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90화
제26화. 마지막 준비(1)
한 주 동안 대학, 혹은 다른 행사 무대 경험을 쌓은 연습생들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오리지널곡 무대 연습에 집중하기로 했다.
행사도 좋긴 하지만, 우선은 데뷔부터 먼저 확정을 지어야 나중에 또 행사 무대를 서든 말든 할 테니까 말이다.
프로듀싱 팀에서 준 가이드곡을 이용해 노래 연습에 돌입한 연습생들.
나현아 트레이너가 건반을 누르면서 레코딩에 앞서 멤버들의 보컬 연습을 주도했다.
“차례대로 한 명씩 나와서 불러볼까?”
“네!”
하니엘 팀 멤버들이 기운차게 답했다.
먼저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이연부터.
가사지를 들고 첫 번째 하니엘 팀의 오리지널곡, ‘첫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꾸밈없는 청아한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귀가 맑아지는 기분을 선사했다.
나현아 트레이너는 만족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이연이는 뭐, 내가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네. 완급 조절 완벽하고. 호흡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트레이너님.”
“감사는 오히려 내가 너한테 해야 할 거 같은데? 너 가르치면서 나도 개인적으로 너무 행복했어.”
뒤에서 대기 중이던 비아가 나현아 트레이너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쌤! 왜 갑자기 평생 못 볼 것처럼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데뷔해도 쌤이 저희 보컬 담당해 주실 거잖아요.”
“그야 그렇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가 아니라 다른 보컬 트레이너가 너희 전담으로 붙을지도 모르고. 데뷔하면 이제 스케줄 때문에 바빠질 테니까 지금처럼 이렇게 시간 내서 보컬 연습하는 것도 많이 힘들어질 테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방금처럼 말했나 봐.”
나현아 트레이너는 심사 위원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가 종영하는 거에 아쉬워하고 있었다.
연습생들이 웃을 때 같이 웃고, 울 때 같이 울고. 그래서인지 어느새 정이 많이 들고 말았다.
나현아 트레이너 말고도 회사 관계자들과 스태프들도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는 어느 순간부터 연습생들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같이 담겨 있는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너희는 다음 방송이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안 아쉽니?”
멤버들은 딱 잘라 말했다.
“아니요.”
“저희는 빨리 데뷔하고 싶어요.”
“나중에 지나고 나면 비슷한 생각이 들 수 있겠는데, 지금은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나현아 트레이너가 호호 웃었다.
하기야. 보는 사람들은 소위 ‘꿀잼’이었을 테지만, 직접 출연하는 연습생들 입장에선 하루하루가 피가 말렸을 테니까.
지금은 아쉬움보다 어떤 형태로든 빨리 결말이 지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더 강할 것이다.
파이널 무대까지 2주 하고도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연습생들은 모든 것을 불태울 생각이었다.
“다음, 우미.”
“네!”
권이연을 필두로 나머지 연습생들도 차례차례 점검을 받았다.
한 명씩 맨투맨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마친 나현아는 미소로 오늘의 수업을 마무리를 지었다.
“다들 실력 많이 늘었네. 이 정도면 정말 당장 데뷔해도 손색이 없을 거 같은데?”
“저희도 그러고 싶어요.”
“이렇게 노력했는데, 떨어지면 진짜 얼마나 억울할지 상상도 안 되더라고요.”
불안해하는 연습생들과 다르게 나현아 트레이너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인기 많이 끌었으니까. 대표님이 파이널 라운드 진출했던 연습생들은 어떤 형태로든 데뷔시키려고 하지 않으실까? 실제로 다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 결승 무대에서 한 끗 차이로 떨어진 연습생들끼리 그룹 결성해서 활동하는 경우도 꽤 되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연은 그래도 이번 프로그램에서 데뷔를 확정 짓는 걸 최우선으로 삼고 싶었다.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SSS에서 우승해야 회사가 전면으로 밀어줄 테니까요. 그리고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야 다른 음방 프로그램이든 어디든 저희를 섭외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첫 스타트를 아주 좋은 자리에서 시작하느냐, 마느냐.
결국 이 차이다.
게다가 우승팀은 무조건 데뷔 확정이지만, 아쉽게 떨어질 나머지 한 팀의 데뷔는 불분명하다.
나현아 트레이너의 말처럼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든 확실한 게 좋다.
특히 데뷔처럼 중요한 일이 연관되어 있으면 더더욱.
나현아 트레이너도 이연의 말에 깊게 공감했다.
“그래. 파이널 라운드까지 진출한 이상, 우승을 노려야 하는 건 당연하니까. 어디 보자. 그러면 ‘첫사랑’은 내일 레코딩 들어간다 치더라도 ‘페어링’은? 내가 알기론 아직 가이드곡 안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연습생들이 나현아 트레이너의 기억이 맞음을 알려줬다.
“네, 맞아요.”
“가이드곡은 내일 ‘첫사랑’ 레코딩 끝나고 그날 저녁에 나올 거래요.”
“그래? 그럼 모레에 바로 ‘페어링’ 연습하면 되겠다. 바쁘네, 우리 애기들.”
하니엘 멤버들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나현아 트레이너를 향해 결의에 가득한 눈빛으로 답했다.
“그래도 해야죠.”
“이제 정말로 단 한 걸음 남았는걸요.”
“대충 해서 나중에 후회할 바에야, 차라리 힘들어도 모든 걸 다 쏟아서 하얗게 불태우고 싶어요.”
멤버들의 이 말을 듣고 있자니, 나현아 트레이너의 입가에 엄마 미소가 안 번질 수가 없었다.
“꼭 데뷔하렴. 아, 이거 심사 위원으로서 하면 안 되는 응원이었나?”
