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52화
제15화. 2라운드 최종 미션(2)
파이널 라운드 진출이냐.
아니면 이대로 탈락이냐.
연습생들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2라운드 마지막 팀미션의 날이 밝았다.
이른 시간에 눈을 뜬 이연은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랜만에 음유시인으로 활동할 당시의 꿈을 꾼 탓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한창 어려웠을 때의 기억이었다.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모르겠네.’
고생했으니까 이제 보상을 받을 거라는 암시인가. 아니면 당분간 그때처럼 계속해서 개고생을 하게 될 거라는 뜻인가.
이연은 꿈풀이에 조예가 깊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이불을 걷어내고 잡생각을 지우기 위해 명상에 돌입했다.
푸른 마나의 기운이 그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정신 집중.
명경지수(明鏡止水)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머리를 맑게 만들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파이널 라운드 진출뿐.
명상을 마친 이연은 샤워를 마치고 집을 나설 준비를 서둘렀다.
집을 나서기 직전, 새벽 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하다가 겨우 퇴근한 어머니가 이연을 배웅하기 위해 억지로 눈을 떴다.
“이제 가니?”
“네. 좀 더 주무셔도 되는데…….”
“그래도 우리 딸이 공연하러 가는데. 엄마가 잠만 자고 있을 순 없지.”
어머니가 이연의 작은 손을 잡아줬다.
“네 꿈이 이루어지기를 엄마도 바라고 있으니까 힘내렴. 알았지?”
“네, 어머니.”
음유시인이 되기 전. 이연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적극적인 응원과 지원을 받았었다.
그렇기에 가족의 응원만큼 힘이 되는 것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나온 이연은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선 그녀의 발걸음은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가볍게 느껴졌다.
* * *
메이크업과 헤어, 그리고 의상까지.
이연은 무대에 오를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갖춘 채 거울 앞에 섰다.
블랙과 화이트 톤이 적절하게 섞인 컬러 배합.
롱부츠와 핫팬츠, 그리고 군복을 연상케 하는 제복 느낌의 상의까지.
이연의 볼륨감 있는 몸매를 잘 드러내는 의상이었다.
머리를 뒤로 묶은 덕분에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가 잘 드러났다.
이런 스스로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게 있다.
‘예쁘긴 참 예쁘군.’
그가 그녀로 환생하기 전의 세계관에서 만약 이런 모습을 한 여인이 있었다면, 대륙을 통틀어 최고의 미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것이다.
공연하면서 수많은 여배우와 합을 맞춰봤던 이연조차도 놀랄 만큼의 미모.
그녀가 사람들 사이에서 비주얼 톱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에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멘탈도 강하다.
이러니 팬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연의 모습을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비아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언니야. 예뻐!”
사실 이연에게는 예쁘다는 말이 그다지 칭찬은 아니었다.
이런 말을 들어도 자신이 아니라 왠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듣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렇다.
“헛소리 말고 너도 빨리 의상이나 입어봐. 사이즈 안 맞으면 급하게 수선해야 하잖아.”
“난 아까 입어봐서 괜찮아. 잘 맞더라고. 아, 그렇지. 언니, 소식 들었어?”
“어떤 거.”
“이번에도 2차 팀미션 티켓 신청자들, 엄청 몰렸다잖아. 1차 때에 비해서 신청자 수만 3배 늘었다던데?”
그만큼 SSS가 날이 갈수록 화제성을 더해가고 있음을 뜻했다.
프로그램이 유명해질수록 연습생들의 인기 또한 높아진다.
그렇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한순간의 방심이, 그리고 한순간의 실수가 역풍이 되어 돌아오는 게 바로 연예계의 무서운 점이니까.
팀원들끼리 서로 의상이나 메이크업에 문제가 없는지 봐주는 사이, 스태프가 다재다능 팀 대기실을 찾았다.
“리허설 시작할 테니까 준비해 주세요.”
“네!”
무대 순서가 첫 번째여서 그럴까. 리허설 역시 이들이 가장 먼저 받게 되었다.
무대에 나란히 선 다재다능 팀.
오채일 대표와 민주린, 그리고 다른 심사 위원들 역시 리허설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객석에 자리를 잡았다.
다재다능 팀에게 주어진 오리지널 곡, ‘푸르팡라이픽’ 간주가 흘러나왔다.
독특한 비트가 반복되면서 묘한 중독감을 일으키는 노래에 심사 위원들도 절로 어깨를 들썩였다.
안무는 어떨까.
오채일 대표가 이석호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저 안무, 애들이 직접 짰다고?”
“네. 제가 건드린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연습생들이 구상한 것들뿐이에요.”
“그래? 괜찮은데?”
“대표님이 보시기에도 그렇죠?”
“어. 정말 말 그대로 다재다능이구만. 후크송도 찰떡같이 소화하고.”
못하는 게 없었다.
특히 푸르팡라이픽이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구간에는 일반 사람들도 보고 따라 하기 쉬울 정도로 간단한 안무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자리에서 오른팔과 왼팔을 교차시키면서 위, 아래로. 이 팔 동작에 따라서 고개를 까닥까닥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오채일 대표도 직접 따라 해봤다.
“어때? 잘하지?”
이석호 트레이너가 크게 웃었다.
“대표님이 직접 무대에 올라가셔도 될 거 같은데요?”
