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9화
제6화. 팀플레이(6)
속속들이 특설 스튜디오에 들어와 객석을 채우기 시작하는 사람들.
PD는 사람들로 가득한 무대를 보면서 작가에게 물었다.
“방청권 예매 페이지 오픈되자마자 서버 다운됐었다고 했지?”
“네. 관리자가 그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PD님이 직접 보셨어야 했어요. 그날 그쪽 팀 강제로 야근했다고 그러더라고요.”
방청권 경쟁률 또한 엄청났다.
랜덤 추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먼저 신청하기 위해서 정각이 되자마자 바로 홈페이지로 몰려들었다.
시청률도 꾸준히 오르고 있고.
아직 대박이라고 보기까진 먼 수치였지만, 그래도 화제성 하나는 톱이었다.
“이번 팀 미션으로 한번 빵! 터뜨렸으면 좋겠는데.”
“저번에 연습생들 중간 점검 때 보니까 권이연 연습생네 팀이 기대를 많이 받지 않았나요? 심사 위원분들도 가장 호평이었고.”
“그랬지. 근데 또 몰라. 전문가들이 보는 시선하고 대중들이 보는 시선이 항상 같으란 법은 없거든.”
서윤철 PD는 그런 경우를 수도 없이 봐 왔다.
자기 딴에는 야심 차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막상 방영되었을 때에는 미적지근한 성적을 보여주고.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전혀 기대 안 했던 프로그램이 의외로 대박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SSS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속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것도 LC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먼저 접촉을 해와서였다.
아이돌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미 많이 나왔고.
그래서 SSS 역시 이것들을 따라 한 아류작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연습생들의 존재와 개성은 서 PD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시청자들에게 잘 통했다.
덕분에 이런 호황 아닌 호황을 누리게 된 것이다.
“권이연 연습생 팀이 마지막 순서였던가?”
“네.”
“그 앞 순서가 진절혜 연습생이고.”
“PD님이 요즘 둘이 라이벌 구도로 밀어붙이고 있죠?”
“어. 반응 좋더라.”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진절혜파와 권이연파로 나뉘어 치열한 응원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번 팀 미션 역시 그랬다.
방송 시작 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1위를 유지해 오고 있는 압도적인 연습생, 진절혜.
그리고 말 그대로 ‘꼴찌의 반란’을 꿈꾸고 있는 권이연.
“1위와 32위, 극과 극의 대결. 객관적으로 봤을 때에는 실력 차이가 너무 분명하게 나서 뻔한 결과가 될 수 있는데. 의외로 이게 박빙이란 말이지. 사람들은 이런 거에 열광하더라.”
“PD님이 보시기엔 이번에 누가 이길 거 같아요?”
“김 작가.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이 해선 안 될 일이 뭔지 알아?”
“네?”
여러 차례 눈을 끔뻑이는 방송 작가를 보면서 서 PD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냈다.
“함부로 결과를 예측하는 일이야.”
서 PD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이걸 뼈저리게 체험했다.
* * *
리허설 때 체크했던 무대를 떠올리면서 권이연은 다시 한번 멤버들을 데리고 동선 연습에 나섰다.
“언니가 사이드로 빠져주고. 비아가 이때 가운데로 차고 나오면 돼.”
“이렇게?”
“어. 잘했어.”
이제는 언니라는 칭호가 입에 붙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는데.
확실히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 맞았다.
동선 연습이 끝나자마자 앨리샤가 굳게 닫힌 대기실 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가 입을 의상은 언제쯤 도착할까?”
“그러게. 아까 의상팀 회의하는 거 들어보니까 우리 쪽 무대 의상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고 그러던데.”
“어떤 문제길래 그러지?”
괜히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권이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의상이라는 요소가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권이연의 기준에선 최우선으로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역시 보컬, 그리고 안무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약간의 문제라고 했으니까. 금방 해결되겠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 이연아. 잠깐만.”
우미가 이연을 잠시 불러 세웠다.
가만히 있어보라고 말한 뒤, 우미는 그녀가 직접 사용하는 틴트를 이연의 입술에 발라주려고 했다.
순간 이연의 몸이 크게 움찔했다.
“그거, 언니가 쓰던 거 아닌가.”
“응, 맞아. 아까부터 네 입술이 굉장히 신경 쓰였거든.”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왜, 갑자기.”
당황한 나머지 추궁하는 어투로 물었다.
그러자 우미가 작게 웃었다.
“색이 너무 옅잖아. 메이크업해 주시는 분들이 우리만 해주는 것도 아니고. 32명을 돌아가면서 하다 보니까 이 부분을 신경 못 써주신 거 같아. 그래서 내가 대신 해주려고. 아, 설마 내가 사용하던 거라고 좀 그런 거야?”
“아니, 그거야 뭐…….”
머릿속이 복잡해진 이연을 대신해서 비아가 ‘웃긴 언니네’라는 말을 꺼냈다.
“같은 여자들끼리 뭐 어때서. 우미 언니, 나도 발라줘. 나, 그 색 마음에 들어.”
“그럴까?”
우미가 직접 비아의 입술에 본인의 것을 발라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연은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이연이 살던 세계에서는 이성 간의 스킨십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특히 신분이 귀족이다 보니 문란한 사생활과는 거리를 멀리해야 했다.
방탕한 성생활로 인해 귀족 신분을 박탈당한 가문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권이연의 가문은 한번 몰락했던 경험을 지닌 가문이었기에 이런 점에선 특히나 더 엄격해야만 했다.
두 번 연달아 몰락 귀족이 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여성이다.
