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28화 (28/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28화

제9화. 치어리딩 미션(3)

사실 권이연은 오늘 중간 점검을 받기 전부터 별로 좋은 예감을 받지 못했었다.

오늘 와서 처음으로 다재다능 팀의 안무 연습을 보는 이은솔보다, 사실 그녀가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팀 분위기가 완전히 엉망이라는 것을.

그래서인지 안무 퀄리티 역시 이연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떨어진 상태로 나오게 되었다.

이 모든 걸 알고서도 권이연은 계속해서 연습을 주도했었다.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이연의 기대만큼 이비아의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중간 점검을 한번 받아보자고 한 건데.

‘역시나였군.’

너무나도 빤히 예상되었던 결과여서 그랬는지, 권이연은 크게 충격받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멤버들은 달랐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이은솔의 눈치를 살폈다.

이은솔이 연습생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말했던 적은 여태껏 없었다.

그래서일까.

연습생들은 유독 더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마저 연습생들에게 싫은 소리를 잘 안 하려고 했던 이은솔이지만, 그래도 빤히 보이는 문제점을 하하호호 웃으면서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이은솔도 프로였기 때문이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권이연 양이 센터를 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쪽이 지금 당장 안무 퀄리티를 업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센터를 맡으면 메인보컬 역할도 같이 수행해야 한다.

이은솔은 이미 그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팀 내에서 권이연의 비중이 많이 올라갈 것이다.

반면, 비아의 비중은 그만큼 떨어진다.

“이비아 연습생.”

“……네, 선배님.”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아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팀을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는 조언이니까요.”

이비아는 작은 목소리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매번 안무 연습을 하면서 이비아는 차라리 권이연이 센터를 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가진 적이 있었다.

그만큼 이연은 그 누구보다도 센터 자리에 어울리는 연습생이었다.

하지만 권이연은 달랐다.

“선배님.”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은솔의 시선이 권이연에게 향했다.

“권이연 양.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예, 있습니다.”

권이연이 들려준 말은 이은솔을 제외한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저는 비아가 계속 센터를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선배의 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이었다.

팀원들은 이연의 돌발적인 발언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러나 이은솔은 크게 불편해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과 심사 위원은 어디까지나 이들의 무대를 평가할 뿐.

연습생들의 무대에 지나치게 간섭해선 안 된다.

그녀들의 생각대로, 그리고 그녀들의 의도대로. 최대한 열심히 무대를 완성시켜 가게끔 해주기만 하면 된다.

이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당돌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거였다.

“권이연 양이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센터는 계속 비아 양으로 유지한다는 전제하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만 몇 가지 드려도 될까요?”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해랄 것도 없죠. 대신에 이거 하나만은 알아두세요.”

아무리 권이연이 대단한 실력자라 할지라도.

아직은 데뷔조차 못 한 아마추어다.

그래서 이은솔은 권이연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대중들은 저나 심사 위원들보다 훨씬 냉정합니다.”

한번 무대에서 관심을 돌리면, 그것을 다시 되돌리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

이것까지 전부 감당해 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 * *

중간 점검 촬영이 끝나자마자 이은솔은 스태프들과 함께 안무연습실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전에 권이연이 이은솔을 먼저 찾았다.

“선배님. 죄송한데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둘이서만 따로요.”

이은솔의 귀에는 ‘둘이서만’이라는 단어만 쏙 들어와 박혔다.

그러나 이은솔의 매니저가 팔꿈치로 그를 툭툭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시간 없어. 바로 출발해야 해.”

이다음에 다른 프로그램 녹화가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은솔은 아무리 매니저라 할지라도 막을 수가 없었다.

“네, 가서 이야기 나누죠.”

“너…….”

“형. 금방 오면 되잖아요. 차 시동 걸어놓고 계시면, 제가 바로 갈게요.”

매니저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딱 5분이다.”

“감사합니다, 형.”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이연이 부르는데, 이은솔의 머릿속에는 무조건 응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회사 휴게실로 향한 두 사람.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이은솔이 헛기침을 하면서 물었다.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

뭔가 기대감에 가득 찬 이은솔에게 이연이 들려준 첫마디는 이러했다.

“아까 일로 사과드리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음유시인으로 활동할 당시, 그녀가 살았던 세계관에서는 선후배 관계가 굉장히 엄격했다.

게다가 귀족 가문이다 보니 서열 관계도 중시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업계 선배가 센터를 바꾸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그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던 것이 권이연은 크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따로 사과를 하고 싶었다.

“아…… 그 말 하고 싶어서 따로 보자고 한 거였구나.”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연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괜찮아. 아까도 말했지만, 이 무대는 내가 아니라 너희가 주인공이니까. 나는 어디까지나 내 생각을 들려준 것뿐이고, 이걸 받아들일지 말지는 너희가 결정하는 거야.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물론 이게 방송에 나가면 이연의 태도에 의아함을 드러내는 시청자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서윤철 PD의 성격상, 이런 자극적인 장면은 분명 편집 안 하고 그대로 살려서 방송으로 보낼 테고 말이다.

