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32화
제9화. 치어리딩 미션(7)
능숙하게 멘트를 이어가는 권이연의 모습을 보면서 이은솔과 심사 위원들은 감탄을 삼켰다.
“권이연 연습생, MC 맡겨보면 잘할 거 같지 않아요?”
나현아 트레이너의 말에 오채일은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어. 말하는 톤도 그렇고, 시선 처리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도 이런 무대가 처음일 텐데도 전혀 떨지를 않아. 아무리 봐도 연습생이라는 티가 안 난단 말이지.”
방송 경력이 최소 10년 차 이상은 되어야 볼 수 있는 짬이었다.
이은솔도 이연의 진행 능력에 놀랐다.
“이러다가 저, SSS 진행자 자리 권이연 연습생한테 빼앗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정말로 그럴 수 있으니까 조심해.”
“대표님. 이럴 때에는 제 편 들어주셔야죠.”
“농담이야, 농담.”
짧은 자기소개가 끝나고.
마침내 가장 걱정되는 팀 다재다능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처음 공개되는 오리지널 곡, ‘섬머 러브’.
낯선 반주가 흘러나오자 관중들은 ‘이게 무슨 곡이지?’ 하는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봤다.
곡도 곡이지만.
오프닝을 여는 센터가 권이연이 아닌 이비아라는 사실에 추가로 놀랐다.
신나는 비트와 함께 앞으로 치고 나온 비아가 양손을 활짝 펴면서 밝은 표정으로 노래의 첫 소절을 읊었다.
-너와 내가 맞이하는 첫 여름.
햇살이 우리들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어.
Burning Up!
여름에 지지 않게 오늘을 불태워 봐!
상큼한 표정으로 외쳐보는 비아의 모습에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푹 빠져들게 되었다.
권이연이 여태껏 센터로서 너무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해 왔기에 그렇지, 사실 비아든 우미든 앨리샤든.
다재다능 팀은 누가 센터를 맡아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각자 풍성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괜히 그 빡세다는 LC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합격한 게 아니다.
기본적인 실력들은 다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 된 거였다.
비아의 뒤를 이어서 우미도 오른손을 번쩍 들면서 자신의 차례임을 사람들에게 당차게 알렸다.
그다음, 앨리샤가 모델 뺨치는 워킹을 선보이면서 센터 자리를 차지했다.
혼혈이라 그런지 앨리샤의 볼륨감 있는 몸매는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화제가 되었다.
복장이 복장이다 보니, 앨리샤의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뒤흔들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큰 거 온다!
무대 뒤쪽에 서 있던 이연의 등장에 사람들의 목소리는 배로 커졌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잠시 몸을 맡겨.
새파란 바다에 근심 걱정을 집어 던져.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모두 이렇게 외쳐.
We Are Together!
래퍼로 변신한 권이연의 모습에 사람들은 눈과 귀가 번쩍였다.
여태껏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던 그녀의 랩 실력.
지금 이 시대로 환생하기 전에, 이전 세계에서도 랩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한 장르의 음악이 있었다.
극지방에 거주하는 부족에게서 유래된 음악 분야로, 리듬을 타면서 최대한 빠르게 빠르게 주문을 읊조리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점점 변화하면서 랩과 비슷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음유시인으로 활동할 당시, 권이연은 이세계에 존재했던 모든 음악 장르를 다 섭렵했다.
그래서인지 랩을 처음 접했을 땐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뭐랄까.
친숙했다.
비아를 센터로 내세우고 자신이 래퍼 포지션을 차지한 이유도 사실은 래퍼로 한번 무대 위에서 뛰고 싶다는 개인 욕심이 약간 작용했다.
심사 위원들은 처음 접하는 이연의 랩 실력에 감탄했다.
“이연이는 대체 못하는 게 뭐지?”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랩이면 랩, 비주얼이면 비주얼. 거의 완성형 아이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오채일 대표와 나현아 트레이너는 그녀를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생들에게 소위 ‘호랑이 심사 위원님’이라 불리는 민주린조차도 이연의 무대에선 뭐라 태클을 걸 수가 없었다.
연습생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봤을 때에도 상당히 완성도 있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심사 위원들 중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역시 이은솔이다.
“중간점검 때, 제가 센터 바꾸라고 했었잖아요. 근데 지금 보니까 그때 그 말을 했던 제가 다 부끄러워지네요.”
그만큼 비아의 센터 체제에도 다재다능 팀은 완벽하게 무대를 소화해 내고 있었다.
무대 마지막까지. 그녀들은 한 차례의 실수조차 스스로에게 용납하지 않은 채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관중들의 환호성.
이은솔도 그녀들의 마음고생과 노력을 익히 알고 있기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오채일 대표가 이은솔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중을 시키려고 했다.
그때.
또 한 명의 심사 위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주린. 그녀는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계속 박수를 이어나갔다.
이은솔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린이, 너까지…….”
민주린이 팀 다재다능에게 이렇게 열정적인 호응을 보낼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저곳에 권이연이 있으니까.
심사 위원들은 전부 민주린이 권이연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었다.
평가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아무리 객관적으로 점수를 매긴다 할지라도 주체가 사람인 이상, 자신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개입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린은 이은솔 못지않은 열띤 반응으로 팀 다재다능을 응원했다.
권이연 팀의 무대가 끝나고.
오채일 대표가 다시 자리에 앉은 민주린을 바라보면서 슬쩍 물었다.
“웬일로 네가 기립 박수를 다 쳤어?”
