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80화
제23화. 자존심을 걸고서(3)
2차전, 3 대 3 대결을 펼치기 위해 총 여섯 명의 연습생들이 무대에 올라섰다.
이은솔이 연습생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유닛 대결 중 가장 많은 연습생들이 참가하는 2차전입니다. 앞에서 듀오 유닛들이 굉장히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는데. 2차전에 나서는 연습생들의 각오도 안 들어볼 수가 없겠죠? 먼저 하니엘 팀부터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나여솜이 비아, 시우를 대신해서 대표로 마이크를 들었다.
“저희 하니엘 팀, 다들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꼭 지켜봐 주시고 큰 목소리로 응원 부탁드릴게요!”
나여솜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팬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외치고 또 외쳤다.
1차전과 다르게 2차전은 하니엘부터 먼저 무대를 펼치기로 했다.
관객석 한가운데에 위치한 특별석에 자리 잡은 심사 위원들은 안 그래도 이 무대가 굉장히 궁금했다.
과연 나여솜과 연시우가 다재다능 팀들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
여기에 포인트를 두고 있었다.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 오채일 대표가 다른 심사 위원들에게 예상을 물었다.
“어떻게 될 거 같아?”
민주린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둘 중에 하나일 거 같아요. 모 아니면 도. 대박이거나, 아니면 아예 망하거나.”
2차전 무대는 권이연이 쭉 이끌어온 다재다능 팀의 컬러와 많이 다를 것이다.
나여솜이 주축으로 되어 있는 팀이니까.
이것은 곧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청중평가단 중에서 하니엘을 응원하는 팀의 대다수는 원래부터 다재다능 팀을 응원했던 팬들이었다.
그런데 다재다능 팀의 색깔이 잘 묻어나지 않는 무대를 그들 앞에 선보인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신선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테지만, 반대로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린은 모 아니면 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팬들의 마음을 불호가 아닌 호로 이끌어야 한다.
그게 나여솜, 이비아, 연시우의 역할이다.
심사 위원들끼리도 의견이 꽤 분분했다.
호기심이 가득한 나여솜 체제의 3인 유닛이 마침내 반주와 함께 출격했다.
그녀들이 택한 곡은 ‘여름을 맞이해’였다.
청순 콘셉트의 대표 주자라고 불렸던 걸 그룹, 에시드의 3집 타이틀곡이다.
듣기만 해도 청량함이 느껴지는 반주를 발판삼아 비아가 가장 먼저 자신의 파트를 펼쳤다.
-불어오는 여름 바다.
일렁이는 파도 소리가
내 심장처럼 크게 출렁이네.
비아의 뒤를 이어 나여솜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두 바퀴 턴을 하면서 비아가 섰던 센터 자리에 위치하는 나여솜.
찰랑이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마치 요정처럼 사뿐히 일렁였다.
-나랑 같이 떠나자!
우리들만의 바다로.
오늘만큼은 걱정 따윈 내던지고
재미있게 노는 거야.
무대를 조용히 지켜보던 나현아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싸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머나, 둘 다 왜 이렇게 귀엽대.”
SSS 녹화를 하면서 수도 없이 본 연습생들의 모습인데.
무대 위에서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에시드의 안무는 난이도가 꽤 높은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니엘 3인 유닛은 조금의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채 무대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보컬 파트는 전부 나여솜, 이비아가 맡았다.
하이라이트는 바로 후렴구.
오채일 대표가 신이 난 목소리로 혼잣말을 흘렸다.
“자, 이제 메인 보컬의 시간이다.”
안무도 안무지만, 이 곡은 고음 파트에도 자비가 없다.
분명 에시드의 곡들 중에 좋은 곡이 있다는 건 SSS에 참가하는 연습생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워낙 난이도가 있다 보니 픽률이 굉장히 낮았다.
나여솜, 이비아, 연시우가 처음으로 에시드의 노래를 택한 팀이 되었다.
그래서 심사 위원들은 한편으론 걱정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본무대에서 보여주는 연습생들의 모습은 이 걱정을 단번에 떨쳐내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메인 보컬을 맡은 나여솜이 무대 사이드로 빠졌다.
-바다의 푸른빛이 남아 있는 한
우리들의 휴식은 계속될 거야.
Summer vacation!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위해
같이 불러봐! 이렇게!
마구마구 올라가는 옥타브.
그럴수록 청중평가단의 호응도 같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나여솜이 직접 보여줬다.
나현아가 연습생들을 향해 대견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저렇게 고음을 시원하게 내지르면, 누구라도 가만히 있기 힘들죠.”
그녀가 보컬 트레이너였기에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민주린도 같은 생각이었다.
격한 안무를 추면서 고음을 소화하는 건 연습생들에게 굉장히 큰 부담을 준다.
그러나 나여솜은 이걸 너무나도 쉽게 해냈다.
사랑의 요정들을 1위 자리로 올려놓았던 그 저력이 다시 한번 펼쳐진 셈이었다.
* * *
나여솜의 고음이 무사히 끝났을 때.
우미와 리샤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잘했어, 여솜아!”
“우리 여솜이, 멋지다! 너무 멋져!”
빠르게 박수를 치면서 기쁨의 발 동동 구르기를 펼치는 두 연습생들.
반면 이연은 끝까지 침착했다.
