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26화
제9화. 치어리딩 미션(1)
갑작스럽게 떨어진 2라운드 첫 번째 팀 미션에 연습생들은 크게 당황했다.
반면, 권이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권이연은 어느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방송국 놈들을 쉽게 믿으면 안 된다고.
고생한 연습생들에게 오늘만큼은 마음 편히 쉬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했을 때부터 이연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말이다.
결국은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게 되었다.
미션 내용이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처럼 비슷한 모습을 보인 이는 또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진절혜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다른 연습생들처럼 놀라는 연기를 선보이면서 자신도 처음 듣는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럼에도 이연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말과 행동.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에도 억지스러움이 너무 진하게 느껴졌다.
‘이석호에게 미리 정보를 들었겠지.’
심증은 있다.
그러나 물증이 없어서 권이연은 당분간 잠자코 있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미션 내용을 미리 알고 있다 할지라도, 2등인 진절혜가 1등으로 올라설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치어리딩 미션을 뒤늦게 접한 비아가 이연의 팔을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어떻게 해, 언니!”
“하라면 해야지.”
달리 방법이 없다.
혼란스러워하는 연습생들을 향해 민주린이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은 스튜디오로 돌아가도록 하죠.”
그 와중에 이연의 시선은 한동안 점수가 새겨진 전광판에 머물렀다.
‘결과는 보고 가고 싶은데.’
그만큼 그녀는 치어리딩 미션이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 * *
스튜디오로 다시 복귀하고 나서야 치어리딩 미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연습생들에게 전달되었다.
“치어리딩 미션은 총 다섯 팀으로 나뉘어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1차 서바이벌 투표 때 상위권을 차지했던 1위 연습생, 권이연 양을 시작으로 2위, 3위, 4위, 그리고 5위까지. 다섯 명이 나와서 자신이 팀원으로 데려가고 싶은 연습생들을 고르시면 됩니다. 참고로 팀원 상한은 없습니다. 단, 최소 제한은 3명의 고정되어 있으니까 이 점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설명을 모두 들은 연습생들은 무거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1위부터 5위까지. 잠깐만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실래요?”
민주린의 부탁에 따라 다섯 명의 연습생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도 권이연이 가장 먼저 팀원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연은 1차 서바이벌 투표 당시, 우미와 비아가 어떻게든 자신과 함께 2라운드에 진출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는 걸 그룹 데뷔 멤버들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그렇다 보니 개인 미션보다 팀 미션이 많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계속해서 팀 미션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이연은 이번에도 거침없이 팀원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양우미 연습생, 그리고 이비아 연습생부터 먼저 고르겠습니다.”
우미와 비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어쩌면, 설마 이연이 자신들을 선택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선 때부터 같이 호흡을 맞춰온 팀 멤버들이었기에 이연의 이런 선택은 다른 연습생들에게조차 당연시되고 있었다.
딱 3명만 고르고 끝날 건 아니었다.
“선배님한테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권이연은 마이크를 든 채 민주린에게 질문을 건네려고 했다.
그전에 민주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순위권에 있는 연습생을 팀원으로 데려갈 수 있는지 물어보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자신과 같이 팀원 선택권을 부여받은 앨리샤를 이번에도 데려가고 싶어 했다.
이미 한번 전례가 있던 일이었기에 이번에도 역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대신, 저번처럼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팀원 선택권을 포기하고 이연과 같은 팀이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앨리샤에게 턴이 넘어갔다.
“이연이하고 같이 팀 하겠습니다.”
앨리샤의 즉답으로 인해서 1라운드 때와 같은 다재다능 멤버들이 다시 한번 뭉치게 되었다.
2위를 차지한 진절혜는 권이연과 달리 1라운드 때 호흡을 맞췄던 멤버들을 모두 배제했다.
아예 새로운 멤버들로만 구성한 진절혜의 모습을 보면서 권이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1위를 차지하지 못했던 게 팀 탓이라고 생각하나 보군.’
만약 이곳이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아래였더라면, 권이연은 진절혜를 향해 온갖 잔소리를 쏟아냈을 것이다.
진절혜는 팀의 리더였다. 팀 미션에서 결과가 안 좋았다면, 1차적으로 리더의 책임이 큰 게 당연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력은 있는데. 자존심하고 고집이 쓸데없이 강해서 장점을 다 갉아먹고 있어.’
그래서 권이연은 2라운드를 통해 진절혜에게 뼈저리게 알려주기로 했다.
팀원을 물갈이해 봤자 어차피 자신에겐 안 된다고.
* * *
모든 팀 선정이 끝나고.
민주린이 이들에게 치어리딩 미션 룰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이번 팀 미션은 팀 대 팀 대결 구도가 아니라 관중들의 평가로 인해 순위를 매기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실제 야구 경기장에 사전 예고 없이 무대에 올라가서 무대를 선보이고, 총 100명의 관중에게 점수를 받아서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한 팀이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간단했다.
100명의 관중을 임의로 선정해서 그들에게 1점부터 5점까지 적혀 있는 종이를 분배한다. 그리고 1인당 한 장씩만 골라서 제출하게끔 한 다음 점수를 매기게 된다.
“100명 모두가 다 5점권을 넣는다면, 총 500점 만점이 되겠죠. 반대로 1점권을 넣는다면, 최하 점수인 100점이 되겠고요.”
점수 폭의 차이가 크다 보니 경우의 수가 상당하다.
