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04화 (104/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04화

제29화. 아는 오빠(2)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서 통화를 하며 2층으로 올라온 양우섭은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여보세요, 이사님?

“예? 아, 황 부장님. 제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나중에 이어서 통화하죠.”

전화를 끊은 양우섭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설마 이곳에서 이렇게 유명하신 분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요즘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걸 그룹, 하니엘의 멤버들과 여기서 만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어리둥절해하는 비아와 달리, 이연은 양우섭을 알고 있다는 사람처럼 침착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권이연입니다. 저번에 우미 언니한테 대신 말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고교생 누나예요.”

“네, 알고 있습니다. 친구들하고 같이 이연 씨를 엄청 열심히 응원하더라고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따로 테이블을 잡아서 앉으라고 하기에도 좀 그랬다.

“괜찮으시다면 이쪽으로 오셔도 돼요.”

“그럴까요?”

양우섭이 그녀들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한편. 가까이에서 양우섭을 몰래 지켜보던 비아가 이연의 팔을 찰싹찰싹 때렸다.

“누, 누구야, 이 잘생긴 오빠는!”

“아까 말했잖아. 우미 언니 오빠분이라고.”

“진짜?”

비아는 이연이 저렇게 생겼다고 말할 때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우섭이 무슨 호랑이도 아니고. 제 말 하면 알아서 딱 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 만남은 기가 막힌 우연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안 그래도 양우섭 역시 동생과 같은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멤버들과 이런 식으로 만남의 자리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에게 있어서 여동생은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우미는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

그런 건 오히려 지인이 가족에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서로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우미가 오빠와 연락을 거의 나누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였다.

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 잘 지내는 거 같아요. 다음 주에 숙소 생활 시작한다고 미리 요리 연습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군요. 예전에는 요리도 잘 못하던 아이였는데. 많이 성장했네요.”

“저기…….”

비아가 양우섭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미 언니는 가족분들하고 아예 교류를 안 하는 거예요?”

양우섭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초면에 가정사를 묻는 건 너무 실례되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이 든 이연이 도중에 말을 끊었다.

“죄송해요. 비아가 우미 언니 일에 관심이 많아서 그랬어요.”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생방송 무대 때에도 이상하게 보였을 테니까요.”

분명 가족이 왔는데. 우미는 아무도 안 왔다고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마치 스스로 가족이라는 존재와 멀어지려고 하는 사람처럼.

그러나 아예 가족들과 척을 질 생각은 아닌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생방송 무대가 끝나고 나서 뒤늦게나마 양우섭을 찾으려는 행동이라든지.

이런 걸 보면, 여전히 우미의 가정사는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도 마음 같아선 속 시원하게 말씀드리고 싶지만…….”

아까부터 울리는 양우섭의 스마트폰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많이 바쁘신가 보네요.”

“네. 회사 들어가기 전에 커피 한잔하면서 좀 쉬었다가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트러블이 생겨서요.”

주문한 커피의 반의반도 못 마신 채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가기 전에 양우섭은 이연과 비아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혹시나 우미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우미는 저나 가족들한테 절대로 연락 안 하려고 하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워낙 미인들이셔서 제가 긴장을 많이 했네요.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젠틀한 모습을 보이는 양우섭.

그가 사라지자마자 비아가 감탄을 흘렸다.

“말만 안 탔지, 완전 백마 탄 왕자님 스타일인데? 잘생기고, 매너 있고, 성격도 좋아 보이고.”

“그러게. 왕자님답게 재력도 상당해 보이네.”

이연의 시선이 양우섭의 명함으로 꽂혔다.

[YN그룹 양우섭 이사]

대한민국 5대 대기업이라 불리는 곳 중 하나인 YN그룹.

저렇게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이사직을 달고 있다는 것은.

‘아버지가 힘 좀 쓰는 위치에 있다는 뜻인데.’

공교롭게도 YN그룹의 회장 역시 양씨 성을 가진 남자다.

이것도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 어쩌면.

‘필연일지도.’

양우미의 가정사를 둘러싸고 있는 짙은 안개가 조금씩 이연의 머릿속에서 걷히고 있었다.

* * *

또 한 주가 흐르고.

드디어 하니엘 팀의 숙소 생활이 시작되는 첫날이 밝았다.

일 나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의 어머니는 딸이 뭐 잊은 게 없는지, 하나하나 다 체크에 나섰다.

“방에 있는 옷가지들은 안 가지고 갈 거니?”

“네. 어차피 가져가도 안 입을 거예요.”

대부분은 치마였다.

본인도 치마라는 의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본능이 이를 열심히 거부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치마 몇 벌은 챙기긴 했다.

“옷 더 필요할 거 같으면 거기서 살게요.”

“그러면 엄마가 돈 좀 줄까?”

“아니에요. 저 돈 많이 있으니까 저번처럼 단합 여행 간다고 억지로 저한테 돈 주지 마세요.”

우승으로 받은 상금도 있으니까. 어디 가서 돈 없다는 소리를 할 정도는 절대로 아니다.

하나하나씩 자기 차에 짐을 챙기는 이연.

배웅을 나서기 위해 어머니와 남동생이 총출동했다.

“가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엄마한테 언제든지 말하고. 알았지?”

“네, 그렇게 할게요.”

“누나. 거기서는 다른 누나들하고 싸우지 마.”

