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29화
제9화. 치어리딩 미션(4)
치어리딩 미션까지 D-4.
다재다능 팀이 오늘 모이기로 한 장소는 공교롭게도 평소와 같은 연습실이 아니었다.
회사와 동떨어진 한강의 어느 유원지.
주말 오전대라 그런지,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보였다.
먼저 약속 장소에 와 있는 우미와 비아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우미는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들어서 사람들이 부쩍 비아를 많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1차 서바이벌 투표 방송 덕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면서 눈물을 쏟아냈던 비아의 모습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이비아 아니야?’라고 물어보고 있었다.
게다가 두 연습생 주변에는 SSS 제작팀이 카메라와 각종 촬영 장비를 들고 서 있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미와 비아를 알아봤다.
“저기 봐. 촬영 중인가 봐.”
“SSS 촬영인가?”
“이번에는 어떤 미션 때문에 여기까지 와 있는 거래?”
“나도 몰라.”
사람들은 두 연습생이 미션 때문에 한강 근처로 나온 줄 알고 있었다.
우미와 비아도 차라리 그랬으면 했다.
오늘 그녀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어제저녁, 권이연의 갑작스러운 발언 때문이었다.
비아가 어제 톡방에서 본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면서 우미에게 물었다.
“언니. 이연 언니가 ‘오늘은 하루 종일 놀 거다’라고 한 거 맞지? 내가 톡 잘못 본 거 아니지?”
“제대로 본 거야. 나도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아니, 맨날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투덜대던 이연 언니가 왜 이런대?”
“그거는…… 나도 모르지.”
따지고 보면 우미와 비아, 그리고 이연. 이렇게 세 사람이 알고 지낸 지는 그렇게까지 오래되지 않았다.
LC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사이였으니까.
그래서 아직 이연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들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루웰의 영혼이 이연의 몸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이런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비아가 지하철역 1번 출구 쪽을 가리켰다.
“저기, 이연 언니하고 앨리샤 언니 같이 오네.”
약속 장소로 오다가 중간에 만나게 된 두 사람.
우미, 비아에게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지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스태프들이 모여 있는 모습 덕분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오자마자 비아가 잠시 카메라 앞이라는 걸 망각한 모양인지, 이연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따졌다.
“언니! 다른 팀들은 지금 연습실에서 미친 듯이 안무 짜고 연습하고 그러는데. 우리만 놀아도 되는 거야?”
이연은 일말의 고민 없이 곧장 그렇다고 답했다.
“어차피 지금 안무 연습해 봤자 진도도 안 나가잖아. 억지로 연습한다고 막힌 게 뚫리는 것도 아니니까 오늘 하루는 그냥 푹 쉬는 게 좋아.”
사람인 이상 슬럼프는 누구든 겪을 수 있다.
극복하는 방법 역시 다르지만, 이연은 일단 쉬는 게 제일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에너지가 바닥났으면, 충전을 해야 한다.
아웃풋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연이 직접 오늘의 코스까지 짜 왔다.
“여기 근처에 괜찮은 카페가 있다고 해서, 우선은 거기부터 갈 거다. 그다음에 밥 먹고, 산책길 따라서 바람도 좀 쐬고 난 다음부터는 하고 싶은 거 추천받을 테니까 미리미리 생각해 둬.”
우미와 비아가 귀를 의심했다.
“진짜로 오늘 일정은 그게 끝이야?”
“우리, 연습은?”
“아까도 말했듯이 오늘은 놀기만 할 거야. 스태프들한테도 이미 말해뒀어.”
극과 극을 오가는 이연의 방식에 팀원들은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반면, 앨리샤는 두 사람에 비해서 당황해하는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이연이 말도 일리 있잖아? 안 그래도 중간 점검 이후부터 연습 분위기도 완전히 엉망이고. 리프레시한다는 기분으로 오늘 하루는 열심히 놀아보자고. Let's enjoy, Okey?”
걱정이 많은 팀원들과 다르게 앨리샤는 사고방식 자체가 꽤나 긍정적이었다.
앨리샤까지 이연의 의견을 두둔하고 나서니.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미 제작진에게 오늘의 일정을 다 말해뒀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알았어. 이연 언니 말대로 할게.”
비아에 이어서 우미도 결국 이연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 * *
연습이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열심히 놀자.
이것이 오늘의 콘셉트였건만.
정작 팀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좀처럼 자리 잡지 못했다.
불안, 초조, 그리고 걱정.
오만 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이 우미아 비아의 얼굴 표정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이연이 직접 고른 카페로 안내했다.
“이쪽이야.”
“와, 여기 뭐야?”
“카페가 강 위에 떠 있잖아!”
나름 많은 카페를 다녀봤다고 자부하는 두 사람조차도 이연이 가리킨 카페는 처음이었다.
외형도 외형이지만.
내부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예술이었다.
SSS 제작진이 미리 확보해 둔 야외 테라스 자리로 이동한 네 명의 연습생.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3잔, 바닐라라떼 1잔, 다크 초코 케이크, 고구마 케이크 나왔습니다.”
직원의 외침을 듣고 앨리샤와 비아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로 돌아와 포크를 한 개씩 분배해 준 비아가 곧장 다크 초코 케이크 쪽을 향해 포크의 날을 세우려 했다.
그 순간, 이연이 비아의 손등을 가볍게 찰싹 때렸다.
“아얏! 왜 그래, 언니!”
“장유유서라는 말도 모르나. 웃어른이 먼저 식기를 들고 맛을 본 다음에 먹어야지.”
“이 꼰대 언니가 또…… 알았어, 알았다고. 우미 언니부터 먼저 먹어.”