같은 여자끼리니까. 비아의 논리가 이연의 마음을 살살 돌렸다.
우미가 이연의 팔을 가볍게 찰싹 터치하면서 말했다.
“우미 언니가 이연 언니를 좋아하니까 이런 것까지 해주려는 거잖아. 그러니까 괜히 빼지 말고 얌전히 받아. 우리 팀의 센터가 비주얼에 신경 안 쓰면 어떻게 해?”
“…….”
앨리샤도 비아의 말에 동의하는지, 이연에게 눈치를 줬다.
한숨을 삼킨 권이연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우미의 앞에 섰다.
그러자 우미가 다시 한번 웃었다.
“누가 보면 내가 너한테 못된 짓 하려는 사람인 줄 알겠다.”
대기실에 카메라가 없다는 게 다행인 것처럼 느껴졌다.
슥슥.
우미의 손짓을 거치자, 무미건조해 보였던 이연의 입술에 반짝반짝 광택이 돌기 시작했다.
“자, 다 됐어. 어때. 예쁘지?”
대기실에 붙어 있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살피는 권이연.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예쁘긴 하군.’
볼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새롭다.
점점 촬영 시간이 가까워지자 권이연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멤버들과 짜투리 연습을 진행하려고 했다.
이때, 스태프가 대기실 문을 노크했다.
“무대 의상 가져왔어요.”
“네! 열어드릴게요!”
멤버들이 빠른 속도로 대기실 문을 직접 열어줬다.
네 벌의 옷이 연습생들의 눈앞에 마침내 등장했다.
의상을 본 순간, 이연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요! 제 거는 분명 바지로 해달라고 했었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바지는 보이지 않았다.
짧은 길이의 치마만 4개가 걸려 있었다.
스태프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이연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줬다.
“의상 제작 주문을 넣을 때 아무래도 중간에 착오가 있었나 봐요.”
치마 셋에 이연이 입을 바지 하나. 이렇게가 원래 연습생들이 주문한 초안이었으나.
그게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팀원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잘됐네. 언니 혼자만 바지 입고 있으면 좀 그랬을 거 같은데.”
“맞아. 우리는 팀이니까. 팀복 맞춰서 입었다고 생각해.”
“난 치마 쪽이 더 예쁜 거 같은데? 그리고 이연이, 다리가 늘씬하고 긴 편이니까 역으로 노출하는 편이 더 좋고.”
권이연에게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SSS 유니폼은 교복 느낌을 주기 위한 디자인으로 짜여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무대 의상은 달랐다.
여장을 했을 때조차 무대 위에서 단 한 번도 치마를 입어본 적 없는 권이연에겐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바지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체면이 말이 아니군…….’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나보고 이딴 옷을 입고 무대에 서라고? 안 한다!
……라는 말이 권이연의 마음속에 계속 맴돌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완벽했는데.
마지막 하나가 에러가 날 줄은 예상 못 했다.
권이연이 치마를 싫어한다는 걸 이제는 팀원들도 얼추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재빨리 권이연 달래기에 나섰다.
“이연 언니. 어차피 안에 속바지 입을 거니까. 괜찮잖아.”
“맞아. 그리고 우리가 오늘 소화해야 할 안무가 격한 동작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눈 딱 감고 20분…… 아니, 15분만 참자. 응? 이연아!”
팀원들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연이 최악으로 생각하는 게 바로 ‘무대에서 도망치는 일’이다.
고작 치마 하나 때문에 몇 주간 준비한 무대에서 도망칠 순 없었다.
게다가 이미 관객들까지 다 온 상황인데. 뒤로 미룰 수도 없지 않은가.
귀족으로서의 체면 VS 음유시인으로서의 자존심.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이연이 택한 건 바로…….
“……옷 입고 바로 연습 시작할 거니까 빨리 움직여.”
“네, 팀장님!”
결심을 굳힌 이연을 위해서라도 팀원들은 빠르게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보는 앞에서 갈아입지 말고! 다 큰 처자들이 뭐 하는 짓이야!”
권이연의 추가 잔소리는 덤이었다.
* * *
녹화 시작과 동시에 MC를 맡은 이은솔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를 보자마자 관중들의 열띤 함성이 이어졌다.
연습생들과 다르게 나름 오랫동안 가수 생활을 해온 짬이 있어서인지, 이은솔은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환호성이 잦아들 무렵.
이은솔이 큐시트를 들고 힘차게 외쳤다.
“LC 엔터테인먼트 신인 걸 그룹 데뷔 프로젝트,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고 있는 MC 이은솔입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이렇게 현장을 찾아와주신 여러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관중들과 함께 가운데에 위치한 특별 좌석에 나란히 앉은 심사 위원들 역시 박수갈채를 보냈다.
“무대를 보시기 전에 어떤 식으로 평가가 진행될지에 대해서 먼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팀 미션은 심사 위원분들이 평가한 점수 40퍼센트와 여러분들이 매긴 점수 60퍼센트가 합산되어 계산됩니다. 순위는 방송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니, 오늘 여러분들은 마음껏 무대를 즐기시고. 마음에 든 무대가 있었다면 그 팀에 표를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셨죠?”
“예!”
성적순에 따라 1차 생존자들을 가리는 투표에서 많은 이점을 얻을 수 있는 베네핏이 주어진다.
이 베네핏의 여부로 인해 탈락할 연습생이 생존하고, 반대로 생존할 수 있는 연습생이 탈락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오늘의 팀 미션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무대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팀, 나와주세요!”
마침내 연습생들이 펼치는 치열한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