이 상황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네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무대로 직접 증명하면 돼. 그게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야.”

이은솔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래. 그럼 치어리딩 미션, 힘내고. 아, 잠깐만.”

이은솔은 주머니 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

찌익. 종이 한 장을 찢은 뒤에 뭔가를 적어서 이연에게 건네줬다.

“이거, 내 개인 번호야. 혹시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네가 정 불편하다면 나한테 굳이 연락 안 해도 되니까. 그냥 번호만 저장해 둬.”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이은솔과의 이 연줄이 이연에게 닥칠 위기 상황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천만에. 그러면 늦었으니까 나 먼저 가볼게. 우리 매니저 형, 시간 지키는 거에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거든.”

주어진 시간은 단 5분뿐이다.

빠르게 휴게실을 벗어난 이은솔은 정확히 4분 36초 만에 밖에 정차되어 있는 매니저의 차 안에 탑승할 수 있었다.

“나 안 늦었다?”

“알아, 인마. 출발할 테니까 안전벨트 매라.”

“안전벨트…… 아!!”

갑자기 이은솔이 비명을 질렀다.

출발하기 직전에 깜짝 놀란 매니저가 화를 냈다.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놀라서 액셀 밟을 뻔했잖아!”

“……망했다.”

“망했다니. 뭐가?”

이은솔이 손으로 이마를 감싸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번호를 주기만 했지, 정작 내가 번호 받아낼 생각은 안 했네.”

이제 와서 이연한테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고.

꼬여도 아주 단단히 꼬여 버렸다.

* * *

중간 점검이 끝난 팀 다재다능의 연습실에는 정적만 감돌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때에, 이은솔과 따로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 권이연이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연습생들을 보면서 한숨을 삼켰다.

“왜들 그러고 있어. 연습해야지.”

“……언니.”

비아가 할 말이 많다는 표정으로 이연을 불렀다.

그러나 이연이 먼저 나서서 사전에 비아의 말을 차단했다.

“센터는 너로 계속 갈 거야. 이미 이은솔 선배님한테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이제 와서 다시 바꿀 수도 없어.”

“정말 나로 괜찮은 거야? 다시 생각해 봐. 선배님도 언니가 센터에 서는 게 더 안정적이고 어울린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보다 훨씬 잘하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연은 이걸 다르게 보고 있었다.

“부족한 실력을 메꾸려고 연습이라는 게 필요한 거야. 아직 무대에 서기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멘탈 단단히 잡아.”

이럴 시간도 없다.

권이연은 다시 한번 멤버들을 다독이면서 연습을 독촉했다.

그러나.

“원, 투, 쓰리, 포. 원, 투, 쓰리…….”

리듬에 맞춰 손뼉을 치면서 멤버들의 안무 하나하나를 전부 체크하던 이연은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독려를 해도, 팀원들의 사기는 나아질 줄 몰랐다.

특히나 비아가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이연이 먼저 결단을 내렸다.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응?”

“여기까지라고? 아직 해도 안 떨어졌는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에 늦은 저녁까지 연습하고 헤어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지난주에도 그랬고, 바로 어제도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은 오후 네 시밖에 안 됐는데 이연이 먼저 연습 종료를 선언하니까 팀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은 이걸로 됐고.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쉬어도 돼.”

“진짜로? 치어리딩 미션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우미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어투로 걱정을 드러냈지만, 이연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이대로 계속 연습해 봤자 시간만 날리는 꼴이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집에 가서 못 잤던 잠 푹 자고 쉬면서 시간 보내는 게 훨씬 나아. 내일 일정에 대해선 오늘 저녁에 내가 따로 연락 줄게.”

“응…… 알았어.”

이연이 아무 생각도 없이 이렇게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권이연이니까. 팀원들은 그녀에게 계획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보고 있었다.

권이연 덕분에 1라운드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팀원들을 먼저 보낸 이연은 잠시 뒤, 이 모든 상황을 카메라로 지켜보고 있을 제작진을 따로 찾았다.

“조연출님.”

“네, 이연 씨.”

바로 옆방에서 대기 중이던 조연출이 이연에게 다가왔다.

“내일 일정, 바꿀 수 있을까 해서요.”

조연출이 여러 차례 눈을 끔뻑였다.

“일정을 바꾼다고요? 회사에서 연습 안 해요?”

“네.”

이대로 가면 이은솔이 말한 것처럼 팀 전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권이연은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내일은 팀원들 데리고 밖에 나가서 하루 종일 놀다가 들어올 겁니다.”

그녀의 폭탄 발언에 조연출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