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67화
제19화. 전문가들(3)
커버곡 녹음과 안무 연습에 집중하는 사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르게 되었다.
벌써 내일, 파이널 라운드 대망의 첫 번째 미션이 시작된다.
늦은 저녁 시간까지 연습에 매진하는 각 팀.
A팀과 B팀은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공간만 따로 분리되어 있을 뿐, 생각보다 가까이 위치해 있었기에 화장실에 들른다든지. 휴게실을 이용할 때 서로 간혹 마주치는 경우가 발생하곤 했다.
하니엘 팀 소속인 비아와 시우가 언니들을 위해서 잠시 휴게실에 들러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구입하기 위해 움직였다.
비아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자판기 아래에서 음료가 떨어졌다.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챙기던 그때.
휴게실 문이 열리면서 A팀의 진절혜와 연습생 두 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A팀 멤버 중 한 명이 두 사람을 보고서 크게 당황했다.
평소라면 그냥 어색한 인사를 나누면서 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마주친 상대가 시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시우 역시 하필이면 진절혜와 여기서 딱 마주칠 줄은 몰랐는지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는 기색을 흘렸다.
비아가 자판기 버튼을 빠른 속도로 눌렀다.
“가자, 시우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빨리 이 어색한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던 찰나였다.
“연시우.”
진절혜의 한 마디가 연시우의 발걸음을 잠시 붙잡았다.
“연습은 잘되어가고 있니?”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에는 평범하게 안부를 묻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시우가 들었을 때에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진절혜의 말속에는 나를 배신하고 다른 팀에 들어가서 같이 연습하니까 좋냐는 식의 책망이 들어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연시우가 몸을 돌려 진절혜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네. 다들 잘하고 있어요. 저도 그렇고요.”
“다행이네. 난 네가 내 팀으로 와줬으면 하고 바랐는데. 그쪽으로 가버려서 많이 섭섭했어.”
“그래요? 저는 오히려 좋던데.”
“…….”
비아가 속으로 크게 웃었다.
원래 이런 반격은 이연의 전매특허인 줄 알았는데.
연시우도 제법 한다.
안무 연습실, 그리고 회의실, 두 곳처럼 휴게실에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긴 하다.
대신에 중요도가 떨어지는 장소인 만큼 카메라 숫자가 두 곳에 비해서 많은 편은 아니었다.
입구 쪽에 하나, 그리고 자판기 위쪽 천장에 하나.
총 두 개가 다였다.
그래도 휴게실의 전경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했다.
연습생들끼리 서로 불편해하는 모습은 대중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 앞에서도 웬만하면 보여주지 않는 게 좋다.
간혹 이걸 악의적인 편집 요소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파이널 라운드까지 올라온 연습생들 중에서 이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절혜는 다시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SSS에 출연하면서 춤, 보컬보다 억지 미소를 짓는 실력이 더 늘었다.
“다행이네. 아무튼 내일 있을 1차 미션, 서로 정정당당한 무대 만들어보자. 알았지?”
“네. 감사해요, 언니.”
정정당당.
진절혜에게 가장 안 어울리는 단어였다.
* * *
파이널 라운드 1차 미션 녹화를 위해 연습생들은 아침 일찍부터 현장에 모여서 연습을 반복했다.
대중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것과는 다른, 전문가들 앞에서 실력을 평가받는 자리였기 때문에 다른 의미에서 긴장이 되었다.
평가도 평가지만.
이연은 자신들의 무대를 평가할 심사 위원들의 정체가 가장 궁금했다.
SSS는 녹화 때마다 연습생들에게 대본이라는 걸 주지 않는다.
대충 어떻게 녹화가 진행될지. PD의 간단한 브리핑이 전부다.
‘대기실이라도 한번 돌아다녀 볼까?’
오죽 궁금하면 이연이 이런 생각까지 다 할까.
