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6화
제6화. 팀플레이(3)
친목을 다지는 사적인 대화도 좋지만.
“슬슬 집중하자.”
권이연의 말에 팀원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밀크티의 영상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연습생들.
그러나 여기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권이연과 양우미, 단둘뿐이었다.
나머지는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었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비아가 복잡한 건 싫다는 표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커버 무대니까. 별로 깊게 생각할 필요 없지 않아? 안무도 이미 다 나와 있고.”
앨리샤도 그녀에게 공감을 표했다.
“이미 완성된 무대인데. 우리가 여기서 뭔가를 더할 건 없겠지.”
“맞아, 맞아.”
하지만 우미는 이들의 의견과 반대였다.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안 돼. 여태껏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 많이 나왔었잖아. 거기서 무대를 똑같이 따라 했던 팀들은 대부분 성적이 안 좋았던 거, 기억 안 나?”
“그…… 랬나?”
우미에 비해서 앨리샤와 비아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애청자까진 아닌 모양인지 우미의 의견에 바로 반론을 펼치지 못했다.
이연의 경우에는 일단 영상을 좀 더 분석해 본 다음에 논의해 보자는 쪽으로 입장을 고수했다.
밀크티의 라스트 찬스 무대를 계속 응시하는 권이연.
후렴구가 시작되자, 민주린이 자연스럽게 센터로 치고 나왔다.
그런 뒤, 열심히 안무 동작을 펼치면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비아가 양손을 모은 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영상 속 민주린을 바라봤다.
“예쁘시네. 역시 선배님이셔.”
하지만 이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뭔가 좀 어색해 보이는데.”
비아가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어, 언니!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대선배님의 무대잖아!”
“대선배님이든 뭐든. 무대는 객관적으로 봐야지.”
“하…… 이 언니가 정말.”
한숨을 내쉰 비아가 카메라 쪽을 향해 손을 가위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거는 편집 좀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하는 듯한 제스처였다.
이연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연과 같은 팀을 꾸리게 된 나머지 세 명을 위해서라도.
방금의 발언은 가급적이면 편집되는 쪽이 좋다.
괜히 심사 위원인 민주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까진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아직도 밀크티 좋아하는 팬들이 많이 있을 텐데. 그분들을 자극하면 안 된다고.”
비아는 여전히 겁이 나는지 이연에게 분석도 좋지만 표현을 조금만 더 순화해서 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
이들이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 역시 방송을 통해 송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원들은 이연의 직설적인 표현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연은 그것보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밀크티 멤버들의 모습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냥 내 착각이었나?’
아니면 이연이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음유시인 출신이라서, 아직 대중가요 무대가 낯설게 느껴져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관계로.
“일단은 연습부터 하자.”
“연습? 어떻게?”
“방금 다 같이 영상 보면서 안무쯤은 다 외웠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바로 연습해 보자고.”
이연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다른 멤버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앨리샤가 황당한 표정으로 이연에게 물었다.
“진짜로 다 외웠어? 그 짧은 시간에?”
“어.”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보여줄까? 우미 언…… 니. 노래 틀어봐.”
언니라는 호칭에 살짝 버퍼링이 생겼다.
이연의 주문에 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영상을 재생시켰다.
안무 연습실에 밀크티의 라스트 찬스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이연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센터이자 리더인 민주린 포지션으로 안무를 소화하는 그녀.
마치 뜀걸음을 하듯 오른쪽 무릎을 골반 높이 두 번, 세 번, 네 번 들어 올린 후에 몸을 뒤로 쭉 뺐다.
다른 멤버들도 같이 무대를 펼치고 있는 것처럼 가상으로 설정을 해서 동선대로 움직이는 이연.
그녀의 모습에 팀원들은 좀처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저, 저게 말이 돼?”
“우리, 영상 몇 번이나 돌려 봤지?”
“3번…… 정도?”
“그 3번 만에 모든 안무를 다 외웠다고?”
단순히 따라 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각이 제대로 잡혀 있었다.
최소 3개월은 빡세게 연습한 사람처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안무 동작을 선보였다.
민주린의 파트가 나오기 직전.
이연이 앨리샤에게 옆에 놓인 작은 물통 하나를 가리켰다.
“그거 나한테 던져줘.”
“어? 어.”
당황하던 앨리샤가 이내 이연이 요구한 그대로 물통을 던졌다.
손을 쭉 뻗어 자연스럽게 물통을 낚아챈 이연은 마치 마이크를 든 것처럼 다시 센터 자리를 꿰찼다.
-이번이 Last Chance!
내 마음을 붙잡을 하나뿐인 기회.
Catch Me, Catch Me!
영상 속에 나오는 민주린 역시 다른 밀크티 멤버들과 다르게 혼자서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메인 보컬이라는 점을 대중들에게 부각시켜 주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연출을 택한 거였다.
2절 후렴구에 나오는 고음 파트에선 아예 대놓고 마이크를 들고서 샤우팅을 한다.
이연은 그 동작까지도 완벽하게 따라 했다.
마음만 먹으면 노래도 부를 수 있었지만, 일단은 안무만 따서 보여주는 거니까. 그래서 지금은 목을 아끼는 걸 택했다.
그럼에도 전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무대였다.
끝까지 이연을 의심했던 팀원들이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박수를 쳤다.
“언니, 진짜로 다 외웠구나.”
비아의 뒤를 이어서 앨리샤가 이연에게 질문을 꺼냈다.
“혹시 이 곡 안무, 알고 있던 거였어?”
