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65화
제19화. 전문가들(1)
파이널 라운드 대망의 첫 번째 미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이연은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작진이 잔인하네.’
대중들과 전문가는 보는 시선이 엄연히 다르다.
이 관점의 차이는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사회를 보고 온 영화 평론가들이 이 영화는 최고의 영화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반면, 상업적인 부문에서는 실패한 사례가 꽤 된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평론가들은 최악의 영화라고 손가락질을 했지만, 누적 관객 수 700만, 800만을 넘기던 영화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었다.
대부분은 일치한다.
극단적인 사례들이 몇 개 있어서 전문가와 대중들의 시선이 다르다는 편견이 있을 뿐.
그들이 괜히 전문가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전문가들은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세한 면을 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연습생들의 실력 검증을 제대로 하겠다는 뜻과도 같았다.
하필이면 파이널 라운드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연은 제작진이 잔인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거였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1차 미션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 * *
단합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이연은 내일부터 시작될 파이널 라운드 1차 미션 연습을 앞두고 선곡 고민에 빠졌다.
서윤철 PD는 분명 연습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본인들이 알아서 커버할 곡을 고르면 된다고.
‘1차에는 오리지널 곡으로 안 할 생각인가 보네.’
어쩌면 오리지널 곡들을 아껴두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파이널 라운드 최종 미션을 위해서 말이다.
멤버들과 헤어지기 직전, 이연은 내일 회의를 앞두고 그녀들에게 어울릴 만한 곡들을 몇 개 생각해 오라는 숙제를 내줬다.
이연은 책상에 앉은 채로 펜대를 굴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팀 하니엘의 실력을 전문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곡이 필요하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의도적으로 안무와 보컬 난이도가 비교적 쉬운 곡을 택해서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일부러 피하는 방법이 있다.
이래 봬도 12명의 연습생들은 예선, 1라운드, 2라운드를 뚫고 올라온 실력자들이다.
다들 기본적인 실력은 갖추고 있는 편이다.
그러면 쉬운 동작으로 꾸며진 기존의 곡 정도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간단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터.
쉽게, 안정적으로 가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와 대비되는 두 번째 방법도 존재한다.
고음 파트가 수시로 존재하고, 안무 난이도 역시 상당히 높은 곡을 골라서 ‘우리는 이렇게 어려운 곡도 소화할 수 있다’라는 것을 전문가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방식에는 커다란 단점이 존재한다.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크다는 거지.’
난이도와 본무대에서의 실수는 비례한다.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실수할 확률도 같이 상승한다.
우선은 둘 중에 어느 전략을 사용할지.
이것부터 결정하고 난 다음에 선곡을 하는 편이 좋아 보였다.
‘어쩐다…….’
다리를 꼰 채 깊은 생각에 빠진 이연.
파이널 라운드라서 그런 걸까.
이전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배로 길어진 기분이었다.
* * *
파이널 라운드 첫 번째 미션을 준비하기 위해 연습생들이 다시 소속사로 모여들게 되었다.
A팀, 그리고 B팀이 각각 나뉘어 자신들만의 회의실과 연습실을 사용할 예정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회의실 안.
테이블 위에는 이번에도 제작진이 PPL을 노리고 깔아놓은 과자와 음료, 빵 등이 가득 놓여 있었다.
이것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앨리샤였다.
“이럴 줄 알고 오늘 아침 적게 먹고 왔지!”
앨리샤가 말하는 ‘적게 먹었다’의 기준이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걸 이제는 모르는 연습생이 없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무슨 곡으로 연습할지부터 정해야 해.”
이연이 앨리샤에게 자중할 것을 당부했다.
상대는 대중가요에 정통한 전문가들이다.
어느 곡을 고르느냐에 따라 그들이 하니엘 팀에게 어떤 점수를 줄지 달라질 것이다.
이연은 우선 연습생들이 생각해 온 선곡 후보들을 들어보기로 했다.
“비아하고 시우부터 먼저 말해봐.”
“나는…….”
이연을 제외하고 나이 역순서대로 한 명씩 자신들이 생각해 온 선곡들을 모아서 리스트를 작성했다.
대부분은 예상대로 인기 있던 걸 그룹들의 히트곡이었다.
아무래도 유명한 곡을 하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연습생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연은 이들과 전혀 다른 방향의 곡을 언급했다.
“나는 유스풀 선배님들이 부르셨던 ‘별별’이 좋아 보이더라.”
“유스풀 선배님들이라면…….”
멤버들도 그녀들이 누군지 알긴 안다.
그러나 멤버들이 가져온 커버 후보곡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그룹이었다.
10년 가까이 걸 그룹으로 활동했던 유스풀이지만, 음악 방송에서 단 한 번도 1위를 차지해 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물론 노래는 좋다.
안무도 깔끔하고, 실력도 괜찮은 그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력파 걸 그룹을 고르라고 한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무조건 순위권으로 언급되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실력과 인기가 항상 동일하게 가진 않다.
실력은 있지만, 여러모로 시기를 잘못 탄 것 때문에 묻히게 된 비운의 걸 그룹.
멤버들은 이연이 설마 유스풀의 노래를 가져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색한 기류가 흐를 때, 우미가 이연에게 확인차 물었다.
“네가 고른 노래가 ‘별별’이라고 했었지?”
“어.”
“무대 한번 볼 수 있을까? 예전에 보긴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나서.”
“잠깐만.”
이연은 태블릿 PC를 이용해서 어제저녁, 그녀가 직접 봤던 무대 영상을 멤버들에게 보여줬다.
유스풀도 하니엘과 마찬가지로 6인조 걸 그룹이다.
