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60화
제18화. 단합 여행(2)
짐을 풀기 위해 각방으로 들어온 연시우는 머릿속이 많은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택한 B팀이기는 한데.
2라운드 내내 적이었던 팀으로 들어와서 그런지 묘하게 불편함을 느꼈다.
물론 오리지널 다재다능 팀원들과 나여솜은 연시우에게 전혀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이은솔이 말했던 대로 이들은 이제 한배에 올라타게 되었다.
2라운드 때에는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팀원끼리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
연시우도 잘 안다.
그저 그녀 혼자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뿐이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감정을 어떻게든 추스르는 게 이번 단합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기도 했다.
편한 옷으로 대충 갈아입고 방에서 나온 순간.
벌써부터 소란스러움이 들려왔다.
“내가 던질 테니까 잘 받아!”
“아, 언니! 하루에 4~5시간씩 운동한다면서,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 줘?”
“근력 운동하고 구기 운동은 많이 다르다고! 그리고 난 제대로 줬다? 네가 못 받은 거야!”
“이 언니가 정말……!”
“꺄악! 물 뿌리지 마! 눈에 들어가잖아!”
첨벙 소리와 함께 비아와 앨리샤의 떠드는 소리가 펜션을 빠르게 채워가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수영복을 입은 두 사람이 풀 안에서 서로 발리볼을 던지면서 놀고 있었다.
바로 근처에선 나여솜이 발만 물에 담근 채 물장구를 치는 중이었다.
비아가 시우를 보자마자 잘됐다며 손짓했다.
“얼른 와! 여솜 언니하고 너하고 들어오면 딱 2 대 2 팀전 할 수 있겠다.”
“나, 나도? 이 옷차림으로?”
“가서 수영복으로 다시 갈아입고 오면 되잖아. 얼마 안 걸리면서.”
“…….”
갑작스러운 상황에 시우는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것도 다 팀원들과 친해지기 위한 길 아니겠나.
알겠다고 하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시우.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연과 우미는 멤버들이 간단하게 마시고 먹을 것들을 선베드 근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목마른 사람들은 여기 있는 거 가져가서 마셔.”
“알았어…… 뭐야, 저 언니들. 아직도 수영복 안 입고 있잖아?”
이연과 우미는 여전히 평상복을 고집하고 있었다.
둘 다 카메라 앞에서 수영복 차림이 되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수영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짧은 팬츠와 배가 훤히 드러나는 크롭티로 얼추 여름 분위기는 내기 위해 노력했다.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긴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자 이연은 절로 쓴웃음을 삼켰다.
비아의 재촉에도 넘어가지 않는 두 사람.
그 와중에 래쉬가드를 입고 나온 시우가 선베드에 앉아 있는 이연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연이 시우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너도 풀에 들어가려고?”
“네. 언니는요?”
“난 됐어. 물장난 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수영을 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연은 수영을 즐기는 편에 속했다.
여자의 몸만 아니었다면,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물장구를 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과 같이 샤워하는 것도 여전히 안대로 눈을 가리면서 하는 이연이 지금의 상황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그녀는 당분간 선베드만 지키고 있을 기세로 몸을 눕혔다.
그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실례하겠습니다.”
서윤철 PD가 스태프들을 대동하고서 그녀들만 있던 펜션을 방문했다.
한창 물놀이에 빠져 있던 멤버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서윤철 PD 역시 마찬가지였다.
“벌써부터 즐기고 있었군요. 빠르네요.”
멤버들 입에서 어색함과 민망함이 가득 담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카메라 위치하고 앵글 체크 다시 한번 하고, 그리고 여러분들한테 이번 단합 여행 녹화에 대해서 간단하게 더 추가 브리핑을 해주려고 왔습니다. 잠깐만 모여주실래요?”
“네!”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멤버들이 잠시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우미가 미리 챙겨 온 커다란 수건들을 그녀들에게 덮어줬다.
“감기 걸리면 큰일이니까. 물에 나와 있는 동안은 이거 덮고 있어.”
엄마처럼 동생들을 챙기는 맏언니의 모습에 멤버들은 고마움과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모든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서윤철 PD가 짧은 브리핑을 시작했다.
“저번 녹화 때 은솔 씨가 여러분들한테 말씀드렸다시피, 1박 2일 동안 특별히 저희가 이거 해야 한다, 저거 해야 한다 하면서 간섭하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말 그대로 자유 여행이니까, 여러분들이 모든 일정을 짜시면 됩니다. 대신에…….”
아직 이들은 연습생 신분이다.
방송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기에 서윤철 PD가 방송업계 종사자로서 조언을 해줬다.
“대신에 너무 펜션 안에서만 놀면 똑같은 그림만 계속 나오니까요. 그러면 시청자들도 지루해할 테고. 그러니까 멤버들끼리 다 같이 차 타고 근처에 드라이브를 나갔다 온다든지, 아니면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시고 오셔도 됩니다. 식당에서 밥 먹기 애매하다 싶으면 근처에 마트 있으니까 장을 봐 오셔서 펜션에서 끼니를 해결해도 되고요. 요즘은 출연자들이 자체적으로 음식 차려서 먹는 그런 프로그램들도 트렌드니까요.”
어떻게 하면 방송으로서 좋은 장면들이 연출될 수 있을지. 이런 것들에 대한 팁을 몇 가지 전해줬다.
멤버들은 서 PD의 조언을 열심히 귀담아들었다.
