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62화
제18화. 단합 여행(4)
이연의 재촉으로 인해 멤버들은 억지로 번지점프대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워낙 높은 높이 때문에 멤버들은 제대로 아래를 내려다보지도 못했다.
수십 미터 위에 떠 있는 이 기분.
멤버들에게는 낯선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이연은 이런 멤버들을 보면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뛸 거야? 그러면 몇 시간 동안 여기에 계속 서 있게 될 텐데.”
그 어느 때보다도 섬뜩한 이연의 경고에 멤버들은 금세 울상이 되었다.
원래는 아래에 있을 때 말했던 대로 이연이 가장 먼저 뛰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연이 먼저 뛰어서 내려가 버리면, 멤버들을 다독여 줄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결국은 이연이 팀원들을 다 내려보낸 다음에 마지막을 장식하기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본보기를 보여줄 사람이 없어지게 된다.
‘차라리 내가 두 번 뛸까?’
이연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일에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음유시인으로서 무대에 섰을 때, 이보다 더한 곳에서 뛰어내리며 낙하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대의 리얼함을 살리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장면을 연출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의외로 꽤 된다.
고소공포증을 느낄 새도 없어져 버린 그녀였기에 번지점프 체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여긴 안전장치라도 있지 않은가.
나 때는 말이야, 안전장치도 없이 마법 하나에만 의존해서 뛰었어! 라고 말해주고 싶어도 차마 그러진 못했다.
여긴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니까.
이연의 고민이 깊어지던 순간.
“그럼 내가 먼저 뛸게.”
우미가 먼저 나섰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겁을 내지 않는 그녀가 맏언니로서 첫 스타트를 끊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괜찮겠어?”
이연이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러자 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들이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려줬다.
“사실 나, 몇 번 뛰어봤거든. 그래서 이런 게 낯설진 않아.”
맏언니라서 그럴까. 운전도 그렇고, 은근히 우미가 이것저것 경험이 많았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안전장치를 몸에 걸친 우미를 보면서 멤버들은 절로 손을 모았다.
비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맏언니에게 물었다.
“어, 언니! 정말로 괜찮아?”
“응. 겁먹을 거 하나도 없으니까 언니 뛰는 거 보고 너희도 용기 냈으면 좋겠어.”
오늘은 우미가 맏언니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난간을 지나 번지점프대 위에 선 우미.
스태프들이 이 모습을 위에서, 그리고 아래에서 카메라를 통해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번지점프를 가장 먼저 소화하면 이점이 하나 있다.
첫 타라는 점 덕분에 무조건 방송에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주목도를 많이 받는다는 점에서 우미의 첫 시도는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다.
“셋, 둘, 하나! 번지!”
“번지!”
직원의 말을 복명복창하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우미의 몸이 빠른 속도로 낙하했다.
정직 우미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지켜보던 멤버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래로 쑥 내려갔다가 탄력으로 인해 위로 한번 솟구친 그녀.
이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아래에서 우미가 뛰어내리는 걸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우미가 멋지게 스타트를 끊어서일까.
두 번째 지원자가 생겼다.
“이다음은 내가 뛸래.”
넷 중에서 그나마 덜 겁에 질려 있던 연시우가 용기를 냈다.
난간에 서자, 강한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짧은 단발을 어지럽혔다.
뒤에서 이연이 조언을 건넸다.
“아래 보지 말고. 앞쪽만 봐.”
“알았어……!”
먼 산을 바라보며 선 시우가 한숨인지 심호흡인지 모를 숨을 크게 내쉬었다.
밑에서 우미가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뛸 수 있어! 힘내, 시우야!”
멤버의 응원 덕분일까.
시우의 몸이 아래로 빠르게 떨어졌다.
꺄아악!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우미처럼 시우 역시 위, 아래로 왔다 갔다 움직였다.
두 번째 타자도 성공.
이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제 남은 건 겁쟁이 3인방뿐이다.
* * *
겁쟁이 3인방. 비아, 앨리샤, 그리고 나여솜. 이 셋은 뒤늦게 어느 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번지점프대 위로 올라온 이상.
