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83화
제24화. 뒤풀이(2)
예전에 한 번 와봤던 곳이어서 그런 걸까.
다재다능 멤버들은 우미가 머물고 있는 아파트 경관을 보면서 크게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우와 여솜은 오늘 처음 우미의 집에 오는 거였기에 반응이 남달랐다.
“여, 여기 대충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 아파트 단지 같은데…….”
조경도 그렇고.
근처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만 봐도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얼마나 잘사는 상류층들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는 언니의 집에 놀러 온 거였지만.
아파트 전경을 보고 부담감만 가득 생겼다.
입구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여솜이 크게 놀라면서 멤버들을 찰싹찰싹 때렸다.
“저기, 저쪽에 지나가는 분! 혹시 그 최선경 씨 아니야?”
티비에 자주 얼굴을 드러낼 만큼 유명한 패션모델이다.
그녀가 몸집이 큰 하얀 털의 반려견을 데리고 선글라스를 쓴 채 아파트 내에 위치한 카페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최선경뿐만 아니라 요리 관련 예능 프로그램에 한창 출연 중인 정채용 셰프 부부의 모습도 보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그들은 마침 지나가는 이웃사촌인 최선경에게 인사를 건넸다.
유명 셀럽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풍경은 흔치 않다.
하지만 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었기에 우미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우리가 가서 아는 척을 하는 게 저분들에게는 더 부담스러운 일이야. 그러니까 우리 갈 길만 가면 돼.”
“그, 그래도…….”
이곳 주민인 우미가 이렇게 말하니, 여솜이나 시우는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모습조차도 귀티가 흘렀다.
“우리 집에는 엘리베이터 같은 것도 없는데.”
“관리가 엄청 잘되어 있네요, 여기.”
그만큼 한 달에 나가는 관리비도 어마어마했다.
집 내부로 들어서자, 넓게 펼쳐지는 한강 풍경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찍어야 해!”
여솜과 시우는 스마트폰으로 아래에 쫙 펼쳐진 한강의 모습을 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호들갑을 떠는 두 사람을 향해 비아가 어깨를 한 차례 으쓱했다.
“한강은 어디 도망 안 가니까 천천히 찍으라구.”
비아의 모습에 이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작 집 주인은 가만히 있는데, 왜 네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건데.”
그래도 우미는 개의치 않는 모양인지 별다른 태클 없이 멤버들에게 앉기를 권유했다.
거실도 넓고. 소파도 큰 덕분에 여섯 명의 멤버들이 전부 다 앉아도 자리에 여유가 있었다.
우미가 가져온 사과 조각 하나를 먹으면서 시우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실 아까 비아가 우미 언니 집에 가자고 했을 때 속으로 걱정했었거든요. 인원이 여섯 명이나 되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면 민폐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여섯 명이 아니라 10명이 왔어도 널널했을 거 같아요.”
“대신에 혼자 살기에는 많이 부담스러워. 나는 원룸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생략된 우미의 말끝에 여러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이 중에서 우미의 가정사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우미가 가족들 이야기를 꺼내는 걸 많이 불편해한다고.
하지만 여솜이나 시우는 아직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팀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이로 인해 가족 이야기가 나올 거 같은 기미가 보이면, 이연이 다른 화제로 말머리를 돌리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식사는 어떻게 할래? 그래도 명색이 뒤풀이 자리인데, 먹을 건 있어야지.”
“마침 내가 어제 장 봐 왔거든? 요리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마실 거는…… 근처에 마트 있으니까 아무나 갔다 올래? 위치는 내가 알려줄게.”
집주인 우미의 지시에 따라 멤버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우미 혼자서 여섯 명이 먹을 음식들을 한 번에 준비하는 건 아무래도 힘들어 보였기에 주방보조 몇 명을 추가로 뽑아야 했다.
“요리 할 줄 아는 사람?”
손을 든 사람은 이연과 리샤, 단둘뿐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머지 셋이 음료와 기타 필요한 먹거리들을 사 오기로 결정되었다.
셋이 팀을 이루어 자리를 비운 동안, 요리팀 멤버들이 서로 앞치마를 둘러줬다.
색깔별로 있는 앞치마 중 남색을 고른 이연은 왼쪽 손목에 감아둔 머리끈을 이용해 요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긴 머리카락을 뒤로 가지런히 묶었다.
그 모습에 리샤가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집어 들었다.
“연아, 여기 봐봐.”
머리를 묶는 자세에서 고개를 돌려 리샤 쪽을 응시했다.
그 순간.
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왜.”
“예쁘니까 그렇지. 사진 보내줄 테니까 SNS에다가 올려. 팬들도 좋아할 거야.”
이연은 굳이 사진까지 안 찍어줘도 된다고 말을 했지만, 그래도 어차피 찍혔으니까. 리샤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댄서들과 음원 차트 1위 달성 기념으로 찍은 단체 사진 이후에 따로 SNS에 업로드한 사진도 없고 말이다.
팬들이 애간장을 더 이상 태우지 않도록 하는 것도 아이돌로서의 사명이다.
요리 끝나고 나중에 올리겠다고 말한 이연은 우선 재료들부터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1인 가구치고는 마련되어 있는 음식 재료들이 상당히 많았다.
“언니. 양파하고 마늘, 파는 왜 이렇게 많이 샀어?”
“세일하길래 샀지. 그리고 난 밖에 나갈 때 아니면 웬만하면 다 집에서 요리해서 먹는 타입이라서 재료들 많아 보여도 금방 소진돼.”
우미의 부지런함이 잘 드러났다.
고기와 재료 볶기 담당은 리샤가, 그 이외의 나머지 것들은 우미와 이연이 번갈아가면서 맡기로 했다.