“걱정 마. 너한테만 사납게 굴었던 거니까.”

멤버들한테는 그렇게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이제는 다들 알아서 잘하기 때문이다.

쉬는 동안 열심히 갈고 닦은 운전 솜씨를 뽐내면서 내비게이션에 하니엘 숙소로 사용될 곳의 주소를 입력했다.

“중간에 시우가 픽업해 달라고 했었지.”

가족이 바래다주기 힘든 멤버들은 자차와 면허증을 가진 멤버 몇몇이 나눠서 직접 픽업하기로 했다.

이연의 픽업 대상은 시우였다.

연시우가 선정된 이유는 단순했다.

거리가 가까워서.

단지 그뿐이었다.

미리 픽업 장소에 나와 있던 시우가 손을 흔들면서 이연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차에서 내린 이연은 시우가 가져온 짐들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전부야?”

“네.”

커다란 캐리어 하나에 작은 백팩 하나.

이걸로 끝이었다.

“난 짐이 더 있을 줄 알았는데.”

“다 낡은 옷들밖에 없어서 이왕 짐 정리하는 거, 그냥 다 버리기로 했어요. 더 필요한 거는 이사한 다음에 따로 나가서 사 오려고요.”

마침 이연이 어머니에게 했던 말과 똑같았다.

시우를 도와서 하나하나씩 뒷좌석에 짐을 실은 뒤, 차를 타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시우, 너는 부모님이 숙소 생활 한다고 하니까 걱정 안 하셨어?”

“딱히 그러진 않으셨어요. 저는 중학생 때에도 기숙 생활 했었거든요.”

어려서부터 자립심으로 강하게 큰 아이가 바로 연시우였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시우는 스마트폰으로 엊그제 데뷔한 신인 걸 그룹의 영상을 시청했다.

운전에 집중하던 이연은 노랫소리만 듣고도 어느 그룹인지 바로 알아맞혔다.

“에슬러 선배님들 노래지?”

“네. 엄청 귀여우시더라고요. 저희하고 똑같이 7인조 그룹이에요.”

“나도 어제저녁에 봤어. 다들 잘하시더라.”

“단점은 안 보이셨어요?”

“단점?”

“이연 언니라면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다 꿰뚫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서요.”

이연은 쓴 미소를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들에게는 선배님 되는 분들이니까. 일부러 말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아무래도 긴장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중간에 보면 안무가 살짝 삐끗한 부분이 몇 군데 보여. 1분 32초, 2분 10초, 그리고 마지막 엔딩 포즈 때.”

“초 단위로 기억하고 계신 거예요?”

“이렇게 기억하고 있어야 나중에 그 부분만 체크해서 볼 수 있거든.”

아이돌들이 어떤 안무 동작에서 실수를 많이 하는지. 혹은 요즘 유행하는 동작이 어떤 게 있는지.

이런 것들을 파악해 두고 있어야 나중에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무대를 기획할 수 있다.

이연의 꼼꼼한 면모에 시우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대단하세요.”

“대단할 것까지야.”

이연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이었지만, 시우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에 리더의 품격일까.

오늘도 시우의 마음속에는 이연을 향한 존경심이 +1 상승했다.

* * *

숙소에 도착했을 때, 이연과 시우 팀보다 먼저 와서 짐을 풀고 있는 멤버들이 있었다.

우미와 리샤였다.

그녀들뿐만 아니라 박도수 매니저도 오늘 하루 동안 짐꾼을 자처해서 멤버들을 돕는 중이었다.

숙소 안에 들어서자마자 시우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60평 남짓한 상당한 크기의 숙소.

크기도 크기지만,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인지 새집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다.

“가전제품들도 새로 사신 거예요?”

박도수 매니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샀다기보다는 협찬받았어. YN전자에서. 우리가 먼저 연락한 것도 아닌데, 그쪽에서 이번에 멤버들 숙소 꾸미는 거 지원해 주고 싶다고 무상으로 다 제공해 주더라.”

YN전자라는 말을 들은 순간, 우미의 어깨가 한 차례 들썩였다.

시우의 말대로, 죄다 YN전자 제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백마 탄 왕자님이 여동생을 위해서 인심 좀 썼나 보네.’

죄다 올해 나온 신품들이었다.

리샤가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면서 말했다.

“저희가 YN전자 광고라도 찍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광고 모델 제의 들어오면 우리야 땡큐긴 하지. YN전자 쪽 페이가 많이 세거든.”

하지만 우미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연은 물어보지 않아도 그녀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짐을 옮기는 동안, 나머지 멤버들도 속속들이 숙소에 도착했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많은 짐을 자랑하는 사람은 단연 시라이시 유키였다.

“죄송해요, 매니저님. 제가 짐이 좀 많죠?”

“일본에서 왔으니까. 충분히 이해해.”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아니야, 아니야. 매니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유키의 애교 섞인 미소에 박도수 매니저는 더 힘이 나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리샤는 눈을 흘기면서 ‘나는 일본보다 더 먼 미국에서 왔는데’라는 작은 질투를 토해냈다.

그렇게 모든 연습생들의 짐을 무사히 다 숙소 안으로 옮겨둔 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박도수 매니저가 멤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누가 어느 방 쓸지 정해야지.”

숙소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방 배정이다.

평상시에는 같은 팀일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원하는 방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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