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59화
제18화. 단합 여행(1)
제작진에서 마련한 단합 여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이연은 방구석에 조용히 존재감을 지운 채로 있던 미니 캐리어 하나를 꺼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저녁.
짐을 챙기는 그녀를 보면서 권민준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누나. 단합 여행인가 뭔가. 그거, 1박 2일로 갔다 온다고 하지 않았어?”
“어. 왜.”
“아니, 고작 하루 가는 건데, 짐을 뭘 그렇게 많이 챙겨?”
권이연은 오히려 이런 남동생의 무신경한 말에 일침을 가했다.
“어딜 가든 항상 깔끔하고 청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게 귀족의 소양이라는 걸 모르냐.”
“그놈의 귀족, 귀족. 데뷔할 때 콘셉트를 그렇게 하기로 정한 거야?”
“콘셉트 아니다.”
실제로 이연은 귀족 출신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환생 전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하루 단위로 갈아입을 옷가지들을 포함해서 여분의 것까지 싸그리 다 챙긴 이연.
빵빵해진 미니 캐리어만큼이나 그녀의 마음도 든든해졌다.
그러나 권민준은 딱 봐도 무거워 보이는 캐리어의 상태가 영 신경이 쓰였다.
“그거 들고 왔다 갔다 하면 누나 팔에 알 배긴다고.”
“신경 써라. 다 방법이 있으니까.”
부족한 근력은 마력을 이용하면 된다.
신체를 강화하면, 권민준에게 참교육을 시켰을 때처럼 근력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다.
그 상태에서 이런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어차피 캐리어는 스태프들이 내일 픽업하러 올 차에 싣고서 바로 펜션으로 이동할 것이다.
번거로울 일은 거의 없다.
출발은 새벽 6시 반이다.
그 전에 먼저 일어나서 나머지 짐 챙기고, 샤워도 하고.
이런 것만으로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기에 일찍 취침을 취하기로 했다.
“난 잘 테니까 너는 그만 나가라.”
“알고 있다고. 그 전에 이거나 받아.”
작은 봉투 하나를 내미는 남동생.
딱 봐도 돈이 들어 있는 봉투임을 알 수 있었다.
“네가 돈이 어디서 났다고. 설마 훔친 건 아니겠지?”
“안 훔쳤어. 엄마가 누나 주라고 나한테 맡기고 간 거야. 여행 간다는데, 그래도 친구들하고 같이 밥 먹을 돈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더라고.”
“그 정도 돈은 나도 가지고 있어. 그리고 어차피 여행 간 동안은 제작진이 모든 경비 다 대줄 텐데. 굳이?”
“나도 엄마한테 그렇게 말했는데, 그래도 자식인데 어떻게 빈손으로 보내냐고 하면서 그냥 누나한테 주래.”
이연의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한 부모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빈자리만큼 그 이상의 사랑을 자식들에게 나눠주려고 하는 어머니의 마음 씀씀이에 이연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권민준한테서 돈 봉투를 건네받은 이연이 대신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나중에 내가 수십 배로 갚아서 돌려주겠다고 해줘.”
“알았어. 아무튼 잘하고 와, 누나.”
“그래.”
액수로는 얼마 안 되지만, 봉투 안에 담겨 있는 사랑의 가치는 감히 셀 수가 없었다.
* * *
A팀, 그리고 B팀. 두 팀이 서로 나뉘어서 따로 펜션을 예약해 단합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그렇다 보니 버스도 각자 나뉘어서 타고 이동해야 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픽업 장소로 나온 이연은 저 멀리 다가오는 버스 한 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버스 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카메라들.
한눈에 봐도 저 차가 이연이 타고 갈 차임을 알 수 있었다.
버스가 이연이 기다리고 있는 도로변에 잠시 정차했다.
문이 열리면서 스태프가 타라고 손짓을 했다.
캐리어를 스태프에게 맡기고서 버스 안으로 들어선 이연.
그녀가 탑승하자, 안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언니! 어서 와!”
“드디어 우리 팀 다 모였네.”
이연이 가장 나중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미 팀원들은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어디에 앉을까.
잠시 이연이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손을 번쩍 드는 이가 있었다.
“여기, 제 옆에 앉으세요!”
나여솜이 자기 옆자리가 비어 있음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그러자 비아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나여솜을 바라봤다.
“이 언니가 왜 이래? 혹시 이연 언니 좋아하는 거야?”
“조, 좋아하지! 같은 팀원이니까.”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여솜.
이러니까 비아는 더 의심스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여솜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다른 곳에 앉을 수가 없었다.
“실례할게요.”
이연이 안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비아의 눈빛은 더욱 가늘어졌다.
“근데 언니들. 서로 존댓말 쓰고 있는 거야?”
“어.”
“왜? 서로 나이도 같잖아. 단합 여행인데, 편하게 말 놓는 건 어때?”
비아가 두 사람 사이를 직접 조율하기 위해 나섰다.
기존의 다재다능 팀원들끼리도 말을 놓고 지내는 편이니까.
이연은 그러는 쪽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러면 비아 말대로 말 편하게 할까?”
나여솜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면서 환영의 뜻을 보였다.
나여솜에 이어서 연시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비아와 동갑이다.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비아가 나여솜과 동갑내기고, 연시우가 이연과 같은 나이대처럼 보이는데. 서로 뒤바뀐 거 아닐까 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주민등록번호를 의심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시우야.”
이연이 말을 건네자, 연시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비아처럼 말 놓아도 되는데.”
“아니요. 저는 언니들한테는 말 못 놓는 성격이라서 이게 편해요.”
다른 멤버들의 시선이 비아에게 향했다.