“아니, 처음 봐.”
“암기력이 엄청 좋구나…….”
이걸 과연 암기력이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연에 대한 능력은 그렇다 치고.
“직접 춰보니까 알겠어.”
“뭐를?”
우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이연이 아까 잠깐 들려줬던 자신의 생각을 다시 되풀이하며 말해줬다.
“라스트 찬스 무대, 다시 봐도 뭔가가 어색해.”
이번에도 비아의 가위 모양의 손동작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 * *
이연이 밀크티의 무대 영상을 보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알 수 없는 위화감.
끝내 이것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오늘은 가볍게 밀크티의 안무를 따라 해보는 것 정도로 마무리를 지은 권이연 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이연은 머릿속으로 밀크티의 무대를 반복, 재생했다.
‘도대체 뭘까.’
이연의 호기심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원하는 해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권민준이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뭐 하고 있냐.”
이연이 시비조로 묻자, 동생은 수건으로 머리에 남아 있는 물기를 털어내면서 짧게 답했다.
“샤워했지. 누나는 안 해?”
“회사에서 하고 왔다.”
소속사에 마련되어 있는 샤워실이 집 화장실보다 훨씬 깔끔하고 좋다.
그래서 이연은 연습이 끝나면 샤워실에서 씻고 오는 편이었다.
다른 여자들이 먼저 들어가 있으면 그날은 못 씻고 오곤 했지만 말이다.
소파에 털썩 앉은 이연은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한 올을 떼어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권민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너, 밀크티라는 그룹에 대해서 잘 아냐?”
“밀크티? 알긴 알지. 완전 옛날 그룹이잖아?”
“라스트 찬스란 노래는.”
“들어는 봤는데. 근데 왜?”
“그 곡에 뭐 사연 같은 게 있나 싶어서.”
혹시나 해서 남동생에게도 물어봤지만, 소득은 제로에 가까웠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라는 게 도움 되는 게 없군.”
“이 누나가 오늘 왜 이래. 가만히 있는 남동생 괴롭히는 취미라도 생겼어? 아무튼 아이돌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묻지 말고 형운이한테 물어보라고.”
권민준이 말하는 ‘형운이’란 인물은 동생 친구인 주형운을 말하는 거였다.
양인박과 더불어서 이연을 몰래 좋아하고 있는 연하의 남고생.
이연의 귀가 한 차례 쫑긋 움직였다.
“아는 게 많나 보구만.”
“걔, 그쪽 방면으로는 완전히 전문가거든.”
“그렇단 말이지…….”
이연의 머릿속에 내일의 계획이 착착 세워졌다.
* * *
연습 이틀 차.
오늘도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 위해 안무 연습실에 모이게 된 우미와 비아, 앨리샤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모이기로 한 시간은 오후 2시.
그러나 팀의 리더이자 기둥인 이연이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스태프도 궁금한 모양인지 그녀들에게 먼저 다가가 물었다.
“이연 씨는 아직도 안 오셨나요?”
우미가 당혹감을 애써 감추며 답했다.
“아, 네! 얘가 원래 약속 시간은 철저하게 지키는 편인데. 이, 이상하네요…….”
팀원들은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
D-Day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 없고.
하다못해 준비하는 과정이라도 재미있게 풀어내야 그나마 자신들의 출연 비중을 최소한이라도 확보할 수 있을 텐데.
아예 촬영조차 못 하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비아야. 이연이한테 전화해 봤어?”
“했어, 언니. 10번이나 넘게 전화 걸었는데 안 받아.”
“얘는 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초조함이 극에 달할 무렵.
비아가 토끼 눈을 하고서 외쳤다.
“저, 전화 왔어!”
“이연이야? 줘봐!”
우미가 비아의 스마트폰을 강제로 낚아채다시피 하며 가져갔다.
“여보세요. 이연이니? 너, 지금 어디야…… 뭐?”
우미의 얼굴에 황당함이라는 감정이 번졌다.
“네 동생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들렀다가 오겠다고?”
너무 뜬금없는 대답이라서일까.
우미와 팀원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
권민준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때아닌 난리가 벌어졌다.
“저, 저 사람 혹시 SSS에 나왔던 그 권이연 아니야?”
“X발, 진짜네!”
“와, 얼굴 조그마한 거 봐라!”
“얼굴 미쳤네. 실물이 훨씬 예쁜데?”
평화로운 분위기를 한순간에 깨버린 인물, 권이연이 성큼성큼 학교 안쪽으로 걸어왔다.
학생들의 소란을 듣고 밖으로 나온 몇몇 선생들은 이연을 보고서 순간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학생주임을 맡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선생이 먼저 이연에게 말을 붙였다.
“저기, 혹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희 학교는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어서요.”
차갑다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냉담한 표정을 유지하던 권이연.
그랬던 그녀의 얼굴에 갑자기 화사한 미소 꽃이 피었다.
“여기 학교에 재학 중인 권민준이라는 학생이 있는데, 제가 권민준 학생 친누나거든요. 오늘 체육 수업 있는데, 체육복을 두고 왔다고 해서 가져다주려고 왔어요.”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미모.
38년을 살면서 여자와 연이라고는 일절 없던 남선생이 감당하기 힘든 매력이었다.
“그, 그런 거라면 제가 대신 전달하겠습니다.”
“아니요. 누나인 제가 직접 하게 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선생님.”
부탁한다는 말이 이렇게나 아찔하게 들렸던 적이 있었을까.
학생주임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게 하시라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