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46화
제13화. 예능 도전(3)
선택권은 연습생들에게 있다.
여태껏 누군가의 선택을 받는 게 연습생들의 일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자신들이 선택해야 한다는 이 입장이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반면 이연은 벌써부터 각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스타의 한 끼’는 최근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는 패널 쪽에 안 좋은 구설수가 돌고 있어서 여기에 출연하면 저희에게도 그 안 좋은 시선이 옮겨붙을까 봐 걱정이 되네요. ‘불철주야’의 경우에는 야외에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라서 저희 같은 방송 초보가 나가면 방송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미지수고요. ‘떠나는 밤’은 여행 프로그램이니까 녹화 일정만 최소 2박 3일을 잡아야 하니까 안 됩니다.”
마치 기계처럼 일정한 속도로 망설임 없이 각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읊는 이연.
자신들의 현 상황을 고려한 완벽한 분석에 박도수 매니저와 홍류현 실장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한편 연습생들은 이연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이면서 동의를 표했다.
결국은 최소한의 녹화 시간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연이 택한 프로그램은 바로.
“‘스타일 나이트’가 가장 적당할 거 같네요.”
“코디 관련 예능 말하는 거지?”
박도수 매니저가 확인 차원에서 다시 물었다.
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저희 팀원들 다 옷 잘 입기로 소문이 자자하니까요. 프로그램 성향하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박도수 매니저가 홍 실장을 슬쩍 바라봤다.
“실장님은 어떠세요?”
“나도 ‘스타일 나이트’가 제일 나아 보이긴 하네. 젊은 시청자들도 많이 확보한 프로그램이고. 아카튜브 채널 영상 조회 수 보면 잘 나오니까.”
하이라이트 영상이 업데이트되었다 싶으면 무조건 인기 급상승 순위에 드는 편이기도 했다.
그리고 옷이 주요 테마다 보니, 다재다능 팀의 가장 큰 무기라 할 수 있는 비주얼을 잘 살려낼 수도 있다.
“오케이. ‘스타일 나이트’로 가자.”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정 다시 한번 체크해 보고, 그때 내가 너희들한테 연락 줄게.”
연습생들은 박도수 매니저의 말에 입을 모아 알겠다고 답했다.
이것으로 짧은 회의는 종료.
이제부터는.
“무대 연습하러 가자.”
이연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 * *
외부 일정을 마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온 오채일 대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일찍 퇴근할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기 전에 어느 한 궁금증이 먼저 떠올랐다.
수화기를 든 오채일 대표가 누군가를 찾았다.
“홍 실장, 잠깐 나한테 오라고 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홍류현입니다.”
“어, 들어와.”
SSS 프로그램에서는 심사 위원으로 참가하고 있어서 그렇지, 그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거대 연예 기획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그의 호출에 깎듯이 허리를 숙이는 홍 실장.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
“우리 연습생들 때문에. 이번에 타 방송 출연 금지 건, 일시적으로 제한 풀어줬잖아. 반응은 어때? 신청은 많이 했어?”
“예. 22명 참가자 모두 다 신청했습니다. 대신에 출연하기로 한 프로그램 개수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어떤 연습생은 최대 다섯 개까지 가능하다고 했었다.
반면, 가장 적은 횟수는 단 한 번.
“다재다능 팀원들은 딱 한 번 나가면 족할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음, 그래? 나는 걔네들 방송 나가면 잘할 거 같던데. 한 번뿐이라고 하니까 많이 아쉽네.”
“그쪽 멤버들이 끼가 있죠.”
비아는 처음부터 예능 기질을 다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앨리샤의 경우에는 먹는 양뿐만 아니라 미식가 기질도 가지고 있어서 음식 관련 프로그램에 나가면 잘할 거 같고.
우미는 전체적으로 밸런스형이기 때문에 어디를 갖다 놔도 평균은 할 거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문제는.
“전 개인적으로 이연이하고 예능은 잘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이연이 압도적인 포스를 자아내고 있지만.
예능은 과연 어떨까?
일단 아직까지 보여준 모습으로 봐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이연이니까. 잘할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아직 저는 상상이 잘 안 가더라고요.”
기대감과 걱정은 별개의 문제다.
오채일 대표가 피식 웃었다.
“나도 그래. 근데 홍 실장이 말한 대로, 이연이라면 어떻게든 잘해낼 거야. 여태껏 그래왔으니까.”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난관들이 여럿 왔어도 이연은 남들에게 보란 듯이 그것을 늘 여유롭게 넘어왔다.
그래서 오채일 대표는 궁금했다.
이연이 과연 예능에서도 스타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말이다.
홍류현 실장도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그 한 번 나가기로 한 기회를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쓰기로 했어?”
“‘스타일 나이트’입니다.”
“‘스타일 나이트’라고? 허훈 PD가 연출하는 그 프로그램?”
“예, 그렇습니다.”
“허 PD, 내가 알기론 깐깐한 면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본인들이 그곳에 나가고 싶다고 희망한 거니까.
오채일 대표는 그것까지 막아설 생각이 없었다.
“그 깐깐한 허 PD가 아직 제대로 검증이 다 안 끝난 연습생들을 출연자로 데려오겠다고 하다니. 허 PD가 많이 관대해진 건지, 아니면 그만큼 우리 연습생들이 상당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구만.”
“둘 중에 하나라기보다는 둘 다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그럴지도.”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간에 오 대표 입장에선 흥미진진한 일이 발생한 건 사실이었다.