우미는 이연의 과도한 친절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깐깐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고 만류했다.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지만, 음료나 케이크 맛은 그만한 가치를 증명했다.
입에 단 음식이 들어가서인지 연습생들은 아까에 비해서 표정이 많이 풀어진 모습을 보였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넓게 펼쳐진 한강의 풍경까지.
우미가 잠깐 자신들이 처한 입장을 잊은 모양인지 혼잣말을 흘렸다.
“이런 게 힐링이구나.”
“마음에 들지?”
이연이 묻자, 연습생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요 근처에서 오리배도 탈 수 있다고 하니까, 이거 마시고 가서 타보자고.”
“정말?”
비아가 눈을 반짝였다.
평소의 기운찬 그녀로 돌아온 것이다.
이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두 팀 나눠서 오늘 점심값 내기 시합하는 것도 재미있을지도.”
“그거 괜찮다! 하자, 언니들!”
금세 분위기가 바뀐 비아를 보면서 이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팀원들도 같았다.
동시에 이연의 작전이 정말로 통하는 거 같아서 신기하기도 했다.
* * *
이연이 말한 대로 오리배 내기가 성사되었다.
우미와 비아가 한 팀, 그리고 동갑내기 둘이 팀을 이루어 맞붙었다.
맏언니, 막내 팀이 열심히 페달을 밟았지만.
결과는 이연, 앨리샤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승리의 주요인은 바로 이연이었다.
점심으로 얻어먹게 된 스테이크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앨리샤가 이연을 가리키면서 오리배 내기 시합 당시를 회상했다.
“이연이, 하체 힘 장난 아니야. 쉬지도 않고 계속 움직이더라고.”
이연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무대에 서려면 근력과 체력은 필수니까. 이 정도는 기본이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작은 등심 스테이크 조각 하나를 입안으로 가져갔다.
하하호호 웃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네 여자.
한편, 카메라 밖에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던 카메라 감독이 서윤철 PD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근데 정말 저대로 놔둬도 됩니까? 치어리딩 미션까지 이제 4일밖에 안 남았는데요.”
다른 연습생 팀들은 지금 사활을 걸고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다재다능 팀 멤버들만 저렇게 웃고 떠들고 있으니.
지켜보는 스태프들이 오히려 더 불안할 정도였다.
물론 서윤철 PD도 같은 생각이다.
권이연은 현재 SSS 내에서 초반에 열심히 밀어줬던 진절혜를 누르고 가장 인기가 많은 멤버 자리를 차지했다.
시청자들의 관심 대부분은 권이연에게 향하고 있을 터.
그런 권이연이 만약 치어리딩 미션에서 안 좋은 성적을 보여준다면, 2차 서바이벌 투표에서 자칫 권이연이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휴식이 아직 연예계의 냉혹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연습생의 헛된 여유 부림이 될지.
아니면 지금 팀의 기량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발판이 될지.
그건 서 PD도 장담할 수 없었다.
대신에 그가 해야 할 일은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
“연습생들이 저렇게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지금은 일단 지켜보자고.”
“내일도, 모레도 저러면요?”
“글쎄. 아직까진 그런 말 없었으니까. 그리고 너무 대책이 안 보인다 싶으면, 그때 개입해도 늦지 않겠지.”
서 PD가 허락할 수 있는 재량 범위는 딱 오늘까지다.
오늘 내에 뭔가 대안이 보이지 않겠다 싶으면 제작진 쪽에서 먼저 칼을 빼 들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PD님. 권이연 연습생이 저희한테 따로 챙겨달라고 했던 소품 있었는데. 아세요?”
“그런 게 있었어?”
“네.”
“뭔데?”
22명의 연습생들을 체크해야 하다 보니, 서 PD가 놓치는 게 몇 개 있었다.
황 감독이 소품 담당을 불렀다.
“PD님한테 그거 보여 드려.”
“네, 알겠습니다.”
젊은 스태프가 잠시 자리를 비키더니, 이내 무언가를 가져와서 서 PD에게 확인시켜 줬다.
서 PD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케이스에 싸여 있는 악기 하나.
“통기타 아니야?”
* * *
식사를 하고 한강을 따라 쭉 걷기 시작하는 네 명의 연습생.
손에는 오늘 두 번째로 마시는 커피들이 한 잔씩 들려 있었다.
비아가 한 손을 쫙 펼치면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날씨 너무 좋다! 맨날 연습실에 박혀서 나오질 못하다가 이렇게 밖에 나오니까 살 거 같아!”
옆에서 나란히 걷던 앨리샤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비아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내일도, 모레도 이랬으면 좋겠는데.”
“언니는 노는 걸 너무 좋아해서 탈이야.”
“노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난 말이야. 나중에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젊었을 때 바짝 벌고, 그 이후에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거야.”
“하고 싶은 게 뭔데?”
“음식 투어?”
“언니답네.”
몇 걸음 떨어져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미가 작게 웃었다.
“애들이 다시 컨디션이 돌아왔나 봐. 네가 생각한 대로 됐네.”
목적을 이뤘다고 봐도 무방해 보였다.
하지만 이연은 고개를 위아래가 아닌 좌우 방향으로 흔들었다.
“아직이야.”
“응? 아직이라고?”
“단순히 팀원들 기분 좋아지라고 하루를 날리면서까지 이런 계획을 세운 게 아니야. 이것도 일종의 연습…… 아니, 훈련이거든.”
주변을 살피던 이연이 손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쪽이 좋겠어.”
“뭐가?”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어느 한 장소.
이연이 또다시 깜짝 발언을 들려줬다.
“이제부터 저기서 공연할 거야.”
“공연이라고? 누가?”
“우리가.”
“…….”
우미는 이연의 화제 전환 속도를 따라잡을 자신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