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86화
제25화. 대학 행사(3)
주최 측과 급하게 상의를 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던 박도수 매니저가 다시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문의에 대한 답변은?
육성 대신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어 보였다.
“저기 저 파란색 모자 쓰신 분이 안내해 주신다고 하니까, 바로 따라.”
“네, 감사합니다!”
이른 시간에 협상을 마무리 지은 박도수 매니저 덕분에 멤버들은 민주린의 라이브 무대를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름 오랫동안 SSS에 같이 출연하면서 인연을 다져왔지만, 의외로 그녀들은 민주린의 솔로 라이브 무대를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방송상으로는 많이 봤었다.
지금도 인터넷에 들어가면, 영상 정도는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무대라는 건 영상으로 보는 것과 내 눈으로, 내 귀로 직접 접하는 것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멤버들은 박도수 매니저에게 따로 문의를 할 정도로 민주린의 무대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무대로 올라가는 계단 옆.
멤버들이 서로 떨어지지 않게 다닥다닥 붙어서 무대 위를 올려다봤다.
“이연 언니! 나도, 나도!”
비아가 마치 엄마, 아빠를 보채는 아이처럼 자기도 그쪽으로 올라가게 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이연이 살짝 옆으로 자리를 비켜 비아가 올라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줬다.
비아의 어깨가 자신의 가슴을 꾸욱 누르며 압박할 정도로 자리가 협소했다.
막내 멤버에게 선배의 라이브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어때. 보여?”
“응, 잘 보여!”
자리를 양보한 보람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이연은 가수 지망생들이 선배들의 무대를 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 무대가 그들에게는 목표이자 동경, 그리고 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연도 처음에 음유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계기가 바로 무대였다.
우연히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행사에 참여해서 음유시인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던 그녀.
그날 이후로 그녀는 무대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자석처럼 자신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로 인해 이연은 음유시인이 되겠다고 처음으로 선언했다.
물론 그녀의 부모도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집안 누구도 음유시인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연이 가지고 있던 잠재력은 부모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신조차 흠모할 만큼 뛰어난 매력을 지닌 음유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처럼 지금의 경험이 비아에게도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연은 비아가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줬다.
비아 역시 양손으로 이연의 얇은 허리를 안으며 그녀와 밀착했다.
스킨십을 싫어하는 그녀지만.
‘이 정도는 봐줘야지.’
다른 멤버들도 이연과 비아처럼 서로 몸을 붙인 채 민주린의 무대에 집중했다.
백댄서 없이 혼자 무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린은 어느 가수팀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풍성한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퍼포먼스, 성량, 그리고 무대 매너까지.
무엇 하나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없었다.
여성 솔로 가수 중에 누가 가장 뛰어난가 하는 논쟁에 항상 민주린의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가 있었다.
‘무대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야.’
이연은 민주린을 이렇게 평가했다.
관객들을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민주린은 일부러 대중들이 잘 아는 후렴구 파트에서 마이크를 돌렸다.
대학 축제 행사에 가면 항상 빠지지 않는 문화, 떼창이 펼쳐졌다.
“너에게로 달려가!”
“바! 로! 지! 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Hold on!”
SSS가 한창 방영될 때 발표되었던 민주린의 솔로곡, ‘Hold on’이 대학 축제 현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평소에도 민주린의 노래를 자주 듣던 연습생들은 어느새 팬의 입장이 되어 그녀의 무대를 지켜봤다.
이연도 숨을 죽인 채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확실히 다르긴 달라.’
SSS에서 왜 그녀를 심사 위원으로 채택했는지,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는 무대였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자리는 쉽게 앉을 수 없다.
그만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메라 앞에 심사 위원 자리를 차지한다는 건 여러모로 부담이 많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가수가 심사 위원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대중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린의 경우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녀가 심사 위원으로 참가한다는 소식이 기사를 통해 올라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민주린 정도면 심사 위원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렇게 혼자서도 무대를 풍성하게 꾸밀 줄 아는 가수인데.
누가 그녀의 심사 위원 자격에 태클을 걸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 * *
첫 곡을 시작으로 두 번째, 세 번째 곡까지 전부 완창한 민주린은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고했다.
“이다음에 올라올 저희 연습생들도 많은 호응 부탁드릴게요!”
관중들은 그녀의 걱정을 덜기 위함인지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이면서 네! 라고 답했다.
민주린이 내려오자, MC가 잠시 시간을 끌기 위해서 무대에 섰다.
선배의 귀환에 연습생들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반겼다.
“너무 멋져요, 선배님!”
“저희 막 두근두근하면서 보고 있었어요!”
연습생들의 귀여운 반응에 민주린은 싱긋 웃었다.
“너희는 무대에서 나 이상으로 열심히 해야 돼. 알았지?”
“네, 선배님!”
“맡겨주세요!”
