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77화
제22화. 역주행(2)
파이널 라운드 2차 유닛 대결까지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혼자서 연습을 이어갔던 이연은 오늘도 미션 준비를 위해 어김없이 안무 연습실로 출근했다.
문을 연 순간,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댄서들이 갑자기 케이크 안에 들어 있는 파티 폭죽을 들고 터뜨렸다.
“축하해요, 이연 씨!”
“여기, 저희가 준비한 케이크하고 꽃다발이에요.”
아침부터 벌어진 호사.
댄서들이 이렇게 이연을 축하해 주는 데에는 다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이번에 하니엘이 커버했던 ‘별별’이 메이저 음원 플랫폼에서 일일 차트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방송의 힘일까.
이제는 아예 순위권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었던 유스풀의 ‘별별’ 원곡도 하니엘의 커버곡에 힘입어 3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댄서들의 열렬한 축하 세계를 받으며 이연은 고맙다는 말을 반복해 들려줬다.
“저희, 사진 찍어야죠!”
“이연 씨가 가운데에 서세요!”
“여기요, 여기!”
댄서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자체적으로 사진 각도를 잡기 시작했다.
이연은 그저 하라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여덟 명의 댄서들과 함께 찍은 사진.
댄서들은 이연에게도 이 사진을 보내주면서 말했다.
“SNS에 올리셔도 돼요.”
그런 게 있었지.
이연은 뒤늦게 자신의 SNS 계정을 떠올렸다.
원래 그녀는 개인 SNS 계정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팀 멤버들이 홍보의 일환으로 SNS 같은 소통 창구는 무조건 필요하다면서 반강제로 그녀의 SNS 가입을 주도했다.
계정이 있긴 하지만, 하니엘 멤버들에 비해서 게시물은 거의 올린 적이 없었다.
‘그래. 이럴 때 SNS 활용해 보는 거지, 언제 또 사진 같은 거 올려보겠어?’
너무 게시글을 안 올리면 버린 계정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멤버들한테 기껏 계정 만들어줬는데 왜 안 하냐면서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말이다.
오랜만에 SNS에 접속하고 나니, 그새 팔로우 숫자가 배로 늘어나 있었다.
방송이 나갈 때마다 이연의 팔로우 숫자는 계단을 오르듯 껑충 뛰었다.
SSS에 출연하고 있는 연습생 중에서 가장 많은 팔로우 숫자를 보유하게 된 그녀.
방금 댄서가 톡 메시지로 공유해 준 사진을 하나 달랑 올리자, 수많은 하트들이 찍히기 시작했다.
알람이 하도 많이 와서, 설정에 들어가서 알람 표시를 꺼둬야 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이제 슬슬 이 세계의 인터넷 문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SNS 덕분에 아직 한참 멀었음을 깨달았다.
* * *
“원, 투, 쓰리, 포! 사이드로 빠지고! 방금 한 박자 느렸어! 좀 더 빨리!”
이번에 이연의 댄스를 책임지게 된 퍼플피플 크루의 리더, 은서해가 날카로운 외침을 내뱉으면서 후열에 위치한 댄서들에게 주의를 줬다.
연습을 할 때마다 지적할 사항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리더 입장에선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잠깐 스톱!”
결국 안무를 중지시킨 은서해가 댄서들을 향해 잔소리 속사포를 날렸다.
댄서들 모두에게 한 명씩 돌아가면서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지적해 주는 그녀.
한숨을 푹 내쉰 은서해는 이연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들 이연이 좀 본받아. 얼마나 잘하니. 응?”
이에 대해 이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딱히 말할 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희가 실수 하나 하는 순간, 이연이의 데뷔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항상 긴장하고 경각심을 가지면서 움직여. 알았어?”
“네!”
“이연이는 그대로만 해주면 돼.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다만 그 몸 어루만지는 퍼포먼스 할 때 있잖아? 그때 너무 간지러워 하는 티만 안 내면 될 거 같아.”
“네. 노력해 볼게요.”
스킨십에 약해서일까.
환생하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간지럼을 많이 타지 않았는데. 여자가 되고 난 이후에는 몸이 예민해진 모양인지 포인트 안무를 할 때 간지럼을 참느라 표정이 자꾸 무너진다.
이 부분만 주의하면 되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무대의상도 재질이 꽤 얇아서 댄서들이 이연의 몸을 여기저기 훑는 감촉이 그대로 다 전해질 것이다.
그래서 더 걱정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 안무를 없애자고 할 수도 없었다.
이것보다 더 노래에 잘 어울리는 포인트 안무를 떠올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간도 없고 말이다.
은서해가 두세 번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15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연습 시작해 보자. 그리고 이연이는 잠깐 회의실로 가봐.”
휴게실도 아니고. 회의실에 왜 가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고 물어봐도 은서해는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가보면 알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을 나섰다.
회의실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안무 연습실 바로 근처에 있었기에 왔다 갔다 하는 거에 큰 부담은 없었다.
회의실 문고리를 붙잡으려고 하던 순간, 이연은 안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누가 있는데?’
불투명한 회의실 창문 틈새로 스탠딩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문을 열자, 몰래 온 손님들이 이연을 격하게 반겼다.
“안녕하세요, 이연 씨!”
“저희 왔어요!”
나채민을 비롯한 유스풀 멤버들 몇몇이 이곳 LC 엔터테인먼트를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배들의 등장에 살짝 당황했던 이연이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인사부터 했다.
“선배님들이 여긴 왜…….”
나채민이 멤버들을 대신해서 이연의 궁금증을 해결해 줬다.
