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61화
제18화. 단합 여행(3)
단합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심과 동떨어져 있는 장어 전문 가게.
점심때보다 많이 늦어진 시간대라 그런지, 주차장에는 차량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연습생들이 끌고 온 차와 뒤따라온 스태프들의 차량이 전부였다.
조연출이 먼저 내려서 연습생들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지시했다.
“촬영 허가는 받아뒀으니까. 카메라 설치 다 하고 난 다음에 가게로 들어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가게 안으로 입장하는 장면부터 자연스럽게 찍어야 했기에 약간의 사전 준비가 필요해 보였다.
이연과 우미가 출발하기 전에 오늘의 일정에 대해 스태프들에게 전달해 둔 덕분에 그사이에 촬영 협조를 미리 구할 수 있었다.
스태프가 다시 연습생들이 탄 차로 돌아와 말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배고픔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연습생들은 스태프의 말을 듣자마자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그녀들을 보자마자 50대 중년의 여성이 환한 미소로 그녀들을 맞이했다.
“아이구! 다들 티비에서 본 것보다 훨씬 예쁘구만! 다들 공주님이야, 공주님들!”
“감사합니다. 혹시 가게 사장님이신가요?”
“사장은 우리 바깥사람이고. 나는 여기 일 도와주고 있어요. 어여 앉아요!”
아주머니가 좋은 자리 맡아뒀다면서 이들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SSS를 시청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10대에서 20대, 30대로 젊은 층이다.
그러나 가끔 아주머니처럼 SSS를 자주 시청하는 중년층도 존재했다.
아주머니의 안내에 따라 각자 자리를 잡은 멤버들.
두 개의 불판에 각각 양념구이와 소금구이를 주문한 이들은 기본으로 제공되는 밑반찬으로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 잠시나마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반찬을 맛보면, 그 식당이 맛집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다.
겉절이와 장어를 찍어 먹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스를 잠깐 맛본 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미에게 먼저 말했다.
“가게 잘 골랐네.”
“맛 괜찮아?”
“응. 한번 먹어봐.”
“그럴까?”
우미도, 다른 멤버들도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맛집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이르다.
메인 메뉴가 남았기 때문이다.
“장어 왔어요!”
아주머니가 직접 불판 위에 손질된 장어들을 올려놓았다.
숯불의 강한 화력으로 빠르게 익어가는 장어들을 보면서 연습생들은 군침을 꿀꺽 삼켰다.
앨리샤가 자신의 주린 배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네.”
식욕의 화신이라 불리는 앨리샤였기에 유독 배고픔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때, 아주머니가 연습생들에게 희망적인 말을 들려줬다.
“이미 한번 초벌해서 나온 거니까 조금만 더 익히고 드셔도 돼요.”
“네, 감사합니다!”
젓가락을 든 앨리샤가 먼저 한 점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뜨거움 뒤에 잇따르는 장어의 쫄깃쫄깃한 식감이 앨리샤를 금세 행복으로 인도했다.
“엄청 맛있어! 너희도 빨리 먹어봐!”
“다 익은 거 맞지?”
“사이드에 있는 건 좀 더 익혀야겠고. 가운데 것부터 먹어봐. 기가 막힌다니까?”
다들 앨리샤를 따라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양념부터 먼저 맛을 본 연습생들은 이내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면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어머, 정말 맛 괜찮은데?”
“앨리샤 언니 말대로네.”
근처에 있는 가게 아무 곳이나 잡은 것치고는 만족스러운 맛을 자랑했다.
뒤이어 이연은 소금으로 간을 맞춘 장어 한 점과 부추, 그리고 특제 소스를 찍어 맛을 봤다.
소스 안에 담긴 생강이 자칫 비릴 수도 있는 장어의 비린내를 확실하게 잡아줬다.
양념과는 또 다른 맛의 매력이 있었다.
환생하기 이전의 세계에도 장어와 비슷한 식감을 가진 어종이 있었다.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식재료로 알려진 탓에 이연도 특별한 날이 있을 때나 한두 번 정도 먹어본 게 다였다.
그것을 이 세계에서는 그냥 일반 가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평소였더라면 그냥 말을 줄이고 먹는 데에만 집중했겠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다.
그녀들은 지금, 방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소위 말해서 먹방을 찍을 때에는 지금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말이든, 표정이든, 손짓이든 뭐든.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풍부하게 표현해서 전달할 필요가 있다.
시청자들은 오로지 시각과 청각만으로 맛을 상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먹방 시험에 들어서게 된 연습생들.
나여솜과 연시우는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오리지널 다재다능 팀의 경우에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먹방에 특화되어 있는 멤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앨리샤였다.
“언니, 소스 찍어서 먹어봐봐. 양념은 찍지 말고 아까 연이가 했던 것처럼 부추 얹어서 먹으면 돼. 여기에 마늘도 살짝 얹으면 더 좋고.”
“이, 이렇게?”
“응, 그렇게! 부추에도 양념이 묻어 있거든? 소스하고 어우러지니까 시너지가 배가 되는 느낌이야. 장어의 짭짤한 맛에 달짝지근한 양념, 그리고 마늘 향까지. 입안이 심심할 틈이 없어.”
나여솜과 연시우가 놀란 표정으로 앨리샤를 응시했다.
앨리샤는 오히려 이런 두 사람의 반응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 내가 뭐 말실수한 거 있어?”
“아니…… 딱히 그건 아니고.”