마법을 사용해서 자신의 기척을 감추고 현장 근처를 수색해 보면, 오늘 평가단으로 참가할 샐럽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연은 이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럴 여유가 있으면, 좀 더 무대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만 더 해보자. 이번에는 무대 의상 입어보고 실전처럼 해보는 거야. 알았지?”
“응!”
이연의 외침에 연습생들은 힘차게 답했다.
파이널 라운드까지 진출한데다가 이제 데뷔가 정말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렇다 보니 멤버들은 힘드니까 조금 쉬었다 하면 안 되냐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5분의 게으름이, 10분의 방심이 그녀들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멤버들은 군말 없이 이연의 연습 플랜을 따랐다.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은 이연은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살폈다.
이제는 치마에 많이 익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유스풀이 ‘별별’ 무대를 선보일 때 보였던 의상 콘셉트처럼 팀 하니엘도 교복 콘셉트의 의상을 갖춰 입었다.
SSS 공식 복장도 교복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었기에 이연은 지금의 복장이 나름 익숙했다.
멤버들 전체의 의상이 아예 똑같은 건 아니었다.
누구는 치마가 살짝 길고.
누구는 안에 입은 와이셔츠의 색깔이 더 옅은 편이고.
또 누구는 반팔이고.
약간의 변화로 각자의 개성을 나타내게끔 꾸몄다.
다른 멤버들은 중에서 이연이 유독 걱정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시우야.”
“네, 언니.”
“실수 안 할 수 있지?”
유스풀의 ‘별별’은 랩 파트가 특히 어렵다.
길이는 짧지만, 서브보컬들의 파트 중간중간에 추임새 느낌으로 짧은 랩 소절들을 집어넣어야 했다.
심지어 그게 많다.
평가단 앞에서 한 번이라도 실수해선 안 된다.
시우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믿고 있을게.”
연습 때 보여준 시우의 역량은 이연이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뛰어난 랩 담당이 있는데, 진절혜는 어떻게 2라운드 마지막 팀미션에서 그런 최악의 무대를 보여주게 된 걸까 하고 말이다.
시우도 그 점 때문에 진절혜는 답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연에게 넘어온 거였다.
이연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1위 순위를 지킬 수 있게 되어서 좋고.
연시우라는 실력 좋은 멤버를 데려올 수 있어서 좋고. 일석이조다.
시우에게는 진절혜를 향한 복수극이 될 수도 있는 무대가 펼쳐지기 전.
“하니엘 팀, 리허설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연과 멤버들은 무대를 향해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 * *
리허설을 통해서 이연은 처음으로 진절혜의 A팀 무대를 보게 되었다.
이연이 난이도 있는 곡을 택해서 높은 고점을 노리자는 전략을 택한 반면.
진절혜의 경우에는 난이도가 낮은 곡을 택해서 안전하게, 확실하게 기본 점수만 확보하면서 상대 팀의 실수를 노리자는 작전을 택하게 되었다.
역시 둘은 물과 기름이었다. 어쩜 이렇게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이연이 생각해도 우스운 상황이었다.
자신들의 선택이 과연 정답일지, 어떨지는 평가단이 알아서 정해줄 것이다.
리허설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평가단의 모습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기존의 SSS 심사 위원들과 이은솔만이 리허설 과정에 참가했을 뿐이다.
‘대체 얼마나 깜짝 놀랄 만한 사람들을 데려왔기에 이렇게 꼭꼭 숨기는 거지?’
이연은 슬쩍 서윤철 PD를 바라봤다.
리허설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스태프들과 뭔가 바삐 대화를 나누는 그.
저 얼굴 뒤에 어떤 꿍꿍이가 감춰져 있을지 이연은 굉장히 궁금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식사 시간이 되었다.
촬영이 길어지는 만큼, 허기의 강도도 세졌다.
그럼에도 하니엘 멤버들은 대기실에 놓인 도시락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걱정 때문이었다.