중립을 지켜야 하는 와중에 한쪽 팀에게만 너무 편애하는 말을 들려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
“벨제브 애들한테는 이 언니가 이런 말 했었다는 거, 비밀로 해야 한다. 알았지?”
“네,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쌤!”
나현아는 멤버들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이 활기찬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기를 속으로 바랐다.
* * *
레코딩을 위해 부스에 들어간 이연은 이번 하니엘의 전담 프로듀싱을 맡게 된 프로듀서, 진세혁의 요구 사항을 얌전히 경청했다.
“B파트는 너무 급하게 꺾지 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음 전환하는 쪽으로 하자. 그게 곡 분위기, 청순 콘셉트하고 잘 어울리니까.”
“알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시작해 볼까. 네가 첫 타니까 잘해서 동료들한테 용기 한번 심어주자. 알았지?”
“네. 그렇게 할게요.”
뒤에서 비아가 진세혁 프로듀서한테 별걱정을 다 하신다는 말을 몰래 흘렸다.
반주가 흘러나오자, 마침내 이연의 첫 노래가 시작되었다.
권이연이 하니엘 팀 이전에 다재다능으로 활동할 때부터 그녀의 프로듀싱을 전담했던 진세혁 프로듀서는 노래를 듣자마자 감탄을 흘렸다.
“진짜 독보적인 음색이라니까. 쟁반 위에 옥구슬 굴러간다는 말하고 너무 잘 어울려. 음색, 성량,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하나도 없단 말이지.”
원래 진세혁 프로듀서 말고 다른 프로듀싱 팀이 하니엘을 담당하려고 했었다.
당시 진 프로듀서 팀은 다른 일로 많이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 대표를 직접 찾아가서 하니엘 팀만큼은 무조건 자기가 프로듀싱을 맡겠다고 강하게 주장했었다.
바빠도 상관없다. 잠을 줄여가면서 하면 된다.
이렇게까지 열의를 보이는데, 오채일 대표가 여기서 어떻게 안 된다고 말릴 수가 있을까.
회사 입장에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국은 진세혁이 프로듀서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일을 하는 건지, 아니면 권이연이라는 가수를 향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인지. 진세혁 프로듀서는 이연이 부르는 모든 노래에 ‘잘했다, 최고다’ 하며 칭찬 일색이었다.
레코딩 들어가기에 앞서 먹거리들로 간단하게 배를 채운 리샤가 진세혁에게 말을 붙였다.
“찐 프로듀서님.”
회사 내에서 진세혁은 ‘찐 프로듀서’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연습생들도 자연스럽게 진세혁을 별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어, 왜.”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이연이한테 반해서 프로듀싱 맡기로 하신 거죠?”
“뭐,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양심 없는 거 같고. 틀린 말은 아니지. 근데 그 ‘반했다’라는 게 너희가 생각하는 의미하고 많이 달라. 이성적인 관계가 아니라, 음악적인 면모에서 그렇다는 거지. 내가 예전에 막 이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엔 말이다. 원래 가수라는 건…….”
진세혁 프로듀서가 왜 ‘찐 프로듀서’라고 불리는지. 이에 대한 이유가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진세혁의 성을 따와서 ‘찐’이라는 말이 붙은 게 아니다.
그는 음악에 미쳐 있는 사람이다.
지금 하는 것도 일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어마어마하다.
여기까진 좋다. 하지만 이 관심과 열정이 수다로 이어진다는 거였다.
이 사람은 음악에 관해서는 진짜다. 그래서 ‘찐 프로듀서’라는 별칭이 생겼다.
멤버들의 리샤를 향해 동시에 눈을 흘겼다.
왜 찐 프로듀서님의 수다 스위치를 눌러 버렸냐는 원망이 눈빛에 가득 담겨 있었다.
“누가 찐 프로듀서님 말릴 거야?”
“그거야 뭐…….”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있었다.
잠시 쉬기 위해 부스를 나오는 이연. 그녀에게 멤버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나오자마자 이연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프로듀서님.”
“어? 왜?”
“한 10분만 쉬고 바로 레코딩 이어가면 어떨까 싶어서요.”
“그래? 10분 가지고 되겠어? 원한다면 더 쉬어도 돼. 어차피 오늘 이거 때문에 내 일정 다 빼뒀거든.”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찐 프로듀서가 ‘이연이가 쉬는 데 방해하면 안 되겠지’라고 하면서 의자를 돌려 음향기기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제야 멤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연이 언니, 나이스!”
“살려줘서 고마워, 연아.”
“너 아니었으면 찐 프로듀서님 프로듀서 지망생 시절 때부터 시작해서 계속 자기 이야기 했을걸?”
상상만 해도 끔찍 그 자체였다.
이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 업계에는 특이한 사람이 참 많아서 재미있다.
* * *
레코딩을 마치고.
멤버들과 함께 두 번째 곡인 ‘페어링’을 들어보기 전에 이연은 잠시 휴게실에 들러 마실 것을 뽑아 오기로 했다.
도중에 그녀는 우연히 이석호 트레이너와 마주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트레이너님.”
“어, 이연이구나. 레코딩 중이라며?”
“첫 곡은 다 끝났어요. 조금 있다가 두 번째 가이드곡 들어보려고요.”
“빠르네. 역시 하니엘이야. 벨제브 쪽은 이래저래 난항이라는데.”
벨제브 이야기가 나오자, 이연이 이석호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잠깐만 저한테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뭐, 바쁜 건 아니니까. 왜?”
“저, 알고 있었습니다.”
“뭐를?”
이석호 트레이너의 머릿속에 가득한 물음표가 이연의 한마디로 인해 느낌표로 바뀌었다.
“트레이너님이 진절혜에게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몰래 흘려주고 있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