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87화
제25화. 대학 행사(4)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하니엘 팀은 두 번째 곡까지 실수 없이 무대를 마무리 짓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하니엘이었습니다!”
“저희 데뷔하면 다시 한번 이곳에 올게요! 약속해요!”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세요!”
멤버들이 마이크를 들고서 관객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무대로 내려오자, 민주린이 멤버들을 일일이 맞이해 줬다.
“고생했어, 얘들아.”
“선배님! 먼저 가신 줄 알았는데…….”
다음 일정이 있어서 민주린은 무대를 마치고 바로 이곳을 떠날 줄 알았었다.
원래 민주린도 그럴 예정이었다.
그러나 차마 떠나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 있어야 했던 이유가 생겼다.
“너희가 무대 위에서 엄청 긴장하고 있는 모습 보니까 갈 수가 없겠더라. 그래도 다들 너무 잘했어. 근데 이연이는 전혀 긴장을 안 하던데?”
마치 처음부터 이런 무대가 익숙하다는 것처럼 행동했었다.
이연은 작게 웃으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마저 긴장해 버리면 진행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지니까요.”
민주린은 오늘따라 이연의 이 모습이 너무나도 대견스럽게 보였다.
* * *
어제 저녁, 대학 축제 무대에 섰던 하니엘 팀에 관해서 기사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사뿐만 아니라 팬들이 개인적으로 찍은 영상들 역시 아카튜브를 포함해서 인터넷 여기저기에 업로드 되었다.
댓글들의 반응도 굉장히 뜨거웠다.
[qwej2923 : 하니엘 직접 보니까 미쳤음 너무 예뻐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yoouu04389 : 우리 아가들, 꼭 데뷔할 수 있게 해줄게!!!!!]
[uewioeru694 : 의상 미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코디한테 상 줘야 한다!]
소속사로 출근하면서 댓글들을 하나하나씩 확인한 이연의 어깨가 그나마 좀 가벼워졌다.
첫 행사 무대라서 사람들의 평가가 안 좋게 나오면 어쩌나 내심 신경이 쓰였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네.’
사실 이연은 악플에 크게 흔들리는 멘탈은 아니었다.
이미 수차례 무대에 서면서 산전수전 공중전에 우주전까지 다 겪어봤기 때문이다.
어떤 악성 팬은 루웰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틈을 노려서 흉기를 들고 그에게 달려든 적도 있었다.
눈치 빠른 루웰이 먼저 반응을 했기에 부상 없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만약 그 사람이 소드마스터급의 실력자였더라면 그는 지금보다 한참 전에 환생의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연과 같이 무대에 오르는 멤버들은 이런 경험이 전무하다.
악플 테러조차 아직은 당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연은 이런 부분이 많이 걱정되었다.
연예계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항상 좋은 댓글만 받진 않을 것이다.
분명 악플러들도 꼬일 터.
‘그때가 되면, 내가 멤버들을 케어해 주든가 해야겠지.’
리더니까.
멤버들을 챙기는 것도 당연히 자신이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회의실에 모이게 된 멤버들.
박도수 매니저가 오기 전까지, 그녀들은 어제 있었던 무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아가 집에 들어가고 나서의 일을 알려줬다.
“그때 그 무대에 섰던 감각이 계속 맴돌아서 잠도 안 오더라고. 3시간 동안 뒤척이다가 겨우 잤다니까?”
“어머, 너도 그랬어? 나도 계속 잠이 안 와 가지고 힘들었는데.”
멤버들 모두가 다 입을 모아서 공통된 경험을 했다고 어필했다.
모두의 시선이 이연에게 향했다.
“연이는?”
“언니도 잠 안 왔어?”
이연은 유독 자신에 관해서 많은 호기심을 보이는 멤버들을 향해 피식 웃었다.
“평소보다 약간 늦게 자긴 했지.”
“다행이다. 언니도 사람이긴 하구나.”
“왜. 그러면 로봇인 줄 알았어?”
“가끔은 그런 의심이 들곤 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연습생들과 같은 스타트 라인에 서서 출발했는데. 이연만 유독 독보적이니까.
무대 위에서 긴장을 안 하고.
데뷔한 지 몇 년 차 되는 가수처럼 오히려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우미는 이연의 이런 면이 믿음직스러워서 좋았다.
“연이가 매번 중심을 잡아주는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공연할 수 있으니까. 늘 고마워,”
“그건 맞지.”
“연이 언니 없었으면, SSS에서 일찍 탈락해서 어제 무대에 설 일도 없었을걸?”
이연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멤버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의심에서 찬양 쪽으로 분위기가 달라지자, 오히려 당사자인 이연이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박도수 매니저가 등장해서 곤란해하는 이연을 도와줬다.
“얘들아, 잘 쉬었어?”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매니저님도 어제 저녁에 잘 들어가셨어요?”
박도수 매니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는 줄 알았다. 너희, 나를 위해서라도 빨리 데뷔하든가 해라. 그래야 숙소 잡아서 거기만 딱 왔다 갔다 할 수 있지.”
여섯 명 다 일일이 집까지 바래다주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고역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이니까.
리샤가 그런 박도수 매니저에게 안 좋은 소식 하나를 전했다.
“나중에 가면 일곱으로 늘어날 수 있어요.”
“베네핏, 그거 사용할 거야?”
하니엘 팀은 상대 멤버 중에서 한 명을 데려와서 같이 데뷔시킬 수 있는 막강한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멤버들에게 이에 관한 질문을 추가로 던졌다.
“누구 데려올 건데?”
이에 대해 이연이 답해줬다.