민주린은 같은 프로 가수들이 나오는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뜨거운 호응은 단 한 차례도 보여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오채일은 지금 그녀의 반응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민주린의 대답은 간결했다.
“노력했다는 티가 나는 무대였으니까요.”
말로는 열심히 노력했다고 하지만, 그 말이 잘 믿기지 않는 무대도 상당수 존재한다.
민주린도 그런 걸 숱하게 봐왔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달랐다.
센터를 바꾼다는 새로운 시도. 실패.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민주린이 직접 보지 않았어도, 무대만으로도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스토리가 있는 무대는 더 감동적인 법 아니겠어요?”
민주린의 말에 오채일 대표는 한쪽 입꼬리를 스윽 말아 올리면서 답했다.
“그렇긴 하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 * *
2라운드 대망의 첫 번째 팀 미션이 끝난 뒤, 연습생들은 평소에 녹화하던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현장으로 향했다.
22명의 연습생들은 무대에 올랐던 당시 그 복장 그대로 팀 미션 결과를 듣기 위해 한 명 한 명씩 자리에 앉았다.
권이연은 바로 앞에 앉은 팀의 복장을 보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렇게 짧은 치마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다니…… 쯧쯧쯧! 말세다, 말세.”
유교 감성이 넘치는 권이연의 모습을 보면서 다재다능 팀원들은 ‘또 시작이다’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비아가 장난기를 발동했다.
“언니가 입은 것도 만만치 않아.”
“뭐가.”
“이거 봐봐. 바지하고 치마라는 차이뿐이지, 허벅지 드러내는 범위는 다 똑같잖아.”
라고 말을 하면서, 이연의 탄력적인 허벅지를 탁! 하고 쳤다.
순간 이연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권이연은 남자든 여자든, 심지어 가족이든. 자신의 몸에 누가 손을 대는 걸 극도로 꺼렸다.
남자였을 때에도 그랬다. 이런 이유 때문에 권이연은 음유시인이었을 당시 무조건 복장은 혼자서 갈아입는 편이었다.
이런 와중에 비아가 이연의 허벅지살을 만질만질하니,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비아는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뭐야, 이 언니. 놀라는 반응이 왜 이렇게 귀여워!”
“사람들 다 보는데 하극상이냐? 예절 교육을 다시 받아야겠구만!”
“언니, 하는 행동은 귀여우면서 말투는 왜 이렇게 아저씨 같아? 이게 그 군필 여고생이라는 거야? 아니지. 군필 여대생?”
그렇게 예상 못 한 두 사람의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무대 위로 올라오는 이은솔의 모습으로 끝을 맞이했다.
그가 이렇게 연습생들 앞에 나섰다는 건,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음을 뜻하는 거였기 때문이다.
먼저 마이크를 테스트한 이은솔이 연습생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 여러모로 부담이 많이 될 만한 무대였을 텐데. 다들 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심사 위원분들도 다들 칭찬하고 가셨어요.”
정말 그럴까.
아니면 이은솔이 연습생들에게 힘내라는 뜻으로 한 빈말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팀 순위를 공개하겠습니다! 여기 올라오면서 먼저 제가 결과를 확인해 봤는데,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의외?
연습생들은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방송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다.
“먼저 5위와 4위부터 순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5위, 4위만 우선 공개했다.
다행히도 권이연 팀은 하위권에 없었다.
진절혜 팀도 마찬가지.
두 팀 중 한 팀에서 1위가 나오지 않을까.
연습생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은솔의 말대로.
이변이 벌어졌다.
“이번에 공동 2위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먼저 1위부터 확인하시고, 공동 2위를 차지한 두 팀의 정체를 공개하겠습니다!”
1위가 발표된 순간, 연습생들은 헛숨을 삼켰다.
[1위. 팀 사랑의 요정들]
[475점]
권이연의 팀도, 그렇다고 진절혜의 팀도 아닌 전혀 생뚱맞은 팀이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기뻐하는 사랑의 요정들 팀.
‘그렇다면…….’
순간 권이연과 진절혜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자, 공동 2위를 차지한 팀들도 같이 확인해 보시죠!”
[2위. 팀 다재다능]
[2위. 1위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458점]
진절혜 팀이 속한 ‘1위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와 1점 차이도 나지 않았다.
‘게다가 1위하고도 20점 이내였네.’
500점이라는 큰 점수에 설마 동률이 나올 줄은 제작진도 예상 못 했다.
비아가 결과를 확인하고 금세 시무룩해졌다.
“미안해, 언니들.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아니, 괜찮아. 넌 충분히 잘했어. 1위하고 점수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그렇지?”
이연을 따라서 다른 멤버들도 비아를 위로해 줬다.
1위가 베스트이긴 했지만, 이연은 진절혜가 1위를 못하게 막아낸 것도 의미 있는 수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팀 사랑의 요정들은 이번에 본인들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곡을 받았다.
귀엽고 상큼함을 강조한, 말 그대로 작고 지켜주고 싶은 요정 같은 멤버들이 모여서 이연은 선곡이 발표되자마자 저 팀이 다크호스가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어차피 2라운드 팀 미션은 이거 하나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이연의 예상대로 1위를 차지한 팀 사랑의 요정들에 대한 베네핏이 발표된 뒤, 곧바로 2라운드 두 번째 팀 미션이 발표되었다.
“2라운드는 여러분들의 선배 가수와 함께 음악방송에 무대를 꾸미는 미션입니다. 줄여서…….”
[음방 미션]
또 하나의 시련이 연습생들의 앞을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