“녹화 일정이 어떻게 되나?”
“다음 주 수요일입니다. 그날 오전 11시부터 녹화 시작될 겁니다.”
“방송에 나가려면…… 2라운드 마지막 팀미션 촬영 때쯤이겠군. 그때는 간만에 ‘스타일 나이트’ 본방사수 해야겠어.”
요즘 들어 바빠서 티비 볼 시간조차 없었던 오채일 대표였지만.
이번만큼은 잊지 않고 챙겨보기로 결심했다.
* * *
오전에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관한 회의를.
그리고 오후에는 안무와 무대 콘셉트를 정하는 회의를 모두 마친 이연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왔다고 마냥 쉬는 건 아니었다.
바로 다음 주에 팀 다재다능 인원들이 한꺼번에 출연하게 될 의류 코디 예능 프로그램, ‘스타일 나이트’의 출연에 대비해 모니터링을 해야 했다.
몇 편 보긴 했지만, 오늘 정식으로 출연이 결정되었으니까.
이연은 못 보고 중간중간 건너뛰었던 편수들까지 싸그리 모아서 모니터링을 할 생각이었다.
“1.5배 속도로 돌려도 상관없겠지.”
무대 준비까지 해야 했기에 한창 바쁜 지금의 이연에게 이런 기능은 그야말로 꿀이었다.
‘스타일 나이트’의 프로그램 진행 방식과 녹화 분위기 등등. 전체적인 것들을 빠르게 눈과 귀로 익혀뒀다.
‘그러고 보니 내가 환생하기 전에도 이런 비슷한 무대가 있었지.’
그때는 방송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에 무대에 올라서 출연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일종의 토크쇼 형태의 무대는 있었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이용해 ‘스타일 나이트’를 쭉 관람하는 이연.
‘세상 참 편하네.’
과학 기술의 발전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사이, 이연의 방문이 살짝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순간적으로 권민준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
그냥 문 열면 분명 또 무슨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기에 권민준은 뒤늦게 노크를 했다.
“누, 누나! 들어가도 돼?”
“아까 문 열다가 나하고 눈 마주친 거 금세 잊었냐.”
“…….”
이연이 그걸 놓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바쁘니까 한 번 봐준다.”
이연한테서 용서가 떨어지고 난 다음에야 권민준은 다시 용기를 내어 누나의 방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가 이연의 방을 찾아온 이유는 사소한 거였다.
“엄마가 식당에서 사과 많이 받아 왔는데, 누나한테 조금 있다가 먹을 거냐고 물어보라고 해서.”
“안 먹어.”
“왜.”
“다이어트 해야 돼.”
무대에 오르는 자는 다이어트와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이다.
권민준은 사과 한 조각조차 용납하지 않는 누나의 이런 태도가 이해가 잘 안 됐다.
“그거 먹는다고 살 안 찌잖아.”
그리고 권민준이 보기엔 이연은 오히려 더 쪄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연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한 번은 괜찮겠지’ 같은 생각이 가장 무서운 거다.”
“알았어. 그러면 엄마한테 말해둔다? ……근데 아까부터 뭘 보고 있는 거야.”
딱히 숨길 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연은 스마트폰 화면을 직접 동생에게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 아냐.”
“알지. 애들 사이에서 엄청 유행하고 있는데. 모를 리가.”
주 연령층이 10대부터 30대층이라는 기사를 봤던 이연의 조사가 틀린 게 아니었다.
“근데 이건 왜. 누나, 설마 여기에 나가는 거야?”
“어. 그렇게 됐다.”
“미친……! 누나, 진짜 성공했구나! 엄마한테도 말해야겠네.”
“어머니는 왜.”
권민준이 거실 쪽을 가리키면서 이유를 알려줬다.
“엄마가 누나 방송 나올 때마다 일일이 다 사진 찍어서 모아두고 있잖아. 우리 딸이 티비에 나왔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연이 SSS에 처음으로 나왔을 때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자기 딸만 나온 모습을 캡처해서 사진으로 인화한 다음에 자신의 방 곳곳에 붙여둔 적이 있었다.
딸이 그동안 데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뎌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방을 나서는 권민준의 모습을 보면서 이연은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방송 더 많이 나가겠다고 할 걸 그랬나.’
자신이 무대에 서는 게 가족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
환생하기 전에 느꼈던 감정을 오랜만에 다시 깨달아서일까.
이연의 입가에 오랜만에 미소가 번졌다.
* * *
1주일 뒤.
박도수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스타일 나이트’ 녹화 현장으로 향하는 연습생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긴장이라는 단어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처럼 보였다.
SSS를 통해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그녀들이었지만.
그건 괜한 착각에 불과했다.
SSS가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 본 건 최근에 음방 미션 때 한번 빼고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차 안에는 여전히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박도수 매니저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긴장할 것 없어, 얘들아. 편하게 즐기다가 온다고 생각하면 돼. 알았지?”
“네, 매니저님!”
대답조차 경직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린 순간.
그녀들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릴 만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방송국으로 향하는 길.
그리고 그 길목을 가득 채운 기자들과 팬들.
“저기 왔다!”
“이연 언니!! 너무 예뻐요!”
“앨리샤 파이팅!”
“우미, 비아 오늘 너무 귀여워요!! 저희가 응원하고 있다는 거 아시죠?”
말로만 듣던 출근길 행사.
오늘은 팀 다재다능 멤버들이 그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