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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89화 (89/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89화

제25화. 대학 행사(6)

어제 민주린이 무대에 오른 다음 하니엘 팀이 후발주자를 맡았던 것과 반대로, 오늘은 하니엘이 먼저 선발을 맡게 되었다.

메이크업까지 모두 마무리 지은 우미가 이은솔에게 무대에 관해 물었다.

“선배님은 맨 마지막이라고 하셨죠?”

“어. 사실 이렇게 일찍 올 필요는 없었는데, 앞에 스케줄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어디서 따로 시간 보내기도 애매하고. 그래서 그냥 이쪽으로 일찍 넘어왔지.”

“피곤하진 않으세요? 어제도 새벽 늦게까지 뮤직비디오 촬영하셨다고 들었는데.”

“익숙해지면 괜찮아. 그리고 나만 힘든 건 아니니까.”

사람들한테 티가 안 날 뿐이지, 이은솔과 함께하는 팀 전체가 다 다 고생하고 있다.

그들을 보면서 이은솔은 혼자만 힘든 티를 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줄곧 품고 있었다.

“오늘 하니엘은 2곡 부른다고 했었지? ‘섬머 러브’하고 ‘별별’이었나?”

“네, 선배님.”

“‘섬머 러브’ 6인 버전은 어때? 나도 시간 되면 무대 한번 체크해 주고 싶었는데.”

“잘됐어요. 어제도 관객분들이 엄청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연이가 저희 편하게 안무 짜준 덕분이에요.”

“이번에도 이연이가 안무 짰어?”

“네.”

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고 답하자, 비아가 어느새 이연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어깨에 바짝 몸을 기댔다.

“언니 완전 컴퓨터예요, 컴퓨터. 뭐가 필요하다고 입력하면 안무든 노래든 바로바로 나와요.”

“나중에 이연이는 프로듀싱도 가능하겠는데? 아이돌 중에서 본인이 작사하고 작곡하는 사람들도 꽤 되잖아. 우리 그룹에서도 그런 멤버가 있고.”

이연도 기회가 된다면 본인의 프로듀싱 능력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입증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지만, 노래를 만드는 데에서 오는 또 다른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결승 무대에서 오리지널곡 두 개 중에 하나를 권이연이 프로듀싱해 보는 것도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다.

프로듀싱 팀이 하니엘 멤버들의 의견을 듣고 곡을 고안하는 것보다 직접 곡을 쓰는 게 본인들이 추구하는 걸 더 잘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의견은 오채일 대표가 직접 반대하고 나섰다.

안 그래도 연습해야 할 곡도 많고. 시간도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닌데, 굳이 이연에게 프로듀싱에 대한 부담까지 줄 필요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아직 권이연은 연습생이다.

대표 입장에서 보면, 최종 생방송만큼 중요한 무대를 연습생에게 맡기려 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이연이라면 충분히 다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만, 그래도 무대 준비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기에 오 대표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나중에 저희 데뷔하면, 연이 언니가 곡 많이 써줄 거예요. 그렇지, 언니?”

비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연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작게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가 바라는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 어쩌면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조급하게 자신의 목표를 추구할 생각이 없었다.

차근차근. 완벽한 준비만이 완벽한 무대를 만든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장과, 그리고 주변인들의 성장이 동반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하니엘 멤버들이라든지.

대기실 천막을 찾은 스태프가 멤버들에게 외쳤다.

“10분 뒤에 스탠바이 들어갈 예정이니까 하니엘 팀분들은 준비 부탁드릴게요!”

“네!”

리허설 없이 바로 무대에 올라가는 게 하루 만에 익숙해졌다.

어제처럼 MC가 무대에 올라서서 관객들의 기대치를 높이기 위해 외쳤다.

“여러분! 오늘 초특급 게스트분들 오신다는 거, 다들 알고 계시죠?”

“네!!!”

이미 객석은 만석을 넘어선 상태였다.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 실패한 사람들은 난간에 서서 어떻게든 하니엘의 무대를 보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의 첫 무대를 장식할 게스트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SSS의 하니엘 팀입니다!”

MC의 소개와 함께 권이연과 멤버들이 무대 위로 올랐다.

어제에 이어 대학 축제 행사 무대만 두 번째.

그래서인지 오늘 멤버들의 얼굴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묻어 나왔다.

단체 인사도 막힘없이 이어나갔다.

권이연이 멤버들을 대표로 관중들에게 짧은 인사말을 건넸다.

“오늘 이렇게 뜻깊은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노래할 테니, 다들 저희하고 같이 즐겨주세요!”

“네!”

어제, 그리고 오늘. 행사 기간 내내 멤버들에게는 인이어 마이크 대신 일반 마이크가 지급되었다.

그래서 안무를 펼칠 때에도 SSS 촬영 때 보였던 동작과 약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선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멤버들은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곧바로 ‘섬머 러브’ 반주가 흘러나오면서 하니엘 팀의 첫 번째 무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속해서 센터를 맡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던 비아였지만, 시간과 경험이 그녀에게 특효약으로 작용했다.

이제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파트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섬머 러브’가 끝나자, 곧바로 두 번째 곡인 ‘별별’의 반주가 이어졌다.

비아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이연이 자연스럽게 센터 포지션에 섰다.

