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78화
제23화. 자존심을 걸고서(1)
마침내 유닛 대결 미션의 시간이 다가왔다.
오후 5시부터 녹화가 시작될 예정이었기에 연습생들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부지런히 준비를 해야 했다.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현장에서 잠시 멤버들과 함께 대기하던 비아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뭔가 휑하네.”
앨리샤가 아침 식사용으로 사 온 샌드위치 하나를 막 해치우고서 물었다.
“마음이?”
“아니, 그런 추상적인 뜻이 아니라. 여기 녹화 현장 말이야.”
“객석이 비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것도 있긴 한데. 생각해 봐. 우리, SSS 녹화할 때 처음에는 32명으로 시작했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고작 12명밖에 안 남아 있으니까. 그래서 좀 휑한 느낌이야.”
“아, 그런 뜻이었구나. 나는 또.”
샌드위치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바나나 우유의 차례다.
빨대를 꽂고서 입술로 그 끝을 살짝 문 앨리샤는 비아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모양인지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평소 그녀들이 녹화하던 스튜디오에 가면 이 휑한 느낌은 배가 된다.
32명에서 22명으로.
그리고 22명에서 12명으로.
마지막은 6명밖에 생존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매 라운드마다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느꼈던 비아였으나.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휑한 현장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쓸쓸함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내가 시청자 입장에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에는 이런 거 못 느꼈는데. 역시 본인이 직접 경험해야 하나 봐.”
“어떤 일이든 다 그렇지, 뭐. 그래도 너무 이런 거에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은 무대에만 집중하자. 알았지?”
“응. 그래야지.”
권이연이 없어도, 이제는 멤버들끼리 알아서 서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방법에 통달하게 되었다.
몇몇 멤버들이 오늘 자신들이 공연을 펼칠 현장을 둘러보는 동안, 이연은 시우와 함께 나란히 앉아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메이크업만 받고 있기에는 좀 그랬다.
오랜만에 만난 만큼, 이연은 2차전에 나설 유닛 팀의 현 상황이 궁금했다.
“준비는 많이 했어?”
“네. 할 만큼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
“다행이네. 여솜이는 어땠어?”
“저희 잘 이끌어주시더라고요. 이연 언니하고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믿고 의지할 만한 리더셨어요.”
“사랑의 요정들이 괜히 2라운드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게 아니니까.”
물론 팀원들 모두가 열심히 해서 그런 좋은 결과를 낳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이연은 나여솜의 활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리더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팀의 향방이 크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돌 그룹들도 마찬가지다.
연습생들끼리 꾸린 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시우가 물었다.
“이연 언니는 어때요?”
“나?”
이연은 싱긋 웃었다.
“굳이 말해줄 필요가 있니?”
그녀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시우는 늘 당찬 이연의 이런 모습이 좋았다.
계속 보고 있으면, 그녀를 동경하게 된다.
“저도 언젠간 이연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그러나 이연은 다른 의견을 펼쳤다.
“나도 아직 데뷔 못 한 연습생인걸. 그러니까 제2의 권이연이 될 생각을 하지 말고 제1의 연시우가 되도록 노력해. SSS가 끝나면, 진짜 서바이벌이 시작될 테니까.”
권이연은 SSS에서 펼치는 이 서바이벌 시스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방송이니까 그나마 선의의 경쟁, 공정한 대결을 표방할 수 있는 거지, 실제 연예계는 이런 배려 따위는 전혀 없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연예계다.
“누구의 도움을 바라지 마. 앞으로 네가 강해지고 네가 떠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게 좋아. 무대 뒤의 세계는 그만큼 냉혹하거든.”
이연은 이미 그런 경험을 수차례 겪었다.
그래서인지 시우는 그녀의 말속에 깊이가 있음을 느꼈다.
“명심할게요, 언니.”
“너라면 잘해낼 수 있을 거야.”
같은 팀이니까.
누가 뭐라 해도 이연은 시우를 끝까지 믿어줄 것이다.
물론 그건 시우도 마찬가지다.
* * *
메이크업에 헤어, 그리고 무대 의상까지. 본무대에 올라설 때처럼 풀 세팅을 마친 그녀들은 오랜만에 한 대기실에 다 같이 모였다.
서로 다른 무대에 서기 때문에 복장도 크게 차이가 났다.
멤버들의 시선은 전부 권이연에게 쏠렸다.
“연이, 그 복장 뭐야.”
“언니. 너무 야한 거 아니야?”
야하다는 말에 이연은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어디가.”
피부 노출이라고는 맨다리 정도밖에 없었다.
비아는 피부 노출을 기준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엄청 쫙 달라붙잖아. 여기 봐봐. 허리하고 엉덩이 라인 다 보이네.”
“가슴도 그렇고.”
인정사정없이 날아드는 성희롱 발언에 이연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남 의상에 신경 끄시지.”
“어머머, 이 언니가. 우리가 남이야? 응?”
“우린 또 다른 가족이잖아. 안 그래?”
“…….”
팀 리더로서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떨어져 있는 사이에 어디서 말 잘하는 방법이라도 배우고 왔는지, 오늘따라 팀원들의 공격이 매섭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는 모양인지, 이연이 미리 주의를 줬다.
“오늘 공격할 상대는 내가 아니라 저쪽 팀이라는 거 잊지 마.”
“알지, 알아.”
피아식별은 제대로 하자.
이연은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다.
