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99화 (99/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99화

제27화. 파이널 미션(5)

벨제브 팀의 첫 번째 무대가 끝나고.

“이제 하니엘 팀의 첫 무대를 만나보시겠습니다!”

벨제브 팀이 무대 준비를 할 때처럼, 하니엘 팀 역시 조명이 꺼지고 멤버들 위주로 편집한 영상이 상영되었다.

여기에 있는 가족들은 거의 다 연습생이 출연하는 방송을 보고 왔을 것이다.

물론 양우미의 친오빠, 양우섭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은 비록 카메라 앞에서 가족들 이야기를 아예 숨기려고 했지만, 그래도 양우섭은 여동생이 출연한 방송을 모두 챙겨봤다.

회사 일로 정신없이 바쁜 날에는 녹화본을 보기도 했었다.

양우섭의 입가에 슬픔이 느껴지는 미소가 번졌다.

“아버지도 우미의 이런 모습을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화면 안에서 울고 웃고 떠드는 여동생의 모습에 양우섭은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가족들 앞에서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여동생의 솔직한 모습.

그렇게 영상이 끝나고.

하니엘 팀의 파이널 무대 첫 공연이 막 시작되려고 하던 찰나였다.

위이잉-!

손에 쥔 그의 스마트폰이 몇 차례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버지한테서 온 전화였다.

“…….”

액정 화면을 말없이 응시하던 양우섭은 이내 통화 버튼이 아닌, 거절 버튼을 눌렀다.

아예 전원을 꺼버린 그는 스마트폰을 안주머니 깊숙이 넣어둔 뒤, 오롯이 무대를 보는 일에 집중했다.

동료들과 함께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안무를 펼치는 여동생을 보기 위해서였다.

* * *

하니엘 팀이 선보이는 오리지널곡, ‘첫사랑’.

10대 소년 소녀의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가사로 표현한 곡으로, 청순 콘셉트에 딱 걸맞은 노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안무 난이도는 꽤 높은 편이었다.

대열도 거의 10초마다 한 번씩 바뀌고. 연습할 당시만 하더라도 멤버들조차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가족들 앞에서, 그리고 팬들 앞에서 어떻게든 완벽한 무대를 보여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연습하고 연습한 결과.

나름 만족할 만한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센터에 선 이연이 양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렸다.

그녀를 중심으로 연습생들이 팔을 위쪽 대각선 방향으로 뻗어 턴 동작을 선보였다.

그녀들의 움직임에 따라 일부러 풀어헤친 긴 생머리와 교복 치맛자락이 공중에 너풀거렸다.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안무 동작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벨제브 팀이 후반 파트에서 시라이시 유키의 일본어 랩이라는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만큼, 하니엘 팀 역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만한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메인 보컬을 맡은 이연이 고음 파트를 소화하기 위해 살짝 사이드 쪽으로 빠졌다.

“널 위해 몰래 간직해 온 내 사랑을~ 오늘 수줍게 보여줄게요!”

타이밍에 맞춰 멤버들이 허리춤에 몰래 담아놓은 꽃가루들을 머리 위로 흩뿌렸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날린 꽃가루들은 현장에 잠깐 동안 봄을 초대했다.

이제 마무리 동작.

다시 센터로 돌아온 이연을 중심으로 멤버들이 가운데에 몰려 포즈를 취했다.

첫 번째 무대가 끝나자,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와 함성 소리가 쏟아졌다.

권민준과 친구들도 큰 목소리로 열심히 외쳐댔다.

“누나!! 잘했어!!!”

“하니엘! 하니엘! 하니엘!!!”

“사랑합니다, 누님!!!”

미쳐 날뛰는 고등학생 3인방과 달리, 양우섭은 자리에 앉아 얌전히 박수만 쳤다.

도중에 우미의 시선이 양우섭에게 향했다.

여동생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상냥한 미소를 보냈다.

오빠의 반응에 당황한 모양인지, 우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응시했다.

이번에도 한 명씩 돌아가면서 엔딩 요정 포즈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마지막 차례인 이연을 향해 비아가 팔꿈치로 그녀의 다리를 쿡쿡쿡 찔렀다.

“언니, 그거!”

비아가 자꾸만 뭔가를 재촉했다.

그녀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이연도 안다.

안 할 거라고 말을 하기 전에, 비아가 차마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꺼냈다.

“그거 한 방에 우리 쪽 표가 확 늘어날 수 있다니까?”

“…….”

“이때 아니면 기회 없어!”

오늘따라 비아가 이연의 마음을 상당히 잘 움직이는 것 같았다.

결국 이연의 차례가 왔을 때.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정말 하기 싫은 것을 하게 되었다.

바로 윙크였다.

이전에 이연의 변덕으로 카메라를 향해 한번 윙크를 날린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이 방송으로 나간 뒤, 시청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다.

이연의 윙크하는 모습을 고화질 움짤로 만들어 배포하는 팬들도 있었다.

권민준에게 그 움짤을 들켰을 당시, 이연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격하게 싫어하는 그녀와 달리, 시청자들은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비아는 이번 무대에서 이연에게 엔딩 요정 포즈로 윙크를 부탁한 거였다.

‘내 업보지, 업보야.’

그때 왜 윙크를 해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할까.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이연은 아직 잘 깨닫지 못했다.

그녀가 싫어하고 후회되는 행동을 할수록, 오히려 시청자들은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을.

* * *

양 팀의 첫 번째 대결이 모두 끝났다.

연습생들이 각자 대기실로 돌아가 다음 무대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이은솔이 시청자들에게 안내사항을 알렸다.