아직 무대가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솜이가 확실히 잘해.’
이연이 괜히 눈여겨본 인물이 아니었다.
어떤 포지션에 갖다놔도 늘 제 역할을 소화해 내는 만능 캐릭터, 나여솜.
여기에 시우의 랩이 조미료로 첨가되기 시작했다.
빠른 비트를 타면서 속사포로 랩을 내뱉는 시우의 모습에 뜨거운 분위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미가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시우를 칭찬했다.
“우리 시우 랩은 언제 들어도 멋있다니까.”
“맞아. 동생이지만 무대 위에서 보면 시우가 나보다 언니 같아 보여.”
이연은 ‘과연 무대 위에서만 그럴까?’라는 말을 하려다가 겨우 참았다.
농담은 오늘의 무대가 전부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엔딩 포즈까지 완벽하게 소화한 나여솜, 이비아, 연시우 팀.
여태껏 보지 못했던 팬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연습생들은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비아, 시우. 둘 다 잘했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나여솜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엄청난 공연을 보여준 하니엘 두 번째 팀.
이 기세에 눌린 모양인지, 벨제브 팀은 기대했던 것만큼의 솜씨를 보여주지 못했다.
팬들이 열심히 응원의 함성을 보태보긴 했지만, 사실상 2차전 승패는 이미 결론이 난 듯해 보였다.
3 대 3 대결에 나섰던 각 팀 유닛의 무대가 끝났다.
이은솔이 청중평가단을 향해 외쳤다.
“투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잘했다고 생각하는 유닛의 팀명이 적힌 버튼을 눌러주세요!”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리샤가 우미와 이연의 어깨를 찰싹찰싹 때리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저기 저쪽 남자분들, 하니엘 버튼 눌렀어! 어머머, 저기 여성분들도!”
버튼을 누르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고 투표 결과까지 예측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이연은 머릿속으로 경우의 수 계산에 들어갔다.
‘1차전은 벨제브 팀이 우세했을 테고. 2차전은 우리 팀이 승점을 챙겼다고 치면…….’
바로 계산이 나온다.
마지막 3차전.
솔로 유닛 대결에서 승패가 갈린다.
결국 권이연과 진절혜. 두 연습생에게 팀의 운명이 달린 셈이었다.
* * *
한 번씩 유효타를 주고받은 하니엘과 벨제브.
지켜보는 입장에선 그야말로 꿀잼이었지만, 직접 무대에 올라서는 연습생들의 입장에선 피가 말릴 수밖에 없었다.
2차전 투표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동안, 심사 위원석에서는 과연 어느 팀이 앞서 나가고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로 한창이었다.
심사 위원 모두 이연이 예상하는 것 그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 세트에서 승패가 갈릴 거예요.”
민주린이 정리를 해서 말해주자, 다른 심사 위원들이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사 위원들뿐만 아니라 청중평가단 역시 오늘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무대.
파이널 라운드 생방송 무대를 앞에 두고 벌일 최후의 솔로 대결에 모든 이목을 집중시켰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이은솔이 천천히 등장했다.
오늘 무대를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했던 이은솔이지만, 그는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흥미진진하다는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대결만 남았습니다.”
청중평가단의 눈빛이 반짝였다.
연달아 네 번의 공연을 봤던 터라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으로 마지막 남은 기력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3차전, 솔로 대결! 그 주인공들을 무대로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장이 떠나갈 것만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좌우측 계단을 이용해 각 방향에서 등장하는 권이연과 진절혜.
방송 초반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라이벌 스토리가 오늘, 드디어 일대일 대결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팀 관련 미션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직 단둘이서만 대결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진절혜는 그 누구보다도 이 순간을 기다렸다.
그녀에게는 권이연에게 당한 걸 한꺼번에 갚아줄 설욕의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끝날 줄 모르는 박수 소리에 결국 이은솔이 나서서 팬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여러분들. 이 대진을 애타게 기다렸다는 거 저도 잘 압니다만. 그래도 무대를 안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네!!!”
“그럼 먼저 한 명씩 짧게 인터뷰를 나눠보도록 할까요. 먼저 진절혜 연습생부터. 제가 LC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한테 들은 건데, 그 어느 때보다도 연습에 매진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진절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아이돌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습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어떻게든 권이연 연습생을 꺾으려고요.”
타도 권이연.
SSS 방송이 종료되기 전에, 진절혜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권이연을 꺾고 자신이 승자로 올라서 보고 싶었다.
오늘이 어쩌면 그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진절혜는 말 그대로 연습에 사활을 걸었다.
이연이 같은 팀 멤버들의 연습 진행 상황에 신경 썼던 것과 달리, 진절혜는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일에만 집중했다.
그만큼 권이연을 향한 집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뜻했다.
진절혜의 도발을 먼저 받게 된 권이연.
이번에는 그녀에게 차례가 넘어갔다.
“오늘 무대 시작하기 전부터 두 리더 연습생의 신경전이 어마어마하네요. 권이연 연습생은 오늘 대결,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최선을 다했다고 이미 정해진 결과가 바뀌진 않을 겁니다. 이번 무대에서 제가 그걸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덤덤하게 말하는 이연이었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실린 무게감이 엄청났다.
두 연습생의 각오를 끝으로.
“진절혜 연습생의 무대부터 먼저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존심을 건 리더 대결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