.”
그 전에 이연이 먼저 손을 들었다.
“저, 할 말 있습니다.”
“그래, 리더. 말해봐.”
“유키한테는 무조건 1인실을 주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자신도 아니고, 유키에게만큼은 1인실을 할당해주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하니 멤버들뿐만 아니라 박도수 매니저조차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론 시라이시 유키 본인도 같은 반응이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에게 그 이유를 묻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먼저 들려줬다.
“오히려 나는 유키가 혼자서 일본에서 넘어왔으니까.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려면 다른 멤버들하고 같이 생활하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근데 제가 봤을 땐, 유키는 1인실을 쓰는 게 훨씬 나아 보여서요.”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에 유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이 잠깐의 표정 변화를 캐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우미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연이 말대로 할래?”
“그럼 제가 양보할게요. 1인실은 연이하고 유키, 이렇게 둘이 쓰게 해주세요.”
이연이 그럴 필요 없이 방 하나 두고 간단하게 자기하고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면 된다고 말을 했지만, 그럼에도 우미는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실 난 1인실이든 2인실이든 3인실이든 상관없어. 매니저님이 하나만 골라서 보내달라고 하셔서 그냥 아무거나 적어서 보낸 거니까 1인실은 너희가 쓰면 돼.”
우미는 여태껏 쭉 자취 생활을 했었다.
지금까지 충분히 혼자서 잘 살아왔기에, 이번에는 시끌벅적하게 지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결국 우미의 양보 덕분에 이연과 유키, 이렇게 둘이 1인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원하는 방을 쓰게 되어 기쁠 텐데도 불구하고 유키는 마냥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연이 한 말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 * *
방 배정 결과.
“1인실은 이연이하고 유키, 2인실은 비아하고 리샤, 그리고 남은 3인실은 시우하고 여솜이, 우미. 이렇게 정하기로 한 거다. 알았지?”
“네!”
40분에 걸쳐서 겨우 방 배정을 완료했다.
시간을 확인한 박도수 매니저는 혀를 짧게 차면서 ‘야단났네’라는 혼잣말을 흘렸다.
“할 이야기 많은데.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대. 일단 짐은 나중에 정리하고. 우선은 이번 주 스케줄부터 공유해줄게. 화이트보드 판에 내가 정리해서 따로 적어줄 테니까 잊어버렸다 싶으면 이거 봐.”
그렇게 말하고서 박도수 매니저가 필기와 동시에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일은 프로필 촬영 있으니까 여기서 아침 9시에 출발할 수 있게끔 준비해둬. 그다음날에는 언론사들하고 단체 인터뷰 잡혀 있고, 그리고 토요일에는…….”
아직 데뷔하지도 않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스케줄이 꽤 빡빡했다.
일주일 치 스케줄만 하더라도 넓었던 화이트보드판 하나를 꽉 채울 정도였다.
물론 박도수 매니저가 상세하게 내용을 적느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건 변함이 없었다.
쉬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 대신 마른침을 꿀꺽 삼킨 리샤가 손을 들고 말했다.
“매니저님. 누가 보면 저희, 벌써 데뷔한 줄 알겠어요.”
“사실상 이미 데뷔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데뷔 무대만 안 가졌을 뿐, 벌써 오리지널곡 3개 이상 발표하고. 녹방, 생방도 나가보고. 그리고 브랜드 평판 순위에 이름도 올려보고. 이 정도면 데뷔했다고 봐도 되는 거 아니야?”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거리를 돌아다녀 봐도 그녀들의 인기를 단번에 실감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에 데뷔 앨범이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만 끼워넣기만 하면 된다.
외부 스케줄만 잡혀 있는 건 아니었다.
보컬, 안무 트레이닝 등. 좀 더 완벽한 데뷔 무대를 선보이기 위한 연습 과정도 담겨 있었다.
SSS에서 우승했다 할지라도 연습과 이별 선언을 한 건 절대로 아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선배 가수들도 필요할 때마다 지금도 보컬, 댄스 레슨을 받는다.
꾸준한 연습과 노력은 기본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다음 주쯤에 너희들 데뷔 타이틀곡 나올 거라고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정말이에요?”
“저희 곡, 드디어 나오는 거예요?”
데뷔곡에 관한 소식을 듣자마자 멤버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그녀들의 열띤 반응에 박도수 매니저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찐 프로님이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니까 기대하고 있어.”
진세혁 프로듀서라면 믿고 맡겨도 되는 사람이다.
낯선 세계에서 눈을 떠 처음으로 발표하는 데뷔곡.
오랜만에 이연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