“그랬다가 오늘 무대 보러 온 사람들한테 욕 한 바가지 먹을걸? 애들이 하니까 귀엽고 예뻐 보이는 거지, 나 같은 아저씨가 하면 징그럽다고 할걸?”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빈말이라도 아니라고 부정하기가 애매했다.
잠시 우스갯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농담을 나누면서도 이들의 눈과 귀는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나현아 트레이너가 팀 다재다능의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이연이가 다시 센터로 돌아오니까 확실히 안정감이 느껴지네요. 비아도 잘하긴 했는데, 이 팀은 역시 이연이만큼 센터에 어울리는 인물이 없는 거 같아요.”
이 점에 대해서는 이석호 트레이너도 깊이 공감했다.
권이연이 무게감 있게 중심을 잡아주니까 다른 멤버들도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자칫 센터만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도 존재하지만, 다재다능 팀의 경우에는 멤버들의 모습이 골고루 들어오고 있었다.
그만큼 멤버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뜻했다.
오채일 대표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잘해, 이 팀.”
이대로 넷이서 데뷔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결승 무대에서 우승하려면 결국 여섯 명이 팀을 이루어야 한다.
기존에 완성되어 있는 팀에 두 명이 더 추가된다면, 그것은 과연 득일까? 실일까?
이건 두고 봐야 할 일이다.
* * *
리허설 무대를 마친 다재다능 팀은 심사 위원들에게 크게 손볼 곳이 안 보인다는 평가와 함께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반면, 진절혜 팀은 다재다능 팀과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안무는 안 맞고.
군데군데 실수가 남발했다.
이연은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다.
‘연습해야 할 기간에 방송 출연에만 올인했으니. 당연하지.’
심사 위원들의 표정도 잔뜩 굳어 있었다.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이석호 트레이너마저 쓴소리를 들려줄 정도였다.
“안무가 엉망진창이잖아!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이다음, 바로 본 무대라고! 어?”
“죄, 죄송합니다!”
리허설 단계에서 이렇게까지 고성이 오고 간 적은 없었다.
기대감이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다른 팀도 아니고. 한때 연습생들 중에서 가장 주목받던 진절혜가 이렇게까지 무대를 엉망으로 준비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물론 방송에 출연해도 된다고 허락한 건 소속사와 제작진이었지만.
그래도 연습을 아예 등한시하라는 뜻까진 아니었다.
자기 할 일은 하면서 하라는 의미였다.
그걸 제대로 파악 못 한 진절혜 팀은 본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고역을 치러야만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지, 결국 심사 위원들이 직접 나서서 진절혜 팀의 무대를 다시 잡아주기로 했다.
객석에서 1위 아니면 죽음을 달라 팀의 리허설을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던 비아가 언니들에게 물었다.
“분위기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우리도 연습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연이 딱 잘라 대답했다.
“우리는 그냥 쉬고 있으면 돼.”
강력한 라이벌이 될 거라고 예상했던 팀이 너무 못하니까 긴장감이 떨어질 정도였다.
* * *
녹화가 시작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마침내 무대를 보러 온 팬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이 중에는 양인박과 주형운, 그리고 권민준의 모습도 보였다.
세 사람은 오늘도 권이연을 응원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왔다.
권이연의 이름이 적힌 각종 응원 도구들을 들고서 힘껏 외쳤다.
“권이연 파이티이잉!!!”
“누나, 꼭 데뷔하자!!”
우렁찬 남고생들의 외침에 사람들은 크게 웃었다.
권민준이 두 친구들을 향해 입 좀 다물라고 경고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미쳤냐?”
“어허, 민준아. 이런 걸 기선제압이라고 하는 거다. 그렇지, 인박아?”
“형운이 말이 맞아. 응원도 기세 싸움이라고.”
권민준은 골치가 아파옴을 느끼면서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런 권민준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두 친구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번 팀미션 때에는 우리들보다 니가 더 열심히 누나 응원했으면서.”
“맞아. 기억 안 나냐?”
“그때는…… 그때고.”
맞는 말이어서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친구들끼리 티격태격하는 사이.
이은솔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커졌다.
이은솔은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1라운드 팀미션 때보다 더 많은 분들이 오신 거 같은데요?”
실제로도 인원이 더 많았다.
나날이 커져가는 SSS의 인기를 실감하면서 이은솔은 신호에 맞춰 오프닝 멘트를 펼쳤다.
“대한민국 최고의 걸 그룹을 뽑는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안녕하십니까. 이은솔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미 방송으로도 많이 익숙해진 이은솔의 인사말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무대가 시작된 것도 아닌데 열기가 굉장히 뜨겁네요.”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다곤 하지만, 현장은 아직도 여름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응원하는 팀을 위해서 벌써부터 강한 의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을 위해서 이은솔은 빠른 속도로 공연을 진행했다.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바로 첫 번째 팀부터 만나보시겠습니다. 2라운드 마지막 팀미션의 첫 무대를 장식할 다재다능 팀입니다! 위로 올라와 주세요!”
미션마다 매번 후발대를 맡았던 다재다능 팀이 오늘은 예외적으로 첫 번째를 맡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다재다능 팀을 벌써부터 보게 된 것에 대해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했다.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이 당황스러움이 환호성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둘, 셋.”
“안녕하세요. 팀 다재다능입니다!”
그녀들의 인사말에 현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사람들에게 질세라 권민준과 친구들 역시 목이 터져라 외쳤다.
“권이연 파이팅!!!”
“날 가져요, 누나아아아아아!!!!”
2라운드 팀미션은 응원전부터 만만치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