앨리샤가 히히 웃으면서 비아를 놀렸다.
“같은 막내인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비아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 * *
1박 2일의 단합 여행도 결국은 방송의 일환이다.
그렇다 보니 가는 곳곳마다 카메라가 붙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들이 묵을 예정인 펜션 내부에도 수많은 카메라가 붙어 있었다.
그만큼 B팀이 머물 펜션의 규모도 상당히 컸다.
가장 먼저 펜션에 입성한 비아가 크게 놀라며 외쳤다.
“수영장이 있어, 수영장이! 대박이다, 진짜!”
“어머, 그러네?”
놀라는 비아와 멤버들.
반면, 우미는 이런 고급 펜션이 익숙한 모양인지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리액션이 크지 않았다.
우미가 펜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멤버들에게 외쳤다.
“일단 방부터 정하고 짐 풀자. 노는 건 그다음으로 하고.”
나여솜과 연시우,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우미가 맏언니였다.
그래서인지 동생들을 챙기는 건 늘 우미의 몫이었다.
펜션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앨리샤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이거였다.
“카메라 엄청 많네.”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기분이었다.
일단은 가장 중요한 방 정하기부터.
넓은 크기를 자랑하는 펜션답게 방도 상당히 많았다.
잘 수 있는 방의 개수만 네 개.
두 명은 각방을 쓸 수 있지만, 남은 네 명은 각각 둘씩 묶어서 같은 방을 써야 했다.
“어떻게 할까?”
우미가 묻자, 이연이 먼저 멤버들에게 선호하는 방 타입에 대해 조사했다.
“각방 쓰고 싶은 사람.”
가장 먼저 연시우가 손을 들었다.
이연도 각방을 쓰고 싶어 하는 타입이다.
반면, 비아는 둘이서 방을 쓰고 싶다고 어필했다.
“모처럼 놀러 왔는데. 혼자서 쓸쓸하게 자면 재미없잖아. 그러니까 나는 둘이 쓰는 방에서 잘래.”
앨리샤와 우미, 그리고 나여솜은 딱히 어느 방을 쓰든 상관없다고 했다.
“명확하게 각방을 원하는 사람이 두 명이니까…… 그러면 굳이 가위바위보 할 것 없이 나하고 시우가 1인실 쓰고, 나머지가 2인실 쓰면 되겠네.”
2인실 팀은 우미와 비아, 그리고 앨리샤와 나여솜. 이렇게 각각 한 팀이 되기로 했다.
방도 다 정했으니.
이제 각자 흩어져서 짐 정리를 할 시간이다.
시우의 옆방으로 들어온 이연은 가장 먼저 카메라의 개수와 위치부터 살폈다.
그녀의 방에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의 개수는 총 2대.
문 쪽에 하나, 그리고 베란다 쪽에 하나. 이렇게 위치해 있었다.
‘사각지대는…… 저쪽이겠네.’
카메라의 각도를 대충 계산해 1평 남짓한 사각지대를 찾아낸 이연.
그녀는 자신의 사생활이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이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다 그럴 것이다.
그래도 이건 방송이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공짜로 펜션 여행 온 값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생활을 하다 보면 화장실이라든지 옷 갈아입는 장면 같은 게 보여질 수밖에 없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제작진이 안심해도 좋다고 말했다.
여성 스태프들만 원본 영상을 보면서 편집을 할 거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혹여나 노출에 관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영상은 전부 파기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연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옷을 갈아입을 때에는 이연이 발견한 사각지대를 이용하기로 했다.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이연은 비아와 앨리샤의 옷차림을 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 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평소의 이연답지 않게 하이톤으로 새된 비명까지 지르고 말았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바로 두 사람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둘 다 몸매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비키니다.
비아가 허리춤에 손을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뭐 하긴. 수영하려고. 이연 언니도 할 거지?”
“아니, 난 안 해.”
“왜! 모처럼 저렇게 수영장이 있는데!”
“수영장이 있다고 반드시 수영하란 법은 없잖아.”
수영을 못해서가 아니다.
두 사람처럼 수영복을 입기 싫어서였다.
몸매가 안 좋은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수영복을 싫어하는 이유는 둘밖에 없었다.
남사스럽다. 그리고 창피하다.
단지 이뿐이다.
비아와 앨리샤는 그 상태 그대로 거실 유리문을 통과해 수영장으로 몸을 던졌다.
풍덩-!
가을이 점점 다가오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온수 덕분인지 두 사람은 밖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물에 들어가 있을 때 더 생기가 넘쳤다.
한편,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듣고 뒤늦게 거실로 나온 우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애들도 아니고. 벌써부터 물에 막 들어가니?”
“그러는 우미 언니는. 물에 들어오려고 래쉬가드 입은 거 아니야?”
“래쉬가드 아니거든? 레깅스야, 레깅스.”
“그게 그거지, 뭐.”
우미가 오버 사이즈의 박스티를 위로 걷어 올리면서 래쉬가드가 아님을 보여줬다.
순간 드러나는 우미의 배를 보면서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뻔했다.
앨리샤, 이비아에 이어서 나여솜마저도 수영복을 입고 등장했다.
“여솜이, 너까지…….”
우미가 한숨을 쉬면서 말하자, 나여솜이 크게 당황했다.
“애, 앨리샤가 바로 수영하기로 했으니까 옷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는데.”
“너희 짓이었어?”
우미의 잔소리가 쏟아지거나 말거나. 비아와 앨리샤는 물놀이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출도 있는 수영복 차림으로 풀 안에 들어가서 물장구를 치는 멤버들.
그녀들을 보면서 이연은 같이 샤워할 때 느꼈던 그 난감한 기분을 오랜만에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