분위기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무조건 뛰게 되어 있다고.
그걸 노리고 이연은 어떻게든 멤버들을 위로 데려온 거였다.
“스태프분들 계속 기다리시게 하진 않겠지?”
이연이 스태프를 들먹이면서 점점 겁쟁이 3인방을 압박해 가기 시작했다.
스태프들뿐만 아니라 미리 뛰었던 우미와 시우, 두 사람도 아래에서 목이 빠져라 남은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눈치만 살피던 겁쟁이 3인방 중에서 앨리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 가위바위보 하자! 어때?”
“진 사람이 먼저 뛰어내리기!”
“조, 좋아!”
결국은 가위바위보다.
그래도 이연은 저렇게나마 뛰어내리는 순서를 정하기로 한 사실에 기특함을 느꼈다.
안 뛰겠다고 울며불며 버티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가위바위보를 통한 혈전을 벌인 결과.
가위를 낸 앨리샤가 꼴찌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 씨. 왜 하필이면…….”
자칫 아이돌답지 않게 비속어가 튀어나올 뻔했던 위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앨리샤는 무사히 잘 넘겼다.
결국 번지점프대에 서게 된 앨리샤는 오들오들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지탱했다.
“우미 언니하고 시우는 이걸 어떻게 뛰었대……!”
뒤에 서 있던 이연이 갑자기 든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그냥 눈 딱 감고 뛰어내리면 돼.”
사실 앨리샤도 알고 있는 대답이었다.
그냥 너무 무서우니까. 그래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의구심인데도 이연은 냉담하게 답해줬다.
그래도 이연의 이런 말이 앨리샤에게는 크나큰 도움을 줬다.
“눈 딱 감고…….”
정말로 눈을 감아버린 앨리샤는 직원의 신호를 기다렸다.
“셋, 둘, 하나, 번지!”
“버, 번지이이이이!”
뒤이어 앨리샤의 시원한 비명 소리가 강 전역에 퍼졌다.
이연이 피식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고음 잘 올라가네.”
저 정도면 이연을 대신해서 메인보컬로 나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노래를 부를 때마다 번지점프대 위에 서야 한다는 크나큰 단점이 존재한다는 게 문제다.
다음 순서도 역시 가위바위보를 통해 정해졌다.
울상이 된 나여솜이 앨리샤의 뒤를 이어 안전장치를 착용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무언가를 초월한 듯한 사람의 모습을 보이는 나여솜.
“그래, 파이널 라운드까지 진출했는데, 이런 것 정도는 우습지!”
억지로 의욕을 끌어올리는 그녀를 향해 이연은 좋은 자세라며 응원의 한마디를 보탰다.
앨리샤와 마찬가지로 나여솜도 질질 끌 것 없이 바로 몸을 날렸다.
이제 겁쟁이 3인방 중 마지막으로 남은 비아의 차례가 되었다.
“언니…… 이거, 진짜로 뛰어야 되는 거지? 그렇지?”
“그럼 가짜로 뛰어내리게? 스태프 분들이 CG 처리 같은 거 안 해주실 테니까 괜한 기대는 하지 마.”
번지점프대에 올라왔어도 이연의 날카로운 팩트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무서워하던 멤버들이 한 명 한 명씩 용기를 내면서 아래로 뛰어내린 모습을 봐온 덕분인지, 비아도 어찌어찌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비록 아주 느린 속도지만, 그래도 착실히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이 기특했다.
번지점프대에 선 이상, 좋든 싫든 각오를 다져야 한다.
비아가 택한 쪽은 바로.
“번지!”
“번지이-!”
뛰어내리는 쪽이었다.
한동안 아래쪽에서 비아의 비명 소리가 우렁차게 퍼졌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겁에 질린 비명이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이연은 이제 곧 자신의 차례가 올 것임을 직감했다.
“이연 씨, 준비 되셨죠?”
“네.”