“앨리샤 언니가 맛 표현을 너무 잘하셔서요. 놀랐어요.”
우미가 작게 웃으면서 앨리샤에 대한 정보 하나를 새롭게 합류하게 된 두 사람에게도 알려줬다.
“앨리샤가 먹는 것에 대해선 진심이거든. 혼자서도 막 5인분, 6인분씩 먹고 그래.”
두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정말로요?”
“그런데 어떻게 저런 몸매가…….”
볼륨감 넘치는 S라인 몸매로 특히나 남성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앨리샤.
육감적인 몸매의 비결은 많이 먹고, 그만큼 많이 운동하고. 이거였다.
앨리샤가 많은 시간을 운동에 투자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두 사람은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의 팀에 합류하기 전에 두 사람은 이연이만 특이한 줄 알았었다.
그러나 이연의 존재감에 가려져 있었을 뿐, 다재다능 팀원들 역시 하나씩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음을 이들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 * *
점심을 해결한 뒤에 바로 옆에 위치한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소화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서 넓게 펼쳐져 있는 강 구경도 하고.
말 그대로 일석이조였다.
이 장소면 앵글 잡기도 좋아 보였다.
카메라 감독이 된 것처럼 양손으로 직사각형을 만들어 이렇게 저렇게 앵글 구도를 만들어보는 이연.
“저기, 저쪽 자리에 가서 앉자.”
“저기가 더 잘 나올 거 같아?”
“어. 카메라 감독님이 나보다 전문가니까. 미리 가 있으면 알아서 잘 배치해 주실 거야.”
이연의 예상대로, 연습생들이 고른 자리에 따라 카메라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스태프들이 준비가 다 끝났음을 알리자, 이연과 연습생들은 방금 막 커피를 받고 나오는 것처럼 연기하면서 미리 지정해 둔 테이블로 향했다.
야외라서 그런지 불어오는 강바람과 흔들거리는 나무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졌다.
소화제 대신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나여솜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연시우가 그녀의 이런 모습을 포착했다.
“왜요, 언니? 커피가 맛이 없어요?”
“커피 맛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메뉴 중에 쌍화탕이 없더라고. 그거 때문에 아쉬워서 그래.”
“……네?”
연시우는 설마 여기서 갑자기 쌍화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건데…….”
더 이상 말하면 뭔가 나여솜의 음료 취향을 디스하는 기분이 들 거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이연은 이미 나여솜의 취향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시우처럼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앨리샤는 혼자서 케이크를 종류별로 시킨 채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비아가 헛웃음을 삼켰다.
“여러 번 본 장면이긴 한데. 그래도 볼 때마다 놀라워.”
“나는 이 정도는 먹어야 배가 차거든.”
“조금 있다가 장 보러 갈 때에는 고기 많이 사둬야겠네.”
저녁 식사는 펜션 내에서 바비큐로 해결하기로 했다.
들어가기 전에 장을 보고 가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잠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이비아가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기 봐봐.”
사람들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나나보트를 타며 수상 레저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비아가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이연과 우미에게 물었다.
“언니들. 우리도 조금 있다가 저기서 보트 타는 거야?”
“아니.”
이연이 고른 건 저게 아니었다.
“저 옆에 있는 거. 저거 할 거야.”
“옆에 있는 거라면, 설마…….”
비아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버, 번지점프 하자고? 우리가?”
* * *
이연이 택한 오늘의 하이라이트 일정이 공개되었다.
번지점프.
예능 프로그램에 한때 단골 소재로 등장했던 것이다.
번지점프대 앞에 도착한 연습생들은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나, 난 못 하겠어.”
“나도 이건 좀…….”
비아와 앨리샤가 벌써부터 항복을 선언하려고 했다.
나여솜도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이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연은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수상 스포츠 즐기다가 들어가자며.”
“이게 어떻게 수상 스포츠야! 이건 담력 체험이라고!”
“물 위에서 하는 거니까 수상 스포츠지.”
비아가 강하게 응수해 봤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시청자분들에게 재미를 선사해 주는 게 연예인이 할 일이잖아. 진절혜 팀보다 우리가 더 방송에 많이 나오려면 번지점프 정도는 뛰어줘야지. 안 그래?”
“그,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뛰기 싫어하는 이들을 보채려고 할 때에는 경쟁심을 자극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SSS는 서바이벌 방식을 전제로 삼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무엇을 하든 경쟁이 된다.
단합 여행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건 분량 싸움이야. 상대 팀보다 우리 팀이 더 많은 분량을 뽑아야 한다고. 알고 있지?”
“…….”
“…….”
방금까지 맹렬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던 비아와 앨리샤는 이연의 날카로운 지적에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비아가 소심한 반격을 가하기 위해 이연에게 역으로 물었다.
“언니는 저거, 뛸 수 있어?”
“어. 내가 제일 먼저 뛸게. 그러면 되는 거지?”
조금이라도 내뺄 줄 알았는데. 이연에게 그런 건 일절 없었다.
오히려 비아가 이연의 함정에 걸려든 기분이었다.
“자, 가자. 시우, 너도 그만 겁내고 따라와.”
“저,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억지로 센 척을 해보는 시우였지만, 이연은 그녀가 진작부터 떨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었다.
여섯 명의 멤버들 중에서 번지점프대에 겁먹지 않는 사람은 오직 이연과 우미, 단 둘뿐이었다.
‘이거, 다 뛸 수는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직 위로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