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98화
제27화. 파이널 미션(4)
“자,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연습생들을 무대 위로 모실까 하는데…… 실은 시청자 여러분들을 위해서 연습생들이 준비한 특별한 무대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 만나보실까요?”
12명의 연습생이 정성 들여 준비한 오프닝 무대.
단체곡 ‘우리의 꿈’을 부르기 위해 조명이 꺼진 틈을 타 각자의 위치에 섰다.
메인 보컬을 맡게 된 이연은 진절혜와 함께 무대 가운데에 서게 되었다.
반주가 흘러나옴에 따라 조명 빛이 무대 위를 수놓았다.
여기에 맞춰서 연습생들의 모습이 모두 공개되었다.
객석에 앉은 이들은 뜨겁게 환호했다.
자신의 딸이, 자신의 누나가, 자신의 여동생이, 그리고 자신의 친구가 다가오는 겨울을 연상케 하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무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따라 연습생들 모두가 다 너무 예뻐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들이 모습.
첫 스타트를 끊게 된 비아가 마이크를 들고서 노래했다.
비아의 가족들은 큰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외치고 싶었지만, 노래에 방해가 될까 봐 숨을 죽여야만 했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숨 쉴 틈 없이 달려온 우리들.
비록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멈추지 않으려 해.
목적지로 향하는 우리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니까.
연습생들의 고운 목소리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연습생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연의 어머니 역시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다.
권민준은 그런 어머니에게 미리 준비한 손수건을 슬쩍 내밀었다.
“너무 많이 울진 말고. 누나가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들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몰래 눈물을 훔쳤다.
한 부모 밑에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자랐을 소중한 딸이 이렇게 예쁜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서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권민준도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누나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온 거지, 걱정을 끼치러 온 게 아니니까.
앞 소절이 모두 끝나고.
마지막 솔로 파트를 맡게 된 이연이 목소리를 높여갔다.
“조금만 더 힘을 내봐, 손을 뻗어봐. 그러면 언젠가는 닿을 거야.”
우리의 꿈에.
노래 제목 그대로 풀어낸 가사에 귀를 기울이던 관객들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열심히 노력한 그녀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오프닝 무대가 끝나고.
12명의 연습생이 이은솔을 기준으로 각각 팀별로 모여 나란히 섰다.
오른쪽에 하니엘이.
왼쪽에 벨제브가 위치했다.
“팀별로 각자 자기소개를 해볼까요? 먼저 하니엘 팀부터 시작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천사가 되고 싶어서 찾아온 하니엘입니다!”
뒤이어 벨제브 팀의 소개가 이어졌다.
“오늘 밤, 여러분들 모두를 홀려 버릴 벨제브입니다!”
팀 소개부터 파이팅이 넘쳤다.
그만큼 각자 칼을 갈고 이 무대에 섰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은솔은 먼저 벨제브 팀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늘 현장에 많은 가족 여러분들이 오셨는데요. 진절혜 연습생의 가족분들 한번 손 흔들어주시겠어요?”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매로 보이는 두 여성이 손을 붕붕 흔들었다.
오늘에서야 이연은 진절혜의 아버지를 처음 봤다.
한편, 심사 위원석에 앉은 이석호 트레이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애써 불편한 표정을 감추려 노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이 진절혜의 아버지였으니까.
그래서인지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생방송 무대를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만약 권이연이 이 모든 것을 간파해 내지 않았더라면.
‘이 무대가 저 남자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었겠지.’
이연은 속으로 쌤통이라고 생각했다.
진절혜에 이어서 다음 벨제브 팀 연습생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시라이시 유키 양 가족분들도 이곳에 함께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가족들이 일본에 있다 보니, 여기까지 오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지, 환호성을 통해 가족들 전체가 다 객석을 지키고 있음을 알렸다.
“멀리까지 온 가족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일본어로 해도 되나요?”
“네, 물론이죠.”
그래야 가족들한테 자신의 말을 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시라이시 유키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나름 오랫동안 연습생 생활을 했기에 한국말에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가족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시라이시 유키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いつも愛してる! ありがとう!(언제나 사랑해! 고마워!)”
그녀의 가족들도 양팔을 이용해 머리 위로 큰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나머지 벨제브 팀 멤버들의 인터뷰가 모두 끝나고.
이제 하니엘 멤버들의 차례가 되었다.
권이연의 가족들은 이미 한번 만나봤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섭하지 않겠나.
“권이연 연습생 어머님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젊으시던데요?”
“그…… 렇죠. 네.”
이연은 남들 앞에서 자신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자세히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기보다는 뭐랄까. 아직 부끄럼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가족분들의 인터뷰는 아까 들어봤으니까. 권이연 연습생이 반대로 가족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셔도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나중에 집에서 따로 할게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매정한 딸로 보이는 거 같아서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이것은 연예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이미지 관리다.
스스로를 그렇게 세뇌시켰다.
“많이 바쁘고 피곤하셨을 텐데, 오늘 무대 보러 와주셔서 고마워요. 사, 사랑해요.”