1차 목표는 400점 후반대를 기록하는 것.
그러면 안정적으로 상위권을 노릴 수 있다.
변수가 있다면.
‘100명을 랜덤으로 고른다는 거겠지.’
1라운드에서 진행했던 팀 미션은 관객들이 어느 정도 자기가 응원하는 팀을 정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번 치어리딩 미션에는 그런 게 일절 없다.
단 한 번의 무대만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을 자신들의 팬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찌 보면 가장 공정한 미션이기도 했다.
‘물론 편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선 그렇겠지.’
권이연은 다시 한번 진절혜를 살폈다.
그녀가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의 권이연으로서는 정확하게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석호와 내통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우연히 알아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면 다른 제작진이나 연습생들은 아예 모르고 있겠지.’
일단은 때를 기다리는 게 좋아 보였다.
한창 프로그램이 잘되어가고 있는 와중에 초를 치면, 결국 권이연과 다른 연습생들에게도 손해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확실한 물증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전까지 권이연은 일단 진절혜를 주시할 생각이었다.
마이크를 든 민주린이 마무리 멘트에 돌입했다.
“오늘 전달사항은 여기까지입니다. 치어리딩 미션은 10일 뒤에 시작될 예정이니, 그 전까지 저희가 준비한 오리지널 곡으로 최고의 무대를 준비해 주세요.”
1라운드 팀 미션에선 커버곡으로 무대를 꾸며야 했지만, 2라운드 첫 팀 미션은 오리지널 곡으로 안무를 새로 짜야 했다.
단 10일.
시간이 없다.
팀원들을 모은 권이연은 작가로부터 받은 자료들을 가지고 바로 LC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향했다.
2차부터는 팀별 미팅룸과 안무 연습실이 고정으로 정해진다.
미리 대기 중이던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 미팅룸에 자리를 잡은 네 명의 연습생들.
이연은 구석구석에 붙어 있는 관찰용 카메라가 신경 쓰였지만, 애써 노트북 화면으로 모든 이목을 집중했다.
우선은 노래부터 다시 한번 쭉 들어보기로 했다.
비아가 가장 먼저 노래를 들어본 소감을 꺼냈다.
“노래 엄청 귀엽다! 그치?”
우미가 공감하듯 고개를 연달아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그러게. 상큼하고, 에너지 넘치고. 딱 우리 비아 스타일이네.”
그래서인지 비아는 다재다능 팀에게 할당된 이 노래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미와 앨리샤도 나름 만족하는 편이었다.
한 명만 빼고 말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네.”
이연이 딱 잘라 말했다.
하트하고 윙크를 뿅뿅 날려야 할 것 같은 콘셉트의 노래를 남자였던 이연이 좋아할 리 없었다.
우미가 이연의 짧은 소감을 듣고 이해가 안 간다는 어투로 물었다.
“너, 이런 노래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야…….”
전(前) 권이연이 한 말이고.
현(現) 권이연의 취향은 아니었다.
“이연 언니. 그러면 섹시 콘셉트는 어때?”
“그건 더 싫은데.”
그래도 이전 곡들은 큐트, 섹시. 어느 쪽이든 극단적으로 치우치진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곡은 다르다.
대놓고 큐트 콘셉트로 가라는 곡이었다.
앨리샤가 스태프들이 PPL이라면서 미리 깔아둔 과자 중 한 봉지를 순식간에 해치우고서 물었다.
“그러면 네가 편곡해 보는 건 어때? 속도 빠르잖아.”
“안 돼.”
“왜?”
“편곡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이틀에서 삼일 정도는 필요할 텐데. 그러면 그만큼 연습할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드니까.”
만약에 이 미션이 팀 미션이 아니라 개인 미션이었다면 권이연은 편곡을 택했을 것이다.
혼자라면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서 기간이 줄어들더라도 완벽하게 무대를 꾸밀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미나 비아, 앨리샤는 다르다.
앨리샤라면 어찌어찌 권이연의 템포에 맞춰서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우미와 비아의 역량이 그 정도까지는 안 됐다.
다른 연습생들의 기량도 고려를 해야 했기에 이연은 안 된다는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안무 회의에 돌입해야 한다.
“곡은 이대로 가고. 일단은 안무부터 짜자.”
“응!”
2라운드부터는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이다.
* * *
곡을 들으면서 안무를 짜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포인트 안무가 들어가야 할지가 보인다.
이연의 주도하에 빠른 속도로 안무를 짜는 다재다능 팀.
“중간에 들어가는 랩 파트는 내가 맡을게.”
“엥? 왜?”
멤버들 모두가 다 이연의 결정에 크게 놀랐다.
랩이라고 해봤자 몇 소절 안 된다. 가장 덜 주목받는 포지션인데도 불구하고 권이연은 본인이 먼저 랩 담당을 희망했다.
이연이 랩 파트를 욕심내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덜 주목받는 포지션’이라서.”
어차피 이건 팀 미션이다.
팀을 위해서라면, 내가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는 게 좋다.
우미의 얼굴에 근심과 걱정이 깃들었다.
“나는 네가 센터, 메인보컬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이연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모두 생각이 일치했다.
그럼에도 이연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나 대신 다른 사람이 해.”
“그럼 누가 했으면 좋겠는데?”
큐트 콘셉트의 무대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멤버.
권이연의 선택은 바로.
“비아, 너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