물론 처음부터 여섯 명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첫 스타트는 자그마치 열두 명이었다.
그러다가 그룹이 워낙 인기가 없어서인지 한 명씩 졸업을 발표하게 되었고. 10년 차까지 살아남은 멤버들은 딱 반수인 여섯 명밖에 되지 않았다.
‘별별’이란 노래는 멤버 수가 여섯 명으로 개편되었을 때 처음 발표했던 앨범의 타이틀곡이기도 했다.
무대 의상은 이연과 다재다능 팀 멤버들이 출연했었던 예능 프로, 스타일 나이트에서 소개했었던 플리츠스커트 종류의 치마로 구성된 교복풍의 콘셉트였다.
의상을 보자마자 나여솜과 비아가 차례대로 감상을 표현했다.
“옷 예쁘다.”
“상의 끝이 많이 짧아서 배가 다 보이네. 예쁘긴 한데…… 이거 입으려면 다이어트 빡세게 해야겠다.”
조금의 군살도 허용할 수 없다.
특히 아이돌이라면 더더욱.
의상도 의상이지만, 의외로 무대 구성이 괜찮아 보였다.
비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상하다는 말을 흘렸다.
“노래도 좋고. 안무도 괜찮은데. 왜 이때 당시에는 안 뜬 거지?”
음원 차트 최대 성적이 11위에 그쳤던 노래, ‘별별’.
이연은 유스풀이 이때 왜 많은 인기를 끌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딱 이 시기 때 벡스 선배님이 데뷔하셨거든.”
“아…… 관심이 다 그쪽으로 쏠렸겠네.”
두말하면 잔소리다.
벡스는 내는 앨범마다 일단 1위는 기본으로 찍고 시작하는 그룹이다.
존재 자체가 사기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어디 벡스뿐이랴. 이은솔처럼 멤버들 중에서는 솔로로, 아니면 유닛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완전체 벡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난 규모의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돌답게 다른 앨범 성적 또한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피쳐링만 해도 주목을 받는데.
이런 벡스를 상대로 1위를 넘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컴백 시기를 피하든가 했어야 했지만, 소속사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모양인지 유스풀의 컴백 시기는 벡스와 고작 5일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손도 못 써보고 그대로 묻혀 버리고 만 셈이었다.
우미가 마치 본인의 일처럼 아쉬워했다.
“선배님들, 많이 힘드셨겠네.”
지금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10년 가까이 걸 그룹으로 활동하다 보니 예전만큼의 활동량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인 이상 이런 일들을 몇 번 겪게 되면 마음이 많이 꺾일 수밖에 없다.
우미도 걸 그룹 데뷔를 목표로 두고 있어서인지 유스풀의 현재 상황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연은 단순히 유스풀이 불쌍해서 이 곡을 가져온 게 아니었다.
“마침 우리들하고 인원수도 딱 맞고. 노래하고 안무, 둘 다 괜찮은 거 같아서 연습하면 좋은 무대가 나올 수 있을 거야.”
“근데 연이 언니. 안무 난이도가 꽤 되지 않아? 이거, 괜찮겠어?”
이연은 안전하고 확실하게 가는 방법과 어렵지만 고점을 노릴 수 있는 방법 중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그렇다 보니 후보곡으로 가져온 노래의 안무가 딱 봐도 쉬워 보이진 않았다.
연습생들은 이 점이 걱정스러웠다.
이연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연습하면 돼.”
연습만큼 올곧은 해결 방법도 없다.
줄곧 이연의 방식을 따라왔던 다재다능 멤버들은 팀장의 뜻대로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나여솜과 연시우는 아직 불안했다.
안무도 안무지만.
“역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던 곡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여솜은 안무 난이도보다 이 부분이 더 신경 쓰였다.
지금까지 그녀들이 커버했던 모든 곡들이 다 히트곡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노래들뿐이어서 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연은 이 점에 대한 근거까지 준비해 왔다.
“이번 미션에 한해서는 히트곡이 아니어도 돼.”
“어째서?”
“PD님이 그러셨잖아? 이번 평가는 ‘전문가들’이 할 거라고.”
자세히 보면 이 말에 힌트가 있었다.
“대중들 앞에서 무대를 펼칠 때에는 당연히 여솜이가 말한 것처럼 히트곡을 커버하는 게 좋지. 아는 곡과 모르는 곡은 반응 차이가 클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전문가들이라면 달라.”
대중가요 전문가들이라면, 유스풀이 불렀던 ‘별별’이라는 곡이 어떤 곡인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대중들보다 더 많은 노래를 듣고 더 많은 무대를 보는 것이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유스풀이 상대적으로 묻힌 걸 그룹이라고는 하나, 아예 이름값이 없는 그룹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탄탄한 팬층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긴 했다.
그 팬층이 비록 얇아서 문제였지만, 고정 팬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도 당연히 이 그룹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유스풀의 최고 음원 순위를 기록했던 ‘별별’이라면 무조건 알 거다.
“평가하는 분들 중에서 유스풀 선배님들 곡을 모르는 분들은 안 계실 거야. 그러니까 유명한 곡을 골라야 한다는 제한 사항은 없는 셈이지.”
평가하는 주체가 대중이 아닌 전문가로 고정됨으로 인해 곡 선택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을 뜻했다.
이연은 여기까지 분석했다.
그녀의 설득이 통한 걸까.
고민 끝에 나여솜과 연시우는 결국 이연의 아이디어에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알았어. 그럼 연이 말대로 하자.”
“저도 이연 언니 의견이 가장 좋아 보여요.”
이렇게 해서 유스풀의 ‘별별’이 최종 결정되었다.
곡도 정해졌으니.
“그럼 바로 연습하자.”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