칼을 쥐고서 도마 위에 있는 재료들을 빠르게 채썰기 하는 이연.
우미가 그녀의 손놀림을 눈여겨봤다.
“저번에 단합 여행 갔을 때에도 어렴풋이 느끼긴 했는데, 연이 요리 잘하는구나?”
“그냥 남들 하는 만큼 정도야.”
이연이 음유시인으로 성공하기 이전의 어렸을 때에는 몰락 귀족 집안의 자제였기에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
요리 실력도 그때 늘게 되었다.
과거의 기억과 습관이 몸에 깊게 배서인지 대륙에서 제일가는 음유시인이 되었어도 이연은 혼자서 요리를 곧잘 하곤 했다.
환생한 이후에는 식당 일로 집을 비우는 어머니의 사정으로 인해 다시 요리할 기회가 강제적으로 많아졌다.
이연에게 있어서 요리는 어렵고 힘들었던 유년 시절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억이 딱히 싫진 않았다.
좋게 말하면, 초심을 떠올리게 해주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리샤가 씨익 웃으면서 이연의 엉덩이를 토닥여 줬다.
예상치 못했던 스킨십 공격에 이연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뭐, 뭐냐, 갑자기!”
“그냥 기특해서 그렇지.”
이연의 투정에도 리샤는 오구오구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서로 장난치는 두 동갑내기의 모습을 보면서 팀 하니엘의 엄마 포지션을 맡고 있는 우미가 리샤에게 주의를 줬다.
“연이 재료 손질하고 있을 때 장난치지 마, 리샤. 그러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네~!”
다들 한창 떠들기 좋아하는 나이대라 그럴까.
요리하는 데에도 조용한 법이 없었다.
* * *
뒤풀이 회식이라고 하지만, 멤버들이 준비한 식탁은 상당히 건전했다.
회식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그 흔한 술 한 병 없었다.
아직 멤버들 중에서 미성년자인 비아와 시우가 있다 보니, 그녀들은 술 대신 탄산음료로 회식 분위기를 내기로 했다.
잔에 사이다를 가득 따른 이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멤버들이 리더가 먼저 건배사를 하라고 여기저기서 재촉이 들어왔기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역할을 맡게 되었다.
“특별히 말할 건 없고. 이제 파이널 무대 하나밖에 안 남았으니까, 마지막까지 힘내보자. 건배!”
“건배!”
“다 같이 데뷔하자!”
유리잔들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면서 짠! 하는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단합 여행 때에도 물론 즐겁긴 했지만, 카메라들이 사방에 부착되어 있던 터라 쉬러 간 느낌을 크게 받진 못했다.
하지만 이곳은 우미의 집이기도 하고. 카메라와 주변 사람들 눈치 볼 일 없이 마음껏 즐겨도 되는 환경이었기에 심적으로 굉장히 편했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의 텐션 역시 높았다.
“리샤 언니, 우리 마트 가서 그거 사 왔어. 언니가 좋아하는 육포.”
“땡큐! 역시 비아가 센스가 있어.”
“여솜 언니, 저 거기 컵 좀 줄 수 있어요?”
“이거? 여기 있어.”
“고마워요.”
“우와! 이 김치전, 이연 언니가 만든 거야? 맛있어!”
시끌시끌한 저녁 식사 자리를 보면서 이연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멤버들과 가지는 소란스러운 식사 자리는 이연에게 있어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멤버들과 함께 이렇게 있으면 이연도 기운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연의 마음속에 하니엘이라는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었다.
동시에 이 멤버들과 함께 데뷔하고 싶다는 욕심 역시 강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만이 답이다.
“곡 콘셉트는 어떻게 할까.”
이연의 물음에 비아와 리샤가 윽!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 건 내일 생각하면 안 돼?”
“맞아, 맞아. 오늘은 복잡한 거 생각하지 말고 즐기자고!”
이번에는 우미도 두 사람의 편에 서줬다.
“PD님도 오늘은 좀 쉬어도 된다고 하셨으니까. 너무 안달 내지 않아도 돼.”
하기야. 아직 뭔가 확실하게 방향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너무 달리기만 하면 지치게 마련이니까. 가끔은 휴식도 필요하다.
“그럼…….”
다른 이야깃거리를 생각하던 이연의 머릿속에 오늘 들었던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우리, 대학 행사 무대 설 거라고 했었지?”
“맞다, 그랬지.”
대학 행사 이야기가 나오자 비아가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언니들, 대학은 어떤 곳이야?”
비아와 시우를 제외한 멤버들은 다 대학교에 재학할 나이다.
동갑내기 3인방이 20살. 최연장자인 우미가 21살이다.
고등학생이다 보니 아무래도 대학이라는 존재에 대해 호기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관심 없는 척하던 시우도 어느새 귀를 쫑긋 세운 채로 언니들의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난 그때 연습생 신분이라서 학교에 거의 나가질 못했는데…….”
리샤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나도’라고 짧게 말했다.
남은 이연과 우미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렸다.
이연의 머릿속에는 대학 생활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이유는 여솜과 똑같았다.
“입학하자마자 휴학계 내서 한번도 간 적 없어.”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던 우미조차도 대답은 비슷했다.
결국은 멤버들 전체가 다 대학 생활과는 연이 없다시피 한 셈이었다.
비아가 사 온 육포를 먹기 좋게 잘게 찢던 리샤가 정리에 나섰다.
“어차피 우리도 행사 가기로 했으니까. 그때 못 느껴본 캠퍼스 분위기 느껴보면 되는 거지, 뭐.”
어쩔 수 없었다.
그녀들의 꿈은 대학교가 아니라 무대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