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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54화 (54/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54화

제16화. 1위의 몰락(1)

2라운드 서바이벌 투표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다재다능 팀.

우미와 비아는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 붙었으려나? 아니면, 탈락?”

“언니!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붙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어야지!”

오히려 막내가 맏언니한테 정신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연도 비아의 말에 공감을 드러냈다.

“이제부터는 멘탈 싸움이야. 파이널 라운드까지 올라왔다는 건, 그만큼 12명 전부가 다 기본적인 실력들은 갖추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면 누가 더 멘탈이 강한지에 따라 데뷔가 판가름 날 거야.”

침착하게 말해주는 이연을 보면서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촬영은 바로 내일이고.

오늘은 연습할 것도 없었기에 일찍 헤어지기로 했다.

팀원들을 먼저 보낸 이연은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한 마스크에 안경을 쓴 남자와 마주쳤다.

일부러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복장처럼 느껴졌다.

대게 유명인들이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 이런 모습을 한다.

이연도 몇 번 그랬던 적이 있어서 잘 안다.

‘머리 스타일을 보아하니…… 군인인 거 같은데.’

한편. 이연과 엘리베이터에서 딱 마주친 남성은 순간적으로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이연이 빠르게 손을 뻗어서 열림 버튼을 눌렀다.

“타시려는 거 아니었나요?”

“아, 네. 죄송합니다.”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이연은 이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우재 선배님이시죠?”

“그걸 어떻게…….”

“목소리를 들으니까 알겠더라고요. 처음 뵙겠습니다. 권이연이라고 합니다.”

이연이 먼저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건넸다.

상대는 11살 때부터 연기자로 활동했던 베테랑 배우다.

반년 전에 미뤄뒀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입대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한동안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에 몇 없는 천만 영화에 두 번이나 주연을 맡았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사하는 미남 배우.

짧은 군인 머리를 한 채 얼굴을 잔뜩 가리고 있어도 잘생김은 여전했다.

키도 훤칠했다.

키가 172㎝인 이연보다도 훨씬 큰 것으로 봐선 185㎝ 정도는 되어 보이는 장신이다.

정우재도 이연이 누군지 알고 있는 모양인지, 마스크를 벗으면서 정식으로 그녀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정우재입니다. 요즘 군대에서 SSS 덕분에 난리도 아닌데. 이렇게 유명하신 분을 직접 보게 되니까 영광입니다.”

“선배님에 비하면 전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걸요.”

연예계 경력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난다.

물론 환생하기 이전의 경력까지 따지면 이연이 정우재보다 훨씬 선배겠지만 말이다.

“누구 만나러 오셨나요?”

“오채일 대표님 만나 뵙기로 해서요.”

“그래요? 타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어차피 집에 가도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이연은 정우재의 가이드를 자처하기로 했다.

정우재는 괜찮다고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만, 이연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채일 대표의 사무실이 있는 곳까지 향하는 동안, 정우재는 이연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실은 제가 지독한 길치거든요. 회사 찾아올 때에도 주변을 뱅뱅 돌다가 겨우 찾아서 들어왔습니다.”

“그러셨군요.”

역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출구에서 나와서 쭉 직진으로 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우재는 찾아오는 데 꽤나 진땀을 뺀 모양인 듯했다.

둘이 사이좋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이연이 먼저 앞장서면서 그를 안내했다.

“저쪽이에요.”

복도 끝쪽 방을 가리키던 찰나.

마침 오채일 대표가 사무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 이연아. 여긴 어쩐 일이냐.”

“대표님 만나 뵙기로 한 손님이 계셔서요. 제가 잠깐 안내해 드렸습니다.”

선배이기도 하고. 게다가 자기 소속사 대표를 만나러 왔다는 사람을 두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좀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오채일 대표가 ‘아, 그렇지’라고 혼잣말을 흘리면서 이연에게 손짓했다.

“온 김에 같이 잠깐만 이야기 나누고 가.”

여기까지 지인을 데려다줬는데. 그냥 보내기는 너무 정 없어 보였다.

이연은 괜찮다고 말을 하려 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어느 분야든 똑같지만, 특히나 연예계에 있어서 인맥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톱 배우인 정우재와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정에 없던 삼자대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 *

안경과 마스크를 벗은 정우재가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짧은 머리를 한 차례 쓸어내렸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오채일 대표는 큭큭 웃었다.

“왜. 머리 짧은 게 어색해서 그러냐?”

“살면서 이렇게 짧게 머리를 잘라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직도 적응이 안 됩니다.”

“네가 지금 이등병이었나?”

“일병입니다. 저 다시 이등병으로 돌리려고 하지 마세요, 대표님. 상상만 해도 끔찍하니까요.”

얼마나 싫은지, 몸서리까지 칠 정도였다.

군대 이야기가 나오자, 오채일 대표도 옛 생각이 나는 모양인지 자신의 군 복무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두 남자의 군대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만 있는 이연.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우재가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대표님. 군대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죠. 이연 씨가 별로 안 좋아할 테니까요.”

“그러네. 우리 와이프도 내가 군대 이야기하면 그만 좀 하라고 잔소리하더라. 미안하다, 이연아.”

권이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괜찮다고 답했다.

딱히 싫다는 감정은 없었다.