‘별별’ 역시 ‘섬머 러브’처럼 별 탈 없이 잘 끝날 거라고 예상했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하니엘 멤버들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다른 쪽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내 마음도…….”

리샤의 보컬 파트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갑자기 잘 나오던 반주가 뚝! 하고 끊겼다.

이연은 반사적으로 음향 감독을 찾았다.

방송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 * *

방금까지 활기차게 무대를 이끌어가던 하니엘 멤버들, 그리고 공연을 지켜보던 관객들과 스태프들까지.

모두가 다 당황스러워했다.

음향 감독이 스태프들과 다급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연은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

‘하필이면 우리가 한창 공연할 때 음향 사고를…….’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사고나 실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꽤 치명적이다.

차라리 녹화였다면, 도중에 끊고서 다시 이어가면 그만이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관객들보다 무대에 서 있는 멤버들이 더 당황해했다.

“사고…… 난 거야?”

“왜 반주가 안 나와?”

“어, 어쩌지?”

“노래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야?”

멤버들은 이런 경우를 처음 겪어봤기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연은 마법을 이용해 자신의 청각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승시켜 음향 감독과 스태프들이 나누는 대화를 몰래 엿들었다.

‘아직 문제의 원인도 못 찾은 거 같은데.’

해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다.

지금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하니엘 멤버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이연은 일부러 목소리를 냈다.

아아.

다행히도 마이크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해보자.’

이연이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이고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기 저 빛나는 별들 아래에 우리의 사랑을 속삭여! Twinkle love!”

갑작스럽게 노래를 시작한 이연의 모습에 멤버들은 처음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연이 따라 부르라는 손짓을 보고 난 뒤, 그녀의 의도가 어떤 건지 읽을 수 있었다.

이다음 차례인 우미가 이연과 마찬가지로 무반주 상태로 노래를 불렀다.

“걱정하지 마,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항상 함께할 테니까!”

“저기 눈부신 별, 별처럼!”

다른 멤버들도 우미의 뒤를 따라 합창했다.

반주가 없다고 무대도 같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부족한 게 있다면, 그녀들이 알아서 채우면 된다.

무대에 오른 이상, 연습생들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다.

프로답게. 관객들에게 지금 이 순간을 추억이라는 이름의 포장지에 쌓아 선물해야 한다.

하니엘 멤버들이 마이크를 쥐지 않은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고 좌, 우로 흔들었다.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멤버들의 노력이 그들 각각의 마음에 닿은 모양인지, 관객들 역시 ‘별별’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반주가 없어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한편, 사고가 벌어졌다는 소식에 무대 계단 아래까지 다급하게 뛰어온 이은솔은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여태껏 많은 대학 축제 무대에 올라 서봤던 그였지만.

가수와 관객들이 이렇게까지 단합이 잘되는 무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찌어찌 음향 팀이 다시 사고를 수습한 모양인지,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멤버들은 안무 대신 관객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기 위해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나갔다.

“매니저님.”

이은솔이 박도수 매니저를 찾았다.

사고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박도수 매니저가 ‘네?’ 하며 반응했다.

어느새 이은솔의 입가에 아주 짙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하니엘 멤버들, 많이 아껴주세요. 정말로.”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후배들의 무대를 보면서 이은솔은 강하게 확신했다.

하니엘은 어쩌면 걸 그룹 역사를 새로 쓰게 될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고.

* * *

아찔했던 방송 사고가 발생했었지만, 그래도 권이연과 하니엘 멤버들의 순발력 덕분에 어찌어찌 수습은 할 수 있었다.

음향 사고에 관해서 하니엘은 스태프들의 협조를 구해 사과의 뜻으로 준비해 둔 ‘섬머 타임’과 ‘별별’ 말고 1라운드 때 선보였던 밀크티의 ‘라스트 찬스’를 앵콜곡으로 관객들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원래 2곡만 예정되어 있었는데. 1곡을 더 불러준다고 하니 관객들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음향 사고에 관한 기억이 싹 잊혀졌다.

그렇게 겨우 무대를 마무리 짓고 내려온 멤버들은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인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박도수 매니저가 유일하게 멀쩡한 이연과 함께 멤버들을 다독여 줬다.

“잘했어. 너희 잘못 때문에 생긴 일 아니니까 너무 자책하진 말고.”

“매니저님 말이 맞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니까 된 거야.”

멤버들은 이연의 단단한 멘탈이 부러웠다.

그녀들은 아직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탓에 방금 무대에서 뭘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날 정도인데.

이연은 오히려 멤버들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였다.

겨우 진정한 멤버들을 데리고 대기실로 향하려고 할 때.

박도수 매니저가 이연을 잠깐 불렀다.

“은솔 씨가 너희, 잘 챙겨달라고 나한테 그러더라.”

“선배님이 매니저님한테요? 왜요?”

“음향 사고 났을 때 너희가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깨달은 게 있나 봐. 아무튼 나중에 은솔 씨한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줘. 아까 사고 발생한 거, 은솔 씨도 너희처럼 같이 커버 치겠다고 몇 곡 더 부르고 가겠다고 했으니까.”

그래야 나중에라도 관객들 사이에서 뒷말이 안 나온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권이연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무대 쪽에서 이은솔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파이널 무대 전에 이런 사고가 생겨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던 이연이였지만.

‘액땜했다고 생각해야지, 뭐.’

최대한 긍정적으로 넘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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