괜히 먹었다가 긴장감 때문에 속이 얹혀서 탈이라도 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멀쩡히 식사하는 사람은 단 둘뿐이었다.
권이연, 그리고 앨리샤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권이연은 다른 멤버들이 반의반도 다 못 먹은 도시락 하나를 싹 비웠다.
우미가 이연에게 걱정을 담아 물었다.
“그거 다 먹고 괜찮겠어?”
“오히려 배가 어느 정도 차 있어야 더 힘 있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아웃풋만 있을 순 없다.
인풋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권이연과 다르게 앨리샤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인풋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먹성은 이미 모르는 멤버들이 없을 정도였지만.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도 다른 멤버들의 도시락까지 대신 다 먹어치울 줄은 몰랐다.
“이제야 좀 배가 부르네.”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말하는 앨리샤를 보면서 비아가 손을 뻗었다.
앨리샤의 배 위로 손을 올린 비아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많은 음식이 어떻게 이 조그마한 배에 다 들어간대?”
“인체의 신비라는 거지.”
확실히 앨리샤의 몸은 연구 대상이었다.
편한 복장도 아니고. 허리와 배를 꽉 조이는 무대 의상을 입고도 저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식사까지 마쳤으니. 이제 녹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그동안 이연은 리허설 때 봤던 진절혜 팀의 무대를 다시금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평가를 받는 자리다 보니, 상대 팀의 존재가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했다.
‘무대는 잘 준비해 왔던데.’
SSS 심사 위원들도, 그리고 중간 점검을 담당했던 이은솔도. 지난 팀미션 리허설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연이 보기에도 괜찮은 무대인 건 맞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본무대다.
마침 스태프가 하니엘 팀의 대기실을 찾았다.
“촬영 곧 시작할 테니까 준비해 주세요.”
“네!”
마침내 A팀과 B팀의 첫 대결이 성사되었다.
* * *
녹화 현장으로 향한 A팀과 B팀.
미리 와 있던 이은솔이 팀들을 무대 위로 초대했다.
12명의 연습생이 팀별로 넓은 무대 위에 올라섰다.
이연은 심사 위원석을 바라보면서 짧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채일 대표와 이석호 트레이너, 나현아 트레이너, 그리고 민주린.
평소처럼 네 명의 심사 위원만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연이 PD에게 들었을 때에는 분명 10명의 평가단이 연습생들의 무대를 지켜볼 거라고 했었다.
‘6명은 어디 간 거지?’
이 궁금증은 비단 이연만의 것이 아니었다.
연습생들도 모두가 다 휑한 심사 위원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은솔이 연습생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바로 입을 열었다.
“두 팀의 무대를 평가해 줄 평가단 여러분들을 한 명씩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용하 프로듀서님, 나와주세요!”
심사 위원석 뒤쪽 문을 통해 호명된 오용하 프로듀서가 고개를 여러 차례 숙이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히트곡 제조기라 불리는 유명 프로듀서, 오용하.
그를 시작으로 1세대 여성 솔로 가수로 활동했던 이븐, 유지빈 작사가가 차례로 등장했다.
“다음은 2인조 작곡가 팀이죠. 수플렉스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덩치 좋은 두 남자가 호쾌한 발걸음으로 심사 위원석을 향해 걸어갔다.
“참고로 수플렉스는 한 팀으로 점수가 계산됩니다.”
연습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10번째 평가단으로는 현재 여성 걸 그룹 중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아이비제이의 멤버, 이혜원이 합류했다.
“여기서 추가로 스페셜 평가단을 2팀 모셨습니다.”
연습생들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은솔의 외침과 함께 추가된 2팀의 정체가 공개된 순간, 연습생들은 경악했다.
1팀은 진절혜 팀이 선곡한 노래의 원곡을 부른 그룹, 세레스였다.
그리고 다른 1팀의 정체 역시 이와 동일했다.
“안녕하세요. 유스풀입니다.”
이연의 머릿속이 잠시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