* * *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되면서 팬들 사이에서 큰 지각변동이 생겼다.
각 연습생들을 응원하던 SSS의 팬들이 하니엘, 벨제브 2강 체제로 돌입하면서 이제는 둘 중에 한 팀을 밀어주기 시작한 거였다.
이미 팬클럽도 생겼다.
객석에는 각 팀을 응원하기 위한 팬들의 함성이 치열했다.
“하니엘 파이팅!!!”
“우리 천사들! 꼭 데뷔하자!!”
“벨제브, 오늘은 무조건 우승이다!”
“하나, 둘, 셋, 벨제브 파이팅!!!”
벌써부터 객석이 시끌시끌해졌다.
응원전이 펼쳐지는 이 현장에 권민준과 그의 친구들 역시 자리를 잡고 목소리를 가득 높였다.
“이연 누나! 힘내요!!”
“데뷔! 데뷔! 데뷔!!!”
누구보다도 팬들이 그녀들의 데뷔를 염원하고 있었다.
점점 뜨거워지는 현장의 열기를 어느 정도 진정시키기 위해 SSS의 MC, 이은솔이 나섰다.
그가 모습을 나타내자, 관객들의 함성이 더욱 뜨거워졌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직 녹화 시작된 건 아니고요. 사전 안내를 위해 제가 먼저 잠깐 올라왔습니다. 다들 제 말에 집중해 주실 거죠?”
“네에-!”
말해 무엇할까.
오늘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러 와서 기분이 좋은 만큼, 청중평가단들은 어떠한 것도 협조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좋네요. 그럼 앞서 오늘의 무대에 대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룰은 저번과 동일합니다. 여러분들이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시고, 어느 팀이 마음에 드는지 선택을 해주시면 됩니다. 1차전은 듀오, 2차전은 3 대 3, 그리고 3차전은 솔로입니다. 각 파트별로 대전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투표가 시작됩니다. 이때 최대한 객관적으로 투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팬들이 각자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연습생들이 있다는 건 이은솔도, 그리고 제작진도.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서바이벌 오디션인 만큼, 사심보다는 연습생들이 보여준 무대의 퀄리티를 놓고 투표를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촬영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매너 있는 응원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아셨죠?”
“네!!!”
“좋습니다. 그럼 10분 뒤에 녹화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은솔의 안내 덕분에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던 팬들끼리의 응원전이 금세 잦아들었다.
* * *
약속한 대로 10분 뒤.
드디어 대망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다시 무대 위로 오른 이은솔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의 손으로 뽑는 대한민국 최고의 걸 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진행을 맡은 이은솔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미 한번 청중평가단과 만났던 이은솔이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처음이었다.
팬들도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은솔의 재등장을 적극 환영했다.
“오늘 어째 이전 팀 미션 무대 때보다 더 뜨거운 거 같네요. 여긴 아직 여름입니다, 여름.”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시각적으로나마 전달하기 위함인지, 이은솔은 열심히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러분들, 수분 보충하시면서 응원하는 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꼭 기억하시고요. 자, 그럼 오늘 열띤 무대를 펼칠 12명의 연습생들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와주세요!”
이은솔의 외침에 따라 연습생들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여태껏 접하기 힘들었던 뜨거운 함성이 현장을 빠르게 채웠다.
“먼저 하니엘 팀부터 자기소개해 볼까요?”
“둘, 셋.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천사, 하니엘입니다!”
매번 그냥 ‘하니엘입니다’라고 외치기에는 너무 썰렁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이번에는 멘트를 좀 더 늘려보게 되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하니엘의 팬들이니, 그녀들이 무엇을 하든 팬들 입장에선 무조건 Yes일 것이다.
이번에는 벨제브 팀의 소개가 이어졌다.
“둘, 셋! 오늘 밤 당신을 홀릴 거예요, 벨제브입니다. 반갑습니다!”
벨제브를 응원하는 팬들 역시 열띤 반응을 보여줬다.
자기소개부터 상당히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는 두 팀.
이번에도 각 팀의 팀장들 인터뷰를 빼놓을 수 없었다.
“권이연 연습생. 이번 2차 미션은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미션들과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네, 그렇죠.”
유닛 대결. 단, 서로 관여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기에 준비하는 데에 많은 난항이 있었다.
물론 이건 하니엘 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벨제브 팀 역시 솔로 파트를 맡은 진절혜를 제외하고 각 유닛들 간의 잦은 마찰이 있었다.
이은솔은 이걸 스태프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팀장들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준비는 잘되었다고 보십니까?”
이연의 대답은 늘 그렇듯 자신감이 넘쳤다.
“완벽합니다.”
뒤이어 진절혜의 차례가 되었다.
“벨제브 팀은 어떻습니까?”
“저희가 더 완벽할걸요?”
하니엘을 향한 도발성 멘트가 날아들었다.
한 방 먹여서 기쁜 모양인지, 진절혜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스윽 올라갔다.
그러나 이연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고 생각한 진절혜는 무반응으로 나오는 이연의 저 모습이 더 열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분함은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겉으로 표출해선 절대로 안 된다.
두 팀장의 신경전 속에서 이은솔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각 팀장들의 각오가 대단하네요. 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가수답게 이제는 실력으로 보여줘야죠. 안 그렇습니까?”
청중평가단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그럼 먼저 1차전, 듀오 유닛 대결부터 만나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뒤, 무대로 찾아뵙겠습니다!”
드디어 두 팀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