“감사 인사하러 왔죠. 이연 씨하고 하니엘 팀 여러분들 덕분에 저희 노래가 다시 역주행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음원 순위 상승과 함께 그동안 방송 출연 기회를 붙잡지 못했던 유스풀에게 섭외 요청이 쇄도했다.
오늘 아침에도 라디오 녹음 끝내고, 저녁에 토크 예능 녹화하러 가봐야 한다는 말을 들려줬다.
음방 무대도 마찬가지였다.
“고마워요. 저희가 이렇게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건 다 이연 씨 덕분이에요.”
“제가 한 건 얼마 없어요.”
“선곡 회의할 때 이연 씨가 유일하게 저희 노래 추천했다고 이미 들었어요. 만약에 이연 씨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저희는 어쩌면 이대로 팀 해체 수순까지 밟았을지도 몰라요.”
가수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중요하다.
그 한 번의 기회로 인해 뜰 수 있을지 없을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스풀은 이 한 번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룹 활동에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떠오르는 거라곤 암울한 미래뿐.
이대로 대중들에게 잊혀지나 싶었는데.
설마 한 연습생에 의해 어중이떠중이 취급을 받던 한 걸 그룹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질 줄 누가 알았을까.
“자고 일어나니까 스타가 된 듯한 그런 느낌이더라고요.”
“저희, 음원 차트 순위 확인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채민 언니가 가장 많이 울었어요.”
유스풀 멤버들의 깜짝 고백에 나채민은 크게 당황했다.
“그런 걸 왜 말해.”
“카메라 앞이니까 말하는 거지.”
“맞아. 이럴 때 아니면 우리 채민 언니가 사실 눈물이 엄청 많은 사람이라는 거 언제 팬들에게 알려주겠어?”
카메라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못 얻는 가수들이 수두룩하다.
유스풀도 늘 그랬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기회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었다.
나채민이 멤버들을 강제로 일으키며 말했다.
“이연 씨 연습하느라 많이 바쁘실 텐데. 우리가 시간 너무 많이 잡아먹으면 안 되잖아? 그만 일어나자.”
“그렇긴 하지.”
“정말 고마워요, 이연 씨. 저희가 나중에 이 은혜, 어떻게든 꼭 갚을게요!”
이연은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오늘의 유스풀은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남은 미션도 응원하고 있을게요!”
“파이팅! 이연 씨, 데뷔 가자!”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그녀들로부터 많은 기운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연습실로 돌아오자, 은서해가 이연에게 잘 다녀왔냐고 물었다.
“네. 덕분에요.”
은서해는 미리 제작진한테 오늘 유스풀이 깜짝 방문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연에게 회의실로 가보라고 재촉했던 거였다.
이연도 무사히 복귀했으니.
“자, 쉬는 시간 끝! 이제 연습하자.”
유닛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만 남았다.
* * *
파이널 라운드 2차 미션, 유닛 대결 준비를 위해 SSS 제작진은 많은 공을 들였다.
날이 갈수록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올라간 덕분에 여기저기서 투자 제안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로 인해 방송국 내에서 서윤철 PD의 위상도 달라졌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 SSS.
그래서인지 서윤철은 평소보다도 더 세심하게, 그리고 자세히 무대를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이번에 무조건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찍을 거니까, 준비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해. 특히 음질 쪽에 신경 많이 쓰고. 저번에 음질 안 좋다고 시청자 게시판 난리 났었잖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보니 사운드에 특히나 더 신경을 많이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에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비난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나 프로그램이 시청자들로부터 점점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항의 규모 역시 나날이 커져갔다.
제작진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같은 채널의 음악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스태프들까지 지원군으로 불러오게 되었다.
음악 방송에서 카메라 감독으로 일한 지 15년 차에 접어드는 베테랑, 홍덕현 감독이 내일 있을 녹화에 대비해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했다.
서윤철 PD가 홍 감독을 찾았다.
“감독님. 준비는 잘되어 가시죠?”
“예. 장비들도 저희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던 거 그대로 다 가져왔습니다. 화질 하나만큼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어디 화질뿐이랴.
음향 쪽에도 많은 제작비를 쏟아부었다.
황 감독이 마무리 세팅 작업에 임하면서 혼잣말을 흘렸다.
“안 그래도 저희 딸들도 SSS 매주 챙겨보던데.”
“따님들이 몇 살이시죠?”
“첫째가 중학교 3학년이고, 둘째가 1학년입니다.”
“아이돌 한창 좋아할 때겠네요.”
“어휴. 말도 마세요. 애들 엄마는 다른 프로그램 보자고 맨날 잔소리하는데, 어디 요즘 애들이 그런 거 들은 척이나 하겠습니까. 그러면 결국 애들 엄마가 마지막에 양보하더라고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옛말 하나 틀린 거 없습니다.”
서윤철 PD도 자식들을 둔 아버지였기에 홍 감독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 따님들은 누구를 제일 좋아합니까?”
“첫째가 권이연 연습생을 그렇게 좋아합니다. 둘째는 방송 초창기부터 진절혜 연습생 팬이었는데, 방송하는 날만 되면 둘이 맨날 싸웁니다.”
“하필이면 그 둘이네요.”
“제 말이 그렇습니다. 거참…….”
연습생들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팬들도 꾸준한 신경전을 이어오고 있었다.
내일 있을 유닛 대결에서도 그럴 터.
2차 유닛 대결에서는 어느 팀이 승리를 거둘지.
그리고 홍 감독의 집안 분위기는 과연 어떻게 될지.
서윤철 PD는 속으로 많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