비록 군 복무를 실제로 해본 적은 없지만, 속은 남자여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는 편은 아니었다.

정우재가 엘리베이터에서 이연에게 했던 말을 오채일 대표에게도 똑같이 반복했다.

“SSS, 요즘 군대에서 엄청 인기 있더라고요. 저희 선임들도 요즘 티비만 틀었다 하면 그거 재방송만 계속 보고 있어요.”

“하긴. 방송 시간대가 군대 취침 시간하고 겹치니까.”

그래서 주말 내내 SSS 시청이 무한으로 반복된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정우재는 처음에 이연과 마주쳤을 때 마치 연예인을 본 일반인의 심정이 된 기분이었다.

“이연 씨 보자마자 사인 부탁할 뻔했다니까요.”

“온 김에 받아 가지 그래?”

“정말로요?”

정우재의 표정에 기대감이 가득 차올랐다.

이 분위기에서 어떻게 싫다고 거절할까.

사인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이연은 오채일 대표의 말대로 정우재에게 친필 사인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팬미팅을 겪고 나니까 이제는 사인 하나 해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슥슥.

사인 밑에 오늘의 날짜와 간단한 메시지를 담아 정우재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이연 씨. 소중하게 간직할게요.”

“나중에 필요하면 언제든 또 말씀해 주세요, 선배님.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원래부터 두 사람 간의 약속이었으니까. 갑자기 끼게 된 제3자가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이연은 적절한 타이밍에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이연이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오채일 대표가 정우재에게 물었다.

“우리 이연이, 실제로 만나보니까 어떠냐.”

“실물이 진짜 2배. 아니지, 3배는 낫네요. 카메라가 이연 씨의 아름다움을 다 못 담아내는 거 같아요.”

“사람들도 다 똑같이 그 말 하더라.”

점점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LC 엔터테인먼트의 간판 연예인이 되어가고 있는 권이연.

오채일이 장난기를 담아 정우재에게 물었다.

“이연이한테 반했냐?”

“그런 거 아니에요.”

“짜식. 그냥 농담으로 해본 말인데. 뭘 그렇게 정색을 해.”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반한 건 아니지만, 아주 약간이나마 관심이 생긴 건 사실이었으니까.

괜히 양심의 가책에 찔린 탓에 예민하게 반응을 한 거였다.

* * *

2라운드 서바이벌 투표 결과가 공개되는 날이 찾아왔다.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 연습생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빈자리를 채웠다.

이 긴장감을 억지로 없애기 위해 비아가 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냈다.

“언니들.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저번에 회사에 정우재 선배님 오셨었대. 우리 대표님 만났다고 그러던데?”

“세상에! 정우재 선배님이? 진짜로?”

우미의 취미 중 하나가 영화 시청이다.

그래서인지 유명 배우의 방문 소식에 유독 격하게 반응했다.

앨리샤조차도 비아의 말에 귀를 기울일 정도였다.

반면, 이연은 평소처럼 반응이 없었다.

비아가 뒤쪽에서 이연이 앉은 앞쪽 방향으로 얼굴을 쑥 내밀면서 물었다.

“언니는 정우재 선배님 오셨다는데. 별로 안 놀라네?”

“그 자리에 나도 있었거든. 그래서 별로 놀랍진 않아.”

“……뭐어?”

이연의 충격 고백에 팀원들이 더 크게 놀랐다.

우미가 이연과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정우재 선배님을 만났어? 정말로?”

“어. 길 찾는 거에 자신이 없다고 하셔서 내가 직접 대표님 사무실까지 안내해 줬어.”

“정우재 선배님, 직접 보니까 어땠어? 실물이 훨씬 잘생겼지? 키는 얼마나 커? 군 생활은 할 만하시대? 어디 다치신 곳은 없고?”

질문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이연은 우미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처음 접했다.

“혹시 정우재 선배님 좋아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워낙 유명하신 분이잖아. 신기하니까 그런 거지.”

정우재가 이연을 처음 봤을 때의 기분이 이랬을 것이다.

짧게 고민한 끝에 이연이 들려준 대답은 이러했다.

“잘생기긴 했지. 키도 크고. 군 생활은…… 이야기 들어보니까 문제없이 잘하시는 거 같더라고. 다친 곳은 없고.”

앨리샤가 이연의 대답을 듣고 신기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정우재 선배님이 진짜 잘생기긴 하셨나 보네. 연이 입에서 ‘잘생겼다’라는 말이 나오는 거 보니까.”

비아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이은솔 선배님에 이어서 두 번째 아니야?”

“연이 너, 남자 볼 때 얼굴 많이 따지는 스타일이었구나? 그렇지?”

이연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이상한 말 좀 하지 말라고 그녀들에게 주의를 줬다.

잘생겼든 어떻든. 애초에 이연은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도 남자니까.

그래서인지 이연은 이런 농담조차 싫어했다.

마침 좋은 타이밍에 이은솔이 등장하면서 현장이 금세 조용해졌다.

“여러분. 그동안 잘 쉬셨습니까.”

“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시죠?”

연습생들은 잔뜩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파이널 라운드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2차 서바이벌 투표.

이은솔은 최종 생존자를 발표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파이널 라운드로 향할 12명의 연습생들을 순위에 따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찾아온 운명의 시간.

연습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옆에 있는 동료들과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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