“화면에 나가는 번호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멤버 이름을 적어 보내주시면 됩니다. 하니엘 팀은 1번, 벨제브 팀은 2번입니다. 예시를 들자면…….”

이은솔이 화면을 가리켰다.

문자를 보낼 때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관한 예시 문구가 나왔다.

[X번. XXX 연습생]

“뒤에 ‘연습생’이라는 단어는 안 붙이셔도 됩니다. 그냥 연습생 이름만 적으셔도 된다고 하니, 이 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름 없이 그냥 팀 번호만 1번, 2번 이렇게 적혀 있는 문자도 유효표로 인정됩니다. 연습생의 이름만 적혀 있는 문자도 동일합니다. 그 연습생이 속한 팀 쪽으로 자동으로 표가 인정됩니다.”

이은솔의 설명을 듣자마자 권이연의 어머니가 스마트폰을 꺼내 곧장 문자를 보내려고 했다.

그 전에, 혹시 모르니 아들에게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민준아. 이거, 이렇게 보내는 거 맞지?”

“네. 번호도 맞고요. 전송 버튼만 누르면 돼요.”

“이렇게?”

“네. 그러면 투표된 거예요.”

이미 권민준과 그의 친구들은 하니엘과 권이연을 적어 문자를 보내뒀다.

근처에 있는 양우섭도 잠시 꺼뒀던 스마트폰을 다시 켰다.

액정 화면을 확인한 순간, 양우섭의 얼굴에 썩소가 번졌다.

수많은 부재중 목록들.

아버지와 회사한테 번갈아 온 것들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무슨 잔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네.”

그래도 여동생이 속한 하니엘 팀에게 투표하는 걸 잊지 않았다.

* * *

이제 각 팀별로 한 곡씩, 라스트 무대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연습생들에게는 이전에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었다.

시우가 다음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고 나온 이연에게 이와 관련된 걸 물었다.

“연 언니. 세트리스트 보시면 저희 무대 앞에 축하 무대라고 적힌 거 있잖아요. 이거, 외부에서 다른 가수팀이 와서 축하 공연을 펼치는 거예요?”

“나도 모르겠어. 스태프들한테 물어봤는지, 절대로 안 알려주더라.”

이은솔과 심사 위원들, 서윤철 PD, 그리고 모든 스태프들이 다 알고 있는 눈치인데, 연습생들만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수상쩍다.

한때는 이연이 몰래 마법을 사용해서 근처 현장을 한번 쭉 염탐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자신들의 무대 준비에 열중하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그리고 단순한 호기심 하나 해결하겠다고 오늘 같은 중요한 기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면 안 되지 않은가.

이런 이유에서 이연은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참았다.

“어차피 좀 있으면 알게 될 테니까. 일단 보자.”

“네, 언니.”

이다음이 바로 축하 무대 차례다.

조금만 인내심을 발휘하면, 베일에 싸여 있던 축하 무대의 정체가 공개될 것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음료와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고 있던 리샤가 다른 멤버들을 다급하게 불렀다.

“세, 세상에……! 일로 와서 무대 봐봐! 빨리!”

리샤의 재촉에 멤버들은 빠른 걸음으로 화면 앞에 모여들었다.

이은솔이 마침 축하 무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파이널 무대를 축하해 주기 위해 여러분들이 많이 아쉬워하셨던 게스트들을 모셔봤습니다! 함께 보시죠!

무대 쪽으로 화면이 전환된 순간, 나여솜과 연시우는 말을 꺼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1라운드, 그리고 2라운드 서바이벌 투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20명의 연습생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사랑의 요정들 팀 멤버들을 보자마자 나여솜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얘들아……!”

미안하고, 그리고 고마울 것이다.

그 감정이 나여솜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우미가 그런 여솜의 어깨를 토닥여 주면서 조용히 그녀를 안아줬다.

반면, 연시우는 울진 않았다.

하지만 화면에서 눈을 쉽게 떼지 못했다.

나여솜만큼 팀원 간의 돈독한 우정 같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고생한 사이라서 그런지 연시우는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말을 아끼고 옛 팀원들의 모습만을 예의 주시했다.

이연은 탈락했던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면서 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보니까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미안함도 있었다.

만약 이연이 진절혜와 이석호 트레이너의 내통을 더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어쩌면 파이널 무대에 서는 멤버들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탈락한 20명의 연습생 중에서는 실력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습생들을 비추던 카메라가 방향을 틀어 객석을, 그다음에는 심사 위원석을 비췄다.

다른 심사 위원들은 작게 박수를 치면서 탈락한 연습생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석호 트레이너는 그렇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연습생들의 무대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속죄의 뜻으로 자신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연습생들의 데뷔를 어떻게든 도와주게끔 하겠다고 말하긴 했었다.

하지만 연습생들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상처받았을 이들.

이석호 트레이너는 그녀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석호 트레이너에게는 보기에 괴로운 무대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진절혜도 마찬가지겠지.’

같은 대기실이 아니어서 그녀가 지금 어떤 표정으로 이 무대를 보고 있을지, 이연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있었다.

절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이들의 무대를 보고 있지 못할 거라는 사실 말이다.

탈락한 연습생들의 무대가 끝나고 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연도, 그리고 하니엘 멤버들도.

무대 위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녀들에게 반가움과 기쁨, 그리고 존경을 담아 박수를 보냈다.

축하 무대가 마무리된 후, 다시 무대로 올라온 이은솔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양 팀의 마지막 무대만이 남았습니다! 먼저 벨제브 팀부터 만나보시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마지막 대전을 알리는 첫 무대가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