이연은 앞서 뛰어내렸던 멤버들과 다르게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번지점프대에서 3년 동안 일한 직원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뛰어내리게 만들었지만, 이연처럼 당당하게 임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이연은 오히려 직원에게 지금 뛰어내리면 되냐고 재촉했다.
“잠시만요. 조교가 신호 주면, 그때 뛰어내리시면 됩니다.”
“네.”
“자. 셋, 둘, 하나. 번지!”
“번지!”
양팔을 펼친 채 능숙한 자세로 낙하하는 이연의 모습에는 여유마저 느껴졌다.
‘마탑에서 뛰어내렸던 것보다 높이가 낮아서, 별로 재미있진 않네.’
다른 멤버들이 번지점프대에서 벗어나 살았다는 반응을 보일 때.
이연 혼자서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 * *
이연의 번지점프 아이디어 덕분에 서윤철 PD와 스태프들은 촬영 내내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를 유지했다.
그들의 이런 모습만 봐도 이연은 자신의 계획이 대성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장을 보는 동안, 우미가 이연에게 작게 속삭였다.
“PD님, 좋은 그림들이 많이 나와서 만족스러우신가 봐. 아까 지나가면서 슬쩍 봤는데, 모니터링하시면서 괜찮은 장면들 많이 나왔다고 말씀하시더라고.”
“다행이네.”
진절혜 팀은 오늘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연의 B팀이 크게 선방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처럼 보였다.
바비큐 파티에 필요한 먹거리들을 하나하나씩 사서 장바구니에 채워 넣는 멤버들.
앨리샤가 있기 때문에 훨씬 많은 양을 구입해야 했다.
마트 내에 위치한 정육점에서 일하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고기를 키로 단위로 주문하는 멤버들을 보면서 물었다.
“저기 스태프들하고 같이 먹으려고요?”
“아…… 네, 맞아요.”
우미는 순간 아니라고 말할 뻔했다가 어쩔 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앨리샤가 많이 먹어서 그렇다는 둥의 말을 굳이 여기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기, 즉석밥, 상추, 마늘, 양파, 버섯, 소시지, 그리고 라면에 간단한 간식거리까지.
원래 이런 자리에는 술도 있어야 제격이겠지만, 요즘은 카메라 앞에서 음주하는 걸 피하려는 경향이 있었기에 탄산음료로 대체하기로 했다.
계산은 스태프가 준 카드로 해결했다.
양이 워낙 많다 보니 차 트렁크에 짐이 빼곡하게 자리 잡았다.
해가 저물기 전.
지금부터 펜션에 들어가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면 타이밍이 딱 맞는다.
이번에도 운전대는 우미가 잡았다.
변함없이 능숙한 운전 솜씨를 뽐내면서 이들이 머물고 있는 펜션 앞에 정확히 주차했다.
지금부터는 노동의 시간이다.
차에서 내린 이연이 멤버들을 향해 외쳤다.
“트렁크에 있는 것부터 안으로 옮기자.”
오기 전에 스태프들이 펜션 관리인한테 연락해서 멤버들이 곧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니까 미리 불을 준비해 달라고 연락해 뒀다.
덕분에 멤버들은 곧바로 바비큐 준비에 돌입할 수 있었다.
음료와 물이 담긴 가장 무거운 상자는 이연이 들기로 했다.
나여솜이 혼자서 상자를 들려고 하는 이연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괜찮아. 나 혼자서 들 수 있어. 너는 다른 거 옮겨줘.”
“정말 괜찮겠어?”
이연은 말 대신 행동으로 직접 보여줬다.
너무나도 가볍게 상자를 드는 그녀의 모습에 나여솜은 헛숨을 삼켰다.
“보기와는 다르게 힘 세구나.”
마법의 힘을 약간 빌린 덕분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짐을 옮기고.
마지막 남은 짐을 가져오기 위해 이연 혼자서 펜션 문밖으로 나왔다.
이때, 그녀는 의외의 인물과 마주치게 되었다.
“……!”
적 팀의 수장이기도 한 진절혜.
그녀가 이연을 보고서 크게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