자신감이 넘치는 연습생들을 보면서 민주린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마침내 MC가 연습생들의 차례를 소개했다.
“하니엘 팀 여러분들을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하니엘 팀이 올라오자, 여태껏 보지 못했던 커다란 환호성의 파도가 무대를 휩쓸었다.
여러 번의 팀 미션으로 인해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나름 많이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던 연습생들이었지만.
미션을 위한 무대와, 정식으로 출연 요청을 받고 올라온 무대는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표정만 봐도 멤버들이 긴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중요한 게 바로 리더의 역할이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소개부터 시작할게.”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셋!”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천사, 하니엘입니다!”
양손으로 작게 날갯짓을 하는 손동작을 취했다.
무대 위에 올라오기 전에 멤버들끼리 급하게 맞춘 시그니처 포즈였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귀엽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쇄도하자, 멤버들도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호응에 나섰다.
한번 무대에 오르면, 가수팀이 MC까지 전부 맡아야 했기에 이연이 진행까지 소화하기로 했다.
“저희의 첫 대학 행사 무대인데요. 저도 그렇고, 멤버들도 그렇고. 지금 긴장을 엄청 많이 하고 있거든요.”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멤버들은 이연이 말한 것처럼 상당히 긴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침착하게 멘트를 이어나가는 이연과 상당히 대조되어 보였다.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이연이었기에 멤버들을 위해서, 그리고 관객들을 위해서 작은 부탁을 하나 남겼다.
“열심히 할 테니 실수해도 귀엽게 봐주세요.”
관객들은 그녀들이 이 무대에 올라와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모양인지 뭐든 오케이라며 넓은 아량을 보여줬다.
이미 사람들은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그녀들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나섰다.
팀 미션의 경우에는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지만, 행사 무대는 아니었기에 연습생들 입장에선 지금의 풍경이 굉장히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 각도든 자신이 찍히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 첫 곡 시작하겠습니다.”
이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섬머 러브’의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SSS 중 순간 시청률이 가장 높게 나왔던 파트 탑 3에 드는 장면이 바로 치어리딩 미션 때였다.
그때의 곡이 나오니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센터에 선 비아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첫 스타트를 끊었다.
6인 버전은 처음 공개하는 거였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이 여름을 뜨겁게 불태워!
(불태워!)
너와 나의 Summer love
(Summer love!)
멤버들의 노래에 따라 관객들도 콜을 섞으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팀 미션을 할 때에도 이렇게까지 호응이 뜨거웠던 적은 없었다.
게다가 사람 수 자체가 달라서 그런지 유독 멤버들에게 더 큰 위압감을 줬다.
팀 미션 당시에는 청중평가단으로 참가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제한을 뒀다.
실내 무대이기도 하고.
하지만 대학 행사 무대는 이런 제한이 일절 없다.
야외무대인 데다가 보러 오는 사람들의 숫자도 실시간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하니엘을 향해 응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처음의 긴장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은 멤버들도 다 같이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이연이 멤버들에게 가끔씩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
내가 즐겁지 못한 무대는 보는 사람들도 즐겁지 않을 거라고.
가수도 무대를 즐겨야 한다.
그래야 이 즐거움이, 이 기쁨이, 이 설렘이 노래라는 수단을 타고 관객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멤버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한가운데에서 이연이 단독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긴 머리카락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공중에 너풀거렸다.
하니엘 멤버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멤버가 누구냐고 하면 사람들은 입을 모아 ‘권이연’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녀의 단독 퍼포먼스에 무대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이어졌다.
요즘 여성 걸 그룹들이 자주 보여주는 동작이기도 한 ‘손으로 머리카락 날리기’도 잊지 않고 선보였다.
그렇게 첫 번째 곡인 ‘섬머 러브’가 끝나고.
“바로 두 번째 곡 시작할게요! 여러분,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쳐주세요! 아셨죠?”
“네에!!!”
권이연의 부탁에 사람들은 맡겨만 달라는 식으로 힘차게 답했다.
곧이어서 두 번째 곡인 ‘별별’ 반주가 흘러나왔다.
묻혔던 원곡조차 다시 음원 차트 순위권으로 끌어올려 줬던 바로 그 곡.
이 곡 하나에 유스풀 멤버들을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이 울고 웃었다.
노래에는 저마다 사연이라는 걸 간직하고 있다.
그 사연을 풀어내는 것 또한 가수의 능력이다.
센터를 맡은 이연이 먼저 무대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사람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의 이 시간을!”
선창을 마치고 마이크를 관객들에게 넘겼다.
“소중하게 기억해!”
“오늘도! 내일도!”
“그대를 사랑할게요!”
음유시인으로 무대에 오르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마이크 넘기기.
이연은 언젠가 한 번쯤 이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소소한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
출연료도 받고.
약간의 사리사욕도 챙기고.
이러니까 이연은 무대를 떠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