“차는 저희가 일단 준비해 두긴 했는데…… 면허 있으신 분 계신가요? 없으면 저희 스태프가 운전해 드릴 겁니다.”
우미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저, 면허 있어요.”
“저도요.”
우미와 나여솜, 면허 소지자가 두 사람이나 있었다.
“그러면 운전도 여러분들한테 맡겨보겠습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근처에 스태프들이 항시 대기 중이니까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고요. 아, 그리고 밖에 나갈 때에는 스태프들이 동행할 겁니다. 장소 섭외 같은 것도 저희가 직접 알아서 할 테니까 어디 갈지만 미리 말해주시면 됩니다. 아셨죠?”
“네!”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재미있게 즐기시고,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저희 불러주세요. 김 감독! 카메라들 체크 다 끝났어?”
안쪽에서 ‘예, PD님!’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볼일 다 마쳤으니, 이제 철수할 일만 남았다.
“그러면 재미있게 놀고 계세요.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D님!”
서윤철 PD가 스태프들을 데리고 펜션 밖으로 이동했다.
다시 연습생들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물 밖으로 나온 김에 이연, 우미가 준비해 둔 먹거리들을 입에 머금은 앨리샤가 우물우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슬쩍 흘렸다.
“우리 PD님은 착해서 다행이네. 다른 프로그램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쪽은 출연자가 뭐 실수 하나 하면 PD가 막 소리치고 난리도 아니라고 하던데.”
여솜도 앨리샤의 말에 공감을 드러냈다.
“맞아. 저번에 우리 팀도 다른 방송 출연했을 때 분위기 엄청 삭막했었어. 무서워 가지고 녹화 빨리 끝나기만 기다렸었다니까.”
“이렇게 보면, 우리는 축복받은 게 아닐까? 적어도 서 PD님이 막 우리들한테 사납게 소리치고 그러신 적은 없잖아.”
“맞아, 맞아.”
과연 그럴까.
이연은 서윤철 PD와 스태프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면서 무심코 혼잣말을 흘렸다.
“원래 저렇게 침착하고 조용한 타입이 더 무서운 법이야.”
이연이 세상을 살아보니까 그랬다.
* * *
멤버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이연은 우미와 함께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계획을 세우느라 바빴다.
“펜션에서 3㎞ 지점에 장어 맛있는 데 있다고 하던데. 거기 갈래?”
우미가 이 근처 일대를 조사해 본 모양인지,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밥 먹고 난 다음에는?”
“수상 레저 스포츠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대. 바나나보트 같은 것도 탈 수 있고. 한번 볼래?”
우미가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이연에게 건넸다.
근처에 즐길 만한 오락 요소들이 쫙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에 이연의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장어 가게라고 했지? 그거 먹으러 가자.”
장어를 보니 구미가 당겨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가게 근처에 이연의 시선을 사로잡는 시설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합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방송 아닌가. 그러면 최대한 재미있는 장면을 뽑아내야 한다.
아직 미션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경쟁은 시작되었다.
누가 더 많은 카메라 비중을 차지하게 되느냐.
이에 따라 시청자들의 표도 왔다 갔다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PD가 방송용이라고 생각할 만한 흥미로운 장면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연은 멤버들에게 미안할 만한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얘들아.”
한창 물장구에 정신이 팔려 있는 멤버들을 향해 이연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점심에 장어 먹고 근처에서 레저 스포츠로 시간 때우려고 하는데. 괜찮지?”
“응, 난 오케이!”
“온 김에 실컷 놀다가 가야지!”
먹고, 놀고.
이렇게 하겠다는데, 싫어할 만한 연습생은 없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괜찮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이 순간을 즐기는 멤버들을 보면서 이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 * *
펜션을 나온 이들은 제작진이 미리 준비해 둔 차량에 탑승했다.
예상대로, 차 안에도 카메라가 여러 군데에 부착되어 있었다.
운전석에는 우미가. 그리고 그 옆에는 이연이 자리를 잡고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대신 입력해 줬다.
“여기 보고 찾아가면 돼.”
“고마워, 연아.”
차에 시동을 건 우미가 능숙하게 운전대를 돌렸다.
차가 7인승 SUV라서 꽤 큰데도 불구하고 우미는 차량을 모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좁은 길목이 나타났음에도 우미는 양측 사이드미러를 빠르게 살피면서 세심한 컨트롤을 선보였다.
스태프들조차 애먹게 만들었던 비좁은 골목길을 무사히 통과하자, 뒤에서 비아가 여러 차례 박수를 쳤다.
“우리 언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멋진 거야!”
비아의 뒤를 이어 앨리샤도 우미의 운전 실력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생들의 열띤 호응 때문일까. 우미는 어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성인 되자마자 바로 운전 시작해서. 이런 건 익숙해.”
“역시 잘사는 집안은 다르구나. 20살 되자마자 바로 차부터 사고.”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여전히 우미는 자신의 집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꺼려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우미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던 이연은 일부러 화두를 돌리기 위해 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냈다.
“여솜이도 면허 있다고 했었지?”
“응. 맞아. 근데 난 우미 언니처럼 운전 잘하는 편은 아니고. 장롱면허라서 별 의미는 없어.”
“그럼 오늘 운전은 우미 언니가 전담해야겠네.”
우미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맡겨둬. 우리 애기들, 내가 안전하게 태우고 다닐 테니까.”
자신감이 넘치는 우미의 말에 동생들의 환호성이 다시 한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