자신이 말하고 상당히 낯뜨거웠다.
어머니 옆에 앉은 권민준은 누나의 사랑 고백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모양인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 제스처를 취했다.
권이연을 시작으로 다른 하니엘 멤버들의 가족들도 다 같이 소개해 보는 그런 시간이 이어졌다.
“마지막을 양우미 연습생 가족분, 혹시 오셨을까요?”
하니엘 멤버들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팀 내에서 우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심지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무대에서 우미의 가족 이야기를 하니 멤버들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객석을 빠르게 훑던 이연은 순간 어느 한 남자가 손을 들려고 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수려한 외모에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
방송이 시작되기 전, 권민준에게 좌석에 관해 친절하게 대답해 줬던 그 남자였다.
남자가 손을 다 들려고 하기 직전.
양우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가족은 오늘 일정 때문에 못 오신다고 했어요.”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스태프들을 통해 신원 확인을 거친 사람들뿐이었다.
제작진도 양우미의 오빠가 이곳에 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미는 가족의 존재를 부정했다.
망설이던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들려던 손을 다시 내렸다.
남자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이은솔은 결국 우미와 오빠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렇군요. 여기에 안 계시더라도 분명 방송을 통해서 양우미 연습생을 응원하고 계실 겁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애써 웃어 보이는 우미.
그녀의 미소 뒤에 과연 어떤 속사정이 숨겨져 있을지, 이연은 너무나도 궁금했다.
* * *
연습생들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 대결의 막이 올랐다.
“먼저 벨제브 팀의 무대부터 보시겠습니다!”
조명이 다 꺼지고.
무대가 준비되는 동안, 벨제브 팀 연습생들이 보여준 그간의 활약상을 하이라이트로 만든 영상이 재생되었다.
한편, 벨제브 팀이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하니엘 팀 멤버들은 대기실로 돌아와서 현장 전체의 모습을 실내 모니터를 통해 지켜봤다.
여솜이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소감을 말했다.
“사람들 엄청 많이 왔구나. 이렇게 보니까 대단하네.”
그녀들은 텅 비어 있는 객석을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팀 미션을 치렀던 현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웬만한 음악 방송 프로그램보다는 확실히 컸다.
그래서 연습생들의 가족들, 지인들만으로 이 자리를 꽉 채울 수 있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연이 우왕좌왕하는 연습생들에게 앉기를 권유했다.
“벨제브 팀이 어떤 걸 준비했는지, 우리도 봐둬야지.”
“맞아.”
“이 언니들, 이상한 거 준비해 온 건 아니겠지?”
비아가 말하는 이상한 게 뭔지 이연은 알 수 없었지만, 팀 리더인 진절혜의 성향을 따지면 그렇게 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중요한 무대에서 승부수를 띄우려고 하는 성격이 아니다.
자신이 상대팀보다 무조건 잘한다는 자신감으로 찍어 누르는 그런 타입이다.
그 상대가 진절혜보다 더 압도적인 능력과 재능을 지녔을 때에는 문제지만 말이다.
그래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진절혜의 천적이 권이연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곤 했었다.
물론 권이연은 단순히 진절혜의 천적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라이벌들 모두에게 천적이 될 수 있는 존재다.
그만큼 권이연이 보여준 활약상은 대단하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영상이 끝나고.
마침내 벨제브 팀의 첫 번째 오리지널 무대인 ‘SSSwip’ 반주가 시작되었다.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의 약자를 이용해서 만든 타이틀곡 제목이었다.
리허설 당시, 이들은 벨제브 팀 무대를 전부 1절까지만 봤다.
그래서 과연 2절 파트에 어떤 것들이 숨겨져 있을지.
아니면 권이연의 예상대로 특별한 것 없이 무난하게 공연을 마무리 지으려고 할지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앞부분은 리허설 때 봤던 그대로 흘러갔다.
아직까진 특별할 게 없었다.
단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진절혜가 센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중은 많네.’
준센터급 정도는 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벨제브 팀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따로 있었다.
2절 후렴구에 들어가기 직전.
갑자기 시라이시 유키가 앞으로 치고 나오더니, 랩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일본어로.
“뭐, 뭐야. 지금 유키, 일본어로 랩 하는 거 맞지?”
“맞는 거 같은데?”
“아니, 유키가 랩도 할 줄 알아?”
이런 깜짝 파트를 준비했을 줄이야.
이건 권이연조차 예상 못 했다.
라이벌의 무대가 관중들에게 어마어마한 환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무대가 완전히 끝나자, 카메라가 각 연습생들을 한 번씩 비췄다.
엔딩 요정들 사이에서도 진짜 엔딩 요정의 포지션은 시라이시 유키가 차지했다.
싱긋 웃는 그녀를 보면서 이연은 팀원들에게 폭탄 발언을 꺼냈다.
“나, 할 말 있는데.”
이연의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무대를 보고 나서 이연은 어떤 결심 하나를 굳혔다.
“우리가 우승하면, 베네핏 무조건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