“아직 정하진 않았어요.”
“설마 절혜 데려올 거야?”
“그건 힘들 거예요. 데뷔하자마자 팀원 간의 불화설을 만들고 싶진 않으니까요.”
“뭐, 그렇지.”
실력은 있지만, 멤버들 간의 팀워크를 생각한다면 진절혜는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 비아가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나는 유키 언니도 괜찮을 거 같은데.”
“시라이시 유키 말하는 거지?”
“응. 유키 언니, 실력도 있고. 성격도 좋잖아? 우리랑도 잘 어울리고.”
박도수 매니저 역시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일본인 멤버 한 명 있으면 나중에 일본 쪽에서 활동할 때에도 도움이 많이 될 테니까. 회사 입장에선 좋지.”
“그렇죠?”
글로벌 무대에서 K-pop의 영향력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다.
LC 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도 당연히 세계 진출을 노리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은 소속 연예인도 있고 말이다.
“오 대표님이 이번에 데뷔할 멤버들한테 기대 엄청 걸고 있어. 아마 데뷔하면 회사 전체가 사활을 걸다시피 해서 밀어줄 거야. 그러면 유키를 데려오는 선택도 나쁘지 않지.”
이연도 박도수 매니저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시라이시 유키는 애초에 이연이 탐냈던 멤버이기도 하고 말이다.
고민이 깊어지려고 할 때, 박도수 매니저가 화제를 다른 쪽으로 전환했다.
“베네핏 사용 여부도 좋긴 한데. 오늘 오후에 행사 잡혀 있는 거, 알지?”
“이번에도 대학 축제 무대라고 하셨죠?”
“어. 근데 시간대가 좀 빨라. 오후 다섯 시? 그쯤으로 잡혀 있으니까…… 우리는 1시 반쯤에 출발하자.”
“네?”
멤버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우가 확인차 박도수 매니저에게 물었다.
“오늘 저희가 할 장소가 여기서 멀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어. 차 타고 한 30분 거리?”
“근데 그렇게 일찍 출발하는 거예요?”
박도수 매니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 어제 대학 축제 즐겨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설마.
연습생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박도수 매니저가 검지와 중지를 펴 보이면서 브이(V) 자를 만들었다.
“딱 2시간 줄 테니까 멤버들하고 같이 즐기다가 와라.”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역시 매니저님밖에 없어요!”
“우리 매니저님, 최고!”
생각지도 못한 자유 시간에 멤버들은 크게 환호했다.
딱딱해 보일 것 같았던 박도수 매니저에게 이런 융통성이 있을 줄은 이연도 몰랐다.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이연도 처음 접하게 될 대학 축제에 작은 설렘을 느꼈다.
* * *
현장에 일찍 도착한 멤버들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최대한 평범한 복장으로,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박도수 매니저가 오면서 재차 강조했던 말을 다시 들려줬다.
“행사 시작하기 전까지는 이곳으로 다시 와야 한다. 알았지?”
“네!”
멤버들이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걸어가면서 비아가 왜 박도수 매니저가 자신들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게 되었는지, 나름의 추측을 꺼냈다.
“매니저님, 어제처럼 주차할 곳 찾기 힘들어질까 봐 일부러 일찍 온 거 아닐까?”
“그럴지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운전하는 입장에서 주차 공간 찾기는 상당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멤버들은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 더 강했다.
“매니저님은 미리 차 주차할 수 있어서 좋고, 우리는 대학 행사 즐길 수 있게 되어서 좋고. 그러면 된 거 아닐까?”
우미의 말끔한 정리에 멤버들은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였다.
즐기는 건 좋지만.
“웬만하면 사람들한테 정체 안 들키게 해야 돼. 알았지?”
이연의 말에 멤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녀들이 행사에 왔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어제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 것이다.
근처에 경호원도 없고. 인원 통제를 할 수 있는 스태프들도 없다 보니 안 봐도 혼선이 펼쳐질 게 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녀들이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리샤가 먼저 먹거리 천막들이 몰려 있는 곳을 가리켰다.
“나하고 저기 갈 사람!”
리샤의 제안에 비아와 우미가 손을 들었다.
이연과 여솜, 시우는 먹거리 대신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는 동아리 행사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3명씩 흩어져 움직이기 전에 이연은 우미에게 작게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나나 매니저님한테 바로 연락해 줘, 언니.”
“응, 그렇게 할게.”
“그리고 비아하고 리샤가 너무 눈에 띄는 행동 할 거 같으면 언니가 말려주고.”
그녀들의 정체를 들키면 안 된다. 이걸 늘 머릿속에 각인시켜 두고 움직여야 한다.
서로의 건투를 빌어준 뒤, 이연은 여솜과 시우를 데리고 동아리 행사장으로 향했다.
‘신기하네.’
이연에게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머릿속으로는 대학 축제가 어떤 건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현장에 와보기는 처음이었다.
어제는 무대 행사만 마치고 바로 대학교를 빠져나가느라 이런 분위기일 줄은 몰랐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언니. 우리, 저거 한번 해볼래요?”
시우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젊은 남성들이 펫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쏘고 가세요! 화살 다섯 번에 2천 원! 싸다, 싸!”
“경품도 빵빵하게 준비해 뒀습니다! 오셔서 남자 친구, 여자 친구에게 양궁 실력 한 번씩 뽐내고 가세요!”
활시위를 당겨서 고점을 얻으면, 그에 따라 경품을 획득할 수 있는 그런 이벤트였다.
‘오랜만에 활 좀 땡겨볼까?’
간만에 전생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